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홋카이도 여행 첫날 아오바 공원 캠핑장에서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6. 21. 18:53
홋카이도는 의외로 큰 섬이다. 면적이 남한(대한민국)보다 조금 작은 정도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홋카이도 한 바퀴 자전거로 돌아봐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다간 큰일 날 수 있다. 거의 한국을 한 바퀴 도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홋카이도는 주로 겨울에 스키 타려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름 철에도 가볼 만 하다. 타 죽을 듯 한 7월의 한국 땡볕에 집에 에어컨도 없어서, 연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던 상황에서 홋카이도를 가니까 공항에 내릴 때부터 살 것 같다는 탄식이 흘러 나오더라. 선선한 날씨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맑은 공기에 상쾌함도 느껴졌다.
선선한 날씨 뿐만이 아니다. 홋카이도는 캠핑장도 굉장히 많다. 말 하는 사람들마다 수치가 조금씩 틀리긴 한데, 최소한 백여 개에서 많게는 몇백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 정도의 땅덩이에 캠핑장이 최소한 백여 개 이상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홋카이도는 여름철에 피서 삼아 캠핑하러 가기도 좋다.
나는 돈이 없는 가난뱅이 여행자라서 자전거로 대충 돌아봤는데, 자전거 여행을 하기 좋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자전거 여행을 위한 인프라 같은 건 딱히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캠핑장이 많으므로 자전거와 텐트를 함께 가지고 다니면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여행이 가능하다. 그 짧은 여행기를 시작하겠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신 치토세 공항'에 내렸다. 마침 저가항공 특가로 싼 티켓이 있어서 홋카이도를 질러볼 수 있었다.
진에어를 탔는데 자전거 실을 때 "올 때도 들고 올 거에요?"라고 묻길래, 버리고 올 거라고 했더니 추가 요금 없이 실어주더라. 하지만 이제는 그게 안 될 거다. 수하물 규정이 바뀌었으니까. 여러모로 이제 진에어로 자전거 싣고 가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추가요금이 이래저래 많이 붙게 돼서.
자전거도 약간 사연이 있는데, 여행 끝나면 진짜로 버리고 올 생각으로 중고 자전거를 샀다. 좀 먼 동네에 있긴 했지만 어떻게 수소문해서 생활용 유사 MTB (일명 고물 자전거)를 중고로 파는 곳을 발견했다. 차체는 색칠을 해놔서 깨끗해보이긴 했지만, 타이어가 거의 다 닳아 있어서 꽤 오래된 자전거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그걸 7만 원에 사면서도 판매자 아저씨의 온갖 갑질과 충고와 오지랖질을 들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다. 인터넷에서 그냥 싼 자전거를 사면 12만 원 정도면 되는데. 어차피 현지에서 버리고 올 작정이라면 인터넷에서 10만 원 남짓하는 싸구려 자전거를 사 가라고 권하고 싶다. 짧은 기간이라면 돈이 아깝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현지에서 자전거 빌려 탄 셈 치면 그리 아깝지 않은 금액이니까.
일단 치토세 공항 내 편의점을 뒤져서 지도책을 사려고 시도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꽤 좋은 지도책'의 제목을 알아갔는데, 현지에 가보니 그런 지도책은 없었다 (책 제목은 이미 까먹었다). 좀 오래된 정보이긴 했지. 나중에 시내를 둘러봐도 그런 책은 없길래 이제 절판됐나 해서 다른 지도책을 샀다. 치토세 공항 내에 있는 편의점도 시내 편의점들과 크게 다를 것 없으니 그냥 이쯤에서 지도책 이것저것 펼쳐보고 맘에 드는 것 사면 되겠다. 여기서 내가 찾는 지도책을 핸드폰 검색으로 막 찾아봐주고 비슷한 것 추천도 해 준 편의점 직원의 친절이 너무 고마워서 나중에 나갈 때 자전거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만나지 못 했다.
어쨌든 시장통 같은 치토세 공항 내부를 벗어나서 아무 출구나 찾아서 밖으로 나왔다. 이건 뭐 공항 건물 내부가 무슨 시장처럼 돼 있어서 출구 찾아 나가기도 어렵더라.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 공항이 무슨 쇼핑센터 같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박스 뜯고 자전거 조립을 시작했다. 라고 표현하면 너무 거창한데, 편하려고 일부러 접이식 자전거를 구했다. 그냥 펼쳐서 안장과 핸들 끼워 넣고, 타이어 공기 주입하면 끝이었다. 박스는 쓰레기통 근처에 놔뒀다.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다들 막 처다보기는 하더라. 그래도 공항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구석자리에서 조립하는 게 불편하거나 폐가 되진 않았다.
대체로 치토세 공항에 내린 여행객들은 공항철도나 버스 등을 타고 삿포로로 가는 듯 했다. 치토세 공항에서 삿포로까지는 약 40킬로미터 정도라고 한다. 꽤 멀다.
하지만 치토세 공항은 걸어서 나갈 수 있다. 중간에 터널이 있긴 한데, 보행자를 위한 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차 먼지 날리고 시끄러운 것 뿐이지 위험하지는 않다. 당연히 자전거도 그대로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공항 밖으로 나갔고, 나중에 들어올 때는 걸어서 왔다. 아무래도 공항은 걸어서 가야 제 맛. 미나미치토세 역에서 보통은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치토세 공항으로 가지만, 거기서 (산책삼아?) 공항까지 걸어가도 된다. 물론 공항 부지가 넓기 때문에 힘은 든다.
선선한 날씨와 함께 높은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표현하자면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젠 한국에선 가을에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그런 하늘이었다.
7, 8월 홋카이도는 한 마디로 한국의 가을 날씨 같았다. 낮에 햇볕 있는 곳에 나가면 좀 덥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바람 부는 곳이나 그늘에 들어가면 금세 시원해진다. 그리고 해가 지면 점점 쌀쌀해지는데, 한밤중에는 추울 때도 있다. 특히 비가 오면 밤에는 꽤 추워진다. 야영을 하려면 미리 추위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한겨울 만큼 추운 건 아니긴 한데, 추위 많이 타는 사람들은 밤엔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하더라.
저가항공인데도 낮 시간에 도착했다. 여행지에 낮 시간에 도착하는 게 얼마만이냐. 공항에서 자전거 조립도 끝냈지만 뭔가 좀 막막하더라. 이걸 끌고 고생길을 떠나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일본은 여행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게 막막함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동남아 같은 곳은 하루 쯤 컨디션 안 좋으면 꽤 깨끗한 호텔에 들어가 묵을 수도 있지만, 일본은 비싸서 그게 안 되니까.
하늘 보며 멍때리기 좀 하다가 공항을 벗어나서 첫날 목적지로 향했다. 첫날은 피로를 푸는 워밍업 정도로 생각하고 공항과 가까운 공원을 목적지로 정했다.
'아오바 공원'은 치토세 공항에서 약 5킬로미터 정도 가면 나오는 공원이다. 공항과 가까운 공원으로 은근히 유명한 곳이다. 사진 잘 찍어놓은 걸 보면 꽤 이쁠 수도 있는 공원인 듯 한데, 내겐 그저 워밍업 용 스치는 공원이었다.
캠핑장 주변 환경이 그리 감탄스러울 정도까지는 안 되지만, 그래도 첫날 여기가 홋카이도구나 하며 감격하며 하룻밤 묵기는 딱 좋은 곳이다. 적당히 큰 규모고, 적당히 인가와 인접해 있고, 적당히 사람도 다니니까. 공원 입구에는 큰 호텔이 자리잡고 있어서, 상황 안 좋은데 돈이 있다면 들어가서 묵을 수도 있고, 입구에서 조금만 굴러 나가면 편의점도 몇 개 있다. 물론 캠핑장은 공원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다.
5 킬로미터라고 측정되기는 하지만,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길도 잃고, 헤메기도 하고, 기웃기웃 거리기도 해서 한 10킬로미터 정도는 달린 듯 하다.
공원 중간쯤 들어서자 꼬마들과 선생님들이 캠핑을 마치고 집에 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 학년 전체가 캠핑을 한 건지, 꼬마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루 일찍 도착했으면 자리 없을 뻔 했다. 근데 걔네가 다 나가니 캠핑장엔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조금 남기고 가지.
여기서 주의할 점이 나온다. 공항과 가깝고 꽤 괜찮은 캠핑장이 있는 공원이긴 하지만, 때를 잘 못 맞추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지 미리 생각해오는 게 좋다. 첫날은 아무래도 정신도 없고 피곤하고 순발력이 떨어질 테니까.
물론 나는 아무 계획 없었다. 사실 첫날 아오바 공원에 가서 자야지 하는 계획 외에는 여행 계획 자체가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서 좀 시원한 데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탈출하다시피 급하게 나온 것이라, 그냥 가다가 좋은 곳 있으면 시원하게 좀 있다가 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오바 공원 캠핑장 주변은 숲이다. 공원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어서 인적도 드물다. 게다가 여기는 밤에 바람도 많이 불더라.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들이 날려서 텐트를 탁탁 치기도 했는데, 처음엔 그것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다 (나뭇잎이라 믿고 싶다).
게다가 밤에 캠핑장 주변을 둘러보니 반짝반짝 눈들이 보였다. 낮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음식물 찌꺼기 등을 파헤치던 고라니들도 보였지만, 뭔가 다른 동물들도 어렴풋이 보였다. 나중에 보니까 홋카이도 동물들은 사람을 크게 경계하지 않더라. 차 타고 가던 사람이 잠시 멈춰서 여우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는 동네니까.
텐트 가까이까지 접근하진 않지만 내가 나가도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동물들이 각자 자기 할 일 하더라. 아무래도 사람들이 남긴 음식 주워먹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 어느덧 동물들이 사라지고 바람이 불다가 비까지 내리니까 좀 으스스해졌다. 아아 왜 나만 남기고 다들 떠난거야.
밤에 비가 스멀스멀 내리니 홋카이도의 밤 하늘을 보겠다는 생각 따윈 일찌감치 접었고, 공원 밖 동네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들 먹으며 으스스한 바람 부는 숲을 응시하며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 했다.
게다가 가끔씩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다가 탕탕 하며 총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첫날은 뭐냐 이거, 이 주변은 우범지대인건가 하며 불안함을 느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그건 산에서 내려오는 곰을 쫓는 거라더라. 아하, 곰. 그렇다면 안심...도 아니잖아. 나 혼자 있는데 여기로 곰이 내려오기라도 하면... 그 곰 쫓는 총소리는 홋카이도 여기저기서 자주 들었으니, 꼭 이쪽 동네만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므로 마음껏 즐기시라.
위의 지도 이미지를 보면, 치토세 공항 윗쪽에 아오바 공원(Aoba Park)이 있다. 아래의 아오바 공원 캠핑 관련 글을 보면 반짝반짝하게 소개를 해놨는데, 미디어 소개와 현실은 다소 (많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Aoba Park Campground (Chitose City, Hokkaido, Japan) (영어)
'해외여행 > 홋카이도 자전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숙 때 비가 오면 샤워를 하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4 (0) 2016.06.23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0) 2016.06.22 비와 오니기리 그리고 산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2 (0) 2016.06.22 삿포로 맥주 박물관 - 후회하지 않을 맥주 맛 (0) 2015.06.23 홋카이도 추천하고싶은 숙소(게스트하우스), 삿포로 인터네셔널 유스호스텔 (0) 2014.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