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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불라(Dambulla) 가는 길
담불라는 스리랑카의 대도시인 콜롬보(Colombo)와 캔디(Kandy)를 연결하는 도로 중간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반경 1 킬로미터 정도는 약간 번화한 모습으로, 사람들도 제법 붐비고, 각종 가게들도 있고 한데,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숲과 들판이 펼쳐지는 시골 마을이다.
그런 작은 마을이 관광지로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 '석굴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1세기 경에 만들어진 이 석굴사원은 180미터 높이의 바위산 위에 있어서, 사원도 사원이지만 주변 경치를 즐길 요량으로 올라가기도 좋다. 원래 석굴사원은 이 돌산 윗쪽으로 아주 많이 있는데,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은 일부분이라 한다.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에서 담불라로 가는 버스는, 올드 버스 스탠드(old bus stand)와 뉴 버스 스탠드(new bus stand)에서 수시로 있다.
올드 버스 스탠드는 유적지 근처에 위치한 정류소로, 비교적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서 규모 또한 작은 편이다. 뉴 버스 스탠드는 아누라다푸라 시내 중심가에 있는 큰 버스 터미널인데, 수시로 많은 버스들이 드나들어서 이용하기는 좋지만, 유적지에서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가려면 툭툭을 타고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어쨌든 어디서 버스를 타던 간에, 캔디(Kandy) 행 버스를 타면 담불라에서 내릴 수 있다. 물론 버스 타기 전에 물어보는 건 필수다.
아누라다푸라 올드 버스 스탠드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스리랑카 전역이 다 그렇다). 'AC(에어컨) 미니 버스'와 그냥 '일반 버스'다.
에어컨 미니 버스는 대략 20인승 승합차 정도의 크기로, 에어컨이 나온다는 것과 목적지 외에는 거의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꽉 찰 때까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호객꾼이 몇 시에 출발한다고 말 해 줘도, 그 시간은 무의미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그리고 에어컨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도 있다.
일반버스는 폐차 직전의 너덜너덜한 버스인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창문을 조금 열고 간다면 차라리 에어컨 버스보다 시원하게 갈 수 있다. 굉장한 소음과 길거리 먼지를 마시며, 다양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가야 한다는 것이 때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대체로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편이다. 에어컨 버스 보다는 속도가 아주 빠른 편인데, 그래봐야 길에서 손 들면 세워주는 특성 때문에 그리 빨리 가지는 못 한다.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 싸다는 것이고, 가장 큰 단점은 길 위에서 고장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누라다푸라에서 담불라까지 에어컨 미니버스는 200루피(약 2,000원), 일반버스는 103루피(약 1,000원)이었다. 미니버스가 빨리 출발할 것 같아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가, 생각보다 사람이 빨리 채워지지 않길래 일반버스로 옮겨 탔다. 일반버스로 담불라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 걸렸다.
담불라의 밤
담불라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서산에 걸려 있었다. 시간은 초저녁 때였지만, 스리랑카는 전체적으로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지는 편이었다. 게다가 콜롬보나 캔디 정도의 큰 도시들 말고는, 밤길에 제대로 조명이 들어오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해가 지면 이내 깜깜한 암흑으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해 지고 나서는 딱히 구경이고 뭐고 할 것이 없다.
애초에 그런 점을 고려하고 이동했기 때문에, 담불라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갔다. 버스정류장 안쪽에는 관광안내센터(Torist Information)라고 적힌 부스가 하나 있었지만, 거의 경찰 초소로 사용되는 분위기였다. 안에는 기초적인 영어도 통하지 않는 경찰이 앉아 있고, 아무래도 대화가 안 되겠다 싶어서 지도(map)라도 달라고 했더니, 단호히 '없다'고 했다.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될 데로 되라지, 하며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껄렁한 불량배 코스프레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구한 신문지를 깔고 거의 드러눕다시피 해서 멍하니 있는데, 그 때 마침 내 앞으로 서양인 남매가 지나갔다. 잽싸게 일어나 숙소가 어디에 많은지 물어봤고, 역시나 그들은 도움이 되었다. 예쁘장한데다 말도 귀엽게하고 친절했던 그녀에게 '네가 묵는 숙소에 함께 묵고 싶다'고 하고 싶었지만, 함께 있는 남동생의 경계가 너무 심했다. 주근깨 투성이 악동같이 생긴 주제에.
담블라 템플(Dambulla temple)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들이 아주아주 많다고 했다. 여자애가 '매니~매니~(many, many)'를 강조하길래, 이 조그만 동네에 숙소가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 싶었지만, 놀랍게도 온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을 숙소로 운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았다.
보통 가이드북 없이 숙소를 찾아 들어갈 때는, 시내에서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면 떨어질 수록 값이 싸진다. 시설은 발품 팔기 나름이라 일반론이 성립될 수 없고. 그런데 담불라는 시내와 석굴사원(담불라 템플) 사이에 숙소들이 있어서, 시내에서 멀어져도 가격이 그다지 싸지지 않았다. 시내에서 멀어져도 석굴사원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이에 어딘가로 적당히 숙소를 정했다.
팬(fan) 방으로 뜨거운 물이 나오면 1,200루피, 뜨거운 물이 안 나오면 1,000루피(약 1만 원)이었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인데다가, 석굴사원 말고는 딱히 볼 것도 없는 곳이라, 아누라다푸라 보다는 숙박시설도 좋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 그래봐야 우리나라의 여관급 시설이지만.
그래도 멀리 이동할 필요도 없이, 아주 간단하게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됐다. 그때 그 서양애들을 만나지 못 했다면, 난 정말 버스 터미널에서 노숙을 할 작정이었으니까. 아누라다푸라에서 여러모로 시달리고는 탈출하다시피 떠나온 상황이라 몸도 피곤했기 때문에, 지붕 아래서 잠을 자지 못 했다면 아마 다음날 석굴사원이고 뭐고 갈 생각도 못 했을 테다.
담불라 버스 터미널은 사거리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 거기서 '담불라 템플'이라고 물으면 방향을 잘 가르쳐 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템플 가는 길은 '저 길이 수상하다' 싶을 정도의 느낌이 딱 온다. 뭔가 어두컴컴하면서도 신비한 기운으로 빨아들이는 듯 한 기분. 정말이다, 사거리에 딱 서서 가만히 있어보면, 저기가 템플 가는 길 같다는 느낌이 딱 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쨌든 여유가 생기니까 밥 먹을 생각도 났는데, 길거리 여기저기 현지인 식당들이 널려 있었지만, 다 쓰러져가는 판자집에 우글쭈글 조그만 철판 간판에다가 '차이니즈 레스토랑(chinese restaurant)'이라고 써 놓은 집에 호기심이 생겨서 들어가봤다.
중국 음식 어떤 게 되냐며 메뉴판을 달라고 했는데, 주인이자 주방장이 메뉴판 같은 것 없다며 자기가 직접 메뉴를 불러 주겠다고 했다. 아아, 그걸 언제 다 듣고 있냐 하며 경악했지만, 메뉴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불러졌다. "닭 볶음밥(chicken fried rice), 계란 볶음밥(egg fried rice), 닭 계란 볶음밥(mixed)" 끝.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메뉴 구성 아닌가. 스티브 잡스가 왔다면 그 단순하고 간결함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테다.
감자 창고 청년들
밥을 먹고, 가게에서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거리에 불빛이 거의 없어서, 과장 조금 보태서 십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도중에 한 건물에서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잠깐 기웃거렸다.
시설이라고 할 만 한 건 아무것도 없는 창고였는데, 마침 트럭에서 감자를 다 내리고 인부들이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다. 다들 영어라고는 거의 못 하는 순박한 시골 청년들이어서, 대화라고 할 만 한 건 거의 못 했다. 간간이 이어지는 한 두 마디 질문과 대답, 그리고 어색한 시간. 하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환한 웃음을 웃어 주었기에, 여행 중에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심정이어서, 들고 온 물을 함께 나눠마시며 한참을 함께 있었다.
그러다가 '보스'라고 불리는 뚱뚱한 청년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딱 보기에는 삼십 대 후반처럼 보이는데, 스물 두 살이라고 소개한 그 청년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기 형이 한국에서 일 하고 있는데 하루에 2만을 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2만이 한국 돈으로 2만 원인지, 스리랑카 돈으로 2만 루피인지 헷갈렸다. 한국 돈이면 너무 적은 편이고, 스리랑카 돈이라면 한국 돈으로 치면 하루에 20만 원 넘게 번다는 이야기인데, 그건 또 너무 많은 편이었다.
그런걸 굳이 따질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내가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한국에서 형이 선물 해 준 거라고 또 자랑했다. 그 당시엔 신형 폰으로 분류되던 햅틱 폰이었다.
"이거, 한국에서 신형 폰 맞아?"
"응, 맞아. 이거, 비싼거야."
"넌 어떤 폰 써?"
"난 이것보다 훨씬 안 좋은 공짜 폴더폰 쓰고 있어. 한국에 놓고 와서 지금은 없어."
"그럼 이거 너 줄까?"
"응, 그래 줘."
그랬더니 얘가 진짜로 자기 폰을 내게 덥썩 쥐어 줬다. 이게 뭔가, 좀 당황스러워서 주변을 둘러보니, 인부로 일하는 청년들은 모두 못마땅한 표정. 나중에야 인부들이 이 보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그걸 들을 필요도 없이 몇 마디 대화에서도 허풍이 많이 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영어는 좀 하는 편이라 제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다른 청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언어의 벽은 참 높았다. 한 청년이 '내가 만약 한국에 가서 일 하면 한달에 얼마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나?'라고 묻길래,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최소한 한 달에 10만 루피(100만 원)는 벌 수 있을 거다'라고 말 해 줬더니, 창고 안 모든 청년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청년이 자기도 한국에 가서 일 하고 싶지만, 한국에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한국 돈으로 몇 백 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설마 그 많은 돈을 한국 정부가 요구하지는 않을 테고, 무슨 브로커나 대행사 같은 것이 중간에 있나보다 생각했는데, 더 이상의 깊은 정보를 얻기에는 그들의 영어가 너무 부족했다. 아니, 내가 그들의 언어를 전혀 못 해서 그랬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테다.
어쩌면 여행자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없는 이유는 언어의 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서로 호감을 가지고 좋은 감정으로 마주서게 됐다 해도, 오랜 시간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세상 모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래도 지구인으로써 최악의 비극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래서, 이 세상 어느 변두리에서 그 높은 벽을 뚫고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그 희소성 때문에라도 더욱 고맙고 즐겁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그날도 그렇게 많은 생각들이 우리 사이의 허공을 떠돌며, 눈빛을 보고 짐작했던 이야기들이 정확한 언어로 전달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작은 감자창고의 흐린 불빛 아래서, 그들의 꾸밈없는 미소들로 피곤한 여정의 작은 위안을 받았다는 것을 그들도 느꼈다면, 굳이 수많은 수식어로 화려하게 말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만남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였는지 그 날 밤은 꿈도 없이 달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