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곰보(Negombo)는 스리랑카의 작은 휴양도시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라 표현하는 게 나을 정도지만, 그래도 시내 쪽으로 가면 제법 소도시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스리랑카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반다라나이케 (Bandaranaike) 국제공항'에서 약 7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스리랑카에 처음 발을 딛거나 마지막 여정으로 출국 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좋다.

'반다라나이케(Bandaranaike) 국제공항'은 주로 '콜롬보(Colombo) 국제공항'으로 불리는데, 그건 콜롬보라는 도시가 스리랑카에서 꽤 유명하면서도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 공항에서 남쪽으로 35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콜롬보가 위치해 있는데, 콜롬보는 스리랑카의 옛 수도이지만 아직도 대통령과 총리 관저, 중앙은행 등 주요 기관이 위치해 있어서, 수도와 똑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스리랑카의 수도를 콜롬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1985년 이후부터 스리랑카의 공식 수도는 '스리자야와르데네푸라코테(Sri Jayewardenepura Kotte)'라는 곳으로, 콜롬보 남동쪽으로 약 15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소도시이다. 보통 줄여서 '코테(Kotte)'라고 부르는 이 도시는, 수도라고는 하지만 거의 유명무실한 곳이라 그다지 주목받지도 못하고, 굳이 찾아가 보려는 여행자도 거의 없다.




육감적 여행

사실 남인도 여행을 하다가 갑자기 '스리랑카도 가까운데 한 번 가 볼까'하고 겁도 없이 덜컥 떠나버린 상황이라서, 계획이고 뭐고 전혀 없었다. 심지어 '겨우 한 열흘 있을건데'라는 생각으로 가이드북도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은 상황이어서,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위태로운 여행을 예약한 둔 상태로 떡하니 공항에 발을 내디뎠다.

스리랑카에 도착하기 전에 인도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정보라고는, 공항 바깥 맨 끝쪽으로 가면 버스 터미널까지 가는 공짜 셔틀버스가 있다는 것과, '시기리아'가 볼 만 하다는 것 정도였다. 도무지 인도의 인터넷 속도로는 많은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고, 정보를 얻어서 공책에 필기를 하기도 귀찮았다. 무엇이 두려울 소냐, 게으른 여행자는 손발만 고생하면 될 뿐인데! 









공항에 딱 도착하자마자 스리랑카 광광청 부스에서 얻은 여행지도와 관광책자를 보니, 공항에서 니곰보라는 곳이 가깝기도 했고, 또 휴양지로 유명하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7 킬로미터 정도면, 일이 꼬여서 제대로 풀리지 않아도, 두 시간 정도만 걸어서 가면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선택한 목적지였다. 일단 대도시는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런 육감적 선택은 옳은 결정이었다. 알고보니 니곰보는 콜롬보에 거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도 휴양지로 많이 찾는 곳이고, 외국인들도 꽤 많이 찾아가는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동네가 조그맣고, 그리 크게 즐길만 한 것이 없는, 말 그대로 조용히 휴식하는 휴양지이기 때문에, 비수기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고즈넉한 곳이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을 뜻이냐면,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 비수기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기 때문에 조용하기까지 해서, 여행자로써 어느 정도 편의성은 보장돼 있으면서도 사람에게 치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살짝 고급 휴양지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물가가 좀 높다는 것이 약간 흠이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서든 어떻게 생활하냐에 따른 것이니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고난(?)이다.
 









니곰보(Negombo)

공항에서 가까운 버스터미널에서 니곰보 행 버스를 타면 바닷가로 쭉 펼쳐진 아스팔트 길을 달리는데, 손을 뻗으면 곧 닿을듯 한 가까운 곳에 바다를 두고 눈부신 햇살을 온 몸으로 맞으며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가니, 이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드문드문 서 있는 야자수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띄엄띄엄 비치며 따라오고, 그 아래로 끝없이 부숴지는 하얀 파도까지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지그시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어느새 꾸벅꾸벅 선잠에 빠져들 무렵, 소리만 요란하고 속도는 전혀 나오지 않는 고물 버스는 어느 황량한 벌판에 들어서서 사람들을 내려줬다. 니곰보 버스 스테이션. 거의 니곰보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행자 거리로 가기 전에 이것저것 구경하고 필요한 것 사고, 환전도 하면서 슬금슬금 둘러보기 좋은 위치다.

사실 처음 그 황량한 주차장에 딱 내렸을 때는 참 많이 당황했다. 스리랑카 관광청 부스에서 가져온 안내책자에는 딱 여행자거리 근처만 지도에 나올 뿐, 버스 터미널에서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는 전혀 안 나왔기 때문이다.

뒷장에 아주 친절하게, 호텔 리스트와 함께, 호텔에 전화하면 픽업 해 준다는 광고문구가 나와있긴 했지만, 가난뱅이에게 무슨 호텔 픽업 서비스란 말인가.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싼 숙소를 찾아서 길거리를 헤매어 다녀야 할 팔자인데.




어쨌든 낯 선 곳에선 일단 침착해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포기하면 마음은 편하다지 않는가. 일단 터미널 구석구석을 매의 눈으로 찬찬히 둘러보면서, 여차할 경우 노숙할 수 있을만 한 곳을 점찍어 뒀다. 그리고 슬슬 밖으로 나와서 일단 환전할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공항에서 환전하면 손해를 많이 본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나도 이때, 공항에서는 단돈 1달러만 환전한 상태였다. 니곰보까지 가는 버스비만 있으면 되니까. 설마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는데 환전할 만 한 곳 하나 없겠나 하면서.

아시아 쪽은 보통 '주얼리 샵 (보석가게)'에 가면 환전을 할 수 있다. 불법도 있고 합법도 있는데, 그건 분위기 봐서 그때그때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 일반론을 펼치기 힘든다. 다만 보석가게 환율이 은행 환율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일반적이다.



사람들에게 '주얼리 샵'을 물어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큰 규모의 보석가게까지 걸어갔다. 다행히도 버스 터미널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번화가가 있어서 그리 많이 걷지는 않았다. 만약 이 방법의 여의치 않다면 여행자 거리로 가서 '환전소 (money exchange)'를 물어볼 생각이었다. 뭐든 하나는 나오겠지. 그것도 안 된다면 그 때는 울며 겨자먹기로 호텔에 가서 환전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은행은 문 닫은 시간이었으니까. 뭐 어쨌든 돈 있으면 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어떻게든 쓸 방법은 다 있으니까.

그래서 결론은, 공항에서는 1달러에 113.140루피였는데, 니곰보 시내 주얼리 샵에서는 1달러에 114루피 조금 넘었다는 것. 1달러에 1루피씩 차이가 나니까, 꽤 큰 차이다. 1.5리터짜리 물 한 통이 60루피 쯤 했으니까.










루이스 플래이스(Lewis Place)

여행자거리를 찾아가는 건 쉬운 편이었다. '루이스 플래이스(Lewis Place)'라고 불리는 거리를 물어물어 찾아가면 됐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이 나름 지름길을 알려줬기 때문에, '이 방향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어서 중간에는 무조건 '해변(beach)'으로 가는 길을 물어서 갔지만, 그래도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갔다. 사실 이 동네는 길이라는 것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대략 차들이 다니는 큰 길만 잘 따라가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여행자거리는, 시내에서 대략 3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한낮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걷기가 좀 힘든다. 그래서 툭툭(삼륜차)의 유혹에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이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처음 한두번 정도는 걸어서 동네구경을 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다. 동네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생활모습 등을 쭉 가늠해볼 수 있으니까.



길을 따라 걷다보니 니곰보의 명물이라 일컬어지는 운하 위에 놓여진 다리도 건넜다. 니곰보는 총 길이가 100 킬로미터에 달하는 운하가 유명하다. 폭은 작은 고깃배 배 세 척 정도가 나란히 놓여지면 꽉 찰 정도인데, 예전에는 운하를 따라 각종 물자들을 운반하는 용도로 쓰였다지만, 지금은 거의 관광객들의 물놀이용으로 쓰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내가 지나가니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배 타라고 호객을 했지만, 그런 유혹에 넘어갈 내가 아니다. 물가를 보니 꽤 높은 편인데, 거기다 배를 타서 바가지까지 쓰게 되면 가산을 탕진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쉽사리 응할 수 없었다.


 

다리를 건너고 심심한 동네 골목길을 지나서, 니곰보에서 꽤 오래됐다는 세인트 세바스티앙 교회(St. Sebastian's Church)를 지나면, 비로소 해변으로 통하는 골목길들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어둡게 그늘진 골목길 너머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이, 여기저기 무심히 피어 있는 꽃들과 어울리니 한낮의 꿈처럼 아련한 손짓이었다. 차라리 백사장 위에 서는 것보다, 골목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더욱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느낌. 마치 여인의 치마처럼 살짝살짝 보일 때가 섹시한 풍경, 막상 모든걸 들춰보면 별 것 없지만.











프라이빗 하우스

해변에서 나른한 오후는 일단 조금 뒤로 미루고, 우선 숙소부터 찾아봤다. 여행자거리라고는 하지만 규모가 그리 크진 않기 때문에,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십 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심코 아이스 베어(Ice Bear)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유럽인들을 위한 중급 호스텔 정도의 숙박시설이라 가격이 정말 엄청났다.


에어컨도 없는 싱글룸을, 비수기라고 깎아서 20 유로 받겠다니. '바이바이' 외치고 나오려니까, 갑자기 옆집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옆집은 간판도 붙어있지 않아서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길쪽으로 나 있는 문은 쇠사슬과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고, 게스트하우스 안쪽의 작은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집을 소개해 주면서도 계속해서 '여기는 프라이빗(private) 하우스다'라고 강조하는 걸 보니, 정식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을 살짝 개조해서 손님을 받는 모양이었다. 안마당으로 들어가니 고등학생 쯤 돼 보이는 소녀가 노란 팬티, 하얀 팬티 빨래를 널다가 살짝 부끄러워 했고, 안으로 들어가니 1층은 영락없이 일반 가정집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손님용 방이 몇 개 있었는데, 에어컨 룸이 하룻밤에 2,000 루피. 한국 돈으로 대략 2만 원 정도였다. 휴양도시라는 상황과 깔끔한 시설을 보니 적당하다 싶기도 했지만, 사실 이 나라 물가로 따지면 그리 싸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것도 비수기라서 깎아준 가격이라고 하니까 더욱 그랬다. 

그런데 테라스의 커튼을 열어보니 지붕과 나무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가 환하게 반겨 줬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여태까지 길을 걸으며 맞았던 그 따가운 것이 아니라, 한풀 꺾여진 부드럽고도 따사한 분위기가 마치 이슬비 같았는데, 그 여린 빛에 이끌려서 덜컥 오케이하고 말았다. 뭐 어때, 이성의 끝에서 잠깐은 꿈을 꾸는 시간도 괜찮잖아. 그래서 스리랑카 첫날의 반나절은 일단 그 테라스 앞 부드러운 햇살 아래서 정리를 했다.










p.s.
니곰보 물가를 가늠하기 위한 대략의 정보 (2009년 기준).
- 1 달러(USD) = 114 루피(LKR).
- 공항 버스터미널에서 니곰보까지 버스비 50 R(루피).
- 코카콜라 작은 패트병 하나 80 R.
- 시내 현지인 식당에서 볶음밥(egg)과 포도소다, 200 R.
- 1.5리터 콜라 + 1.5리터 물, 210 R.
- 툭툭으로 2 킬로미터 정도 갔을 때 가격, 200 R.
(니곰보는 스리랑카에서도 물가가 다소 높은 편)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