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주도를 '한국형 실리콘 비치'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지난 6월 26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내려가서 제주도를 "일, 휴양, 문화가 결합된 창조의 섬으로 만들겠다"고 보도됐다.

 

그러면서 언급된 것이 "미국의 산타모니카 실리콘 비치"였다. 그런 곳을 참고해서 K-실리콘비치를 만들겠다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렇다면 우선 미국의 실리콘 비치부터 한 번 알아보자.

 

 

 

미국의 실리콘 비치

 

지리상으로 실리콘 비치는 LA(로스앤젤러스) 서쪽의 해변 지역이다. 비치가 들어갔다고 해서 해변만 뜻하는 것은 아니고, 수많은 IT 업체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그 지역 일대를 실리콘 비치라고 말하고 있다. 주로 산타모니카 지역이다.

 

 

(실리콘 비치가 있는 산타모니가 지역의 입지 조건.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실리콘 밸리가 있다)

 

 

현재 엄청나게 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알려졌으며, 구글, 야후, 유튜브, 버즈피드, AOL 등이 이 지역에 사무실을 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나 투자회사 등도 모여 있다.

 

이 지역에 수많은 IT 회사들이 몰리며 '실리콘 비치'로 자리잡게 된 이유를 중요한 것 몇 가지만 꼽아보자.

 

 

일단 이 지역은 LA 대도시와 아주 가깝고, 헐리우드와도 가깝다. 따라서 미디어와 함께 일을 해야하는 회사들이라면 입지적으로 좋은 편이다. 게다가 가까이에 UCLA 대학도 있어서 원활한 인재 수급도 노려볼 수 있다. 또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실리콘 밸리'가 있는데 대략 5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먼 거리지만, 미국에서 볼 때는 꽤 가까운 거리다. 실제로 지도로 보면, 그냥 북쪽으로 거의 붙어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 초기에 이 지역은 비교적 사무실 임대료가 쌌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 쪽에서는 꿈도 못 꿀 정도의 사무실을 싼 가격에 얻을 수 있었다. 크기 뿐만 아니라 외관 상으로도 독특한 건물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물론 초기에 그렇게 자리잡은 후에는 당연히 임대료가 올라갔지만, 그래도 지금도 실리콘 밸리 쪽보다는 나은 편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해변에 위치한 것도 당연히 한 몫 하긴 할 테다. 업무 끝나면 정상 퇴근해서 바다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휴식과 업무가 어우러져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산타모니카 쪽 해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월미도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실리콘 비치의 한 사무실. John McStravick)

 

 

미국의 실리콘 비치는 정부나 어느 단체가 "야, 여기 모여라"해서 모인 게 아니다. 위치나 입지 조건, 임대료, 인력 수급, 주변 환경 등이 여러모로 적당해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서 이뤄진 곳이다. 특히 주변에 LA나 헐리우드, UCLA가 있다는 것, 그리고 조금 멀리는 실리콘 밸리가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큰 이유다.

 

 

 

제주도를 실리콘 비치로?

 

 제주도도 그런 실리콘 비치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처음엔 '이게 뭔 말이냐'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여러 언론 기사들을 보면서 깨닫게 됐다. 그건 그냥 남의 어린 자식에게 '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 해주는 립서비스와 같다는 것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이름 좀, 짧게 좀...))

 

 

 

깊이 들여다보고 뭐 하고 할 필요도 없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개장하면서 나온 말들만 한 번 쭉 나열해보자.

 

 

- 제주센터를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 창업 허브와 연결해 이런저런 사업을 하겠다

- 문화-IT 융합 창조 거점 육성 추진

- SW, 문화강연 개최, 공연과 컨퍼런스 등이 융합된 창조 페스티벌 개최

- 스마트 관광 플랫폼 구축

- 아모레퍼시픽 지원으로 '케이 뷰티' 관광 프로그램, 컨텐츠 개발 등 추진

- 청정자원 지도와 지주지역 생물종 등 DB 구축, 농업-제조업-관광 산업화 추진

-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테스트베드 지원

 

 

뭔가 많다.

 

정리를 하자면, 제주도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생겼는데, 이 센터가 할 일은 "IT, 문화, 관광, 뷰티, 벤처 육성, DB 구축, 에코 플랫폼 구축" 등이고, 이런 일을 위해 총 1569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것 (투자669, 융자900).

 

너무 많아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나중에 커서 이것저것 돼야지"하면서 아무거나 해보는 느낌이랄까. 이것도 나름 기사 보며 정리를 해서 약간 일목요연하게 된 거지, 뉴스 기사들을 보면 정말 중구난방이다.

 

 

글에 짜임새가 없어진 게 눈에 확 띄는데, 어쩔 수가 없다. 정책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대체 어느 부분을 비판해야 할 지조차 모호해져버렸다. 함께 혼란을 한 번 맛보자.

 

 

이 곳에서 먼저 다음카카오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문화이주민'에 대한 지원에 주력할 방침이다. 문화이주민이란, 문화, 예술인 가운데 도심에서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이들을 말한다.

 

다음카카오는 문화이주민의 생산 제품 판매와 유통 전 과정을 지원한다. 자사의 '온라인 투 오프라인(O2O,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한 마케팅)' 서비스와 네트워크를 활용할 방침이다.

 

(제주를 '한국의 실리콘 비치'로, 한국일보)

 

> 제주로 이주한 사람들의 제품 판매와 유통도 하고

 

 

바람이 많은 제주도의 특징을 살려 풍력 발전을 적극 개발하고, 친환경 전기차 활성화도 추진합니다.
스마트 재배 기술을 통한 새로운 개념의 농장도 만들어집니다.

 

(제주 '한국판 실리콘 비치'로..스마트 관광 생태계 조성, JTBC)

 

> 풍력 발전 개발도 하고, 전기차도 활성화하고, 스마트 재배 농장도 만들고

 

 

글로벌 IT와 문화 인재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 제주도내 게스트하우스를 활용해 해외 인재들이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체류자 숙소를 만들고, 센터 내 교류 공간에서는 매달 1회 문화와 IT 강연이 함께하는 ‘스테이 프랜즈 데이’ 행사가 열린다.

 

('IT+문화+환경' 융합된 제주도,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거듭난다, 헤럴드경제)

 

> 글로벌 인재 끌고와서 게스트하우스에 집어넣고 일 시키고

 

 

웹툰, 애니메이션, 모바일 앱, 아트토이와 같은 융합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창조공방도 운영한다.

 

(제주, 문화·휴양·SW 융합된 '실리콘 비치'로 육성, 연합뉴스)

 

> 공방도 만들고

 

 

또 고부가가치 관광 창업 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케이 뷰티(K Beauty)–문화–체험' 연계형 관광프로그램·콘텐츠 개발 등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센터는 아모레퍼시픽 지원으로 제2센터를 올 하반기에 설치하고 R&D설비와 전문인력 등을 지원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구상안 들여다보니, 제이누리)

 

> 관광 창업 사관학교와 케이 뷰티...

 

 

 

 

 

그렇다, '산타모니카 같은 실리콘 비치'는 계획의 일부일 뿐, 사실은 그것보다 더욱 크고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이런 걸 보면, 제주 창조 뭐시기 센터는 아무래도 제주도 전체를 통치할 행정기관인가 싶을 정도다.

 

"이것저것 다 해보자, 뭐라도 하나 건지겠지!"

 

이거 아닌가 싶다. 이것저것 다 해보면 하나 쯤은 살아 남겠지. 살아 남는 놈은 경제 살리겠지. 이런 거.

 

이걸 모르고 "실리콘 비치"라는 키워드에 낚여서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에게도 죄송하다. (젝일. ㅠ.ㅠ)

 

 

 

현실은

 

글을 계속 이어나갈 힘이 뚝 떨어져버렸으니 몇 가지만 간단하게 소개하고 끝내도록 하겠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5년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에 따르면 제주지역 공공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보다 9.4% 상승했다. 전국 평균 3.1%에 비해 세 배 이상 높은 수치다. 개별주택 가격 역시 지난해에 비해 평균 4.72% 오르는 등 주택가격이 치솟으면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두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제주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산다", 한국일보)

 

 

제주도 땅값, 집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쭉쭉 오르고 있다는 건 이미 잘 아실 테다. 이제 이주를 하려 해도 비싸서 못 한다. 빈집 프로젝트 같은 것도 옛말, 이제 빈 집도 없다.

 

아마도 그래서 글로벌 인재를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거겠지만, 제주에 일 하러 내려가면 정말 게스트하우스에 묵어야 할 판이다.

 

게다가 몇몇 이름 알려진 큰 업체들 외에는 IT 쪽으론 인건비도 무지 싸다. 당장 구인구직 사이트 들어가서 제주도 한 번 검색해보시라. 웹 개발자 연봉 2천 만원! 자바 경력자 월급 200만원! 이걸 많이 준다고 자랑하며 써놨다.

 

창업 멤버라면 큰 문제 없을 수도 있겠지만, 고용돼서 일 하러 내려가는 입장이라면 회사 관두고 옮기기 정말 어렵다. 다시 대도시로 올라간다면 이주비만 엄청 나갈거고.

 

 

게다가

 

다음카카오 전신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의 제주 이전 프로젝트 '즐거운 실험'이 11년 만에 막을 내린다.

 

현지 근무가 불가피한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인력 등 소수만 남기고, 제주 본사 직원 약 400여명 대다수를 경기도 판교의 다음카카오 통합사옥으로 이동시킨다.

 

(다음카카오, 제주 인력 철수..아듀 '즐거운 실험', 한국경제)

 

 

그렇다고 한다. 끝.

 

 

 

p.s. 참고자료

* Silicon Beach (wikipedia)

* Silicon Beach (구글이미지, 정말 월미도 같은지 한 번 봐 보시라)

*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홈페이지

* 낚였다 파닭파닭, 파닭먹고싶다 

* 차라리 부산을 실리콘 비치로 만들면 현실성 있겠다. 성형수술 실리콘의 실리콘 비치...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