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나름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간략하게 글로 옮겨 보겠다. 이 글은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측면이 강하므로,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없고, 다소 일반적인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란다. 짧고 간략하게 정리하기 위해서 문답 형식으로 진행해 보겠다.



Q. 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하는가?

A.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정보를 뒤지고, 쥐어 짜고, 계산하고, 고민해 봐도, 지금 내가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돈으로 떠난다면 아프리카 어느 사막 한 가운데서 여비가 떨어져, 빼도박도 못하고 굶어 죽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90%라는 결론을 내렸다.



Q. 그렇다면 한국에서 일 해도 되지 않는가?

A.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나라에서 한 번 일 해 보고 싶다는 거다.
그 다음으로 큰 이유는, 임금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한국은 제대로 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는 것 같지가 않다.

노동법에 정해진 한국의 올해(2007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3,480원 이다. 그에 반해, 호주의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13.91 달러이다(호주 달러). 현재 호주 달러로 1달러는 한국 돈으로 814원 이다 (매매기준율 적용). 이렇게 계산해 보면 호주의 최저 임금은 한국 돈으로 약 11,322원.

아무리 호주 물가가 높다고 하더라도, 한국 물가의 두 배 이상은 안 된다. 그런 사실을 놓고 볼 때, 호주의 최저임금이 너무 높거나, 한국의 최저임금이 너무 낮거나 둘 중 하나다.

(참고로 일본의 예를 들자면, 일본은 지방마다 최저임금을 따로 정하고 있지만, 도쿄 쪽의 현재 최저임금은 739엔 이다. 현재 100엔이 804원 이므로, 739엔은 한국 돈으로 약 5,941원 정도 된다.)



Q. 최저임금이 큰 의미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IT 회사에서 일 하면 그보다는 많이 받지 않나?

A. 현재 호주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11,322원이라는 건 앞서 말 했다. 그렇다면 이 금액을 한국의 회사에다 적용 해 보자.

한국 IT 회사중에 아주 올바르고 바람직한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회사는 주5일 근무에, 야근도, 휴일근무도 전혀 없다고 하고, 그렇게 놓고 이 회사에서 사원들이 1년에 일 하는 날을 한 번 계산해 보자.
 
[한국의 어느 바람직한 IT 회사의 예시]

+ 1년 중 근무시간: 1840 시간.

- 토,일요일: 약 104일. (1년 중 2/7은 토,일요일이므로, 365 x 2/7)
- 연월차: 20일 (정도 된다고 치자).
- 공휴일: 11일 (설, 추석 연휴 등의 공휴일)

-> 따라서 1년 중 쉬는 날은 총 135일.
-> 일 하는 날은 365 - 135 = 230 일.
-> 하루 8시간 근무이므로, 230 X 8 = 1840 (시간)


+ 이 회사에서 시급 11,000원을 받는다면

- 1840 시간 x 11,000 원 = 20,240,000 원. (2천 24만 원)

즉, 주5일 근무에 야근 하나도 안 하고, 휴일 근무 전혀 없이 일 하는 회사에서, 시간당 1만1천원을 받으려면 연봉이 2천 24만 원이 되어야 한다는 결과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한국 IT회사중 야근 없고, 휴일 근무 없는 회사가 어디 있나?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야근 시간도 모이면 꽤 많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9시부터 10시까지 일 하는 건 당연하게 생각했으니, 하루에 약 4시간씩을 더 연장근무 하는 셈이었다.

만약 하루 8시간 외에 4시간씩을 거의 매일 더 근무한다면, 그래서 시급 1만 1천원을 받으려면 연봉은 거의 3500 정도가 되어야 한다 (야근수당은 기본수당에 할증이 붙는다. 18~22시 까지는 1.5배, 22~06시 까지는 2배). 거기다가 휴일 근무 수당까지 합치면 연봉 4천은 우습게 넘어가야 한다.


즉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IT회사 분위기에서 근무 할 경우, 시간당 1만1천원을 받으려면 연봉이 최소 4천 만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 바닥에서 연봉 2천 받는 사람은 시간당 임금이 5500원도 안 된다는 뜻이다.

머리 싸메가며, 스트레스 받아가며, 몸 망쳐가며, 눈 비벼가며, 취미생활 할 시간도 없이,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싶더라. 그래서 차라리 딱 일 한 만큼만 돈을 받더라도, 그래서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칼같이 정해진 시간만 일 하면 되는 호주가 끌렸다.


* 주의: 위 계산은 어차피 가상적인 계산이므로 상세한 내역까지는 넣지 않고 대강 눈에 잘 들어오도록 꾸며 놓았음을 밝혀 둔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상, 1년에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주게 돼 있고, 주5일 근무를 하지 않는 곳은 월 1회의 월차 유급휴가도 주도록 돼 있다는 것과, 생리휴가는 무급휴가이지만, 근로자가 청구할 경우 사용자는 거부할 수 없다는 것, 노동절은 노동법으로 정해진 유급휴일이라는 것, 그런 것은 알고 있으면 좋겠다. (자세한 사항들은 근로기준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Q. 계산 어지럽다. 대충 한국의 IT회사에서 개발자 일 해 봤자 노력한 것에 비해 돈을 못 받는다는 말로 압축하면 되는 건가?

A. 그렇다.



Q. 야근과 휴일 근무는 개발자의 능력이나 업무 태도의 탓도 있지 않은가?

A. 물론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다. 나 역시도 낮에 일 다 하고 정시 퇴근할 수 있는 일을 주변 동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근까지 끌고 간 경우가 많았으니까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가게 아르바이트의 솜씨가 미숙하고, 다소 농땡이 좀 부린다고 해서 야근과 휴일 근무를 강요할 수 있나?

예전에 어느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 있다. 70년 대 재봉틀로 재봉질 하던 곳이었는데, 공장장인가 반장인가 하는 사람이 "너네들이 실력이 모자라고 게으름 피우니까 매일 집에 늦게 가는 거잖아!"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나오더라. 그 모습을 21세기 한국 IT 업계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Q. 요즘 IT회사에서 개발자로 일 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도 있던데?

A. 픽! 웃기는 소리. 싼 값에 실력 높은 사람 찾으니까 없는 것 아닌가. 시장 가서 싼 값에 좋은 물건 찾으려 해 봐라, 찾을 수 있는지. 만약, 정말로 만인에게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대우를 해 주는데도 사람 못 구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나한테 연락 해라. 내가 소개해 주겠다, 아니 내가 들어가서 일 하겠다. (그렇다고 연봉 1억 줄 테니까, 나사에서 우주선 프로그램 개발 한 사람 찾아 주세요 이러면 곤란하다)



Q. 그래도 IT 바닥에 개발자 모자라다는 말이 컨설턴트나 CEO들 입에서 자주 나오던데...

A. 수요와 공급의 조절이다. 기자들이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은 이름 좀 알려진 컨설턴트나 CEO들이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하면, 기자들은 아 그렇구나 하고 기사 쓰고, 그 기사는 일반화 돼서 나가버린다. 그럼 구직활동 하는 젊은이들은 '개발자 부족하구나'하고는 학원 다니게 되겠지. 공급이 늘어나면 공급재의 가격이 하락하는 건 당연하고.

사실 그것까지 의도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컨설턴트나 CEO들의 업무 중에는 일 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최적의 여건을 만들어 주며, 능률적인 업무쳬계를 형성하는 역할도 있는데, 그 업무를 등한시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모자란다고 징징 짜는 것은 업무태만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주지도 않으면서 일 할 사람이 모자란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 못 됐다. 제대로 된 개발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회사가 부족할 뿐이다.



Q. 최근에 개발자들도 해외로 나가는 추세이니, 호주에서 개발자 하면 되겠구나.

A. 호주 워킹 준비중이라고 주변에 말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다. 한마디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IT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비자로 한 곳에서 일 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다. 요즘은 6개월까지 일 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 쳐도 회사에서 6개월밖에 일 할 수 없는 사람을 채용하겠나? 정말정말 실력 좋고 운 좋으면 프리랜서 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호주 가면 농장에서 일 할테다.



Q. 농장 일은 한마디로 노가다 아닌가. 그거 해서 미래가 있는가?

A. 개발자로 일 하면 미래가 있는가?


 
Q. 그래도 개발 일 하면서 실력도 쌓고 하면 미래가 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A. 농장 일 하면서 농장 일 배우고, 남는 시간에 요리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하면 더 많은 밝은 길이 펼쳐질 지도 모르지 않는가. 어차피 모두 추측일 뿐이다.



Q. 그래, 가서 영어도 배우고 돈도 좀 벌고 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

A. 영어 관심 없다. 돈만 벌 거다. 서양애들이 여행하다 돈 떨어지면 호주에 일 하러 많이들 간다. 나도 딱 그런 부류로 가서 그냥 일만 할 생각이다. 물론, 현지 여행도 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어학연수 같은 건 전혀 관심 없다.



Q. 호주 물가가 높다던데?

A. 자료 수집 해 보니, 돈 벌러 간 사람들은 대충 한 달에 50~60만 원 정도 쓰는 것 같다. 난 지금 한국에서 거의 거지꼴로 살고 있는데도 한 달에 50~60만 원 정도 쓰고 있다. (두 경우 모두 집세 포함) 물론 직접 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겠지만, 서울에 비해 물가가 그렇게 많이 높은 것 같지는 않다.



Q. 여태까지의 성향으로 봐서는, 호주 가는 비행기 값으로 여행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 할 것 같은데?

A. 여행 하며 돈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그 시점에서 호주를 안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은 뾰족한 수를 못 찾았다. 호주 가는 비행기 값, 꽤 비싸다. 그래서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서 비행기를 탈 생각이다. 지금 예상으론 중국에서 태국까지 육로로 간 다음, 태국에서 자가항공을 이용할 예정이다. 거기서 호주까지는 저가항공이 약 30만 원인 것을 봤다. 나름 여행과 일을 접합해 봤다. 어쨌든 호주 도착하면 그 때부터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가 되겠지만.



Q. 근데 이제 정착해서 안정된 생활 할 때 되지 않았나? 애인도 만들고...

A. 어쩌겠나, 천성이 이런데. 솔직히 싸돌아 다니고 싶어서 돌아 다닌다기 보다는, 견딜 수 없어서 밖으로 나간다고 표현해야 할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꽃가루를 접하면 재채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 병인 것 같다.



Q. 호주 워킹 홀리데이 이후 계획은? 역시 아프리카인가?

A. 앞서 말 했듯, 내게 호주 워킹은 여행 중 잠시 들러 돈 버는 정류장일 뿐이다. 1년이 아니라 2년을 일 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목표는 아프리카다.



Q. 아프리카에 왜 그리 집착하는가?

A. 이미 많이 변했지만, 더 변하기 전에 보고싶다. 여행 다니면서 느낀 것이 그것이다. 이름이 많이 알려지면, 이미 그곳은 예전의 그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 캄보디아가 대표적인 케이스 아닐까. 물론 여비가 허락되면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세계일주를 해 보고 싶다.



Q. 대충 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끝으로 무슨 문제는 없는가?

A. 막상 이렇게 결심하고 마음까지 다잡았는데 비자가 안 나오면 끝장이다. 워킹 비자 기다리는 중이다.



이상으로 간략한 정리를 마칩니다. 본문은 후에 수정, 추가, 삭제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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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