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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꽃 내린 겨울철 한라산, 어리목 영실 코스 - 1
    국내여행/제주도 2014. 12. 16. 06:31

    겨울 눈꽃구경을 하기 위해 한라산을 올랐다. 어리목, 영실 코스는 백록담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고 있어서 정상까진 오를 수 없지만, 간단하게(?) 몇 시간 한라산을 구경하기 좋은 코스다.

     

    아침 잠이 많아서 새벽에 일어나기 어렵거나, 숙소가 멀어서 이른 시간에 가기 힘들면서도 버스를 이용해야 해서 일찌감치 산행에 오르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리목-영실 코스가 적당하다. 한라산으로 올라가는 각 출입구는 낮 12시 이후엔 입산 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낮 12시 이전에 산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해 지기 전에 내려오기 힘들어서 위험하므로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740번 시외버스를 타고 어리목 정류소에서 내렸다. 어리목으로 올라서 영실로 내려갈 요량이었다. 보통은 영실로 올라서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여기저기서 추천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게 나을 것 같다.

     

    하지만 영실은 영실매표소(주차장 요금 받는 매표소)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버스를 내려서 등산로 입구(까마귀 산장)까지 2.5 킬로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거의 30~40분 걸리는 거리인데 거기다 오르막 길이라서 등산로 입구까지 가다가 지칠 수도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버스 정류소가 있는 영실매표소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택시를 타고 간다. 2014년 1월 시세로 택시요금이 대당 1만 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여러명이서 함께 타며 줄 서서 타고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면 드디어 영실 쪽으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참고로 2014년 1월에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어리목까지 택시요금 2만 원에 갔다는 사람도 있다.)

     

    어리목 쪽은 대체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고, 거의 윗세오름에 다다를 때까지 나무들 말고는 딱히 볼 게 없는 길이다. 영실 쪽은 대체로 경사가 급하고 낭떠러지 옆으로 길이 나 있어서 힘은 들지만 볼 것도 많은 편이다. 핵심은 겨울철에는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영실 쪽으로 내려가면 좀 위험할 수 있다는 것. 아마도 그래서 영실에서 어리목 쪽으로 가는 방향을 많이들 택하는 듯 하다.

     

     

     

     

     

     

    내 경우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영실 등산로 입구까지 12시 전에 걸어 올라가서 도착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도 돈이 아까웠다. 사람을 모아서 탄다 하더라도 산행하기엔 좀 늦은 시간에 동행할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그래서 어리목에서 출발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어리목 쪽도 버스 정류소에서 내려서 탐방안내소가 있는 등산로 입구까지는 좀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영실 쪽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평탄한 길이고, 거리도 걸어서 대략 10분 정도만 가면 될 정도로 짧다. 그래서 느즈막이 가도 12시 이전에 도착해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버스를 이용할 사람이라면 12시부터 산행을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 어리목과 영실을 거쳐서 중문이나 제주시로 가는 버스는 740번 시외버스 단 하나밖에 없는데, 동절기엔 이 버스가 일찍 끊긴다. 영실 매표소에서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 막차가 오후 4시 30분 쯤에 있고, 그걸로 끝이다.

     

    따라서 어리목에서 영실로 내려가거나, 영실에서 어리목으로 내려가거나,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버스를 이용하려면 좀 넉넉하게 4시엔 하산을 끝마쳐야 한다. 어리목-영실 코스가 대략 5시간 정도 걸리므로, 최소한 11시 이전에는 산행을 시작해야 막차를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 시간 계산도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740번 시외버스 시간표는 이 글 맨 아래 링크를 걸어 놓겠다.)

     

     

     

     

     

     

    어쨌든 출발 전에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도착한 어리목은 이미 눈밭이었다. 12월 말 쯤엔 이 광장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던데, 내가 갔을 땐 아직 그런 행사는 열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단체 관광객들이 눈밭 여기저기서 사진 찍으며 놀고 있었다.

     

    어리목 주차장 입구에 들어서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참고로 주차장 입구에서 직진하면 탐방안내소와 어승생악 올라가는 입구가 나온다. 등산로 입구로 가는 길에 매점이 있으므로 이것저것 사먹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좀 허름하긴 하지만 아이젠을 판다는 것. 4~5천 원 정도 한다고 들었다.

     

    아이젠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으면 여기서라도 사서 착용해야 한다. 아이젠 없이는 아주 위험하다. 내 경우는 제주시 이마트에서 2만 원 하는 아이젠을 샀는데, 그럭저럭 쓸 만 했다. 딱히 좋은 아이젠까진 필요 없지만, 어쨌든 아이젠은 꼭 착용해야만 한다.

     

     

     

     

     

     

     

     

    등산로 입구 근처가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경치도 좋고 놀기도 좋아서 그런지 중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몰려 있었다. 눈밭 사이로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길이 나 있기 때문에 이쪽 부근은 몇 사람 없어도 북적이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무슨 행사를 시작하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북적이는 등산로 입구를 지나서 산으로 조금만 접어드니 금새 사람 소리는 지워지고 황망한 바람 소리와 눈 날리는 소리, 그리고 내 발 밑에서 들리는 눈 밟는 소리만 가득했다. 가끔씩 스치는 바람이 나무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을 날려서 온 몸을 차갑게 만들기도 했지만, 부지런히 걷다보면 이내 몸이 뜨거워져 땀이 났다.

     

     

     

     

    어리목 등산로 입구에서 얼마 들어가지 않아서 다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아이젠이 왜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 다리를 지나면 계속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길은 사람 두 명이 간신히 길을 비켜주며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게 나 있지만,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을만 한 공간들이 있으므로 잘 활용해보자.

     

     

     

     

     

     

     

     

     

     

     

     

    다리 건너면 바로 시작되는 오르막 길. 하지만 영실 쪽에 비하면 아주 완만한 편이다. 어리목 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숲을 길게 지나기 때문에 딱히 구경할 것이 없이 심심하다고 하는데, 눈 내린 나무들 모습을 즐기며 올라가면 그리 심심하지만은 않다. 아름답고도 기괴한 모습에 정신이 팔릴 수도 있으니까.

     

    눈 쌓인 겨울산에 해가 뜨면 햇볕이 반사돼서 눈 뜨기가 힘들 수도 있으므로, 웬만하면 썬글래스 같은 것도 챙겨가면 좋다. 이날은 산 전체에 뿌옇게 안개처럼 눈보라가 살며시 날렸기 때문에 딱히 필요가 없긴 했지만.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목장갑이라도 하나 있는 게 좋고, 미리 모드를 설경 모드로 해 놓기 바란다. 그걸 해놓지 않아서 내 사진들이 모두 밤에 찍은 것처럼 어둡게 나와버렸다.

     

     

     

     

     

     

     

     

     

     

    원래는 이런저런 표지판들과 고도를 알리는 표지석들이 일정 구간마다 보여야 하는데, 눈이 많이 쌓여서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윗세오름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리는 표지판들은 중간중간 잘 보이는 편이다.

     

    눈 사이로 길이 나 있는 곳은 원래 나무로 된 데크인데, 눈이 쌓이고 사람들이 밟고 해서 겨우 길의 형태만을 갖추고 있었다. 계단은 아예 자취를 감추고 눈 쌓인 비탈길이 돼 있었고. 주의할 것은 사람들을 비켜간다고 길 옆을 잘 못 디디면 눈 속으로 발이 푹 빠진다는 것. 때때로 옆으로 비켜서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길 중간으로 돌진해오는 사람이 있어서, 괜히 비켜줘서 눈 속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사람이 있으면 좋 한 쪽 옆으로 붙어서 가면 될 텐데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 다음부터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도 안 비키고 버텼다.

     

     

     

     

     

     

     

     

     

     

    카메라를 큰 똑딱이와 작은 똑딱이 두 개를 갖고 가서 화질 차이가 있다. 그냥 넘기면서 보면 모를 수도 있지만 영 눈에 거슬리는데 어쩔 수가 없다. 큰 똑딱이가 좀 더 잘 나오긴 하는데, 작은 똑딱이가 주머니에 들어가기 때문에 손이 시리면 큰건 가방에 넣고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몸에선 열이 나도 얼굴은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갑다. 거기다 장갑도 안 껴서 카메라를 쥐고 올라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애초에 큰 카메라는 메고 올라가는 것 자체가 짐이기도 하고.

     

     

     

     

     

     

     

     

     

     

     

     

     

     

    어리목 코스의 경치가 밋밋하다는 말이 많지만, 최소한 겨울철 눈꽃 내린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둘러보면 여기저기 볼만 한 모습들이 많았으니까. 처음에 등산을 시작할 때는 눈보라도 휘날리고 하늘도 흐리고 해서 이대로 올라가도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차라리 그렇게 굳은 날씨에 오른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쉬엄쉬엄 오르면서 많이 쉬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가질 수 있었으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정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서, 내 숨소리 너머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인기 있는 등산로에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멍하니 눈 쌓이는 소리와 내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고 있다가 불현듯 뭔가 딱 하고 뇌리를 스치며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게 밖으로 나와서 세상을 뒤집는 뭔가가 되고 해야 하늘이 돕는 건데, 그까지는 안 해주더라. 무심한지고. 하는 김에 좀 더 해주지않고.

     

     

     

     

     

     

     

     

     

     

    최근에 등산을 전혀 안 했더라도 두어시간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적응이 되어, 처음에 터질 것 같던 심장도 안정이 되고 죽을 것 같던 숨도 적응이 된다. 물론 비틀린 뼈로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아픈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렇게 숲으로 둘러싸인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숲의 출구가 보이고,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경사가 펼쳐진다. 한라산 경치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숲이 없어서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지만, 시야를 가리는 것도 별로 없어서 먼 산 설경까지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눈 앞에 펼쳐진 설원이 압권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

     

     

    참고)

    * 제주도 740번 시외버스 노선 & 시간표 - 한라산 어리목, 1100고지, 영실 등 

    * 한라산 어리목 탐방안내소 - 얼었던 몸을 잠시 녹여가보자

    * 왕복 한 시간으로 즐기는 겨울철 제주도 눈꽃 산행 - 한라산 어리목 어승생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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