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10년 4월) 통영 동피랑 마을에서는 약 2주간 벽화전이 열렸다. '동피랑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벽화전은, 인터넷을 통한 사전 공모로 많은 팀들이 참가했다. 처음 계획했던 팀 수는 30개 였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40여 개 팀이 참가했다. 동피랑 벽화 마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벽화전은 기존에 있던 오래되어 더러워진 벽화들을 새로운 벽화들로 교체하기 위해 열린 것이다. 동피랑 벽화전의 주체인 '푸른통영21'은, 이 벽화전을 2년에 한 번씩 개최할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피랑을 찾아왔다. 벽화전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그냥 놀러 온 사람들이었다. 벽화전이 열리는 도중에는 인터넷에서 본 그런 벽화들을 볼 수 없었을 테다. 단지 지워지는 도중의, 그려지고 있는 도중의 그림들만 볼 수 있었을 뿐.

기대했던 벽화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은 행운아다. 2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한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벽화야 언제든 시간날 때 찾아가서 보면 되는 거지만,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은 때 맞춰 가지 않는 이상 흔히 보기 어려운 광경이니까. 

그래서 벽화전을 직접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간략한 스케치 만이라도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이 포스팅은 동피랑에서 보름간 펼쳐졌던 벽화전의 기록이다. 사진 나열을 주로 할 것이니, 편한 마음으로 구경하시기 바란다.   
  





오리엔테이션은 금요일 날 있었다. 참가자들은 그 때 동피랑에 대한 개요를 들었고, 벽화작업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현장답사를 통해 자기 팀이 그릴 벽을 직접 선택하는 것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동피랑 근처에 있는 모텔에서 숙박을 했다. 동피랑에서 내려다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 나폴리 모텔. 강구항 인근에서 가장 크고, 전망도 좋은 곳이라 인기가 많았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었다. 그래도 일생에 한 번 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묵었다. 동피랑과 가까워 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한 몫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멀리서 온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서둘렀다. 내 경우는 벽화작업이 처음이라, 작업을 서두르려 해도 어떻게 서둘러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전문가 팀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수 밖에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 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이 됐다. 하루 이틀 조용히 지켜보면서, 궁금한 것은 묻고, 또 고민하고 했더니 대충 감이 잡혔다. 이번 벽화전에 참가하신 분들이 처음에는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무표정하게 보였다. 하지만 다가가면 다들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붙이고 다가가면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셨고, 벽화 작업에 비밀스러운 노하우 같은 건 없다며 정말 자세하게 모든 걸 가르쳐 주신 분들도 있다.

나중에라도 혹시, 시간도 있고 마음도 있는데 경험이 없어서 참여를 망설이는 사람이 생긴다면, 과감히 시도해 보라고 말 해 드리고 싶다. 처음하는 작업이라고 겁 먹을 필요 전혀 없다. 필요한 것은, 예술적인 감각보다도, 튼튼한 체력이다! 정말 벽화작업은 체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동피랑 구판장 바닥에 음표가 그려진 그림은 친근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 그림이 다 그렇듯, 너무 쉽게 더러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번 벽화전에서도 이 바닥 그림을 다시 칠했으면 좋겠다는 주최측의 바램이 있긴 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다들 혀를 내둘렀다.

바닥 그림은 쉽게 더러워진다는 특성이 있어서 다들 꺼려하기도 했지만,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벽화보다 그리기 까다로울 수도 있다 한다. 왜냐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그걸 통제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예 통행을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일이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벅찬 노릇. 그리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래서 안타깝게도 동피랑 앞의 바닥 그림은 그대로 남겨지게 됐다. 언젠가는 한 번 바꿔야 할 테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보다. 나중에 누군가, 비교적 통행량이 줄어드는 평일을 틈 타 멋진 그림을 그려주길 바랄 수 밖에.






이번 벽화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팀은 아무래도 '백김치' 팀이었다. 통영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두 서양인 애덤과 터커로 이루어진 팀이다. 둘 다 미국인이었는지, 터커는 캐나다 인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애덤이 미국인인 건 확실한데.

둘 다 백김치를 좋아해서 팀 이름을 백김치라 정했다고 했다. 김치도 좋긴 하지만 너무 짜고 매워서, 백김치가 더 좋단다. 김치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외국인의 이런 말에 주목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애덤은 어쩌다보니 한국에 영어강사로 오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전세계를 다니며 영어강사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한국에 관심이 갔다 한다. '왜 하필 통영이냐, 많은 영어강사들이 서울로 가잖아. 거긴 홍대 클럽도 있고, 놀기 좋잖아?' 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대도시는 싫어'.

터커는 약혼녀를 따라 한국에 왔다. 영어강사를 하려고는 했지만, 한국에 가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어느날 약혼녀가 '통영에 가자' 해서 그냥 따라 왔단다. '달리 가고 싶은 나라가 없었냐' 라고 물으니, '약혼녀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다' 라는 대답을 했다. 옆에 약혼녀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지금은 한국이, 특히 통영이 너무너무 마음에 든단다. 옆에서 애덤도 '미 투' 라고 거들었다.



참 독특한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서양인 영어강사였다면 통영은 찾지도 못했을 텐데. 당연히 영어강사들도 많고, 자국민들이 이미 많이 터를 닦고 있는 서울로 먼저 가는 걸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독특한 사람들은 애덤과 터커 뿐만이 아니었다. 통영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도 꽤 많았다. 시간 날 때마다 먹을 것들을 싸 와서 수다를 즐겼는데, 그들의 친구들 역시 통영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서양인들이었다. 세상에 참 특이한 사람들 많다.

애덤과 터커 둘 다 여행으로 서울, 부산, 제주 등을 갔다왔다 한다. 소감을 물었더니, 여행으로는 한 번 즘 갔다 올 만 하다 했다. 그뿐이었다. 한국에 있는 내내 자기들은 통영에서 살 거라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다면서.  

통영이 어째서 마음에 드냐고 물었더니,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도시가 가진 편리함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작고 조용한 곳이라 좋다 한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매일매일 일상이 영화같다며 웃기도 했다.
 











벽화작업은 벽을 긁어 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미 뭔가 그려져 있는 벽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벽이라도 묵은 때와 먼지들을 벗겨내기 위해서다. 벽을 깨끗하게 벗겨내야 페인트가 잘 먹히기 때문이다. 바디페인팅을 하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과 같은 이치. ㅡㅅㅡ;

주걱칼로 벽을 긁어 내는 작업이 아마 벽화 작업 중 가장 힘 든 작업일테다. 힘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풀풀 날리는 흙먼지가 온 몸을 뒤덮고 눈에도 들어가기도 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노동이다. 벽에 페인트가 잘 발라지도록 하는 미디엄(용액)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어느 정도는 벽을 긁어 내야만 한다.



그렇게 벽을 긁어낸 다음엔, 빗자루 같은 것으로 벽에 남은 흙먼지를 쓸어낸다. 이 때 물걸레 같은 것으로 깨끗이 닦고 하루 말려주면 더욱 깨끗한 벽을 얻을 수 있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정도까지 하지는 않았다. 긁어낸 다음 바로 바탕색 칠을 했다.

바탕칠 또한 그냥 노동이다. 페인트용 롤러나 큰 붓으로 일정한 색을 벽 전체에 골고루 펴 바르는 작업이다. 너무 두껍게 바르면 쉽게 금이 가고 벗겨지고, 너무 얇게 바르면 밑의 색이 훤히 비친다. 적당히 골고루 펴 바르는 것이 중요한데, 내 경우는 바르고 말리는 작업을 계속해서 얇게 세 번 발랐다.



바탕칠을 한 다음엔 벽을 하루종일 햇볕에 말린다. 주로 바탕칠을 끝내면 다음날 작업을 계속한다. 그 다음 작업은 밑그림이다. 작업 방법이나 내용에 따라 밑그림은 생략할 수도 있다. 밑그림은 각자 취향에 따라 연필, 크레용, 노란색 페인트, 매직펜 등을 사용한다. 완성될 그림에 맞추어 각자 알아서 잘 사용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경우든 지운다는 건 불가능. 흰 색이든 다른 색이든, 색으로 덮는 수 밖에 없다.









동피랑 구판장 뒤쪽, 동피랑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곳은 지금 현재(2010년 5월) 공터로 남아있다. 시에서 이곳에 망루를 복원 할 계획이라 한다. 망루 복원과 함께 이 일대를 공원으로 꾸미려는 계획도 하나의 안으로 나와 있는 상태라 한다.

조감도나 세부계획을 알지 못해서 뭐라 말 할 입장은 안 되지만, 동피랑이 공원으로 꾸며지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인공적으로 잘 가꿔진, 화장한 여배우 같은 그런 깨끗한 공원은 전국 각지에 비슷비슷하게 있다. 동피랑까지 그렇게 될 필요 있을까. 어찌되든 동피랑의 심벌인 골목과 벽화는 잘 남겨주길 바랄 뿐이다. 









벽화를 많이 그려본 전문가들은 역시 아마추어들과는 좀 달랐다. 벽을 긁어내고 바탕색을 칠하는 간단한 일에서도 차이가 날 정도. 아마추어들은 일단 바탕을 쭉 칠하고 말리는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전문 팀들은 바탕색부터 여러 색깔을 이용해서 칠하기도 했다. 바탕색을 칠하는 것에서 부터 그림의 틀을 완성해 나가서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전문가는 전문가다, 사소한 것들에도 경험으로 쌓인 노하우가 있으니까.






동피랑 뒤쪽 외진 곳에 폐가가 있는데, 어느날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조용히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창문과 꽃들이 마치 예전부터 그렇게 그려져 있었던 것처럼, 낡은 듯 하면서도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렸다. 이쪽은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지금은 간단히 넘어가겠다. 어쨌든 이 아주머니는 혼자서 하루 온종일을 폐가 안에서 보내셨다.









동피랑 꼭대기로 올라가는 골목이 벽화골목으로 유명한 만큼, 그림 그리는 사람들도 이쪽에 많이 모여 있었다. 벽화를 그리지 않을 때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 주말부터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벽화 작업 하는 사람들과 구경 온 사람들이 뒤엉켜, 이 좁은 골목은 한 때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기도 했다. 

 




바닥에 신문지나 비닐을 까는 것은, 벽화 작업을 처음하는 사람들이 까먹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다. 나중에야 아차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한참 작업하고 내려다보면 바닥은 이미 페인트들이 튀고, 흘러내려 더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걸 미리 막으려면 바닥에 무언가를 까는 수 밖에 없다. 신문지는 바람에 날리기도 하고, 많은 양의 페인트가 떨어지면 제 역할을 못하기도 하기 때문에, 비닐이 더 안전해 보였다.

물론 바닥에 페인트가 튀었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 사람들의 시선은 바닥에 튄 자국들로는 잘 가지 않으니까. 크게 눈에 안 띌 정도로 대충 문질러 지우거나, 흙으로 문질러 덮거나 하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어떤 팀은 흘러내린 페인트 자국을 감추기 위해, 바닥에 꽃을 그려 넣기도 했다.






애덤과 터커는 한 획 한 획 그을 때마다, 뒤로 나와 전체적인 모습을 보며 서로 상의하고 토론했다. 어떤 때는 얘네들이 건축 설계도를 그리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대화하고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벽화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