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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피랑 블루스 -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 1
    국내여행/경상도 2010. 5. 23. 20:19

    2010년 4월 2일 금요일. 통영시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예술가들이 모여 앉았다. 4월 3일부터 11일까지 2주간 펼쳐지는 동피랑 벽화전의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행사가 열리는 통영이라는 곳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다보니, 아무래도 통영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다. 그래도 멀리 타지에서 온 사람들도 전체 참가인원의 절반을 차지했다.

    직업과 나이도 아주 다양했고, 팀 구성 또한 한명으로 구성된 팀부터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벽화를 처음 그리는 사람도 있었고, 전문적으로 벽화작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을 배운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이번 벽화전에 벽화 예술가로 참여했고, 각자 나름대로 주제와 작업계획을 정해왔다. 물론 그것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약 40여 개 팀이 모였다. 팀 수는 그렇지만, 정확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사람으로 구성된 팀부터, 십여 명으로 구성된 팀까지, 각 팀들이 모두 다른 구성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 동피랑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는, 그런 다양한 사람들의 손으로 그려진 것이다.

    물론 동피랑에는 이미 예전에 그려진 벽화들이 동네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벽화들은 인터넷을 통해 알음알음 널리 퍼졌고, 지금은 마치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지처럼 돼 버렸다. 그 벽화들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많은 사진들을 찍어갔으며, 그 벽화들과 함께 통영여행을 추억에 남긴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벽화라는 것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들이다. 시간이 흐르고 때가 타서 더러워지면,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벽화를 깨끗하게 아름답게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데, 그래서 열린 것이 바로 이 벽화전이었다. 오래되어 더러워진 벽화들을 깨끗하고 산뜻하게 새로운 벽화들로 바꾸기 위해서 말이다.



    나도 그 뜻에 공감하여 참여해서 벽화작업을 했다. 그래서 벽화작업 모습들과, 새로 그려진 벽화들에 관심을 많이 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기존에 있었던 것들, 그 동안 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그 벽화들에 대해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한 짤막한 기록을 남기려 한다. 이것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들이다. 









    통영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탔다. 시내로 향하는 거의 모든 버스들이 시청을 거쳐간다며 정류소에 있던 사람들이 알려주었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린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잠시, 기사님도 까먹고 주위 승객들도 까먹어서 나는 시청 근처에서 내릴 수 없었다. 한참을 가길래 이상해서 물어봤더니 이미 시청은 지난지 오래. 그래서 부랴부랴 내린 곳은 핸드폰도 터지지 않고, 택시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어떻게 물어보고 어쩌고 해서 한 일 킬로미터 걸었다. 마침 지나는 택시를 타고 만 원 정도 나오는 거리를 갔더니 시청이 나왔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러있었다. 동피랑의 간략한 역사와 설명으로 시작한 오리엔테이션은, 격려사와 부탁의 말씀 등을 거쳐서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한다. 뒤늦게 도착한 나는 벽화작업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듣고, 기본 준비물들과 자료집 등을 받을 수 있었다.



    동피랑은 이미 한 차례 벽화 공모전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추가전이라는 형태로 중간에 몇몇 그림을 더 그려 넣기도 했다. 그런 기회들을 통해 이미 여러차례 동피랑 벽화전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처음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통영에서 어디서 묵어야 할지, 페인트는 어디서 사야 할 지, 작업과 일정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 지 등의 고민들. 하루 이틀 지내보니 저절로 해결되는 고민들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엔 참 걱정스러운 부분들이었다.






    통영시청에서 간단한 행사를 가진 뒤에, 시청버스를 이용해 동피랑으로 갔다. 동피랑은 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버스로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동피랑에 들어서면서부터 바로 자리배정이 시작되었다. 푸른통영21 국장님이 '여기는 누가 할래?'하면 '저요'하고 손 드는 방식. 그러면 락카로 벽에 그 팀 이름을 적어주는 것으로 낙찰.   



    대체로 사람 키 높이를 넘지 않는, 적당한 크기의 벽이 인기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벽이 그리기도 편하고, 사람들 눈에 띄기도 좋고, 접근성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너무 높이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거나, 너무 넓어서 고생스러울 것 같은 벽, 혹은 너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에 있는 벽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아무래도 동피랑 벽화전은 혼자 조용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곳이 아니라, 서로 함께하며 참여하고 어울리는 공간이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벽화라는 특성 때문에, 자리(벽) 선택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을테고. 그래서인지 좋은 벽들은 이미 사전답사를 온 팀들이 표시를 해 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팀들이 이미 한 차례 이상 동피랑을 둘러본 상태였다. 



    사전답사를 통해 이미 적당한 자리를 물색해놓은 사람들이나, 이미 자기 자리를 표시해 둔 팀들은 별 걱정이 없었지만, 나처럼 이날 처음으로 동피랑을 가 본 사람들은 좀 난감했다. 벽화 그릴만 한 자리가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 한 상태에서 자리를 결정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동네라도 한 번 둘러봐야 대충 내 자리를 선택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사전답사를 하지 않은 탓에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공식적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결정하지 못하고 말았다. 일찍 정하지 못하면 괜찮다 싶은 자리는 이미 점령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좁아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며 늦게 자리를 선택할 수 밖에.









    이제 낡고 빛이 바래버려 새로 바꾸어야 할 때가 왔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운 것들도 있었다.

    '동피랑에 꿈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벽은, 여태까지 거의 동피랑 벽화의 트레이드 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피랑 산동네 들머리에 쓰여져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제일 잘 띈다는 위치적인 효과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에 공감을 했기 때문에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벽화였다.

    동피랑을 갔다 왔다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꼭 찍혀있는 그 벽화. 이번 벽화전을 여는 주최측의 몇몇 분들도 이 벽화를 비롯해 몇몇 벽화들에 강한 애정을 나타내셨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 지우기 아깝고, 보내기 안타깝지만, 더 낡고 더러워져서 흉물스럽게 변할 때까지 놔둘 수는 없었다.

    아직은 아름다울 때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 동피랑의 예전 벽화들은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사라진 것이다. 결코 예전 벽화들이 못나서 다 갈아엎은 것이 아니었다.
























    내내 좁은 골목길을 가파르게 오르다가, 이윽고 동피랑 마을 꼭대기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면서 아름다운 강구항의 전경이 펼쳐졌다.

    통영 사람들이나 동피랑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외지인의 입장에서는 이 꼭대기 부근이 동피랑 벽화의 핵심지역이다. 발길은 저 아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올라오지만, 벽화는 어쩐지 이 꼭대기에서부터 퍼져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근에는 크고 작은 벽화들이 아주 많다. 아무리 힘들어도 동피랑을 왔으면 여기는 꼭 한 번 올라와 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동피랑 하면 이곳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벽화를 그리려는 사람들에게도 이 부근은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 인기 있는 곳이었다. 경매를 붙인다면 다른 쪽 벽은 백 원에 팔린다면, 이 쪽 벽은 천 원에 팔리겠다 싶을 정도. 아무래도 집중조명을 받는 곳이기도 하고, 동피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 테다.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장소가 주는 어떤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니까.    

    그런 이미지적인 의미 외에도, 이곳은 벽화작업을 위한 좋은 조건들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 구판장(매점)이 있기 때문에 음료수 하나라도 사 마시기 편리한 곳이다. 구판장 앞에 임시 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곳이 있어서, 물품보관이나 각종 도구를 빌려서 운반하기도 편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구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훌륭한 경치를 내려다보며 작업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즉각적인 반응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벽화작업에 대체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주민들 속에서 좋은 분위기로 작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좋으며,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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