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하기 좋은 장소 - 인천공항 혼자놀기국내여행/경기도 2012. 3. 11. 16:59
인터넷 세상에는 참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이트들이 많다. 그 중에서 공항과 관련된 재미있는 사이트로 '슬리핑 에어포트 (http://www.sleepinginairports.net)'라는 사이트가 있다. 정식 명칭은 '더 가이드 투 슬리핑 인 에어포츠'. 공항에서 잠을 자기 위한 가이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사이트는 가끔 한 번씩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는데, 주로 '세계에서 가장 노숙하기 좋은 공항'을 선정할 때이다. 매년 세계 어느 공항이 노숙하기 좋은지, 혹은 좋지 않은지를 선정해서, 베스트(best) 열 개과 워스트(worst) 열 개를 선정한다. 그래서 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순위가 발표될 때면, 언론들이 재밋거리로 한 번씩 이 사이트를 인용해서 순위를 소개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더 각별한(?) 이유로 거의 매년 이 사이트에서 발표한 베스트 순위를 소개하는데, 바로 '인천국제공항' 때문이다.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인천국제공항이 규모도 규모지만, 꽤 짜임새 있게 잘 되어있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데,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모두 대체로 동의하는 듯 하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은 '자기 좋은 공항' 순위에 거의 매년 탑 텐(Top 10) 안에 들어간다.
작년(2011) 순위에서도 인천국제공항은 베스트 3위로 등록됐다. 그 전까지는 주로 2위였는데, 이번엔 홍콩 공항에 2위를 빼앗겼다. 이 사이트에서 밝히기를, 홍콩과 인천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홍콩 쪽이 좀 더 이용할 수 있는 시설물들이 많아서 이번엔 2위로 선정했다 한다.
1위는 싱가폴 창이공항이 차지했는데, 사실 내 경우는 이 사이트의 순위 결정에 조금 불만이 있다. 왜냐하면 창이공항 같은 경우는 '유료'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물들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시설물들이 많다는 이유로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나같은 가난뱅이 여행자인 경우라면, 1위라는 명성을 듣고 찾아가봤자 별로 사용할 것 없는 시설들에 크게 실망할 수 밖에 없는 곳인데 말이다.
하긴 뭐, 세상 어디를 가도 돈 없으면 비슷한 처지이니, 딱히 순위 선정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도 없긴 하다. 그저 베스트 10 안에 들어있는 공항은 어느정도 편의시설들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모두 다 노숙하기 괜찮은 곳이라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 (http://www.sleepinginairports.net/bestof.htm).
공항에서 혼자놀기
어느 햇살 맑은 불타는 금요일 오후, 월드 베스트 3위의 공항에 한 번 가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여행을 떠날 때 수없이 많이 들렀던 곳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니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출발 할 때는 시간 맞춰 가면 되고, 도착했을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가면 됐기 때문이다.
그건 일부러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나, 밤 늦에 도착하는 비행편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여태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살다보면 어느날,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공항에서 밤샘을 해야 할 때도 있을 테고, 어쩔 수 없이 자정 넘어 공항에 도착해서는 비싼 버스 타기가 꺼려질 때도 있을 테니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세계 3위의 자기 좋은 공항이란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저 스쳐 지나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이 자기 좋다고 전 세계인의 입소문을 타고 있으니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는 여행병의 발병. 하지만 돈도 없고, 돈도 없고, 돈도 없고.
그래서 공항이라도 나가서 여행 느낌이나 한 번 맛보자는 생각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나름 '공항에서 혼자놀기' 코스의 개발. 체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관광코스로 개발해서 내가 직접 가이드를 해보자라는 정말 즐겁고도 처절한 발상의 전환. 혹시 모르지, 여행업계에 일대 파란을 불러 일으킬지도. 혁명은 종종 몇몇 사람들의 미친 짓에서 발화되기도 하니까. 어쨌든 거창한 이유는 접고, 일단 무조건 공항으로 고고씽이다.
티켓 없이 인천국제공항으로!
공항은 역시 공항버스를 타고 가는게 좋다. 그래야 싸늘한 도심의 밤거리를 바라보며, 건널목에 서 있는 사람들과,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에게, '나 여행 간다'라며 빠빠이 손 흔들어 줄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점점 공항에 가까워짐을 느끼면,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여행 떠나는 느낌도 확실히 든다. 그러다가 공항에 딱 내리면 마치, 공간을 가로질러 순간이동을 한 느낌도 나고, 이미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지만 비싸다. 아무리 공항버스에 예쁜 스튜어디스들이 탑승한다 하더라도, 비싼건 비싼 거다. 더군다나 비행기표도 없이 가는 '공항놀이'인데, 그 비싼 요금을 내고 간다는 건 정말 부르주아 짓이다. 안 돼, 안 돼, 그 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어. 그리고 전철 타고 공항 가면, 따뜻한 배를 움켜 쥐고 덜컹대는 전차 안에서 토실토실 곤한 잠을 이룰 수도 있을 테야.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건데, 어둠이 내린 바닷길을 전철 창 밖으로 바라보고 있으려니 좀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저걸 보면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새까만 어둠과 미지의 세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이러면 여행지에 대한 불안함과 공포감을 좀 더 높여줘서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반짝이는 불빛 가득한 시내에 딱 들어서면, '아, 여기도 사람이 사는구나'하며 기쁨과 안도의 희열, 카타르시스! 아아, 그렇게 의도한 건가, 모두 다 치밀히 계획된 여행자들을 위한 감정 고조 코스였던 건가,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 공항가는 긴 시간동안 별로 할 게 없었다.
지하철 역과 인천공항을 잇는 휘황찬란한 지하통로를 지나서 공항 건물 안에 딱 도착하니, '빨리 달려가서 티켓을 발권해야잖아'라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아 나는 선택받지 못 한 자였지'라는 현실감각이 돌아오면서, 캐리어 바퀴를 업겁년의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굴리며 타닥타닥 걸어가는 저 여행자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아냐아냐, 나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온 거야. 내가 탈 비행편은 '탈선 행, 비행청장년727기'. 리스트에는 나오지 않는 특별편이지. 은하철도가 업그레이드 한 건데, 정말정말 선택받은 자들만 탑승하는 거야. 한 가지 문제는, 올지 안 올지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기다려보기로 해. 이 불타는 금요일을 술 퍼 마시며 보내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영종도의 맑은 공기와 공항 주변을 감도는 기운을 온 몸에 불어넣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아직 추운 날씨. 여름이라도 바깥에서 노숙을 하기는 좀 무리겠지? 사람도 왔다갔다하고, 차량들 배기가스도 철철 넘쳐 흐르고. 그래, 공항 바깥은 실내가 답답할 때 잠깐 나와서 경치를 구경하는 테라스로 생각하자.
1층 도착층, 부적합
일단 지하에서 올라가 1층 도착층을 둘러봤다. 공항 안내 팜플렛을 꺼내서 펴 보았지만, '노숙하기 좋은 장소' 소개 따위는 역시 없었다.
천천히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가봤다. 1층은 도착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이 나오는 곳이라,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체로 입국장 근처에 몰려 있다는 것이 특징.
그리고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인지, 밤 늦게까지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심야족들은 낮에 하지 못하는 일광욕을 할 수 있을 정도. 그래서 기분 탓인지, 다른 곳들보다 더 온도가 높은 느낌이다.
1층에 배치된 자리들은 대체로 긴 벤치 형태의 의자들이다. 자다가 굴러 떨어지기 딱 좋은 형태. 그 주위로 공중전화와 동전을 넣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PC, 그리고 TV 등이 배치된 형태. 물론 그런 시설들이 없는 곳도 있지만, 그런 곳은 뻥 뚫린 공간이라 무방비로 사자에게 잡아먹힐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1층을 쭉 둘러본 결과, 이곳은 노숙하기 적합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새벽이 돼도 도착하는 비행편들이 많아서,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몰려 나온다는 점, TV 소리가 꽤 커서 신경이 거슬린다는 점, 그리고 조명도 밝고, 뻥 뚫린 공간이라는 점 등이 거슬렸다. 그러니 여기는 그냥 TV를 볼 수 있는 거실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그 와중에도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곳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도착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며 일찍부터 나와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가방 같은 것도 없고, 딱히 잠을 청하는 것도 아닌, 그저 좀 편하게 기다리려는 마음에 누워 있는 사람들로 보였으니까. 여긴 최소한 떠나려는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2층은 인터넷 라운지 말고는 별 게 없다
2층은 전체적으로 통로같이 생겼다. 1층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양쪽 벽면으로 통로가 나 있는 형태다. 주로 항공사, 여행사 등의 사무실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딱히 별다른 편의시설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편한 의자 같은 것도 거의 없다.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는 '인터넷 라운지'가 가장 쓰임새 있는 시설물인데, 여기서는 500원으로 무려 10분 동안 인터넷을 할 수 있다. 딱히 피씨방을 지키는 알바 같은 사람은 없기 때문에, 멍하니 모니터를 보며 상상의 인터넷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고 인터넷 캠코더로 나체 쇼는 하지 말자, 알고보면 CCTV로 모두 모니터링 하고 있다.
인터넷 라운지 바로 옆에는 카페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바(?)가 있다. 원래는 카페에서 음료를 산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밤에는 카페가 문을 닫기 때문에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설물이라고는 의자와 책상 뿐이고, 카페가 문을 닫으면 콘센트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듯 하니,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다. 만약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면, 심야에 여기에 앉아서 조용히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인터넷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공항 전체에 'Airport Free WiFi'라는 이름의 무료 무선인터넷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선인터넷이 되는 PC만 들고 가면, 공항 내에서는 얼마든지 인터넷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충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건물 여기저기 벽면에 설치된 콘센트로 충분히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난한 벤처기업의 워크샵 장소로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밤샘 PT를 하고 나서 공항 주차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든지. 공항에서 서울역까지 걸어가기 행군을 하든지. 발상에 따라 얼마든지 익사이팅 한 워크샵을 만들 수 있다. 워크샵에 드는 비싼 비용은 모두 현금으로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지급하면 금상첨화.
그러니까 결론은, 2층은 영 노숙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로 2층에는 약간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는데, 2층 서쪽 끝이나, 동쪽 끝으로 쭉 가면 거기서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나온다. 좀 무서운 분위기의 통로인데, 거기로 내려가면 구내식당이 나온다. 인천공항에서 싼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 밤 늦은 시간에는 문을 여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해 떠 있는 시간대라면 한 번 이용해 볼 만 하다. 예전에는 일반인도 출입 가능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텅 빈 부스들을 내려다보며, 3층으로 올라가봤다. 올라가는 길에 보니까, 유리 닦는 작업 하는 분들도 보였다. 이 때가 밤 11시가 좀 넘어선 시간이었는데 (사실 공항에서 밥 먹고, 책 읽고 뒹굴뒹굴 했음), 이 시간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공항 내부는 물론이고 바깥쪽도 청소를 했는데, 대략 새벽 1시 까지는 좀 소란스러웠다.
3층, 본격적인 여행의 출발지
드디어 3층. 3층은 출발층으로, 말 그대로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니 뭔가 마음이 짠하지 않은가? 방 안에서 글을 읽으면 무덤덤하겠지만, 막상 밤에 여길 가보면 마음 속에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감기는 눈꺼풀을 이길 수는 없다. 이제 정말 잠깐이라도 잠을 청해야 할 시간.
3층을 가보니 '아, 여기가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구나'라는 느낌이 딱 들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밤샘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꽤 많다고는 하지만, 이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때문에, 어느 곳은 통째로 한 공간이 텅 비어있기도 하다.
한 구역은 텅 비어있고, 또 다른 구역에는 사람들이 몰려서 잠을 이루고 있기도 해서, 어디가 새벽에 출발 수속을 밟은 곳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공간을 잘 피해가면 조금이라도 덜 소란스럽게 잠을 청할 수 있을 테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노숙하기 좋은 장소
3층에서 '노숙하기 좋은 장소'로 가장 만만한 곳은, 동쪽 끝과 서쪽 끝이다.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서, 시각적으로는 추운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공항 내부는 어디서나 난방이 잘 되고 있었다. 오히려 중간 쯤은 더운 느낌도 있을 정도인데, 이 미묘한 온도차이는 개개인별로 선호도가 다를 테니, 각자 적당한 곳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3층 양 끝쪽은 '만남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동쪽 끝과 서쪽 끝이 서로 차이가 있다. 동쪽 끝은 국내선 출발 통로 바로 앞에 의자들이 놓여 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국내선을 탑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밤샘을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사람들이 크게 소란스럽지는 않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만 그런건지, 아니면 매일밤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청소하는 아저씨가 전기 청소 자동차(?)를 타고 여기서 심야의 드리프트를 즐기며 꽤 오랜시간 웽웽거렸기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쪽에는 여러가지 기계들이 놓여 있고, 청소장비들도 두고 하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시끄러울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참고로 동쪽 끝이든, 서쪽 끝이든, 창가 쪽에는 여행사 미팅이나 각종 서류 필기 등을 할 수 있는 테이블들이 쭉 놓여져 있는데, 야간에는 여기서 공부하기 딱 좋다. 오히려 도서관보다 더 조용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 테이블들에는 의자가 없다는 것 정도. 서 있으면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일석이조라 생각하면 좋고.
서쪽 끝은 VIP룸을 앞에 두고 의자들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동쪽 끝과 비슷하다. 그런데 서쪽 끝은 동쪽보다 밝은 편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어두운 곳이 좋다면 국내선 출구가 있는 동쪽 끝으로 가는 것이 좋다.
서쪽 끝의 만남의 장소는, 심야에는 아주 조용한 편이다. 새벽 2시 반 즘의 비행편을 마지막으로, 7시 정도까지는 출발하는 비행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중간 시간에 아주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새벽 5시 정도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서 소란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이쪽은 주로 해외로 나가는 단체 단위 사람들이 가이드와 첫 만남을 가지는 곳이라, 새벽부터 출발을 앞두고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다른 곳보다 일찍부터 시끄러워지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동쪽 끝, 서쪽 끝, 모두 좀 애매한 상황인데, 어떤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둘 다 아니다. 둘 다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 때문에, 일찍부터 시끄러워지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끄트머리 쪽은 공간도 꽤 넓기 때문에, 심야에 이상한 놈들이 와서는 술래잡기도 하더라. 진짜다, 서쪽 끝에 잠시 누워 있었는데, 이상한 애들 셋이 와서는 막 나 잡아봐라 하며 뛰어 다니고 난리였다. 아 정말 나는 어딜 가도 꼭 이런 상황이 펼쳐지지.
정밀 관찰
그래서 세밀한 관찰과 엄격한 심사와 정밀한 판단으로 자기 좋다고 결정 내린 곳은, 바로 동쪽 끝에 가까운 B와 A 사이의 공간이다. 그 중 B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리가 조금이라도 편히 잠을 청하기 좋은 곳이었다.
이쪽은 일단 동쪽 끝에 가까운 곳이라 조명이 어두운 편이다. 그리고 앞쪽에 출국장 같은 것이 없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다는 점, 의자들이 B의 벽면에 바짝 붙어 있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 등이 특징이다.
물론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어느 정도 소란스러움은 어디서든 감수해야 하고, 그 중에서 그나마 나은 곳이라는 의미일 뿐이다. 도저히 피곤해서 못 견디겠고, 노숙이 불가능하겠다 싶다면 지하 1층의 찜질방으로 가기 바란다. 가격이 15,000원인가 2만 원인가 해서, 나같은 가난뱅이 여행자라면 엄두도 못 내지만.
만약 이 공간에 이미 누군가 있다거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차선책으로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은 곳은, 바로 출입구 쪽 벽면에 설치된 자리들이다. 버스가 나다니는 그 입구 쪽 벽쪽에 설치된 의자들 말이다.
여기는 일단 출입구가 위치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고, 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란스럽고 눈에 잘 띄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게 함정이다. 의외로 이쪽 자리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해보라, 여행 가려고 공항에 딱 들어서서 출입구 양쪽에 있는 의자들을 살펴보는가?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흘긋거리며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공항 내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출입구 양쪽에 위치한 자리들의 가장 큰 장점은, 항공사들 부스가 근처에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딱히 사람들이 몰릴 이유가 없다. 그저 공항에서 쉬고 싶은 사람들만 이쪽 자리에 올 뿐이다. 비행기에 탑승할 사람들은 굳이 이쪽에 않을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 다른 자리들보다 여행객들의 수다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이 편할 수 있다.
아까 언급했던 B와 A 사이의 공간도, 사실은 항공사들 부스 사이의 공간이다. 항공사 부스는 발권하고 짐 부치고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몰려든 사람들 수다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치밀한 계획과 작전으로, 늦은 시간동안 문을 열지 않는 공간을 잘 선택한다면 그곳이 명당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딱히 이것저것 생각하기 싫은 사람이라면, 차라리 출입구 쪽 자리를 권하겠다. 물론 그쪽에서 노숙을 한다해서 총 들고 다니는 보안요원들이 잡아가지 않는다.
(▲ B-A 사이의 공간)
'인천공항 노숙하기' 같은 검색어로 검색을 해 보면 4층에 좋은 곳들이 있다는 정보들이 있는데, 이 정보들은 사실 무용지물이다. 4층은 밤 10시부터 새벽 5시 반까지 문을 닫기 때문이다. 물론 새벽 5시 반에 알람을 맞춰 놓고, 딱 올라가서 편한 자리를 차지하고 못다 이룬 잠을 계속 청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성가신 일이다.
어차피 공항에서 평생 살 터미널 맨도 아니니, 적당한 곳에 터를 닦고 자리를 잡도록 하자. 딱히 담요나 이불같은 건 필요 없다. 난방이 꽤 잘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앉는 자리로 이용되는, 등받침이 있는 저 의자는 세계인들의 극찬을 받은 의자다. 왜 그런지는 딱 가서 누워보면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산하고 의도해서 만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반인들의 키에 딱 맞는 길이. 그리고 중간에 팔걸이가 없어서 눕기에도 딱 좋고, 앞쪽이 살짝 들려 있어서 굴러 떨어질 우려도 적다. 등받침은 적당히 바깥 세상과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급할 때 자기 머리만 쏙 숨겨서는 '쟤들도 나를 못 보겠지'하는 타조처럼 위안을 느낄 수 있으며, 바닥도 완전히 딱딱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탄력도 있다.
물론 다른 어떤 공항 의자는 푹신한 시트가 깔려 있어서 더욱 쾌적한 잠을 청할 수도 있다지만, 이 정도로도 몇 시간 자기는 충분하다.
자, 이제 잠을 청해보자. 아아 공항에서 잠을 청하니, 마치 여행 온 것처럼 기분이 또 묘하네. 공항 내부만 덜렁덜렁 둘러보며 다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사막 사파리 중에 캠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 뭐, 경험이란 다양하게 많으면 좋은 거지, 하며 아름다운 금요일 밤을 이렇게 보냈다. 참 즐거운 금요일.
인천공항 4층의 황금베개
대략 4시간 정도 잠을 잤다. 내 경우는 서쪽 맨 끝쪽에서 잠을 청했는데, 역시나 새벽 이른 시각부터 단체 여행객들이 몰려서 시끄럽게 떠들어 댔기 때문에 일찍 깰 수 밖에 없었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는 글러먹은 내 특성상, 잠을 깨서도 멍하니 일어나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하고 4층으로 올라가봤다. 아아, 4층에는 '슬리핑 에어포트' 사이트에서 '황금베개 상'을 받은, 그 유명한 삼발이 의자가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저 세 개의 반원형 의자는, 쟁탈전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편한 자리다. 사실 의자가 별로 푹신하지는 않은데, 편히 누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4층에 총 두 개가 있어서, 대략 여섯 명 정도의 선택된 자들만 이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만약 잠이 모자란다면 새벽에 일어나 이 자리를 점령해보자. 3층의 그 부산스러운 분위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출국하지 않아도 활주로를 볼 수 있는, 공항 전망대
4층 안쪽으로 가보면 카페가 하나 있는데, 이 카페는 '공항 전망대'로 유명한 곳이다. 공항에 구경나온 사람들이나, 공항에서 시간이 좀 많이 남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일부러 사진 찍으러 가기도 하는 곳이다. 출국 수속을 밟지 않더라도 공항 활주로 쪽 전경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카페에는 거의 침대와 비슷한 소파들이 마련되어 있는데, 종업원들의 눈치 때문에 누워 자기는 좀 무리다. 푹신한 소파에 눕듯이 몸을 기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는 꽤 좋은 곳이다. 하지만 한가지 아주 큰 단점이 있는데,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만 문을 연다는 것. 따라서 여기는 정말 휴식의 공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카페 안쪽 말고도, 카페 앞쪽이나, 베니건스 앞쪽에도 편안한 의자들이 있어서, 출발 전에 편히 쉬는 용도로 이용하기 좋다. 하지만 베니건스 앞쪽은 밥 먹는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식사시간에는 편히 쉴 수 없다.
4층은 공항 전체적으로 봐서는 다소 공간이 작은 편인데, 그래도 공항에 놀러간 사람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공간이다. 여기서는 항공기 티켓이 없더라도, 출국층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고, 비행기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국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여행의 투지를 불태울 사람들이라면 필수코스다. 가만 보고 있으면 '에라, 나도!'하며 당장 뛰어 내려가서 티켓을 사 버릴 위험도 함께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에서 저렴하게 밥을 먹으려면
4층엔 사실 각종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그래서 이 근처 어디에 앉아 있든, 언제나 맛있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그 냄새에 현혹되어 아무 식당이나 들아가서 주문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공항 물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공항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지하 1층의 푸드코트를 이용해보자. 지하1층, 공항열차 타러 가는 통로가 있는 쪽에 가보면, 온에어(on air)라는 이름의 식당들 몇 개가 쭉 있다. 한식을 비롯해서 일식, 양식 등등 많은 음식들을 파는데, 사실 여기도 시내에 비하면 비싸기는 마찬가지다. 비빔밥, 돈까스 등이 8~9천 원 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식당들 중에 분식집이 하나 있는데, 여긴 정말 공항에서 싸게 한 끼 떼울 수 있는 곳으로 좋다. 가격도 공항 물가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기 때문이다.
김밥이 3천 원으로 좀 비싼 편인데, 흔히 파는 김밥에 비하면 좀 두툼하게 나오기 때문에 대략 이해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일단 여행을 마치고 수고했다고 나도 여기서 김밥에 라면 하나 먹었더니, 6500원 나왔다. 좀 참을 걸 그랬나.
돌아가시기
이제 공항에서 혼자놀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실 아침 8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이미 공항은 한낮을 맞이한 듯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분주했다. 심지어 각종 식당들도 마치 지금이 점심시간이나 된 양 떠들석하게 붐볐다. 아침 챙겨 먹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정말 몰랐다. 세상에, 나만 아침을 안 먹는 모양이구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한 가지 팁을 알려주자면, 지하 1층에서 공항철도 타러가는 통로 중간의 의자들도 한 번 염두에 둬 보라는 것. 공간이 좁고, 의자가 별로 없어서 약간 불안할 수도 있는데,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야간에는 여기도 이용하기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처음 공항 들어갈 때부터 눈여겨 봐 두긴 했지만, 명색이 공항에서 노는 것이니 여기에 머물 수 없다는 고집으로 과감히 포기했던 곳이다.
이렇게해서 여행을 빙자한 공항에서 노숙하기가 끝났다. 이제 평생 처음 와 보는 한국에 도착했으니, 시내로 나가서 한국이 어떤 곳인지 돌아다녀보자. 다른 외국인들은 이 낯선 대륙의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나라에 도착해서, 이 모습들이 어떻게 보였는지 한 번 느껴봐야지.
공항여행을 끝내며
공항은 여행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그래서 공항에 가면 비로소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나기도 하고, 또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공항에 서는 순간 이제 돌아왔다는 느낌을 확실히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공간이라, 그곳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을 시작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돈이나 시간, 혹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이유 등으로 여행을 떠날 형편은 되지 않는데 온 몸이 떠나고 싶어 미치겠다를 외칠 때, 쓸 데 없다 생각하지 말고 한 번 공항에 가서 앉아있어 보자. 많이는 아니겠지만, 한 2% 정도 감성을 충족시킬 수도 있다.
혹시 또 모르지, 나가서 앉아있다보면 '아, 내 고민들이 모두 한낱 부질없는 먼지에 불과하구나'를 깨닫고 바로 비행기 표 한 장 사서 훌쩍 떠날 수 있을런지도. 그러니까 공항에 나갈 때는 항상 준비된 마음으로, 여권과 신용카드를 가지고 나가보자. 혹시 모르지, '나와 함께 떠나주오'라며 손을 내미는 하얀 비행기의 연인이 생길 지도.
'국내여행 > 경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케아 탐험기, 소품 위주 - 1 (0) 2016.01.18 가평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6) 2014.10.04 인천에 음악의 회오리가 몰아친다 - 펜타포트 프린지 페스티벌 (3) 2011.07.25 여행자와 소통하는 삶의 기록들 - 인천 배다리 벽화골목 (2) 2011.07.18 모든 책은 헌책이다 -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3) 2011.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