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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풍물의 바람을 아시아로, 세계로 - 부평풍물대축제국내여행/경기도 2011. 7. 1. 18:09
아침부터 후텁지근하게 내려쬐는 햇살 속에 천지를 울리는 풍악이 지축을 울렸다. 마치 마른 하늘의 천둥소리 처럼, 수십만 장병의 행군 소리처럼 그렇게 풍물 소리는 뜨거운 태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의 이열치열 정신처럼, 풍악 또한 그런 식이지 않나 싶다. 힘든 일들을 하던 사이에 잠시 놀 시간이 생겼을 때도 푹 늘어져 쉬는 대신, 풍물이라는 어찌보면 무척이나 힘든 노동을 놀이로 하면서 무아지경에 이르러 피로를 풀지 않았을까.
부평풍물대축제
지난 오월 부평역과 부평대로, 신트리공원 일대에서 '부평풍물대축제'가 열렸다. 부평역 앞 넓은 대로를 모두 비우고, 그 안에 가득 전국에서 올라온 풍물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의 마쯔리처럼, 우리나라 축제 중에도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중심으로 한 것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련된 이 축제는, 2011년 현재 이미 15회를 맞이할 정도로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는 행사다.
부평풍물대축제가 독특한 것은, 단순히 몇몇 풍물패들이 나와서 공연만 조금 하다가 끝나는 행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축제기간 중에 전국학생풍물경연대회, 부평구 동 풍물경연대회, 부평전국국악경연대회 등 풍물과 국악을 중심으로 한 각종 대회를 개최해서 전국의 수많은 공연팀들이 모여들게 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이렇게 큰 규모로 전국의 소리패들을 불러 모으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겠지만, 지역 축제의 한계성을 대회를 통해 전국적으로 키웠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 행사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축제 진행 또한 특색 있었는데, 이런 행사들이 대부분 무대가 하나 뿐인 것에 비해, 이번 부평풍물대축제는 무대가 두 개 였다. 부평역 앞쪽에 무대가 하나 세워졌고, 부평시장역 쪽에 또 하나의 무대가 세워져서, 두 개의 무대가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행사가 진행된 것이다.
물론 그 두 무대 사이의 대로는 모두 비워져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각종 전시부스들을 관람할 수 있게끔 했고, 대로 위에서도 시간에 따라 각종 행사들이 열리게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었다.
두 무대가 너무 가까웠다면 서로 소리가 충돌해서 제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겠지만, 두 무대가 충분히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한 쪽에서 풍물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 진행되는 청소년 노래자랑이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때로는 보고 싶은 공연이 너무 많은데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해서 안타깝기도 했지만, 때로는 여기가 재미 없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널려 있으니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져서 좋았다.
풍물놀이 자체가 정신없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 나오는 한민족의 신명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공연이 여기저기서 막 펼쳐지니 더욱 활동적이고 다양하면서도 능동적인 축제 관람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하나의 무대만 쭉 지켜보게 하는 다른 축제들에 비해, 부평풍물대축제의 이런 다이나믹 한 운영 형태는 아주 극찬을 보내고 싶다.
풍물의 바람을 아시아로, 세계로
오전에 초등학생들의 풍물경연대회가 펼쳐질 때만 해도 정돈된 분위기 속에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행사구나 했다. 물론 어린 학생들이라 악기 크기 자체가 차이도 있고 해서 음량에는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지만, 그들의 열기와 단합된 마음의 온도는 이미 태양을 달구고도 남았다.
해가 중천에 이르자 양쪽 무대와 도로변에서 각종 풍물패들이 공연을 시작했다. 대로변 한쪽에 프로그램이 적혀 있긴 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가 그건 어찌돼도 상관 없어졌다.
물론 딱 보면 이쪽은 청소년 풍물패구나, 저쪽은 좀 더 전문화 된 성인들의 풍물패구나 하는 것이 보였지만, 돌비 서라운드 음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사운드의 회오리가 끓어 넘치는 도가니 속에서, 갈 곳을 잃고 잠시 멈춰 서도 아무 상관 없었다. 이미 내 몸은 풍물 소리로 하얗게 젖어들고 말았으니까.
식사도 잊고 700미터 남짓한 축제장 속의 양 끝 무대를 오락가락 하던 사이, 어느덧 해는 기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큰 북이 우렁찬 함성으로 대로위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부평의 각 동 사람들의 행렬이 마치 끝없는 갈대밭의 바람처럼 불어오기 시작했다.
거리행렬은 이번 축제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화려했는데, 동네마다 그 규모나 준비한 내용은 천차만별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함께하는 축제를 만들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행렬이었다.
행렬이 끝나고 해가 지고 나서도 열기는 식지 않고, 다시 국악 공연, 가요제 등으로 이어졌으니, 가히 부평풍물대축제는 제대로 신나게 한 판 놀아보는 축제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소리의 아수라장 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축제에서 과연 외국인들은 어떤 느낌을 받는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외국인 관람객은 많지 않아서 제대로 그 느낌을 물어볼 수 없었다.
내국인 중에도 이런 축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외국인들 또한 몰라서 못 왔을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앞으로 또 펼쳐질 부평풍물대축제는 많은 내국인들과 함께, 외국인들 또한 많이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싶다.
지금 한류로 선두에 선 것이 K-POP이지만, 진정한 한국 문화와 한국적인 것들을 알리기 위해서는 국악과 풍물을 이런 행사를 통해 세계적으로 알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에서도 이 풍물경연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날아올 정도로, 대한민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기를 한 번 기대해 본다.
참고: 풍물놀이는 줄여서 풍물이라고도 부르는데, 흔히들 농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농악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풍물을 주로 농민들이 한다 하여, 이 문화의 격을 낮추고 비하하기 위해 일제가 널리 쓰게 만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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