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리에게 서원은 어떤 의미일까 - 안동 서원국제학술회의, 병산서원, 도산서원, 부용대
    취재파일 2011. 11. 9. 18:07

    '안동'은 그 유명한 하회마을로 대표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이름은 들어 보았을 유명한 서원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유교문화의 전성과 함께 크게 세를 확장하던 서원들도 이제는, 중심지로부터 한 편으로 물러나 조용히 옛 모습을 기억하며 고즈넉한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크게 번성하던 서원들은 사교육의 전진기지로 활약하며 전국적으로 널리 세워졌지만, 흥선 대원군이 중앙집권체제 강화를 위해 각종 폐단의 온상이 되었던 서원들을 철폐하면서 많이 사라지게 됐다. 그 와중에도 철폐되지 않고 명문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곳이 몇 있는데, 그런 서원들 중 유명한 서원 두 개가 안동에 위치해 있다. 바로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이다.

    지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국학문화회관)에서는,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인 서원들을 재조명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 부용대에서 내려다 본 안동 하회마을 전경.



    ▲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린 국제서원학술회의, 한국 서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 안동 국학문화회관. 국학을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 보존하고,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다.





    서원국제학술회의, 한국 서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한국 서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국제학술회의에는,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권영세 안동시장, ICOMOS(국제 기념물 유적 협회) 사무총장을 비롯한 여러 대학의 교수 등이 참석해서, 한국 서원의 특징과 세계유산적 가치 등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본격적인 학술회의에 앞서,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용대와, 낙동강이 감아도는 바위벼랑과 어울린 모습이 인공적이라기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병산서원, 그리고 한창 가을의 화려한 색깔에 감싸여 그윽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도산서원을 둘러봤다.



    야외에서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맛보며 현지답사를 하면서 사진 찍고 바람 쐴 때는 좋았는데, 국학문화회관으로 들어가서 세미나를 듣기 시작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교수님들을 비롯해서 이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참가한 학술회의에서 비전공자가 내용을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면도 있고, 지루한 면도 있고, 우리 문화니까 알아야 하겠다는 불굴의 투지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와 벽이 사실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내용으로 발제하고 토론하기 위한 모임이니 어쩔 수 없는 일. 하나라도 보고 듣고 배우고 가라는 의미에서 불러준 국가브랜드위원회의 뜻은 고마웠지만, 그저 꾸벅꾸벅 졸다가 밥이나 먹고 하던 찰라에, 이배용 위원장님이 우리를 불러서 특별 강의를 해 주셨다.

    이배용 위원장은 한국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이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해서 유명하신 분으로,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분이니만큼 해박한 지식으로 알기쉽게 서원에 대한 내용들을 설명했다.



    ▲ 병산서원 입교당.



    ▲ 병산서원의 대표적인 건축물, 만대루.



    ▲ 병산서원 만대루는 자연과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학처럼 날개를 펴고 앉아 있다.





    지금 우리가 서원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

    이배용 위원장은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맡으면서 가장 먼저 신경 쓴 일이 바로 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한다. 서원에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과 가치가 있고, 나아가 국가 브랜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담겨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육 강국으로써 교육열과 창의, 열정, 팀웍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인재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국가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국가를 대표하고, 그 사람을 통해 대한민국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 특히 인성교육"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학생을 사랑하는 상부상조의 정신. 배우고 활동하고 이어주며 함께하는 그 문화. 그리고 사계절이 서로서로 주인공을 다음으로 넘겨주며 서로 응원하고 함께하고 물려주는 자연의 마음, 그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느끼며 자연을 스승으로 여겼던 그 정신"이 바로 우리의 서원에서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중요한 유산들이라고 한다.

    요즘들어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아무리 창의, 창의 떠들어도 전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창의가 나올 수는 없고, 배워야 창의성도 나올 수 있는 거라며, 배움의 자세를 한 번 더 강조하기도 했다.



    ▲ 도산서원 들어가는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시사단. 정조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유림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특별과거인 도산별과를 보게 했던 장소라 한다.



    ▲ 도산서원



    ▲ 도산서원 전교당. 아주 간소한 건물로,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선조 앞에서 쓴 글씨라 한다.







    소수서원 이야기

    그러면서 소수서원의 예를 들었는데, 그 서원은 민간 유지들이 합심해서 지은, 일종의 사립학교 운동으로 태어난 서원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심전심으로 합심해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절터에서 시작한 서원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교에서 유교로 정신적 기둥이 변화했음에도 불교의 옛 흔적을 싸그리 치우지 않고 일부를 남겨둔 그런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더욱 지역 선현들을 존중할 수 있었고,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고.




    그 말을 들으며 최근에 문제되었던 사건들이 생각났다. 결국 어린아이들의 문제는 어른으로부터 비롯되는 건데, 아이들 학교에서 밥 한 끼 먹이자는 것도 반대하는 어른들에게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겠는가라는 것. 소수서원처럼 지역유지들이 일어나 후세들을 위해 뭔가 크게 해 주지는 못 할 망정, 이런저런 제재와 규제만 하면서 정작 조금 손해 볼 만 한건 안 하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과연 존경심을 느낄 수 있을까. 그런 어른들에게 자리양보나 공경하는 자세로 대접할 수 있을까.

    어른으로써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해 주고 나서,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때리거나 어쩌거나 해야 그게 어른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심 먹은지 얼마 안 된 시간에 정신이 차츰 혼미해지던 와중에, 갑자기 이배용 위원장은 돈을 꺼내 들었다.



    ▲ 서원국제학술회의에서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의 개회사 모습.











    고품격으로 빛났던 옛날 천 원짜리 지폐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종적을 감추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옛날 천 원짜리 지폐였다. 그 지폐를 꺼내들며 이배용 위원장은 먼저 '투호'가 마음을 바로잡는 정심도구였다며, "회초리로 잠을 깨울 수는 있지만 그건 자발적인 것이 아니므로 교육적이지 않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투호라는 놀이를 했는데, 이것 또한 일종의 학습도구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폐 뒷면에 인쇄된 도산서원을 보여주며, "이 얼마나 고품격 디자인인가"하며 한 번씩 다 보라고 돈을 건내줬다. 천 원 짜리라 그런지 다들 그림만 구경하고 주머니에 넣지는 않더라.



    어쨌든 이배용 위원장은 "천 원짜리 지폐로 우리 역사를 스토리 텔링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는데, 역사를 모르니 이런걸 다 치워버리고 새 지폐에는 이런게 없다. 역사를 알 때 고품격도 나오고 스토리도 나오는 건데, 그런 것 다 치우고 디자인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웃과 나라를 위한 생각은 바뀔 수 없다"라며,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서원을 천 원짜리 지폐처럼 이렇게 싹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적으로 지정된 서원 아홉 개를 정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 했다.





    ▲ 옛날 천 원짜리 지폐 뒷면에 인쇄되어 있던 도산서원.








    문화와 소통, 국가와 민족, 유적과 우리

    이어서 이배용 위원장은 "소통은 존중과 배움으로 화합하는 것"이라며, "문화로 소통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정치와 경제가 실생활에 중요한 것은 맞는데, 그 기반에는 기본적으로 문화가 깔려 있어야만 소통할 수 있다며, 그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유적들이라 했다.



    수많은 문화유적들을 돌아다녔지만 지금도 유적들을 찾아가면 돌과 나무가 자신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없던 힘도 절로 솟고 마음도 평화로워진다며, 그런 문화유적들에게 생명을 되찾게 해주고 다시 꽃이 피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생명은, "자연과 함께했던 조상들의 혼을 찾아서 알아주고, 스토리로 만들어 내고, 본질적인 정신을 배우는 것"에서 생겨날 수 있고, 그렇게 조명이 비춰지고 관심이 생길 때 꽃이 피어나게 될 거라 말했다. 아울러 세상의 이치도 자연과 역사가 모두 이야기 해 줄 수 있으니, 더욱 더 알아내고, 밝혀내고, 찾아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 스스로 그 이야기를 알아듣고 존중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감동을 느끼고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나라에 대한 애국심으로 연결되는 큰 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때, 문화로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힘 또한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시간에 걸쳐 쉴 새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준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문화를 잃어버린 민족은 숨결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며 다시 한 번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힘차게 앞으로 달려나가기 위해서 우리 문화를 더욱 더 돌이켜봐야 하는데, 그 활동은 시각, 청각, 촉각을 모두 활용해야 가슴에 새겨지므로, 한 번이라도 더 현장을 찾아가도록 노력하자"고 하며, "그 역사현장의 돌담이나 매화는 우리 모두를 환영하며 반겨준다"라고 긴 강연의 끝을 맺었다.


    댓글

Copyright EMPTYDREAM All rights reserved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