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저 멀리 GRAY 2 0614 #2/2

이제부터 시작이야


5.
‘나 인도여행 계속 해야 될까?’라는 주제로 주인아줌마랑 상담을 좀 했다. 결국 해결책은 북쪽의 ‘레(Leh)’ 쪽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너무 더워서 남쪽으로 가도 제대로 구경도 못 할 테고, 북쪽은 지금이 딱 여행하기 좋단다. 라다크(Ladakh, 인도 북쪽지역) 쪽은 길이 험해서 6~8월에만 육로가 개방 된단다. 나머지 기간 동안은 눈이 덮이거나, 빙판이 되거나 해서 육로로는 못 간단다. 비행기가 있긴 하지만 날씨 때문에 결항되기 일쑤라고. 게다가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인도인들보다는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라다크 쪽이 경치도 좋고, 시원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어느새 결심이 굳었다. ‘그래, 북쪽으로 가자!’. 델리에 있어보니 섭씨 40도라는 온도가 여행에는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구경이고 뭐고 손 하나 까딱하기조차 귀찮은 상황이었다. 이 더위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데, 인도 남쪽은 더 덥다고 하니 결론은 라다크 지역밖에 없었다. 게다가 라다크 지역 사람들은 여기처럼 뻔뻔하게 속이려 드는 경우도 적다고 하니 끌릴 수 밖에 없었다.

북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하니, 주인아줌마가 동행을 구해 주겠단다. ‘안 그래도 스리나가르 쪽으로 간다는 이쁜 여자분이 한 명 있었는데, 나중에 오면 말 해 줄게요.’라고. 아름다운 북쪽 풍경에 이쁜 여자분이라. 순간 약간 환상을 가져 봤다.

그나저나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쉼터에 들어설 때가 낮 열 두 시였는데, 밥 먹고 수다 떨다 보니 벌써 세 시였다. 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하루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리를 접었다. 우선 오늘 묵을 숙소부터 정해야 했다. 푹 퍼져 잘 수 있는 마음 편한 곳으로.

주인아저씨가 쉼터에도 도미토리가 있다며 여기서 묵으라고 하셨다. 들어올 때 스쳐 지나온 방에 침대가 여섯 개 있다 한다. ‘딱 한 자리 비었으니 거기서 자면 되겠네.’까지 말씀 하셨을 때는, 나도 ‘아, 그러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이어지는 말이 문제였다. ‘지금 여자만 다섯 있는데’.

내 성격이 좀 보수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외할 정도는 아니다. 도미토리에서 혼숙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혼숙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침대 하나에 한 사람씩 자는 거니까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여자 다섯은 좀 문제가 있다. 아니, 다른 때 같았으면 얘기도 나눌 수 있고, 동행을 구할 수도 있으니 마다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전날 밤 사건도 있었고, 그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다. 거기다가 처음 보는 아수라장에서 문화적 쇼크도 받은 상태다. 오늘만큼은 혼자 좀 조용히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주인아저씨께 그대로 말씀 드리고, 몇몇 숙소를 추천 받아 밖으로 나왔다. 도미토리에 묵지 않아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내 심신 안정이 우선이니까 어쩔 수 없지. 또 와서 밥 많이 팔아주지 뭐, 하며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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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하르간지 거리모습. (여행기 순서와는 다르게 저녁에 찍은 풍경)
빠하르간지는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2~3층 정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릭샤, 자동차, 소 등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현지인들에게는 위험하고 더러운 곳으로 소문 나 있지만,
배낭여행자들이라면 델리에서 꼭 가야만 하는 여행의 중심지다.
한국 식당도 몇 개 있고, 한국 사람들도 꽤 많다.





6.
‘크리슈나’라는 곳이 최근에 지어서 시설이 좋다고 했는데, 가 보니 에어컨 방은 이미 꽉 찼단다. 알고 보니 이 동네에는 에어컨 설치된 방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에어쿨러와 선풍기만 설치 돼 있는데, 에어쿨러는 한마디로 냉풍기였다. 소음이 엄청난 데 비해 성능은 에어컨보다 훨씬 못하다. 그래서 당연히 에어컨 방이 더 비싼데, 문제는 빈 방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 조금 비싸게 주더라도 좀 더 시원하게 있고 싶어하는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에어컨 방은 빈 게 없었지만, 에어쿨러 방은 남는 게 좀 있었다. 직접 들어가서 방 구경도 했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 가이드북에서 찢어낸 지도를 들고, 눈에 띄는 다른 숙소를 찾아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발 가지 않아서 우연히도 어떤 한국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게 됐다. 물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친해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나눴는데, 내가 숙소 구하러 가는 중이라고 하니까 함께 찾아보고 같이 시내로 놀러 가자고 한다.

인도에서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인도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길 가다가도 같은 한국인을 만나면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다는 것.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잡담을 하거나 여행정보를 주고 받는 일이 흔했다. 길에서 처음 만나 함께 밥을 먹으러 갈 수도 있었고, 말 몇 마디 나누고는 여행 동행자가 될 수도 있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것처럼 친하게 굴 수 있는 곳. 그런 것들이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은 곳. 그곳이 바로 인도였다.

다른 곳에서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일본이나 중국, 태국 같은 데서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도 말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에서 길거리 사람들에게 친한 척 말 걸지 않는 것과 똑같다. 단지 길을 묻는다든가 할 때나 말을 걸 뿐이다. 괜히 친한 척 했다가는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취급되거나, 심하면 뭔가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런 곳에서의 여행이란 단지 풍경을 보고, 유명한 곳을 둘러보며 혼자 노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인도는 달랐다. 인도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났다. 인도 여행이 끝 나고 한참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그건 인도 자체의 매력이라기보다는, 한국 여행자들이 만들어 낸 특유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거기가 인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 이래서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건가 싶기도 했다. 인도를 다녀간 사람 4명 중 3명은 인도를 싫어하게 된다고 한다. 나머지 한 명도 인도라는 나라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알 수 없는 끌림 때문에 인도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도라는 나라도 별로였고, 인도 사람들도 별로였지만, 그래도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

인도 여행이 끝 날 때까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인도를 싫어하게 된 사람으로 속하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그 말이 서서히 이해가 됐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인도를 다시 가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심정은 이제 나도 이해가 된다.



7.
울산에서 살고 있다는 그 부부와 함께, 오늘 밤 내가 묵을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마침‘Hotel Down Town’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방이 좀 작고 시설이 낙후된 것이 흠이었지만, 주인아저씨가 친절해서 그냥 결정해버렸다.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첫 인상에 남을 속이거나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사실 더 돌아다녀봐야 다 거기서 거기였고, 그 만 하면 빠하르간지에서 그리 안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 부부가 가격도 무조건 깎아야 한다면서, 250루피 부르는 것을 220루피로 깎았다.

숙소에 가방만 내려놓고 다시 나와서, 그 부부와 함께 오토릭샤를 타고 ‘코넛 플레이스’라는 곳으로 갔다. 오토릭샤는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바퀴 세 개 달린 자동차다. 사실 오토바이에 껍데기만 씌워 놓은 형태라서 자동차라고는 할 수 없다. 오토릭샤는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릭샤라고 설명할 수 밖에.

인도에는 두 가지 종류의 릭샤가 있는데, 사람이 페달을 밟아서 가는 것은 사이클 릭샤라고 한다. 가격은 보통 사이클 릭샤가 조금 싸지만, 오토릭샤보다 그리 많이 싼 건 아니었다. 그러니 여행자들은 사이클릭샤보다 훨씬 빠른 오토릭샤를 주로 애용하는 편이었다. 사이클릭샤는 오토릭샤가 없는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정도였다.

물론 인도에도 버스와 택시가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버스는 정해진 노선만 다니기 때문에, 시내버스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여행자들이 이용할 수가 없었다. 택시는 오토릭샤보다 요금이 많이 비싸기 때문에, 배낭여행자들의 경우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결국 가격과 성능을 따졌을 때, 시내에서 돌아다닐 때는 오토릭샤가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

릭샤든 오토릭샤든 둘 다 흥정이 중요했다. 흥정으로 값이 정해지기 때문에, 똑같은 거리를 가도 사람마다 요금이 다르다. 오토릭샤에는 미터기가 달려 있긴 한데, 그걸 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호기심에 한 번 미터기를 켜고 가 본 적도 있었지만, 흥정한 가격과 별 차이 없었다. 미터기도 조작한 것이 많다고 하니 그리 믿을 만 하지도 못하다. 그냥 사람들 하는 데로 흥정해서 값 정하고 가는 게 상책이었다.

요금 흥정은 타기 전에 목적지를 말하면서 시작하는데, 너무 싸다 싶은 가격을 부를 때는 여행사나 상점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손님을 끌고 가면 커미션을 받는단다. 흥정은 주로 다른 여행자들에게 입수한 정보를 기초로 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적절한 요금이 있어서, 대충 그 요금에 맞춰 흥정하면 어렵지 않게 흥정이 된다. 간혹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릭샤왈라(릭샤꾼)도 있는데, 그러면 그냥 ‘안 타’하고 다른 릭샤를 찾아가면 그만이었다.

때론 내릴 때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날 한국인 부부와 함께 탄 오토릭샤 운전사도 내릴 때 돈을 더 달라고 했다. 우리가 세 명이라서 사람이 많으니 요금을 더 내야 한단다. 물론 타기 전에 흥정은 이미 끝낸 상태였다. 뒤에 가서 그렇게 딴 소리 하는 건 인도에서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니,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그냥 ‘헛소리 하지 마’하며 돈 던져주고 제 갈길 가 버리면 그만이다.

함께 탄 부부의 말로는, 도중에 운전사와 얘기를 많이 나눠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오토릭샤를 타고 달리는 중간에 아저씨와 운전사가 웃어가며 얘기를 나눴는데, 그렇게 잘 해 주면 꼭 뭔가 더 달라고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인도 여행을 더 해보고 나서야 나도 이해가 됐다. 내가 친절하게 잘 해주면, 상대편에서는 뭔가를 요구하거나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인도인들도 릭샤꾼은 사람으로 취급 안 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릭샤꾼들에게는 잘 해 주면 오히려 손해를 볼 뿐이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여행자들 중에는 영화 ‘시티 오브 조이 (City of Joy)’의 감동을 기억하며,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순박하고 열심히 일하는 릭샤왈라의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직접 릭샤를 몇 번 탑승하고 나면 모두 깨져버리고 만다. 릭샤왈라의 가난한 모습은 영화와 비슷하지만, 그들과 정을 나눈다는 건 현실적으로 많이 어렵다. 릭샤왈라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돈 몇 푼 즘은 아무렇지 않게 마구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이거나, 속상한 일을 당해도 절대 화 내지 않는 천사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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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넛 플레이스에 있는 맥도널드.
인도에 갔다온 적 없는 사람이라면, 이 사진만 보고는 '코넛 플레이스'가
델리 중심가의 럭셔리한 장소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 들 것이다.
하지만 코넛 플레이스는 빠하르간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한 곳이다.
이 곳을 찾는 현지인들도 의상부터가 다른, 수준이 좀 되는 사람들일 정도.
화려하고 비싼 가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맥도날드도 그런 가게에 속한다.
빅맥 가격은 한국보다 아주 약간 싼 수준.
확실히 기억나진 않지만, 버거 맛은 한국보다 조금 느끼한 듯 했다.
그에 비해 감자튀김은 거의 소금 범벅이다. 소금을 털어내고 먹어야 할 정도였다.





8.
코넛 플레이스(Connaught Place)는 뉴 델리의 중심부로,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쭉 뻗은 도로가 나 있다. 도로만큼이나 건물들도 잘 정돈돼 있는데, 올드 델리 쪽과는 다르게 현대적이고 깨끗했다. 이 곳에 있는 현지인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어느 정도 경제 수준이 되는 사람들이다. 깨끗하게 잘 정돈된 만큼 쇼핑 하기에도 좋은데, 가격은 비싼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상점마다 에어컨을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상점 안으로 들어가면 시원하다. 그런데 길을 걸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사람 다니는 길 쪽으로 에어컨 기계의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와서, 안 그래도 더운 날씨가 더욱 덥게 느껴졌다. 무더운 날씨에 코넛 플레이스를 길 따라 한 바퀴 돌았는데, 그새 온 몸이 땀 범벅이 돼 있었다. 그때 즘 맥도날드를 발견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잠시 쉬었다. 날씨가 그런 만큼 맥도날드 내부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코넛 플레이스의 몇몇 상점들은 종업원이 굉장히 많았다. 맥도날드만 해도 문 앞에 서 있다가 손님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만 따로 한 명 있을 정도였다. 바타(Bata)라는 유명 메이커 신발 가게에 들어가니, 손님보다 종업원이 더 많았다. 손님에게 신발 하나 신겨주는데 종업원 두 명이 매달릴 정도였다. 물론 거기서도 문 열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자동문을 설치하는 것보다 문 열어 주는 사람을 하나 고용하는 것이 싸게 칠 정도로 인건비가 싼 걸까. 아무리 인건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낭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신발가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도 쪽이 고무로 유명한 만큼 신발도 질이 좋았다. 한 여행자가 길 가에서 20루피(약 410원) 주고 헐렁한 슬리퍼 하나를 샀는데, 한 달 넘게 인도 여행 내내 신고 다녔는데도 밑창 고무가 안 닳았단다. 바타(Bata)라는 신발가게엔 소가죽 샌들이 1500루피(약 31000원)였는데, 디자인도 괜찮고 질도 꽤 좋았다. 여행 떠나기 직전에 남대문에서 만 오천 원 주고 질 나쁜 등산화를 산 것이 후회 될 정도였다. 얼마 신지 않은 걸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새것 사서 들고 다니자니 무거울 것 같고 해서 결국 사진 않았다. 하지만 인도로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신발은 인도에서 사라고 충고해 주고 싶다.

함께 간 부부가 기념품으로 골동품을 사려고 한다고 해서 몇몇 골동품 상점도 구경했다. 나는 그런 걸 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구경하는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흔쾌히 그들의 쇼핑에 동참했다. 가는 데마다 천오백 년 전 물건이네, 삼백 년 전 물건이네 하면서 물건들을 내 놓는데, 별로 신뢰는 가지 않았다.

한 골동품 가게에서는 칠십 년 전 물건이라며 그릇 하나를 내 놓았다. 부부가 ‘이 가게는 그래도 뻥을 심하게 안 쳐서 마음에 드네.’라며, 내게 그 그릇을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릇을 뒤집어보니 선명하게 찍혀 있는 ‘Made in China’. 주인장은 잠시 착각하고 잘 못 내놨다며 황급히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우린 이미 가게를 나오고 있었다.

코넛 플레이스 한쪽에는 지하상가가 있어서, 구경하는 김에 그곳도 둘러봤다. 지하로 내려가니 제일 먼저 우릴 반기는 건 지린내였다. 급하면 그냥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나 싶을 정도로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래도 다행인건, 다니다 보면 쉽게 익숙해져서 괜찮다는 것.

지하상가는 용산 같은 분위기였다. 전자제품 상가가 많이 있었고, CD, DVD같은 것도 많이 보였다. CD나 DVD는 값이 터무니없이 싼 걸 보니 대부분 불법복제인 듯 했다. 거기서 CD한 장 안 샀다는 것이 뒤늦게 후회됐지만, 그 당시에는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벅차서 물건을 살 정신이 없었다. 디지털 카메라와 메모리 같은 것도 많이 있어서 관심 있게 봤다. 가격은 동일한 물건을 놓고 봤을 때, 한국과 비슷하거나 약간 비쌌다.

코넛 플레이스를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왕 여기까지 나온 김에 ‘인디아 게이트’도 보러 갔다. 인디아 게이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인도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이라 한다. 생긴 것은 프랑스의 개선문과 비슷했다. 해 지고 조명이 비춰져서 예뻐 보였다.

인디아 게이트 앞쪽으로는 긴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잔디밭을 쭉 따라가면 대통령 궁이 나온다고 한다. 물론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일 마치고 놀러 나왔는지, 잔디밭도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놀러 나온 것 같았는데, 여기저기서 누워 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주위가 넓게 트인 잔디밭이니 아무래도 집보다는 시원해서 잠도 잘 올 것 같았다. 혹시나 숙소를 못 잡으면 여기서 하룻밤 노숙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불꽃놀이용 폭죽을 터뜨리며 노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운 걸 참을 수 있다면 말이다.

낮부터 함께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한국인 부부와 이 곳에서 헤어졌다. 서로 가야 할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니 잠자리는 좀 편하고 싶어서, 뉴 델리 외곽 지역에 약간 좋은 호텔에 방을 잡았단다. 만약 그 부부의 숙소가 빠하르간지에 있었다면 좀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혼자 빠하르간지 아수라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9.
시내구경하며 이것저것 주워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녁다운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쉼터로 갔다. 다시 전날 밤 사기 당한 이야기를 해야 했고, 라다크 지역을 여행했다는 사람들에게 여행 정보도 얻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인도여행 오래하면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물론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싫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유쾌하게 수다를 떨 수는 없었을 테니까.

몇 시까지 수다를 떨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그렇게 놀다 보니 피곤하고 잠이 와서, 낮에 잡아 놓은 숙소로 갔다. 내 방으로 올라가니, 빈 방에서 TV를 보고 있던 두 소년이 내게 인사를 했다. 한쪽 구석에 물걸레와 양동이, 빗자루 등이 내팽개쳐져 있고, 바닥도 닦다가 만 것을 보아하니 일 하다 말고 농땡이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네팔에서 돈 벌러 왔다는 한 소년과는 약간 얘기를 나눴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주로 네팔이라는 나라와 그 곳의 가 볼만한 곳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얘기 중에 자기는 친구가 많으니까, 나만 좋다고 하면 친구도 많이 소개시켜줄 수 있단다. 그러니까 옆에서 우리 얘기를 들으며 일 하던 다른 인도인 소년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쟤는 Hello하고 인사만 나누면 다 친구라고 생각해.”

자기도 무안했는지 쑥스럽게 씩 웃었는데, 내가 ‘그럼 이제 나도 친구야?’했더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자기한테 무안을 준 친구를 잡으러 가는 바람에 대화는 끝이 났다.

열 여섯이라는 어린 나이로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나라 호텔에서 온갖 잡일을 하고 있는 소년. 그 소년 때문에 네팔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다. 여행 떠나기 전에는 별 관심 없던 나라였는데, 인도 여행도 아직 시작하기 전에 그런 식으로 네팔이라는 나라가 다가왔다.

좋은 사람들과 얘기도 나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내 구경도 했고, 일하는 애들도 괜찮아 보였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으로 입 가에 미소까지 머금으며 누울 수 있었다. 인도 여행은 사실상 오늘부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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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빠하르간지에 있는 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100달러에 4620루피(Rs).
1리터짜리 물 한 통이 10~15루피, 빠하르간지의 숙소에서 하룻밤 숙박료가 약 250루피 정도.
환전하면서 일일이 지폐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야만 했다.
인도 사람들은 찢어진 돈은 안 받기 때문에 그런 돈을 받으면 곤란해진다.
아니나다를까 은행에서 환전해도 찢어진 돈이 몇 개 있었다.
바꿔 달라고 하니 몇 장은 괜찮다고 돌려 주고, 몇장은 다른 걸로 바꿔 주었다.
사용할 때 편하기 위해 잔돈을 많이 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많은 돈이 순식간에 생겨 버렸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마치 부자라도 된 느낌.
밤에 숙소에서 꺼내 펴 놓고는 혼자 좋아서 실실 웃었다.




(www.emptydream.net)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