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겨울의 초입 무렵에 오른 한라산 윗세오름 부근. 어리목에서 출발해서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시야가 뻥 뚫린 넓은 벌판이 시작됐다. 바람을 막아줄 것이 없어서 금방 얼굴을 얼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기는 했지만, 그 바람과 눈이 함께 만들어낸 설산의 풍경에 감탄을 연발하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걸어서 체온을 유지해주는 것이 포인트. 멈춰 서면 다시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한라산 남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윗세오름으로 다가갈 수록 점점 크게 볼 수 있으니 굳이 미리부터 멈춰서서 구경할 필요는 없다. 물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도 마음껏 구경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 등산로를 이용해서 저쪽을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어리목이나 영실 코스를 이용해서는 백록담을 볼 수 없다.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하고 있어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해제는 따로 공지를 할 때까지라고만 돼 있어서, 언제 해제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정상을 오르고 싶다는 다른 길을 가는 수 밖에.

 

그래서 어리목, 영실 코스는 굳이 정상을 올라서 백록담을 보겠다는 생각 없이, 한라산 설경을 즐기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오르는 곳이다.

 

 

 

 

 

 

윗세오름은 '윗 세 오름' 즉, '위에 있는 세 오름'이라는 뜻이다. 백록담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순서대로 붉은오름, 누운오름, 족은오름 세 오름이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 '윗세오름'이다. 웃세오름이라고도 한다. 이 세 오름은 다른 곳에 있는 오름 이름과 구별하기 위해 웃세붉은오름, 웃세누운오름, 웃세족은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등산 코스에서 '윗세오름'은 사실 '윗세오름 대피소'를 일컫는 말로, 이 대피소는 웃세오름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위치해 있다.

 

 

 

 

 

 

웃세오름 대피소가 해발 1700 미터라고 하니, 여기도 그 비슷한 높이 정도 된다. 비록 어리목 입구까지 해발 1000 미터 정도는 버스를 타고 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이 정도 높이에 올랐다고 구름이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기까지 한다. 구름과 함께 눈 덮힌 나무들과 설산이 어우러진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어떤 관광지들은 단지 '카메라빨'인 곳들도 많다. 사진으로 보면 이쁘고 멋있고 뭔가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가보면 별 것도 없고 사진 찍는 포인트에서 잘 찍어야 그럴듯 한 사진 하나 달랑 나오는 그런 곳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겨울철 눈 덮힌 한라산은 그런 곳이 아니다. 사진에 나온 것은 직접 보는 것보다 훨씬 못하다. 직접 가보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물론 너무 힘들어서 내가 여길 왜 왔나 싶은 건 제외. 오르기 전에 동네 뒷산이라도 올라서 조금 연습을 해보자.

 

 

 

 

 

 

하얀 눈으로 옷을 지어 입은 듯 아름다운 한라산 남벽 모습에 이끌려 한참을 바라봤다. 어차피 어리목에서 오르면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저 남벽을 계속 보면서 걸을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거리가 달라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까지도 감탄스럽다. 언젠가 휴식년제가 끝나고 등산로가 열리면 꼭 한 번 다시 찾아와서 올라봐야지. 그 때도 이왕이면 겨울이 좋겠다. 이미 지난 일이라 이렇게 말 하고는 있지만, 오를 땐 정말 추워 죽을 것 같았고 아무 생각도 없었다.

 

 

 

 

 

 

눈이 쌓이니까 그 흔했던 돌 하나 나무 하나도 모두 얼음으로 빚은 조형물 같았다. 거기다가 바람 부는 쪽으로 눈이 덧붙고 또 덧붙고 해서 결이 살아나니 더욱 신기한 조형물이 됐다.

 

 

 

 

 

 

 

 

사실 이날 제주 시내 쪽에선 약한 비가 내렸다. 어리목에서 올라올 땐 하늘에 먹구름이 쫙 깔려서 어두컴컴한데다 간간이 우박 같은 눈이 내리기도 했다. 등산하는 중에는 눈이 내리기도 하고, 알갱이가 좀 되는 우박이 내리기도 하고, 나무 위에서 떨어진 눈 뭉치가 몸을 뒤덮기도 했다.

 

그런데 숲이 끝나고 벌판이 시작된 후 윗세오름에 가까이 갈 수록 하늘이 맑아졌다. 아마도 낮게 깔린 구름 위로 올라와서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이왕 한라산 산행을 마음먹었다면 숙소에서 비가 좀 내리더라도 그냥 출발해보는 것이 좋겠다 싶다. 막상 위에 오르면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폭설이 내리면 입산을 통제하기도 하니까, 눈이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이미 하늘을 가리던 먹구름은 없어진지 오래고, 거센 바람도 희한하게 윗세오름 대피소에 가까워질수록 잦아들었다. 그러자 점점 더 내가 걷고 있는 주변이 넓은 시야로 들어왔다. 마치 눈의 왕국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 시간도 조금 늦었고, 산 아랫쪽 날씨가 별로 좋지 않은 편이어서 등산객들이 많지 않아서 더욱 호젓한 느낌이었다. 눈은 신기하게도 차갑지만 동시에 따뜻한 느낌도 주는 매력을 가졌다.

 

 

 

 

 

 

 

 

이왕 찍어서 버리기는 아까운 사진들을 내걸어 봤다. 여긴 어리목 등산로 중, 만세동산 부근에서 윗세오름 대피소 거의 다 간 지점 사이 어느 곳들이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에서 대략 두 세 시간 정도만 오르면 가볼 수 있다. 내 경우는 사진 찍으며 쉬엄쉬엄 가서 거의 세 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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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 한라산 윗세오름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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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