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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름달바닥 인생
    그림일기 2009. 10. 22. 00:17



    이 세상에도 언젠가 보름달이 뜬 적 있다. 회반죽으로 얼기설기 대충대충 마감한 옥상에 건조한 바람이 불던 때였다. 날이 어두워 보이진 않았지만 작은 모래알들이 날려 내 얼굴을 연신 때리고 있었고, 옥상 너머 펼쳐진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아옹다옹 살아가는 소리들이 들렸다. 아니, 사람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내는 소리일 거라고 짐작 가는 기계들의 소리만 들렸을 뿐.

    깡마른 회색빛 사막같은 그 곳이, 그 날은 특별하게도 푸르스름한 빛으로 감싸여 있었다. 마치 바다 밑으로 내려온 것처럼 한없이 투명한 블루, 바람에 나부끼는 작은 가지 나뭇잎처럼 파르르 떨리던 그 설익은 색깔. 보름달은 그렇게 끝없는 회백색을 배경으로 불안하게 희미하게 떨리는 파르스름한 빛의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과 경계가 확실한 칼날같은 둥근 모양에 시선이 벨까 두려울 정도였다.

    이 세상에도 언젠가 그렇게 보름달이 떳던 적이 있다. 하염없는 한숨을 파르란히 흘려 보내던 둥근 달이 저 하늘에 걸렸던 적이 있었다. 달빛에 말라가는 수건처럼 바싹 마른 한숨으로 어떻게든 세상에 끼워맞춰 보려고 했던 적 있었다. 그렇게 한숨으로 그 둥근 달을 날려 보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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