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온 광주 광천터미널. 터미널 근처에서 느지막이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미지의 장소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는 소쇄원만 보고 갈 계획이었지만, 소쇄원 가는 버스를 타러 가면서 우연히 본 현수막때문에 여행지 한 곳을 더 추가하게 됐다.
사진에 보이는 바로 저 현수막. 광주-함평 사이를 오가는 500번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는 것을 알리는 간단한 내용. 그런데 바로 아래,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이름이 참 독특하면서도 정겹지 않은가, 돌머리 해수욕장이라니~!
단지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가기로 마음먹은 곳. 오전에 소쇄원을 관람하고 나오면서부터 흩뿌리기 시작했던 빗줄기가 이젠 꽤 굵어졌지만, 어차피 혼자가는 여행에 해수욕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비 오는 바다를 좋아하기때문에 더더욱 안 가 볼 수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고나 할까.
내 여행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남들처럼 나도 처음에는 나름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목적지로 향하는 중간에 만나는 색다른 장소나, 어떤 사건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의도하지 않게 펼쳐지는 새로운 길들, 나는 여행에서 그런 것들을 즐긴다.
그래서 오히려 계획했던 목적지만 딱 다녀오는 여행은 어쩌면 내겐 실패한 여행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여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니까. 한 마디로 내게 목적지는 단지 옵션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함평 가는 길도 푸른 초원과 논밭, 그리고 아기자기한 마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버스 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며 한없이 펼쳐지는 그런 풍경들을 넋 놓고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꽤 괜찮았다.
그런데 함평이라는 곳에 도착해 보니 여기도 의외로 괜찮은 곳이었다. 비바람 몰아치는 역동적인 모습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 것도 있겠지만, 맑은 날에 가도 좋을 듯 하다.
버스 종점에서 큰 길 따라 쭉 가다가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바닷가. 한창 여름 성수기였지만 가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있던 승객은 나 혼자 뿐이었다. 그래, 이런 곳 한 곳 즘은 그냥 내버려둬도 괜찮을테지.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우산은 전혀 쓸모가 없어서, 아예 우산은 접고 비를 맞고 다녔다. 그러다가 잠시 비를 피했던 어느 바닷가 오두막. 사람들 쉬라고 만들어 놓은 곳인 듯 하다. 이런 곳에서 하염없이 비를 긋고 있자니, 이것도 나름 운치. 누군가와 함께 갔다면 이런 느낌, 이런 기분, 이런 분위기, 전혀 즐길 수 없었을테지. 그래서 여행은 혼자 하는 거라고, 이 연사, 힘차게 힘차게 부르짖습니다!!! ㅡㅅㅡ/
가라앉을 듯, 가라앉을 듯, 아슬아슬하게 거친 바도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가라앉지 않던 작은 배. 느닷없이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고.
이런 뗏목 타고 휘청휘청 노를 저으면 아프리카까지 갈 수 있을까. ;ㅁ;
다시 언덕 위로 올라와서 반대편 해변으로 간다. 아까 그 쪽은 그냥 경치 구경이나 낚시 하는 곳이고, 지금 향하는 이곳이 진짜 해수욕장이었다. 차량 출입을 막기 위해 쳐 놓은 쇠사슬.
해변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판자로 다리를 만들어서 걸어가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의 가장 큰 특징. 굳이 수영을 하지 않아도 바다 저편으로 나가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제목을 달자면 바다 위를 걷다 정도 되겠다. 나처럼 수영 싫어하는 사람에겐 정말 좋은 곳.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의 전체적인 모습은 대강 이러한데...
우리 머릿속에 있는 일반적인 해수욕장의 백사장이 아니었다. 사진을 보면 대강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육지와 바다를 오가려면 대략 암벽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 체력단련도 하고 좋지 뭐~ 모래밭을 데구르르 굴러서 바다에 첨벙 들어가는 애들도 있었다. 재미있을 것 같던데 차마 따라 해 보진 못했고. ㅡㅅㅡ;
참 넓고 맑고 아담한 곳이라는 인상. 여기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만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은 한적한 분위기.
아까 반대편 해안은 비바람으로 파도가 높게 일렁였는데, 여기는 거짓말처럼 바다가 조용하다. 나즈막한 언덕 하나를 두고 이쪽 해안과 저쪽 해안이 너무 달라서 놀라웠다. 이쪽은 바람도 별로 안 불어서 놀기도 좋았다.
바다로 향하는 길. 이 판자 길이 놓어진 곳까지는 수심이 깊지 않은 듯 했다. 굳이 온 몸을 물에 담그지 않아도 바다 한 가운데에 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해수욕장.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
구경 다 했으니 이제 가자. 이렇게 보면 가자마자 돌아온 것 같지만, 이 바닷가에서 몇 시간은 머물렀다. 주로 조용한 곳에서 멍하니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기로 적을만 한 내용은 별로 없다. 사실 여행 끝나고 여행기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은 여행 중 있었던 일들의 10% 정도밖에 안 될 듯 싶다.
해 지기 전까지 대략 한 시간에 한 대씩 운행되는 버스. 여기가 종점이지만, 버스는 들어오자마자 아주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 나가기 때문에, 버스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이 좋다. 시간은 확실히 기억 안 나는데, 해 질 때 즘 되면 막차가 끊기는 걸로 기억된다. 버스 시간표는 버스 승차장 푯말에 적혀 있다.
다시 광주로~
전라도 여행의 출발이자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광주 광천터미널(약간 과장이지만). 종합터미널이라고 하기도 하고, 유 스퀘어 (U sqare)라고 하기도 한다(이름처럼 유(U)자로 생긴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광천터미널이라고 알아두고, 말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택시를 타든, 길을 물어보든).
터미널 앞에서 시내버스를 비롯해서 광주 외곽으로 빠지는 버스들을 탈 수 있기 때문에, 전라도 쪽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곳이었다. 터미널 안에는 관광안내소도 있기 때문에, 시내버스 번호를 비롯해서 각종 정보들을 문의하기 좋은 곳이다.
가끔 이렇게 작은 규모의 전시도 하고~ (나름 모터쇼)
소쇄원 + 함평 돌머리 해수욕장 여행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