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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중에서...
    잡다구리 2007. 6. 16. 13:14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행복하세요?
    행복이란, 무지한 상태의 다른 말이죠. 행복하다는 말은 모른다는 말과 같아.


    사람들은 옷을 입은 채로는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 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죠. 마음속에 금지를 가지지 말아요. 생은 그렇게 인색한 게 아니니까. 옷을 말리는 것 따윈 간단해요. 햇볕과 바람 속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죠. 살갗이 간고등어처럼 좀 짜지기는 하겠지만.


    그래 그거야. 내가 아직 너무 젊다는 걸 느껴. 마흔 살도 아니고 쉰 살도 아닌데 인생은 재활용품처럼 질기고 지겹고 허용된 건 낡고낡은 도덕과 진부한 모성과 속으로 경멸하면서 겉으로는 웃는 기만적인 내조밖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는 걸 가지고 어떻게 삶을 실감할 수 있겠니? 아니면 나이가 들면 삶이란 그저 기억에 불과한 건가... 하지만 기억마저 희미해져. 죽은 듯이 있으려니, 치매는 더 빨리 오지... 이러니 내가 너에게 별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지? 어쨌든 조심해.


    이 나라에선 마흔이 넘으면 다른 삶이 없어. 다른 철학이 없으니까 솔직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거지. 그러니 스무살엔 혁명을 했다 해도 마흔만 넘으면 모두 현실 속에 귀순하는 거야. 새로운 모랄을 창조하지 못하면 저항이든 혁명이든 아무 소용도 없어. 나도 답답하지만, 무슨 방법이 있겠어? 처자식을 버리고 바랑 하나 메고 속세를 등지지 않는 이상... 어쨌든 이 제도 속에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잖아. 세금도 내야 하고. 그런데 당신 많이 변했네. 전엔 안 그랬잖아.


    난 사랑이니 하는건 싫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귀찮아요. 사랑이란 좋은 말로들 표현을 많이 하지만 실은 그럴싸하게 의미를 장식하고 마취시켜서는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머리부터 삼키려드는 짓에 불과해. 내가 많은 한국 남자들처럼 사랑이란 걸 믿었다면 지금쯤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넥타이에 묶여 허우적거리겠지 이렇게 건달처럼 살 수 있겠소?


    난 내 몸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내가 바깥이 되기로 했어요. 구질구질한 세상을 가장 간단하게 가두는 방법은 나 자신이 바깥이 되는 것이지. 아웃사이드의 철학이요.


    어차피 옳은 인생의 모델 따윈 있을 리 없었다. 자기에게 맞는 생이 있을 뿐이었다.


    흔히들 더 선량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을 한다고 착각을 하지만, 실은 정말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끝까지 하는 자들은 나쁜 사람들이지. 보다 덜 선량하고, 부도덕하고, 연약하고 이기적이고 히스테릭하고 예민하고 제멋대로이고 불행하고 어둡고 자기 도취적이고 집요하면서도 변덕스럽고 독선적이고 질투하는 사람.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이군요.
    상처받은 사람의 모습이지. 바닷물이 파란 것은 바다가 다른 색은 다 흡수하지만 파란색만은 거부하기 대문이라는 거 알아요? 노란 꽃도 마찬가지에요. 노란 꽃은 다른 모든 색은 다 받아들이지만 노란색만은 받아들이지 못해 노란 꽃이 된 거죠. 거부하는, 그것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을 규정하는 거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알아볼 수 있었어요. 당신이 안간힘으로 거부하고 있는 당신의 상처를. 거부한 나머지 상처 그 자체가 되어버린 당신을. 슬프게도 우리는 저항하는 그것으로 규정되는 존재들이지.



    난 이 생을 믿지 않아. 근본적으로 생은 파괴적이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패배자의 운명을 타고난 거지. 난 그걸 오래 전에 알아버렸어...


    이미 궤도를 벗어난 생이었다. 틈만 노리고 있었던 듯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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