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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서든 살아보기, 어디서든 돈과 현실
    잡다구리 2015. 3. 23. 03:35

    2월 16일과 23일 월요일, 'MBC 다큐 스페셜'에서는 '어디서든 살아보기'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여행 이야기가 방영됐다. 후지 TV와 공동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두 편 모두 일본이 무대가 됐다.

     

    1편은 탤런트 정은표 가족이 야마가타 현의 긴잔 온천마을에서 5인 가족이 일주일을 보냈고, 2편은 여행의 달인(?)이라는 두 청년이 오사카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여행 방송이 아니었다. 일주일을 보내긴 보내는데, 무일푼으로 가서 직접 현지에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어 쓰는 방식이었다. 물론 처음에 들어가서 살 집은 미리 제공되고, 중간중간 제작진이 출연자들에게 가불을 해 주기도 하고,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한다. 완전한 다큐라기보다는 현지에서 일(아르바이트)를 체험할 수 있도록 짜여진 예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냥 웃고 넘길수도 있었던 방송이었지만, 못내 머릿속에 오래 남는 것들이 있어서 정리할 겸 기록해두겠다.

     

     

     

     

     

     

    여행도 현실

     

    TV나 신문, 잡지 등에서 나오는 대다수의 여행 프로그램에는 사실 '현실'이 없다. '여행'이라는 일종의 판타지 물이라 볼 수 있다. 대체로 여행 방송에서 나오는 것들은 현지 관광지 모습이라든지, 어디서나 웃으며 환영하는 현지인들의 모습, 멋있게 보이는 여행에서의 상념, 생각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등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갈 때는 과연 그런 모습인가. 여행도 현실이다. 떠나기 전부터 어디를 어떻게 갈까 고민하고 생각하며 자료 수집을 하는 단계부터, 가방에 이걸 넣을까 뺄까 고민하고, 며칠을 투자해서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본다.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아니 그 고민 하기 전부터 어떤 곳은 무지막지한 삐끼들이 들러붙어서 혼이 쏙 빠지기도 한다. 올라탄 택시에서 싸우기도 하고, 좀 더 싼 숙소를 찾아서 옮기기도 하며, TV에서는 현지 체험이라며 어쩌다 한 번 경험하는 길거리 음식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주식으로 삼기도 한다.

     

    결국 한마디로 돈이다. 지금 현실은 그 어딜 가든지, 살아 숨 쉬는 한 돈이 필요하다. 방송에서는 어디든 볼만 한 곳이라면 가보는 것으로 나오지만, 가난한 여행자는 주머니 사정에 따라 유명한 관광지라도 입장료가 비싸면 안 가기도 한다. 유명한 호텔이나 레스토랑도 마찬가지, 여행에서도 여전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 방송은 그런 현실을 약간은 극적으로 담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이니 여행 가서 계속 돈 얼마, 저건 얼마, 이제 얼마 남고 하는 등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담아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걸 아르바이트라는 형태로 표현해냈다는 건 꽤 시도해볼 만 한 일이었다.

     

     

     

     

    살아보기

     

    한국 사람들이 휴가가 짧은 탓에 해외여행도 주로 3~4일 정도의 단기 여행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쩌다 일주일간 여행을 한다 해도, 그 기간동안 그 지역의 관광지만 돌아보기도 빡빡한 시간이다. 그건 어느정도 시간적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여행이란 거의 항상 관광이 돼 버린다. 이름 난 유명한 곳 둘러보기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그런데 여행은 꼭 그런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방송에서 특이한 것은, 그 지역 관광지를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긴잔 온천마을이야 워낙 시골이라 그렇다 쳐도, 오사카 편에서도 유명한 관광지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오사카 성을 멀리서 바라본 것이나, 번화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정도를 보여주는 게 전부다.

     

    이게 무슨 여행이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던진다), 한 지역에서 조용히 머물면서 여행 일정을 모두 일상처럼 소비하며 보내는 것도 꽤 매력적이다. 그게 취향에 맞으면 이제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여행은 못 하게 된다.

     

    그런다고 그 짧은 기간동안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일상의 관찰자로 살짝 들여다볼 수는 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사는지, 우리와 다른 점은 무엇이고, 특이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언어가 통하면 더 좋겠지만, 통하지 않더라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보다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관광지만 돌아다니는 여행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살아보는 여행도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행하기도 하며, 취향만 맞다면 오히려 이런 여행이 더욱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라고 꼭 열심히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행도 좀 알려졌으면 한데... 사실 이런 여행은 제 삼자 입장에서 볼 때는 좀 재미없는 여행이라서 많은 관심을 끌 수는 없을 테다.

     

     

     

     

    가장

     

    1편에서 한 가족이 산 속 호수로 빙어 낚시를 간다. 하룻밤 잘 요량으로 큰 텐트도 쳐놨다. 근데 생각보다 빙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 추운 곳에서 덜덜 떨며 기다렸지만 한 가족이 다 먹을 만큼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자 가장(아버지)은 근처 다른 낚싯꾼들에게 빙어를 얻어온다.

     

    이 짧은 장면에서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들이 떠올랐다. 먹여살릴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더러워도 회사를 관둘 생각은 할 수 없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 쓰는 사람들. 그게 그냥 개인적인 노력으로만 끝나면 가장의 비애라든가 애처롭다라든가 하는 감정을 가지는 것으로 끝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남을 밟아서라도 자기는 버티려는 태도라든가, 남보다 자기가 우선 살아야한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과연 가족이라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가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왕 있는 가족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가족을 새로 만드는 입장에서는 만들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개인과 가족은 어떻게 해도 사회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싶기도 하고. 뭐 어쨌든 사회적 분위기가 가족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여기고, 또 그렇게 여겨야만 하는 분위기라서 이쯤에서 말을 줄이겠다.

     

    어쨌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가장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다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걸 이해하게 된 것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게 바로 세상에 찌들어간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p.s.

    어디서든 살아보기 링크 (다시보기는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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