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 때 비가 오면 샤워를 하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4해외여행/홋카이도 자전거여행 2016. 6. 23. 18:07
산을 넘고 넘는 작은 국도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캠핑장에서 하루를 묵고 일어났다. 안내소로 쓰고 있는 건물은 매점 역할도 하고 있어서 컵라면 같은 먹을 것들도 있었지만 비싸서 이용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도 오늘 아침도 전날 세븐에서 왕창 사뒀던 한 개 백 엔짜리 오니기리로 해결. 크기가 좀 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거의 그냥 맨밥 뭉쳐놓은 것 뿐이라서 맛이 없어서 한 번에 많이 먹지 못 한 것이 식량 절약에 큰 보탬이 됐다. 나머지 빈 배는 물로 채우고 오전에 출발.
짐 챙기고 나와서 출발하려고 보니 이미 정오에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캠핑장에 사람들도 좀 있고 해서 안심도 되고 하니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한밤중에 비 때문에 바닥이 좀 축축해지고 기온도 내려가 추워서 살짝 깨긴 했지만 몸이 힘드니 대충 다시 잠들었다. 춥다고 느낄 정도로 쌀쌀해져도 모기는 있었다. 이틀 전 밤엔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정말 많이 물렸는데, 그래도 여기는 사람들이 주위에 좀 있어서 그리 많이 물리진 않았다.
떠나려고 안내소 건물 앞으로 나가니 체크인 하려고 들어온 오토바이 여행자 하나가 보였다. 대충 저런 식으로 꾸려서 캠핑 하면서 돌아다니는 오토바이 여행자도 있다. 나도 빨리 오토바이 면허증을 따야 할 텐데 싶다가도, 따면 뭐 하냐 랜트비가 비쌀 건데 싶기도 하고.
내 자전거 꼬라지에 비하면 저 오토바이는 정말 깔끔한 편이다. 자전거를 타고 국내든 국외든 국도를 가다보면 너무 가까이 옆을 스쳐 지나는 자동차들이 있다. 아무래도 자전거가 슬림 해 보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텐트를 저렇게 가로로 해 놓고 다니면 어느 정도 보호가 된다.
핸들 쪽은 식량을 다 비우고 해서 물만 달려 있는데, 저게 가장 적게 짐을 메단 모습이다. 보통 물 두 통(새 물 하나, 먹던 물 하나) 달고, 도시락이나 오니기리 같은 식략 봉지 하나 달고, 기타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 그때그때 꺼내 쓸 물건들은 비닐봉지 두 겹으로 해서 또 하나 달고 다녔다. 그러면 앞뒤 무게 균형도 맞아지고 좋다. 폼은 좀 안 나겠지만.
아무래도 이 동네는 공룡과 뭔가 관련이 있는 듯 했다. 저거 목 저렇게 길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뚝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나중에 찾아보니 홋카이도 무카와에서 큰 초식공룡 뼈가 발견됐다고 하더라. 그럼 어느 풀밭에는 아직 공룡뼈가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나 그런 데서 노숙하면 공룡 유령이 나타나서 여기를 파 줘 그럴지도.
큰 호수도 있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있고. 대체로 차도 옆으로 갓길이 있어서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갓길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작은 돌 조각들은 흔히 있고, 이런저런 이물질들이 많고 도로가 깨지거나 움푹 파인 곳도 많아서 항상 조심해야 했다.
또 산길을 계속 이고지고 끌고 달리고 반복해서 딱히 사진도 없고 별다른 기억도 없다. 이런 고생이 나중엔 추억이 되기는 개뿔. 다음에 다시 가도 이 길은 자전거로는 절대 가지 않을 테다. 근데 차동차나 오토바이로 드라이브 하기엔 괜찮을 듯 싶다.
국도를 달리다보면 중간중간 차 대놓고 쉬어갈 수 있는 공터들도 나온다. 보통 화장실도 있어서 틈틈이 들러 세수하고 가기도 좋다.
삿포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판도 꽤 자주 나왔다. 대체로 별 쓸 데는 없지만, 나중에 삿포로로 갈 때는 저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30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직선 길을 쭉 달렸는데 한참 가보니 40 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오기도 해서 그다지 믿을 만 하진 않았다.
힘들면 그냥 길 가에 대충 주저앉아 쉰다. 사실 이런 여행 방식은 사람 만나길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별로 권할 수 없다. 사람하고 말 섞는 게 정말 싫어서 며칠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니고 싶다라면 강추다. 자전거에 캠핑, 그리고 밥은 모두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조합이면, 맘만 먹으면 며칠이고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다닐 수 있다. 정말 좋다.
해질 녘 쯤 돼서 산을 벗어났다. 산 아래 작은 마을에 작은 동네 마트가 있길래 바로 들어갔다. 마트 내부에 면 뽑는 시설도 있고, 메밀소바가 잔뜩 쌓여 있길래 하나 사봤다. 메밀소바와 작은 물, 간장, 와사비 등이 들어 있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편의점 메밀소바보다 훨씬 신선한 것을 봐선 아무래도 그 매장에서 직접 만든 게 맞는 것 같았다.
홋카이도 마트나 편의점에는 직접 음식을 만드는 시설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매장마다 만드는 게 다른데, 어떤 곳은 도시락을 매장 안에서 만들어 내놓고 파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일반 편의점 상품보다 훨씬 신선하고 맛있고, 값도 조금 싼 편이라서 그런 걸 애용했다.
먹는 건 그냥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거나, 편의점 바깥 구석 그늘에서 먹는다. 물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봐주기는 하지만, 나도 저거 먹어볼까 맛있겠는데 하고 부러워서 보는 것 뿐이다. 정 뭣하면 니하오 해주면 되고.
그 후로 논밭이 펼쳐지고 듬성듬성 수풀과 공터 등이 보였다. 띄엄띄엄 작은 마을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보이는 사람들에게 게스트하우스나 캠프장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은 여행지가 아닌 듯 했다. 그러다가 해가 졌다.
해가 지자마자 깜깜해졌다. 어쩔 수 없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작은 마을 외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축구장 겸 농구장 겸 여러 목적으로 두루두루 쓰이는 듯 한 잔디밭 운동장 한 쪽 귀퉁이에 텐트를 쳤다. 오늘은 오니기리를 못 샀지만, 그 대신 비타민 워터를 샀다. 내 몸을 비타민으로 가득 채워서 저녁 한 끼를 떼운다. 비타바디. 살 빼고 건강해지기 딱 좋다.
텐트 치고 드러누워 바깥을 봤더니, 아까는 안 보였던 음산한 건물 하나가 뒷쪽에 보이더라. 문이고 창문이고 다 깨져있는 걸 보니 폐가인 것 같던데, 누군가 안에 있는 것도 같고. 아 됐다, 뭐 어쩌라고. 마침 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충 패턴이 있는 비가 있고, 그 중간중간에 랜덤한 비가 있는 듯 했다. 항상 해 지고 깜깜해질 때 쯤이면 비가 오더라.
근데 이번 비는 좀 심했다. 정말 엄청나게 퍼부어서 텐트가 막 안으로 우그러질 정도였다. 그리고 항상 이맘때 쯤엔 바람도 세개 불었다. 아마도 한낮의 기온과 밤의 기온이 교체되면서 기압이 바뀌는 그런 현상 같았다. 어쨌든 그래도 텐트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어서 텐트 덮개 씌우고 잠을 잤다.
살짝 잠 들었다가 너무 축축하고 추워서 깨보니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어제까지는 대충 비옷을 비닥에 깔고 자서 습기로 몸을 촉촉해지는 아름다운 정도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바닥에 깔아놓은 비닐 비옷 위로 물이 차 올랐다. 당연히 옷은 이미 다 젖었다.
일단 텐트 밖으로 나간다. 비는 살짝 그쳐가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아직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옷이 다 젖어서 너무 춥다. 뒷쪽의 폐가에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꼬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 느낌 이상하면 안 가야 한다. 그래서 윗옷을 벗고 비 속에서 샤워를 한다. 그러면 귀신도 싸이코라고 안 붙는다. 그러니까 갑자기 비가 딱 그친다. 역시 내가 이겼다. 텐트를 약간 옆으로 옮기고 안에 들어가서 누워만 있는다. 축축하고 추워서 가만히 누워있기도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사태를 맞고 나서 다음날은 마트에 가서 비옷을 한꺼번에 네 개나 샀다.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다음 기회에.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옷은 아직도 축축하고, 가방도 다 젖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도 않았지만 날이 밝아오자마자 신새벽에 짐을 다 말아넣고 길을 떠났다. 하룻밤 묵었다기보다는 그냥 어둠을 잠시 피해있었다고 할 수 있다.
새벽도 좀 쌀쌀한 편이지만, 일단 해가 뜨면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쌀쌀한 새벽 바람은 순식간에 더운 햇볕으로 변했다. 얼마 안 가니 잘 가꿔놓은 공원이 보였다. 마을과는 조금 떨어져 있고,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도 꽤 넓게 있으며 화장실도 있다. 홋카이도 곳곳에 이런 곳들이 많다. 어제 조금만 더 달렸으면 여기 정자 밑에서 잘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어서 아침부터 도시락을 두 개나 먹는다. 언제 또 먹게 될 지 알 수 없으니까. 공원에 들고 와서 이걸 먹으며 텐트와 짐들을 펼쳐놓고 대충 말렸다. 해가 떠오르니 마르기도 금방 마른다.
구글 지도만 보다가 쓸 데 없이 산을 타는 바람에 고생만 하고 시간만 낭비한 듯 하다. 그래도 목 긴 공룡 동상을 봤으니 보람이 있다고 치자. 산을 벗어났더니 비교적 평탄한 길이 펼쳐져 있었다. 후라노 쪽으로 접어드니 소도시라고 할만 한 곳들도 자주 나온다. 컨디션 좋으면 달리기 좋은 길일 텐데, 자꾸 잠이 온다.
어느 마을, 사람 없는 놀이터 벤치에 잠시 쉬었다 가자며 드러누워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서 일어났다. 어느새 태양이 중천에 올라가 있다. 잠시 눈만 감았다 떴는데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처음 누울 땐 나무 그늘 밑이었는데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회사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더니 마의 기운이 흐르는 곳이었던가.
그렇게라도 잠시 쉬니까 몸 상태가 한결 좋아졌다. 몸 상태가 좋아지면 배가 고프다. 배 고픈 상태로 있으면 몸 상태가 나빠진다. 뭘 먹어서 배를 채우면 잠이 온다. 잠을 깨면 다시 배가 고프다. 그렇게 인간은 똥 만드는 기계인가.
햇볕 따가운 한 낮의 오후, 에어컨 바람도 쐬며 시간 좀 보내자며 마침 길 가에 나타난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가장 큰 목적은 충전이었다. 이 때만해도 지도책이 없었기 때문에, 길을 찾으려면 스마트폰 충전이 필수였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다. 꺼질까봐 GPS도 안 켰다.
사실 홋카이도 도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충전을 한 번도 못 했다. 여태까지 묵었던 캠핑장들도 다들 따로 충전 시설이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도날드 들어가면 충전할 곳이 있겠거니 하고 들어갔는데, 매장 안에 콘센트가 전혀 없다. 이미 주문은 한 상태. 아, 일단 핸드폰 충전이라도 좀 해야겠다 싶어서 카운터 직원에게 충전기와 핸드폰을 보여주며 충전 좀 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매니저를 부르더라. 매니저는 마치 15세기 일본 그림에서 나온 듯 한 전형적인 일본 여인의 모습. 매니저에게 말 했다. 베시시 웃으면서 안 된다고 한다. 젝일. 그러면서 아까 주문했던 버거 세트를 내준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서 그 비싼 버거 세트 안 먹는 건데. 물론 가격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한국에서도 요즘은 비싸서 잘 안 간단 말이다. 게다가 에어컨 바람도 너무 약해. 더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시원한 것도 아니면서 문은 꽉꽉 닫아놔서 갑갑한 그런 느낌. 게다가 어느새 야구부 복장을 한 중딩들이 떼거지로 쳐들어와서 바글바글. 아 진짜.
이 충전 문제는 여행 떠나기 전까지 예상치 못 했던 것이었다. 일본의 다른 곳에선 캠핑장에 충전 시설이 잘 돼 있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런 걸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홋카이도는 좀 다르더라.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의 가장 큰 문제는 충전이었다. 이게 한이 돼서 나중에 한국 돌아오자마자 샤오미 보조배터리를 질러버렸지만, 이 여행을 할 때는 그런 것도 없었다.
없으면 어쩔 수 없지. 드디어 이 동네에서 지도책을 샀다. 속이 다 시원하다. 핸드폰은 이미 꺼졌고, 나는 마치 18세기 여행 처럼 지도책에 의지해서 길을 찾고, 잘 모르겠으면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올드한 아날로그 여행이여. 스마트폰에 의지해서 GPS로 내 위치 딱딱 찍어가며 다니면서 잃어버렸던 그 아련한 여행의 향수들이 다시 온 몸을 감싸며 잠 와 죽겠다.
'해외여행 > 홋카이도 자전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미후라노, 히노데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6 (0) 2016.06.29 라벤다엔, 나카후라노 라벤더 공원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5 (0) 2016.06.28 구글 지도 보고 산 넘어 간 길이 삽질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3 (0) 2016.06.22 비와 오니기리 그리고 산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2 (0) 2016.06.22 홋카이도 여행 첫날 아오바 공원 캠핑장에서 - 홋카이도 자전거 캠핑 여행 1 (0) 201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