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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나이트 Day night day night - 2007 서울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2007. 9. 17. 14:31
    (스포일러 있음)

     한 소녀가 폭탄을 등에 지고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을 향해 걸어간다. 그녀의 의지는 확고하고 단호하다. 행동을 하기 직전까지 그녀는 무척이나 불안해하고, 망설이며 떨리고 있다. 심지어는 첫 시도에서는 옷에 오줌을 지릴 정도다. 그래도 다시 나간다. 수많은 행인들 속에서 결심을 다지고, 결국은 버튼은 누르는 그녀.

     소녀는 이름도, 국적도, 그녀에 얽힌 어떠한 사적인 이야기도 밝혀지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에도 단지 '그녀 she'라고만 올라왔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이유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어떤 경로로 테러리스트들과 연결이 됐는지 등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녀는 이미 폭탄을 등에 짊어진 상태이고, 그 폭탄을 터트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이라는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한 특별하지 않은 소녀. 겉보기에는 평범한 다른 행인들과 똑같은 모습일 뿐이다. 다른 이름 없는 행인들도 다들 자기 몫의 짐을 등에 짊어 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어쩌면 그들도 폭탄을 짊어 지고 다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익명성인지도 모른다.

     대체로 사람들은 삶에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신념을 가지고 성공을 위해 돌진한다. 이제는 질릴 법도 한데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성공 신드롬. 성공한 삶은 대체로 훌륭한 삶으로 취급해 준다. 그렇다면 시내 한 복판에서 폭탄 터뜨리기에 성공한 것도 성공한 삶으로 쳐 줘야 하는가. 어차피 개개인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그것도 성공이라면 성공이지 않은가.

     많은 모습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고, 처음 보는 도시는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긴장을 풀기 위해 뭔가 먹고 또 먹으며, 때로는 먹지도 않을 것을 사서는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기도 한다. 목숨을 건 중요한 일을 바보같이 망설이며 시행하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 지기도 하고, 다시 그 자리에 서고, 또 서서는 한참을 망설이기도 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모습들은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또한 그럴 것이다. 사소한 떨림과 망설임과 분노 등으로 버무려진 사소한 일상을 통해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을 꿈꾼다. 그것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이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성공이니까.

     결국 그녀는 망설임 끝에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 잘못됐다. 화가 나서 가방을 일부러 다른 곳에 부딪혀 보기도 하고, 길바닥에 팽개쳐 보기도 하고, 버튼도 여러번 눌러 보지만, 뭔가 크게 잘못됐다.

     삶은 잔인했다. 거기까지만 가면, 그 곳에 이르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랐다. 대단한 목표점을 향해 갔는데 거기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 순간에 모든 목적과 삶의 이유를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어쩌면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잔인한 것인 지도 모른다. 다른 허구의 이야기와는 달리 꾸역꾸역 계속되는 것이 현실적인 모습이니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가는가. 소녀의 마지막 대사는 그런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Why don't you want me?'

    (USA/Germany/France / 2007 / 94min / 35mm /Julia Loktev /서울국제영화제 상영작)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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