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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졌다.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구석에 드문드문 흐릿한 가로등 불빛이 길을 비춘다. 동네 어귀마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 집 저 집 밥 짓는 냄새가 지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디선가 악을 쓰며 싸우는 소리. 또 어디선가 요란하게 떠들며 노는 소리. 오늘도 달빛은 무심히 골목을 창백하게 비춘다.
70년대 달동네. 누군가는 아련한 기억으로 다 지난 추억으로 곱씹을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생각도 하기 싫은 악몽으로 아직 남아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인 삶의 일부분일 테다.
아마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을 구질구질하다 여기고 돌이키기 싫은 기억으로 생각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 지금도 낡은 동네를 흔적도 없이 밀어버리고 높은 아파트로 깨끗하게 새 단장하는 것을 반기는 것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 그 시절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70년대는 무작정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기엔 너무나 아팠던 시절이고, 기억을 조작해서 웃어보려 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 역시 흘러흘러 언젠가는 역사로 남을 운명. 아직 많은 흔적들이 남아있고, 아직 많은 기억들이 남아있어 비교적 소홀히 대하고 있는 근현대 우리사회 모습들.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달동네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도 전에 그 기억의 파편들을 수집해서 보여주고 있다.
수도국산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동구 송현동 163번지 송현근린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송현시장 뒤편으로 깨끗한 아파트들을 따라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 즘 낮고 조그만 박물관 건물을 볼 수 있다.
흔히 수도국산이라고 부르는 이 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 혹은 송림산이었다. 소나무 숲 우거진 바닷가 작은 언덕이었던 이곳에, 1908년 일제가 송현배수지를 만들었다.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에 댈 물이 부족해서, 서울 노량진에서 물을 끌어와 이곳에 물탱크를 만든 것이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상수도를 관리하던 관청인 '수도국' 이름을 따서, 이 산을 '수도국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게 상권을 박탈당하고, 중국인들에게 일자리를 뺏긴 한국인들이 이 언덕에 모여들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조금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은 마음으로 이 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어 60~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시골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고,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 또한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한 때 이곳엔 산꼭대기까지 약 3천 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송현동, 송림동 일대가 개발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 초에는 거의 모든 판자집들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이 지역에 존재했던 달동네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2005년에 만들어진 테마 박물관이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1971년 11월 어느 날 저녁 6시를 시점으로 달동네를 재현해 놓았다. 1972년에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마을의 모습이 많이 바뀌기 때문에, 바뀌기 바로 직전의 모습을 선택했다 한다.
그리고 달동네 공통적인 특징이 아침에는 일어나서 나가기 바쁘고, 낮에는 거의 아무도 없고, 저녁이 되어서야 서서히 살아나는 동네라서, 시간을 그렇게 정했다 한다. 그래서 박물관 내부는 다소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약간 으스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박물관에는 아직도 실제로 남아있는 모습들이 상당히 전시되어 있다. 언덕 뒤편으로 조금만 내려가보면 아직도 달동네 골목길 일부 모습을 볼 수 있고, 박물관에 전시된 이발소의 모델이 된 분은 아직도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 중이다. 어쩌면 이 박물관은 이미 끝나버린 역사를 수집해서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아직 진행중인 삶의 모습들을 채집해서 모아 나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 찾기 힘든 근현대생활사 전문박물관이다. 특히 송현시장과 가깝기 때문에, 시장과 함께 하나의 코스로 엮을 수 있다. 박물관 뒤편 언덕 꼭대기로 다시 조금 올라가면 근린공원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인천 시가지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박물관 반대편 쪽으로 넘어가면 아직도 남아있는 옛 달동네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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