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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credible India - BLUE 1 0613
    푸른바다저멀리 2007. 8. 20. 15:50
    푸른 바다 저 멀리 BLUE 1 0613

    Incredible India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하룻밤에 70달러나 뜯겨 버렸어요. 자정 즈음 공항에서 탄 택시가 화근이었죠. 시내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온갖 친한 척을 하며 한참을 내 곁에서 맴돌던 택시기사를 믿은 게 잘못이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빨리 숙소를 구해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렸던 탓도 있었겠지만요.

    택시 기사는 곧바로 시내로 가지 않고 어떤 여행사에서 차를 세웠어요. 그게 택시회사 규정이라며 강제로 들어가게 했죠.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런 곳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들어갔을까요. 문도 걸어 잠근 채, 세 명에게 둘러 싸여 강제로 여행 패키지 상품 소개를 들어야만 했어요. 두 시간 반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거기선 한 푼도 뺏기지 않고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죠.

    그 택시를 탈 때부터 어느 정도의 바가지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어요. 그 택시기사가 잘 아는 호텔이라며 데려다 준 곳은 이름만 호텔인 허름한 숙소였고, 그런데도 하룻밤 묵는데 50달러래요. 이미 시간은 새벽 세 시가 넘었고, 나는 정말 아무데서라도 누워 자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죠. 그래서 덜컥 백 달러짜리 지폐를 줬더니 인도 돈 2000 루피를 거슬러 줬어요. 아직 환율을 잘 모르는 여행자를 속인 거죠. 게다가 택시기사는 요금으로 애초에 약속했던 200루피의 두 배가 넘는 500루피를 요구했어요. 더 이상 실랑이 벌이기도 귀찮아서 그냥 던져주고 말았죠.



    그렇게 해서 하룻밤에 거의 70달러나 어이없이 날려 버렸어요. 여태까지 꽤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지만 이렇게 당한 적은 없었는데, 정말 인도라는 나라에 너무 실망스럽네요. 서점에 나가 인도에 여행기나, 인도에 관련된 책들을 봤을 땐, 이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와 있었어요. 아름답고, 서글프고, 명상 하기 좋고, 영적인 무언가가 있는 그런 곳이라며 신비한 이미지만 가득했죠.

    아무리 내가 인도에 관한 환상이 없었다 한들, 그런 책들에게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일 거에요. 영화에서부터 TV 프로그램, 책, 사진 등에서 봐 왔던 그런 인도라는 나라의 이미지들이 알게 모르게 내 머릿속 어딘가에 이미 자리 잡고 있었겠죠. 이곳에 오게 된 이유 중에는 그런 것들의 영향도 많이 작용 했을 거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에게 배신 당한 느낌이에요. 썩은 사과를 꼭 끝까지 먹어봐야 썩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말도 떠오르구요. 물론 이제 겨우 인도라는 나라에 도착해 겨우 몇 사람을 만나본 것 뿐이에요.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이 나라에서 여행을 계속 해야 할지 의문스러워지네요.

    어쩌면 여행 떠나기 전에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던 것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이 못 견디게 억울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여행이니까 좀 마음 편하게, 상쾌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다니고픈 기대가 첫 날 갑자기 무너지면서, 연속되는 내 피할 수 없는 불운에 화가 나서 가슴이 답답한 건지도 모르겠구요. 그런 사정이 아니었다면 그냥 여행 중에 있을 수 있는 희한한 일들 중 하나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을 지도 모르죠.

    나 어쩌면 갈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잡히는 그 순간에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버려 급속히 썩어가는 은색 갈치. 언젠가 달빛 아래 서슬 퍼런 칼날같이 반짝이는 산 갈치를 본 적 있어요. 은색이라기보다는 파르스름한 빛에 가까운 그 몸 색깔은 정말 신비로움을 넘어 경이로움에 입을 떡 벌어져 감탄사가 절로 흘러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갈치는 잡아 올리자마자 흐리멍텅한 회색 빛으로 변해, 시멘트처럼 축 늘어져 배 갑판에 착 달라 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죠. 스트레스 때문에 이미 죽어 버린 거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 고귀한 빛깔에 정말 어울리는 최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지는 않지만, 스트레스에 민감한 나도 어쩌면 육지에 사는 한 마리 갈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서는 잠도 못 이룰 때도 많고, 조금 큰 문제가 닥쳤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기도 하죠. 이제 어느 정도 사회생활도 했고,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도 겪을 만큼 겪어서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마음 편히 먹는 일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죠. 그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만 손해일 뿐인 것도 잘 아는데 말이죠.

    하루아침에 그런 걸 고치기는 쉽지 않아요. 행동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받는 성격을 고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면 간과한 점이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난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거에요!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내 몸을 긁고 지나갔지만, 난 아직 유유히 이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고, 상처는 언젠가 아물 거에요. 아프겠죠. 아플 거에요. 아침에 눈 뜰 때 그 아픔에 소스라치게 놀라 눈물이 찔끔 흐를 지도 몰라요. 몸을 흔들 때마다 고통은 따라다닐 테고,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채 영원히 몸에 자국이 남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언젠가는 그 고통도 사라지겠죠. 다시 자유롭게 헤엄칠 거에요. 아니 이미 난 벌써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는걸요. 이렇게 아름다운 달빛 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잖아요.

    그래 이제 시작이에요. 내 여행의 시작. 마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처럼 설레네요. 내일은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나 즐거운 일이 생길 거에요. 생기지 않으면 만들면 되죠. 오늘 당한 일을 얘기한다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는 주춧돌 하나가 생긴 셈이지요. 그래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요. 여기서 다시 시작하기로 해요.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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