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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4 윗세오름국내여행/제주도 2014. 12. 17. 17:19
올라올 땐 살을 애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지만, 윗세오름 대피소 주변은 마치 그런 곳이 있었냐는 듯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름들과 건물들이 막아줘서 그런지 바람도 비교적 덜 부는 편이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다른 곳들보다 덜 추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대피소 건물 안에서 그나마 바람이라도 피하며 조금 쉬었기 때문에 다소 누그러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라산 남벽과 함께 한 눈에 보이는 웃세붉은오름.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윗세오름을 알리는 표지를 찍고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난다. 늦게 출발한 산행이라 버스 시간을 맞추려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
윗세오름 대피소가 있는 지점이 지도에는 '한라산 윗세오름 분기점'으로 표기돼 있는 것도 있다. 이름처럼 여기서 다른 길들로 향할 수 있는데, 남벽 쪽으로 향하면 '남벽 분기점'과 '평궤 대피소'를 통과해서 돈내코로 갈 수 있다. 대피소 뒤를 돌아 웃세누운오름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밟으면 영실 쪽으로 통한다.
사람들이 주로 택하는 코스는 어리목과 영실이다. 나는 시간에 쫒겨서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지만, 요즘은 영실에서 출발해서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경사가 가파른 영실 쪽을 오르막으로 오르고, 경사가 완만한 어리목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눈 덮힌 겨울철 산행에선 좀 더 안전한 선택이 될 듯 싶다.
대피소 앞쪽으로 보이는 것이 웃세누운오름. 윗세오름 대피소는 웃세누운오름과 웃세붉은오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며 한 숨 돌리면서 사진도 찍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대피소는 매점 외에는 딱히 별다른 시설이 없지만, 빈 건물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쉬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대피소 건물들 중 한 건물 내부. 벽쪽에 앉아서 쉴 수 있게 돼 있다. 등산객들이 많으면 이마저도 꽉 차서 제대로 앉아 쉬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피소 뒷쪽으로 난 길로 나가면 영실로 향하는 길이다. 쌓인 눈 사이로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길이 나 있어서, 처음 가면 대피소에서 길이 어디에 있는지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일 좋은 건 사람들 무리가 출발하면 슬슬 뒤따라 가는 것.
한라산 남벽을 뒤로하고 웃세누운오름을 옆으로 끼고 평탄한 길을 걷는다. 영실로 향하는 길은 한동안 평평한 길이 이어진다. 여기 쯤이 돌로 된 길이 아니었나 기억되는데, 울퉁불퉁한 돌로 된 길은 정말 다리와 무릎에 무리를 줘서 걷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눈이 높이 쌓여서 그런 것들을 다 덮어버린 상황이라 걷기는 오히려 편하다. 다만 대피소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칼날같은 바람이 얼굴을 베어낼 듯 후려친다.
과장 좀 보태서 사진을 잘 맞춰 찍으면 어디 히말라야 같은 데 왔다고 하며 보여줘도 믿을 수 있을 정도. 이곳은 이름도 참 희한한 '선작지왓'. 다른 계절엔 꽃 잔치가 펼쳐지기도 하고, 푸른 초원이 펼쳐지기도 하는 등, 계절마다 볼거리가 많은 고산 평원이다. 아마 그래서 어리목, 영실 코스는 계절을 불문하고 인기 많은 코스인지도 모른다.
웃세족은오름 전망대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나오는데, 시간이 없어서 여기도 그냥 지나쳤다. 늦게 출발한 것이 여러모로 아쉬운 산행이었다. 물론 겨울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가면 되겠지만, 다시 여길 가라면 글쎄... 너무 추워서 조금은 망설여진다.
대피소에서 조금 돌아나가서 웃세누운오름 앞쪽에 가면 노루샘터가 있어야 하는데, 정신없이 걸어서 그런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눈에 덮혀 있어서 분간이 안 됐던 것. 혹시나 있었다 해도 이렇게 추운 곳에서 그 물을 과연 마셨을까 싶기는 하지만.
탁 트인 시야의 넓은 평원을 조금 걸어가다보면 다시 숲이 나온다. 나무거 좀 우거져 있는데, 영실 쪽은 아무래도 어리목 쪽보다는 나무가 덜 우거진 편이다. 영실 매표소 쪽으로 내려가는 내내 어느 정도는 시야가 트여서 멀리 경치를 내려다보며 갈 수 있었다.
렌트카든 뭐든 차를 끌고 온 사람들은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내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경우엔 어리목 코스를 택하기보다는 영실 쪽을 택하는 게 낫겠다. 아무래도 영실 쪽이 힘은 좀 더 들어도 볼 것은 더 많은 편이다.
차를 끌고 와서 영실로 올라 어리목으로 내려간다든지 하는 사람들도 있긴 있었는데, 이들의 경우는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물론 돌아갈 때는 버스를 기다려 탈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 듯 하다. 영실에서 어리목 주차장까지 택시 요금이 2만 원에서 3만 원 사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돈이면 소형차를 하루이틀 더 빌릴 돈인데 싶기도 하고.
옛날엔 제주도가 다른 관광지들과 다를 것 없이 그냥 돈 쓰러 와서 먹고 즐기는 곳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제주도만의 특색을 갖춰 가고 있는 듯 하다. 굳이 많은 돈을 들여서 놀기보다는, 조금씩 아껴가며 소박하게 걷고 즐기며 조용히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확연히 드러날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와서 한라산을 오르는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도 있을 정도.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겠지만, 한 지역이 여행지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려면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와야 한다는 점을 저 윗사람들도 좀 알았으면 싶다. 그렇게 소문이 퍼져야 결국 돈 많은 관광객들도 더 많이 계속해서 찾아온다는 것 말이다.
숲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 한 짧은 숲길을 벗어나자, 이내 다시 시야가 트이고 낭떠러지 아래로 눈꽃 가득한 한라산 지역의 풍경들이 눈에 한 가득 들어왔다. 이스렁오름, 어스렁오름, 볼레오름, 왕오름 등 오름들마다 제각기 이름이 있긴 있지만, 어쩌다 가끔 한 번 찾아오는 내가 그 오름들 이름을 모두 구분해내기는 좀 어려웠다. 그저 눈 쌓인 오름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묵묵히 눈에 담으며 산을 내려갈 뿐.
낭떠러지 위로 나 있는 길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이 다시 거세진다. 아니 바람이 세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칼바람이다. 날카롭게 몸을 파고드는 그런 바람. 차갑기도 엄청 차가워서 한 두번만 맞아도 정신이 얼얼하다. 너무 찬 바람을 맞아서 정신이 몽롱한 그런 상태. 하지만 가파른 내리막이라 바짝 긴장하고 내려가야만 한다. 여기서 한 번 구르면 넘어지는 것 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 깊은 낭떠러지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보다는 아찔한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바람과 함께 다시 눈보라처럼 쌓였던 눈들이 위로 피어오른다. 아이젠 없으면 영실 쪽으로 하산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하다. 오르는 건 어떻게든 오른다 해도, 내려가는 길은 정말 미끄러운 곳도 많고, 거의 빙판처럼 돼 있는 곳도 있다. 급한 경사인데 미끄럽기까지 해서, 가이드 로프를 잡고도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다. 그 너머로 눈과 숲과 오름들이 빚어낸 경치만큼은 일품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경치는 공짜로 내놓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내려가다가 멈추지 못 하면 큰 일 날만 한 곳들도 여러군데 있었다.
영실 쪽으로 하산하는 것도 장단점이 있다. 여러번 말했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얼어있는 구간이 많아서 좀 위험한 편이라는 것.
하지만 여러 오름들과 함께 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눈 쌓인 한라산 일대 풍경들을 항상 앞에다 두고 갈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이쪽을 등산로로 잡았다면 뒤로 한 번씩 돌아보며 흘끔흘끔 구경했어야 할 경치가 하산로로 잡으면 항상 앞에다 두고 내려갈 수 있어서 좋긴 하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몴. 어쨌든 이왕 산행을 하겠다면 영실 코스는 한 번 가볼만 하다. 어리목에서 올라서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영실 쪽을 한 번 가보는 것이 좋긴 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포기할 건 포기하고 선택해야겠지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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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 1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2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산행 - 3 윗세오름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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