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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사라질 도심 속의 섬, 옛 성동구치소 시민개방서울미디어메이트 2019. 10. 1. 19:44
9월 28일 토요일 하루동안 '옛 성동구치소 시민개방' 행사가 진행됐다. 서울주택공사(SH공사)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접수와 함께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 접수를 받았고, 참가자들은 해설자와 함께 회차별로 30명 씩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다.
성동구치소는 1977년부터 2017년 6월까지 법무부 소유의 구치소 시설로 사용됐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주변은 약 3미터 가량의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형태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용밀도가 160%에 달할 정도로 과밀화되어 문정동 법조타운 쪽으로 이전했다. 이름도 서울동부구치소로 바뀌었는데, 12층짜리 고층빌딩 형태로 만들어져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근처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마치 도심 속의 작은 섬 같은 형태였다. 불과 2년 전까지 실제로 사용된 구치소라는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정문을 통과해서 건물 입구까지 갈 때는 딱히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입구를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실내가 시작되면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미 폐쇄된 공간이고, 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개방 행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들어갔지만, 문 위에 붙어있는 '휴대폰 반입 금지선'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휴대폰 놓고 가야하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주는 압박감이 있었다.
내부 복도는 의외로 넒었는데, 중간중간 오르락내리락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곳곳에 크고 튼튼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 철문 몇 개를 통과해서 독방이 있는 구역을 지나갔다.
수감동을 구경하며 걸어가던 중에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이 들려왔다. 복도 한쪽 끝 철문 뒤에서 첼리스트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시민개방 행사를 한다고 나름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배치됐나보다. 구치소 복도의 철문들과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이 어우러지니 살짝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희한한 조화가 이루어졌다. 꽤 괜찮은 연출이었다.
9동에 도착하니 문을 열어놓은 방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2평 남짓한 방에서 최대 8명까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벽에는 종이로 만든 수납함도 있고, 안내문과 식단표 등이 붙어 있어서, 어떻게든 생활을 이어나가려 했던 흔적이 보였다.
수감동을 지나서 좁은 문을 지나니 작은 뒷마당이 나왔다. 이곳엔 구치소를 둘러싼 높은 담 구석에 감시탑이 있었다.
담벼락 안쪽은 다시 철제 팬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이 펜스를 건드리면 바로 경보가 울려서 교도관들이 달려온다 했다. 가끔 탈옥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담을 넘기 전에 모두 잡혔다고 한다.
다른쪽 문으로 나가니 넓은 운동장이 나왔고, 운동장 한쪽에는 세탁실, 작업실 등으로 사용된 건물이 있었다. 운동장엔 바람 빠진 공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어서, 한 때 이곳이 진짜로 사용됐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치소 내부 여기저기엔 각종 좋은 말들이 붙어 있었는데, '명랑한 생활'은 아무래도 좀 안 어울리는 듯 했다. 잠시 체험하기 위해서 몇십 분 들어온 것 뿐인데도 벌써 갑갑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건물 자체만 놓고 보면 딱히 이질적인 느낌은 없었는데, 여기저기 둘러쳐진 쇠창살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운동장 쪽에서 또 다른 복도를 통해서 둘러 나오니 접견실이 나왔다. 쇠창살과 철문으로 이루어진 긴 복도를 걸었는데, 그걸 다 전달하지 못 하는게 아쉽다. 그런 복도를 걸어서 바깥 세상과 가까운 곳으로 나오니 비로소 한 숨 놓이는 느낌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길이 복잡해서 혼자는 밖으로 나가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함께 구경하는 무리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접견실 공간 한쪽 옆에는 수감복을 입고 머그샷을 찍을 수 있도록 꾸며져 있었다. 수감동 내부에서 클래식 연주자를 배치한 것도 그렇고, 하루 개방 행사지만 여기저기 신경을 좀 쓴 것이 보였다.
드디어 내부 관람이 끝나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니, 그냥 행사일 뿐인데 경호직원이 문 옆에 붙어 서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마치 내가 방금 출소한 사람인 것 처럼 느껴졌다. 안전을 위해 배치된 직원들일 뿐이지만,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괜히 위축됐다.
밖으로 나와서 정문 쪽을 바라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아파트에서 구치소가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구치소 내부에서 아파트가 보이는 것도 그리 좋지는 않을 듯 싶었다. 괜히 마음이 동요돼서 더 견디기 힘들어질 테니까.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이동해야하는 메인 투어를 끝내고, 옆쪽에 자유관람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메인 투어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인원이 안내자를 따라서 이동해야 했지만, 구치소체험 일반자유관람 코너는 혼자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 이쪽은 규모가 작아서 이렇게 개방한 듯 하다.
따로 신축한 건물이라 그런지, 아니면 여자들이 사용한 여사동이라서 그런지, 이쪽은 아까 본 수감동보다는 깨끗한 편이었다. 건물 크기도 작고 구조도 간단해서 간단히 둘러볼 수 있었다.
수감방 안으로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방 안에 있다가도 괜히 나가고 싶어지는 햇볕이었다. 아마 이런 햇살에 밖에 나갈 수 없는 것도 큰 형벌 중 하나일 테다.
이렇게 구경을 마치고 드디어 담장 밖으로 나왔다. 이제 자유다.
안내하시는 분은 이번 행사를, "지역 주민들과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진행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곧 철거될 예정이고, 안전 문제 등으로 다시는 이런 행사가 없을 거라고 했다.
현재 이 부지는 서울시와 SH공사가 개발 계획을 수립중이다. 1300가구의 분양, 임대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주민 의견을 수렴중인 듯 하다. 어쨌든 이곳은 2020년에 완전 철거될 예정이다.
구치소는 형이 확정되지 않은 형사 피의자, 미결수들을 주로 수용하는 시설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지만 대체로 유죄인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게만 보면 그냥 죄수들을 수용하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동구치소는 옛날에 학생운동 등을 하던, 소위 운동권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도 여기에 있었다. 천영초 씨와 함께, YH무역 노조지부장 등도 여기에 수감됐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위치와 상황을 보면 철거를 할 수 밖에 없겠지만, 철거되기 전에 최소한 고화질 동영상과 사진으로 전체를 꼼꼼하게 기록해서 보관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아픈 역사도 역사이니까.
또 다른 시선으로 성동구치소 개방 행사를 보고싶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자.
> 성동구치소 안 어떻게 생겼을까? 40년 만에 시민 공개! (내 손안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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