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약 1,000년간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곳으로, 수많은 고대유적들이 옛부터 불교국가였던 스리랑카의 역사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대도시다. 

사실은 니곰보에서 스리랑카의 볼거리를 찾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일단 아누라다푸라는 무조건 한 번 가봐야 한다는 말들이 많아서 가봤다. 아마도 지구상 어느나라에서나 자신들의 역사는 소중하고, 또 스리랑카에서 종교적 메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관광객들도 많이 가는 곳이니까 다들 입을 모아 추천하지 않았나 싶다.







아누라다푸라 (Anuradhapura, Sri Lanka)


하지만 아누라다푸라는 첫 시작부터 좀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처음부터 유적지가 즐비하게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버스 타고 들어가면서 약간 모습이 보인다거나, 고대도시 같은 어떤 분위기가 감돌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버스가 정차한 곳은 휑뎅그레한 쓸쓸한 바람만 감도는 넓고도 어두컴컴한 버스터미널의 지하 주차장이었고, 밖으로 나가보니 다소 번화한 도시에 많은 사람들이 오갈 뿐, 고대도시 같은 느낌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무래도 버스 터미널 같은 것은 일상 생활과 가까운 곳에 있기 마련이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은 유적지와는 좀 떨어진 곳일 테니까. 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바닷가 휴양마을에서 온 내게, 이렇게 사람이 벅적거리는 곳은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딱 좋았다.



처음부터 그런 인상으로 잘못된 단추를 끼워서 그럴까, 그 후에도 아누라다푸라에서 그리 좋은 기억은 남지 않았다. 내가 내린 곳은 뉴 버스 스탠드(new bus stand)라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물어서 올드 버스 스탠드(old bus stand)로 옮겨갔는데, 그 이후 이 동네는 두 번 다시 올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유적지 사이로는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서 툭툭을 타는 수 밖에 없었는데, 큰 관광지에다가 교통이 불편한 점을 이용해서 툭툭 기사들이 터무니 없는 바가지 요금을 요구한 탓에, 툭툭 기사들과 싸운 기억밖엔 남지 않았다.


그래서 스리랑카를 다녀온 이후에 아누라다푸라에선 뭘 봤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거의 다 잊어먹고 있었는데, 그래도 몇 안 되는 사진들을 보니까 어렴풋이 몇몇 기억들이 떠올랐다. 별로 찍을 것도 없고, 찍을 기분이 아니었지만, 아무렇게나 그렇게 찍어둔 사진 몇 장이 기억의 보조재 역할을 했다.













가슴 깊은 저수지


유적지로 가려면 올드 버스 스탠드 쪽으로 가야한다길래, 일단 시내에서 툭툭(삼륜차)을 잡아타고 길을 달렸다. 이미 인도에서 꽤 경험을 했던 터라, 타기 전에 가격 흥정을 끝내고 갔는데, 툭툭 기사가 한참 달리면서 돈을 더 요구했다. 말도 안 된다며, 이미 약속을 했지 않느냐며 좋게 타일렀지만, 끝내 툭툭 기사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황량한 도로 위에 차를 세우고는, 기름이 떨어져서 이제 시내로 돌아가야 한다며 내리라 했다. 뻔한 거짓말이다.
 
이럴 땐 더 이야기하거나 싸워봐야 별 소용 없다. 돈을 더 준다면 목적지까지 다시 달리겠지만, 그런 바가지 상술에 넘어가기 싫으니 그냥 내릴 수 밖에. 단지, 목적지까지 가지 않았으니까 나도 애초에 약속했던 금액보다 적은 요금을 줬다.

시내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대략의 거리도 알고 있었고, 느낌상 목적지까지 거의 2/3 정도 왔다는 것도 느껴졌지만, 그래도 요금은 애초에 말했던 것의 절반만 냈다. 기사는 돈이 적다며 난리난리쳤지만, 돈 다 받으려면 지금이라도 거기까지 가자 했더니,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시내로 쌩하니 가버렸다.

이 상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절반만 낸 그 금액도 여기까지 오는 데는 충분한 금액이라는 것. 만약 그게 터무니 없는 요금이었다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 적당한 가격으로 적당한 거리까지 왔으니 됐다고 자위하며, 결국 햇볕 쨍쨍 내리쬐는 한낮에 언덕을 하나 넘어 유적지 초입의 마을까지 대략 삼십 분 정도를 걸었다.

어떻게 보면 쓸 데 없는 고집으로 몸 고생 했을 뿐 아니냐고 하겠지만, 뭐 그것도 나름 의미있는 여행 방법이다. 내가 내린 곳은 복잡한 시내가 아니라, 들판과 나무가 펼쳐진 한적한 시골길이었으니까. 남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일부러 차들의 배기가스 마셔가며 달리기도 하는데, 이런 공기 맑은 시골길을 혼자 여유롭게 걷는 것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저런 못 된 운전기사가 아니었으면 이 길도 그저 스쳐 보냈을 텐데, 뭐 이것도 다 인연이고 운명이겠지.



그렇게 고개를 넘었는데 그래도 살갖을 파고드는 따가운 햇살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마을이 보이자마자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가게에 들어가서 일단 음료수 한 병을 사 마셨다.

가게 주인이 왜 그쪽에서 걸어오냐길래 방금 전 이야기를 해 주니까, 스리랑카 인으로써 부끄럽다며 고개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가게 바로 앞쪽 길을 건너서 제방 위로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거기가 옛날에 스리랑카의 유명하고 대단한 왕이 자주 거닐었던 곳이라며, 거기 가서 마음이나 진정시키라 했다.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서 혼자 콜라 마시고 있기도 심심했고, 또 가게 바로 앞쪽으로 보이는 작은 둔턱만 넘으면 바로 저수지라서 가깝기도 하니까, 잠시 구경이나 하자며 한 번 가봤다. 그런데 수풀이 무성하고, 물에는 연잎들이 꽉 차 있으며, 바로 한 걸음 밖과는 다르게 바람도 시원하게 솔솔 불어서 정말 한낮에 쉬기 딱 좋은 곳이었다. 둑 위로 올라서자마자, 정말 왕이 거닐었을 만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방 위에 올라서자마자 하늘 넓게 가지를 활짝 펼친 나무 한 그루가 '너를 위해 천 년을 기다렸어' 하고 있길래, 서슴없이 그 그늘 아래로 스르륵 빠져들어 턱하니 짐을 팽개치고 드러누웠다. 바람이 산들산들 장난스럽게 따가운 햇빛을 쏟아 주려고 가지를 살짝살짝 건드렸지만, 나무의 보호막은 굳건하고도 두터워서 마치 오래묵은 친구의 한 잔 술 처럼 정겹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때, 하얀색 반팔과 반바지로 된 교복을 입은 한 소년이 내 곁을 지나다가 소심하게 '핼로우'하고 인사를 건냈다. 나 역시 '하이'하고 인사해줬는데, 소년은 얼굴 한가득 해벌레 벌어진 입을 감추지 못하며 해맑게 웃으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보통 인사를 주고받으면 제 갈 길 가는게 일반적인데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이내 그 의문이 풀렸다.

소년은 나중에 커서 자기도 외국으로 많은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학교에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이 마을엔 외국인들이 전혀 오질 않는단다. 모두 유명한 유적지를 구경하려고 그 쪽으로 다 가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말 한 번 걸어볼 기회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 스리랑카에 언제 왔냐, 어디가 좋으냐 등의 뻔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소년의 어눌한 영어와 집요한 질문이 살짝 귀찮아진 나는, '노스 코리아의 뉴클리어 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내던졌다. 이윽고 불어오는 찬바람. 우리 사이에 감도는 적막감. 그래, 바로 이 느낌이야, 난 이 느낌이 정말 좋아, 베시시.



꽤 길게 느껴진 침묵에, 소년도 이거 정말 난감하다 싶었는지 갑자기 엉뚱하게 '오늘 밤에 어디서 잘 거냐'를 물었다. 내심 숙소를 정하기는 커녕, 어디로 가면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나는, '아직 모르겠어, 네가 좋은 데 알면 가르쳐 줄래?'라고 되물었고, 소년은 자기가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알려 줬다.

소년은 이 저수지를 따라 쭉 가다보면 물 가에 오렌지 색 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전망이 좋다고 알려줬다. 고맙다며 이제 정말 작별. 소년은 그래도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쁜지, 폴짝폴짝 뛰어가며 가던 길을 갔다.

소년을 보내고 멍하니 좀 더 하늘을 보다가,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한기가 느껴져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아직 그늘 밖은 타는 듯 한 더위가 한창이었지만, 나무가 내게 약속한 시간이 아마 거기까지였나보다. 천 년 후를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할 수 밖에.



이윽고 소년이 알려준 방향으로 이십분 정도 걸어가니 정말 오렌지 색 지붕의 집이 하나 나왔다. 주변에 다른 집은 하나도 없는데 덜렁 한 채만 동떨어져 있는 것이, 무슨 사연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 게다가 창문을 통해 살짝 들여다 본 내부는, 숙소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재산 있는 사람의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이상하게도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졌고, 몇 번 소리쳐 사람을 불러 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거기서 묵게 됐다면, 남은 기간 내내 이 저수지 주변에만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이 주변은 그렇게도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여행을 계속하라는 뜻이었는지, 아니면 고생을 좀 더 하라는 뜻이었는지, 그렇게 다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저수지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르완월리자야 (Ruwanwelisaya)

저수지를 나온 이후, 한동안 내가 뭘 했는지, 어떻게 이동을 했는지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오래된 여행이라도 기록을 꽤 꼼꼼이 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진으로 아무렇게나 찍은 모습들을 보면 어느정도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이 사이는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기억도 전혀 남아있지 않다.

시간이 지난 후에 기억나는 건, 아누라다푸라 하면 툭툭기사들과 꽤 많이 싸웠다는 것 뿐이니, 아마도 그 사이에 툭툭을 타고 뭔가 꽤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다소 사소하면서도 그 당시엔 꽤 화가 나는 일은 오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리는 성격이라, 살아가는 데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여행기 같은 것을 쓸 때는 그 끊어진 필름 때문에 잠깐동안 괴로움에 머리를 싸메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잊혀진 기억을 굳이 과거에서 꺼내어 무엇하리. 그냥 영화처럼 통편집 됐겠거니하고 넘어가는 수 밖에. 그래서 장면은 갑자기 '르완월리자야 (Ruwanwelisaya)'로 건너뛴다.



사실 이 부분도 지금와서는 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갑자기 내가 왜 거길 갔지? 거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주변이 어두워졌을 무렵이라고 기억되는데, 꽤 오랜시간 불빛조차 거의 없는 숲 속을 걸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사이에 숲 속 어디선가 빛나는 불빛을 따라갔다가, 넓은 정원을 가진 2층 규모의 작은 호텔을 들렀고, 거기서 하룻밤 묵는 데 1만 루피(약 10만 원)라는 소리를 듣고 기겁하고 나와서 다시 숲 속을 거닐었던 것이 기억난다. 지배인이 내게 1만 루피의 가격을 콧대 높게 제시할 때, 뒤에서 유니폼을 입은 호텔 보이가 '그거 완전 바가지야'라는 눈빛을 보냈던 것도 어렴풋이 떠오르고.



그렇게 '곧 죽어도 비싼 곳에서 잘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뛰쳐나와서는, 또 다른 불빛을 보고 무작정 걸어간 곳이 바로 '르완월리자야'였다. 숲 속을 한참 걸어가다가 갑자기 너른 공터가 확 뛰쳐 나오더니, 눈 앞에 높은 탑이 나왔던 거다.

아랫쪽은 동그스름한 반원으로 땅을 덮고 있고, 윗쪽으로 뾰족한 탑이 세워진 이런 형태의 건축물은 스투파(stupa) 혹은 째디(chedi)라고 부르는데, 주로 불교와 관련된 탑이다. 어떤 것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곳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성지를 기리기 위해 세우기도 하며, 또 어떤 곳은 그냥 지역 주민들의 신앙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르완월리자야'는 일단 그 규모에서 압도되는데, 높이가 9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탑이다. 게다가 밤에는 주변이 온통 칠흙같은 암흑인데, 이 주변만 불빛이 흘러 나와서 새하얀 탑을 비추고 있으니, 멀리서도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먼 옛날 스리랑카의 어떤 유명한 왕이 세웠던 것을 나중에 다시 크게 재건한 것이라 하는데, 사실 이 탑은 규모만 클 뿐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축물은 아니다. 이 근처에 2천 년 된 보리수 나무가 있다고 전해지는 스리마하 사원도 있고, 옛 영화를 짐작케 하는 고대 도시의 폐허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둘러보는 의미일 뿐.



그래도 현지인들 중 불교도들에겐 꽤 소중한 곳으로, 보름날이나 연말, 연초, 주말 등 거의 끊임없이 순례 행렬이 이어지는 곳이라 하는데, 내가 또 그런 타이밍은 잘 잡기 때문에 마침 내가 여기 갔을 때는 정말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난 언제나 축제 시작하기 하루 전에 그 지역을 벗어나거나, 축제가 끝난 후에 도착하거나, 혹은 일주일 내내 하는 행사 중 딱 하루 쉬는 날에 딱 도착해서 구경하거나 하는 짓을 잘 한다. 그것도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심코 가보면 꼭 그런 날이다. 한적하니 좋지 뭐.


그래서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는, '와, 이렇게 크고 하얀 건물을 아무도 없이 그냥 놔 둬도 괜찮은 걸까'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렇게 사람이 없는 날은 일 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아아, 난 정말 하늘이 내려준 천운을 타고 났나봐. 아무나 쉽게 볼 수 없는 그런 풍경을 쉽게쉽게 보고 다니잖아.

현지인들 말로는,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탑 안쪽에 항상 스님 한 분은 있다고 하던데, 난 정말 아무도 못 봤는걸. 그렇다고 그 때가 깊은 밤도 아니었고, 아무리 늦게 잡아도 한 9시 정도였다고 기억하는데, 참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때 내 머릿속을 온통 감싸고 있던 생각은 단지 '오늘 밤엔 어디서 자지?'라는 고민 뿐이었는데, 메모지에 '현지 호텔 4,000 루피'라고 적혀 있는 걸로 봐서는 또 다른 어떤 곳을 들러봤던 것 같기도 하다.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그 때 왜 그리 잠 잘 곳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스투파에 이렇게 사람이 없었던 것은 나보고 하룻밤 여기서 노숙 하고 가라는 하늘의 계시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운명을 따랐으면 지금 즘 도를 터득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히도 스리랑카 숲 속엔 사자나 호랑이가 살고 있지는 않으니, 물려 갔을 일은 없었을 테고. 행여나 물려갔다해도, 내 가방엔 떡 하나 들어 있었고.

아마도 그 당시엔 더위에, 피로에, 싸움에 지쳐서 너무나 고단하고 힘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이미 터득할 도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억은 여기서 또 한 번 잘려 나가고 만다.
















가난한 마음

그 예쁜 탑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본 기억 후에, 나는 어느 허름한 동네, 다 무너진 담장들이 인상적이었던 어느 집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툭툭을 타고 거기까지 갔던 것 같은데, 툭툭 기사가 알아서 나를 데리고 간 건지, 아니면 내가 관광안내 책자를 보고 대강 아무데나 짚어 간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라 하면 절대 찾아갈 수 없는 그 어느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기록에도 동네 이름이나 숙소 이름 같은 건 없고, 그저 1,200 루피라는 가격과 함께, '이 근처에 싼 숙소들이 몇 개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동네를 둘러본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이 때 스리랑카 여행에서는 이런 일이 꽤 많았다. 뭔가 잊으려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쓸 데 없는 사소한 것들과 소소한 감정들만 잠깐잠깐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관광지나 뷰 포인트(view point)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지만, 뭐 살다보면 그런 여행도 있는 거겠지. 지금 다만 아쉬운 것은, 떠오르지 않는 그 기억들보다는, 왜 그 스투파 아래에서 하얀 별빛들을 보며 누워있지 않았을까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금전적으로 가난한 여행보다는 마음이 가난한 여행은 정말 힘든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다.

물론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마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벼랑 끝으로 내몰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마음과 정신이 그렇게나 피폐한 상태라면 이건 차라리 여행이라기보다는 방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바다 저 멀리 어느 섬 한가운데 오래오래 사람들이 살아오며 소원을 빌고 간절한 바램으로 별빛을 빚어냈던 그 어떤 곳에 내 짐의 한 뭉치를 내려놓고 왔다면, 그것으로도 꽤 의미있는 일 아니었겠나라며 아쉬움을 접을 뿐이다.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었을 테고, 또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어둠에 숨겨진 기억들도 좋은 느낌으로 떠오를 날도 오지 않을까 하며, 여운을 남길 수 밖에.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