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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음은 락이다 -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2011
    취재파일 2011. 11. 13. 16:16


    “락 페스티벌은 원래, 비가 좀 와야 재미있는 거야.”

    친구가 말했다. 창 밖에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별로 한 것 없이 고단한 인생에 덜컥 병이 들어 몸살감기로 온 몸이 쑤시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기뻐서 한달음에 달려갔을 락 페스티벌 취재지만,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느릿느릿 옮기며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다. 여느 때라면 빚을 내서라도 락페(락 페스티벌)를 갔을 친구인데, 올해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사정이라, 복에 겨운 소리 하고 있다며 나를 타박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해외에도 꽤 알려져 있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하지만 최근 국내 상황은, 여기저기 락 페스티벌이 많이 생기고, 서로 경쟁하듯 비교되는 라인업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 또한 분산되는 상황이다. 주위 친구들 역시도 취향 따라 끼리끼리 여기저기 시간 맞춰서 흩어지는 분위기.

    나 역시도 이번 여름엔 관심 두고 있는 락페가 따로 있었지만, 개최 장소를 옮기고 나서는, 아니 그보다 오래 전부터 못 가본지 꽤 된 펜타포트를 오랜만에 간다는 생각에 다른 락페는 잊을 수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그 명성만으로도 일단 믿고 갈 수 있는 곳이니까. 
















    펜타포트(Penta-port)는 인천광역시의 도시 개발 컨셉으로 제시된 ‘신도시 전략 펜타포트’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찍부터 있어왔던 공항, 항만, 정보(Airport, Seaport, Teleport)에 더해서, 비즈니스, 레저분야(Business-port, Leisure-port)를 추가해서 결합한 개념이다.

    1999년에 인천 송도에서 한국에서도 우드스탁 같은 락 페스티벌을 한 번 해 보자 라는 외침들이 모아져, 트라이포트(Tri-port) 락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이 때는 유례없는 폭우로 단 하루 만에 행사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딱히 계속 이어가려고 했던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첫 회 행사를 그렇게 망쳐버린 타격이 컸는지 그 후 오랫동안 인천에서 대규모 락 페스티벌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 드디어 제 1회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다. 국내 둘째가라면 서러울 뮤지션들로 거의 중무장에 가깝게 라인업해서 지방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몰려들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행사가 올해 2011년까지 매년 개최되어왔는데, 예전에는 인천 송도 시민공원에서 열리던 것이, 2010년부터는 백석동의 ‘드림파크’라는 곳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이름은 참 아름답지만, ‘수도권매립지’라는 이름 또한 함께 가지고 있는 이곳은, 한마디로 쓰레기장을 매립해서 만든 공원이다. 사실은 아직 공원 조성 중인 공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


    일단 아직 허허벌판이라 소음에 피해 볼 사람도 없고, 마찰이 생길 곳도 없으며, 행사를 벌일 공간 또한 넉넉해서 넓게넓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교통편이 불편하다는 점은 셔틀버스 운행을 자주하는 등으로 잘 대처해서, 행사기간 중에는 큰 불편을 느낄 수 없었다.

    비가 오면 땅이 갯벌처럼 질퍽해져서 장화를 신지 않으면 제대로 걸어 다니기 불편할 정도의 진창이 된다는 것도, 장화가 없으면 맨발 벗고 다니면 된다는 소위 ‘락 정신(?)’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진창을 즐겁게 즐기기도 했고.

    그런데 어떻게 봐도 문제인 것은,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 행사장 입구에 딱 내리자마자 나기 시작하는 쓰레기 썩는 냄새는, 반나절을 뛰고, 굴리고, 소리치고, 춤 추고, 뒹굴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나마 공연장 안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지하철을 탈 때면 참 난감했다. 어디서 어떻게 그랬는지 몰라도, 목에다가 상의까지 진흙이 튀어 지저분한 몰골을 해서는 냄새까지 슬슬 풍기니, 락페를 갔다 왔는지 어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거지로 볼 가능성이 백 프로였다.

    아니면 비도 오는데 어느 땅바닥에서 뒹굴다 집에 가는 정신 나간 녀석으로 보기 십상인 몰골. 실제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서 무척 난감했다. 아아, 그 상황 이용해서 지하철에서 껌이나 한 번 팔아볼걸 그랬나, 꽤 벌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쩌겠나, 그래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지 아니한가. 진흙을 뒤덮어 쓰고 집에 오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잠시일 뿐(이라지만 몇 시간은 걸렸다). 삼 일 동안의 락 페스티벌은 남은 한 해를 살아가는데 용기를 주고, 다가올 겨울을 나는데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



    안 가 봤으면 말을 말라, 평소에는 천 원 한 장에 부들부들 떨면서 김밥 한 줄 사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친구도, 매년 그 비싼 락페는 꼭 입장권 사서 간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친구들 한 둘쯤 주위에 다들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주위에는 너무 많은 게 탈이지만, 어쨌든 그런 친구들을 몹쓸 녀석으로 보지는 말자. 여러분들도 락페의 진정한 맛을 느끼면 그들을 이해하게 될 테니까.

    젊음은 락이다. 락앤롤, 헤비메탈, 펑키, 블루스, 힙합, 민요, 어떤 리듬에도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지만, 정해진 규칙 없이, 뭔가 못다한 말들을 내지르듯 소리치고, 움직이고, 함께 뒹구는, 그런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젊음의 불꽃이다. 아, 물론 여기서 젊음은 나이로만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가슴에 불꽃이 남아있는 사람 모두를 칭해야 옳을 테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없다면, 십대라도 젊은이라 할 수 없고.

    그러니까 젊음이 다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락 페스티벌을 맛보도록 하자. 놓치고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기회다. 혼자라면 어떠하리,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행사장이 넓은 듯 하지만, 사실 그리 넓지도 않아서 눈에 띄는 사람은 계속 눈에 띄니까, 혹시나 모르지 둘이 되어 나올지도.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가는 건 금물, 다 필요 없잖아 음악이 있는데.


     














    그래도 드림파크의 악취는 좀 심히 괴로웠으니, 다음 번 펜타포트에 가는 여성들은 향수를 좀 많이 뿌리고 왔으면 좋겠다. 펜타포트 5대 정신 중 하나가 DIY아닌가. 그러니까 특별히 뭔가 기대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향수를 많이 뿌리고 온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해결해봤으면 싶다. 이 문제는 주최측도 딱히 해결책이 없을 듯싶으니까.



    참고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5대 정신(철학)은 다음과 같다.

    뮤직(music):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락 장르로 분류되는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장르적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것을 표방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민요도 올라올 지도 모른다. 게다가 상업적 비상업적 음악 또한 구별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딱히 인디밴드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한데, 소녀시대라도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만 밝힌다면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뜻이 되겠다.

    열정(passion): 연령에 초월해서 가슴이 젊은 푸른 사람들의 열정적인 마당을 제공한다는 철학. 실제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가보면 가족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환경만 좀 더 좋아진다면, 가족단위로 캠핑을 즐겨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자연주의(environment friendly):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접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본성을 존중한다는 원칙. 그래서 펜타포트는 한쪽 옆에 캠핑장을 마련해놓고, 3일 동안 캠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된다. 물론 일정 비용과 예약은 필수다.

    DIY(do it yourself): 기획자들이 제공하는 것은 페스티벌의 장이고, 그 안에서 축제를 만들어 가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몫이라는 것. 그래서 펜타포트에는 딱히 마련된 좌석도 없고, 화장실이나 샤워실 또한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편하게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진정한 DIY를 실현하려면, 행사장 일부 구역에서는 취사를 가능하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정(friendship):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참가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 어린 행사가 되자는 의지. 이건 참 어려운 일이다. 물론 3일 내내 캠핑을 한다면 친구를 많이 사귈 수도 있겠지만,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라면 딱히 친구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 행사장 안에서 지나칠 때 서로 웃어주거나, 피스 마크를 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등의 작은 움직임도 우정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트위터를 통해서 혼자 가는 사람 있으면 행사장에서 만나자는 글을 보기도 했지만, 난 혼자 즐기는 게 좋아서 계속 혼자였다. 우정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모로 방법을 강구해보면 뭔가 나올 테다. 


     

















    “그래도 역시, 갔다 오니 힘이 솟지?”

    친구의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 가본 결과, 두통과 몸살이 싹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몸살이 다시 생겼지만, 최소한 한나절 내내 아픈 것 잊고 방방 뛸 수 있는 아드레날린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도 이제 늙었나 봐, 이제 소리치고 뛰는 건 힘들어서 못 하겠더라.”

    뛰는 것도 뛰는 거지만,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과 싸우느라 다리가 마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것처럼 후들거렸다. 아아, 이제 진정 나도 나이를 먹은 것인가 하며 쓸쓸해 할 때,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말 했다.

    “그러니까 더 가야지. 가서 뜨거운 기운을 온 몸으로 흡수해서 젊음을 유지해야지.”

    오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또 어린애들 속에서 함께 몸 부딪히며 뛰어 보겠나(라지만, 사실 난 대학 축제 때도 슬쩍 가서 함께 논다). 그래서 나는 크게 기뻐하며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연속해서 삼 일 동안 내내 행사장을 찾아가서 즐겁게 즐겁게 혼자 놀았다는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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