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걷고 또 걷는다. 캔디 호수는 그나마 산책하기 좋아서 다행이다. 딱히 크게 구경한 건 없어서 그리 재미있는 여행기가 되지는 않는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가면 저렇게 산동네처럼 집들이 모여 있는데, 그쪽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많다. 론리플래닛에도 주로 저쪽 집들을 소개해놨다.

 

물론 저쪽 말고도 호수 주변에 듬성듬성 작은 동네들이 나오는데, 그런 곳에도 게스트하우스 간판들이 보였다. 일단 호수만 찾아가면 숙소는 굉장히 많다. 그런데 무슨 축제가 열린다면서도 게스트하우스들은 다들 텅텅 비어있다. 그래서 더더욱 축제 열리는 게 진짜 맞는가라는 의문을 가졌고, 지금도 긴가민가하다.

 

 

 

 

 

먹고 싸는 코끼리.

 

 

 

 

 

길 가다 만난 사람의 론리를 보고 찾아간 게스트하우스. 가격이 내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비쌌지만,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냥 하룻밤 묵기로 하고 들어간 곳이었다. 사진은 꽤 괜찮은 곳 처럼 나왔지만, 사진 찍어보면 안다, 다 카메라 트릭이라는 거.

 

 

 

숙소 직원이 정말, 내가 숙소에 있을 땐 쉴 틈을 주지 않고 들러붙어서 귀찮게 굴며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투어 하라고 닭달하는 바람에 제일 싼 걸 하나 골라잡아서 간 공연장. 지가 특별히 사장한테 말해서 숙소를 싸게 해줬기 때문에 투어를 해야 한다느니, 캔디에 볼 게 너무 많아서 숙소에만 있는 건 손해라느니, 방에 있는데도 문 두드리고 난리 지랄을 하길래 피신 용도로 밖으로 나온 거였다. 아 정말 많이 지친다 이 나라.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전통쑈(cultural show). 이것도 500루피나 냈다. 아마도 나 처럼 성화에 이기지 못해서 나온 사람들이거나, 패키지 여행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 온 사람들이거나 한 관광객들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나마도 한 오십명 정도 될까말까. 공연은 그냥 그 당시 일기장에 쓴 한 문장으로 대신 말해주겠다. "질 낮은 써커스".

 

 

 

 

 

 

 

 

정말 짜증나고 힘들어서 이미 예약한 항공권을 변경해서 일찍 돌아가려고 시도를 해봤다. 시내에 스리랑칸 에어라인 영업소가 있길래 찾아 들어가서 문의했더니, 스케줄 변경하면 거의 편도 요금을 수수료로 내야 했다. 편도 비행기 표 사는 것과 별 차이 없는 수수료를 계산기에 찍어서 보여주던 직원도 겸연쩍은 미소를 짓더라. 지가 생각해도 많이 이상하긴 이상했나보지.

 

결국 그래서 또 돈 때문에 탈출도 못 하고 계속 여행을 해야만 하게 됐다. 그 와중에 바로 근처에 있던 KFC에 가서 440 루피 짜리 징거버거 세트를 챙겨 먹고는, "한국보단 저질인데 인도보단 낫다"라는 품평도 쓰고.

 

 

 

 

 

해 지고 나서 축제를 시작한다기에 가봤더니, 허가된 도로 말고는 다 통제하고 있었다. 저 앞에 보이는 호텔이 마치 메인 무대처럼 사용되던데, 그 당시는 저 호텔을 위한 쑈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호텔은, 호텔 바로 앞 도로에 의자를 쫙 깔아놓고는 그 자리를 돈 받고 팔고 있었다. 참 대단하더라.

 

저 호텔 자체도 꽤 비싼 호텔이었다. 출제를 편안히 즐길 수 있는 발코니 쪽 방은 하룻밤에 17,000 루피 (약 150달러), 복도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 방은 13,000 루피(약 110 달러). 내부가 그리 괜찮아 보이지도 않던데 대략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 되는 호텔이다. 물론 이건 2009년 시세고, 지금은 당연히 더 비싸졌을 테다.

 

 

 

 

 

어쨌든 축제는 시작됐다. 코끼리 몇 마리와 사람들 몇몇이 이 주변을 걸어가며 풍악 울리고 횃불 돌리고 하는 게 전부. 생각보다는 짧은 행진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스리랑카 캔디에서는 매년 음력 7월 1~15일에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보통 '캔디 페라헤라 (Kandy Perahera)'라고 불린다고.

 

기간으로 따져보면 이 때가 그 축제가 열릴 시기가 맞긴 맞다. 그런데 규모도 너무 작고, 그런 유명한 축제라기엔 뭔가 많이 허름하고. 혹시 다른 곳에 진짜 축제가 열렸고 여기서 한 건 짝퉁이랄까 지류랄까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금은 볼만 한 축제가 됐을지도 모르지만.

 

 

 

 

 

 

축제 보다가 한 청년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형이 한국에서 일 한다며 반가워하더니 행진 구경 끝나면 함께 클럽에 가자고 하더라. 하지만 이런 제안에 섣불리 응할 수 없는 것이 여행자의 한계. 인상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따라가서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만 한다. 그래서 춤 추러 가기엔 너무 피곤하다고 둘러대고, 그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며 행진을 보면서 좀 노닥거리기만 했다.

 

 

근데 얘네들, 외국인과 처음 말 섞어본다면서 "스리랑카 어떠냐? 캔디 어떠냐?" 이런 걸 묻는다. 마치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한국 어떠냐? 서울 어떠냐?"라고 묻는 것 처럼. 막상 이 질문 느닷없이 당해보니 아주 많이, 굉장히 초현실적으로 당황스럽다. 어떻긴 뭘 뭐 어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여행한 것 뿐이라고. 너는 여행하면서 '아, 이 나라는 어떻구나, 이 지역은 어떤 느낌이로구나' 딱딱 정리하며 다니냐.

 

더군다나 앞서 숙소들와 관련해서 안 좋은 경험을 이미 해 놨기 때문에 도무지 인상이 좋을리가 없지. 축제 행렬 한 번 본다고 그 경험들이 싹 잊혀지진 않잖아. 그렇다면 여기서 난 거짓말을 해야할까, 진심을 말 해야할까. 정말 난감한 거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외국인들에게 그딴 것 묻지 마라.

 

옛날에 한국에서 한국인 외국인 섞여서 술 먹고 놀 때,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한국 어떠냐?'라고 묻는 걸 본 적 있다. 대체로 무난한 답(원더풀, 베리 굿 같은 것)을 하며 넘어갔지만, 몇몇은 자신이 당했던 부당함과 나쁜 것들을 말 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한국인들 모두가 나서서 '그건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그러는 거다', '니가 특별히 그런 걸 당한 거다', '그럴 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며 쏘아붙이더라. 결국엔 '이런건 한국이 좋다'라는 것을 듣고서야 만족하며 건배를 하더라.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던 거다. '한국이 어떠냐'라는 질문은 결국, '한국 좋다'라고 말 하라는 강요일 뿐이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스리랑카에서 이들의 질문에도 난 쉽게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굿'. 그렇게 나는 영혼 없는 대답을 했고, 그런 대답에 그들은 기뻐했고.

 

 

그러면서 또 얘네들이 하는 말이, 자기들 언어인 싱할라 어를 배우란다. 아주 쉽고 과학적인 언어라고. 어라, 이것도 어디서 굉장히 많이 들어 본 말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그거잖아. 워낙 훌륭한 사람들이라서 해외여행 가서도 외국인들에게 꼭 한국말과 한국어 가르치려고 하는, 그러면서 자기들은 그 나라 언어 하나도 배우려 들지 않는 그 민족들이 자주 하는 말. 여태가지 여행 하면서 자기나라 언어 배우라며 자랑하는 곳은 한국 제외하는 단 한 군데도 없었는데 여기서 그런 말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듣게 되니 참... 그래도 여기는 자기나라 안이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해줄 수는 있다. 근데 정말 밖에 나가서 이런 것 좀 하지 말기 바란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거 들으면 참 거시기 하다.

 

 

 

여러모로 씁쓸하게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설마 이 밤에는 귀찮게 하지 않겠지 했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다시 문 두들기며 찾아와서는 내일 아침엔 무슨 녹차밭에 투어 가면 좋다느니 어쩌느니 말을 늘어놓길래, 너무 피곤해 죽겠다고 말 끊고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 아아 정말 피곤해, 몇 년 지나서 글을 정리하면서도 이 때의 피곤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말 정말 피곤해.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