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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죽은 그녀는
    잡다구리 2007. 7. 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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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도 슬퍼 했던 그녀는 어느날 잡지 하나를 신이 나서 들고 왔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우울증 자기진단이라는 페이지였다. 꼼꼼하고 야무진 체크표시 옆에, 일일이 그 이유를 모두 적어 놓았다.
     
     예를 들면, '외로웠다'라는 문항 옆에는 이렇게 썼다. '살면서 여태까지 외로움에서 벗어나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쁜 순간에도 이 기쁨 끝나면 더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 오겠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래도 나, 우울증 맞는 걸까?'.
     
     '잠을 설쳤다'라는 문항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요즘은 그 옛날 첫사랑 떠나 보내고 술로 밤을 지새며 잠 못 이루던 때보다 더 잠 자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아무 이유 없는데. 잠이 오지 않으니까 더 쓸 데 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니까 또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두려움을 느꼈다'라는 항목 아래는 깨알같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요즘은 쫓기는 꿈을 자주 꾼다. 아무 형체도 없는 것이, 뭐가 쫓아 오는지도 모를 어떤 것에 다급하게 쫓기다가 잠을 깨곤 한다. 왜 그럴까. 난 그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하는데. 누구나 이 정도의 슬픔과 외로움은 다들 가지고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고민들이 있긴 하지만, 예전보다 그렇게 많아진 것도 아니고 심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낮에 일상 생활을 할 때도 문득 무엇엔가 쫓기는 듯 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 정말 뭔가 많이 잘못된 걸까.'
     
     그렇게 하나하나 꼼꼼히 항목들을 체크한 결과, 그녀의 우울증 지수는 다행스럽게도 전문가와 상의 할 정도가 아니었다. 100점에서 90점 까지의 점수를 받으면 전문가와 상의를 요한다고 나와 있었는데, 그녀의 점수는 88점 이었다.
     
     그녀는 그 작은 것에 위안을 느꼈는지, 뛸 듯이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그 때는 시큰둥하며 별 것에 다 호들갑이다 싶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런 것에라도, 우습지만, 위로를 받아 보려 했던게 아닌가 싶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끈을 부여 잡으려고 애 썼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사소하고, 우습고, 하찮은 것이었지만.
     
     항상 후회는 지나고 나서 하게 된다. 그게 문제다.
     
     새벽 세 시 반을 넘긴 이 시각, 성수동 한복판에 느닷없이 소쩍새가 울어 댄다. 그녀가 왔나 보다.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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