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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조실록 UFO 기록
    잡다구리 2017. 7. 26. 19:22

    UFO는 Unidentified Flying Object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미확인 비행 물체'라고 한다. 즉, 저것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는데 뭔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고 하면 모두 UFO다. 흔히 UFO라고 하면 외계인이 몰고 다니는 비행접시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실 UFO는 그것만 칭하는게 아니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UFO도 꼭 외계인과 연관칫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보는게 좋다. 그 시대에는 비행기나 인공위성이 없었으니까 그걸 착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신기한 기상현상이라든지 새, 혹은 드래곤, 유니콘, 산신령 등을 잘 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지방에서 누군가 올린 소식이라면 허풍이나 거짓일 수도 있고.

     

    어쨌든 살펴보다보면 이건 정말 비행접시 이야기 같은데 싶은 기록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니, 조선시대의 기이한 목격담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공신력 있는 문서로 한 번 접근해보자.

     

    정종대왕실록. 이미지: 위키피디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UFO

     

    세종 2년 1월 4일


    괴이한 기상이 일어났는데, 은병(銀甁)같은 것이 동북쪽에서 일어나 서남쪽으로 들어가면서 우레같은 소리가 났다. 일관[日者]이 이것을 몰랐으므로, 사력(司曆)인 위사옥(魏思玉)을 옥에 가두어 그 죄를 다스렸다.

     

    세종 18년 윤6월 13일
     
    집현전 수찬(修撰) 김순(金淳)이 홀로 본전(本殿)에 있다가 해가 돋을 무렵에 근정전을 바라보니, 그 옥상(屋上)에 연기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기운이 있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둥근 기둥과 같은 것이 두 개가 짙은 청색과 엷은 흑색으로서,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가 곧 흩어져 소멸되었다 하여, 승정원에서 그 형상을 상세히 물어 이를 계달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는 재이(災異)일 망정 상서(祥瑞)는 아니다. 내 마땅히 두려워하고 반성하며 몸을 닦으리라."

    하였다.

    세조 9년 6월 28일


    경상도 경주갑사(慶州甲士) 윤형(尹衡) 등 2인이 아뢰기를, "지나간 정묘년에 경주 사람 김원정(金元楨)의 집에서 밤중에 뇌우(雷雨)를 만났다 개이었는데, 방 안[室中]이 밝게 빛이 나더니, 곧 크기가 거위알[鵝卵]만한 자색(紫色) 구슬 한 덩이[顆]가 마당 가운데 떨어져 있어, 김원정이 즉시 거두어 두고, 이웃 사람 김석수(金石壽)에게 가서 말하니, 김석수가 말하기를, ‘마땅히 관(官)에 고하여 진상(進上)하게 하라.’ 하고,

     

    이어서 김원정에게 이르기를, ‘이제 성하(盛夏)를 당하여 농사를 폐할 수가 없다. 내가 장차 가지고 가서 만약 상(賞)을 받으면 마땅히 너를 먼저 하고, 다음에 나에게 미치게 할 것이다.’고 하였는데, 기묘년에 이르러 경주 사람 김(金)이 경작 붙이는 것으로 서로 다투다가 인하여 구슬[珠] 감춘 일을 발설하여, 관(官)에 고하여 추핵(推劾)하였으되, 미필(未畢)로 두고 있으니, 이제 국문(鞫問)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군자감 정(軍資監正) 안초(安迢)에게 명하여, 윤형(尹衡) 등을 거느리고 경주(慶州)에 가서 구슬 숨긴 사람을 핵실하게 하였다. 단서를 어기고 직언하지 않는 자[違端不直言者]가 있으면 공신(功臣)은 종친(宗親)은 논하지 말되, 3품 이하는 고신(栲訊)을 직접 행하고, 당상관(堂上官)은 계문(啓聞)하여 고신(栲訊)하게 하였으나, 마침내 실정을 얻지 못하였다.

    세조 13년 7월 20일
     
    저녁에 큰 별이 동방(東方)에서 나왔는데, 광망(光芒)이 아래로 드리웠다. 또 별 모양 같은 적광(赤光)이 있었는데, 이윽고 큰 별을 가리워 침식하여 거의 다 없어지자, 2고(二鼓)에야 사라졌다. 이와 같은 현상이 모두 3야(三夜) 동안 계속하였다.

    * 광망(光芒) : 광선(光線)의 끝. 빛살 끝.

     

    연산 1년 2월 21일


    충청도(忠淸道) 영춘현(永春縣)에서 대낮에 유기병[鍮甁] 같이 생긴 물건이, 그 빛깔은 불[火] 같은데, 하늘로부터 떨어져서 땅에 닿자마자 사라지고 남은 빛은 도로 올라가서 흩어지므로 가서 보니, 달걀 같은 모양에 연노랑 빛이고, 돌처럼 굳으며 빈랑(檳榔) 같은 형상인데 귀에 대고 흔들면 은연히 소리가 나서, 마치 물체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관찰사(觀察使) 조위(曺偉)가 그 사유를 기록하고, 그 물건까지 올려 임금께 알리니, 전교하기를,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원상에게 보여라."

    하매, 원상 등이 아뢰기를,

     

    "옛날에 운성(隕星)이 있어 이상한 돌이 되었는데, 지금 이 물건을 보니, 진실로 운석(隕石)의 유는 아니옵고, 생각건대, 주운 자가 괴탄(怪誕)한 말로 떠벌린 것일 것입니다. 결코 상서로운 물건은 아니나, 재이(災異)에 관계되는 것은 아니니, 쪼개어 봄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명하여 쪼개 보게 하였는데, 쪼개 보니 여러 겹으로 거죽이 싸이고, 그 안에 상실(橡實) 같은 물건이 있어, 빛이 검고 구린내가 풍겼다.

     

    중종 3년 3월 6일
     
    밤 1경부터 4경까지 사방 하늘 가에서 어슴푸레하게 불과 같은 기운이 있어, 어떤 때는 나타났다가 어떤 때는 없어지기도 하므로 홍문관에 명하여 그 조짐을 상고하여 아뢰게 했다.

     

    중종 6년 12월 29일
     
    밤에 곤방(坤方)에 붉은 기운이 있고 그 위에 흰 기운[白氣] 한 줄기가 있었다. 붉은 기운은 모양이 횃불 같았고 흰 기운은 십자(十字) 모양이었는데, 1장(丈) 쯤 되었다.

     

    중종 7년 6월 7일
     
    이날 술초(戌初)275) 에 검은 기운이 서북쪽에 일어나 한 가닥이 나뉘어 세 가닥이 되었고, 하늘 복판에 이르러서는 세 가닥의 거리가 점차 넓어지다가, 동남쪽에 이르러서는 도로 한 가닥이 되었는데, 북[梭] 모양과 같았다.

     

    중종 13년 10월 11일
     
    충청도 옥천군(沃川郡)에 어둑새벽에 검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어서 옆사람도 분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가, 해가 높이 뜬 뒤에 안개가 걷히고 무지개가 섰는데, 겉은 허연 빛깔이고 안은 퍼런 빛깔이었다.

     

    중종 14년 11월 16일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하늘에 한 필의 피륙을 누인 듯한 흰 빛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를 꿰었는데 동쪽이 세 길[丈]쯤 되며, 해의 북쪽에서 무지개 같은 두 줄이 해를 둘러서 양 끝이 다 남쪽으로 나가고, 또 무지개 같은 두 줄이 거꾸로 일어나 양 끝이 다 북쪽으로 나갔는데, 다 바퀴의 반쪽 같은 모양이며, 해의 위쪽에 있는 무지개의 바깥으로 동쪽에 계명성(啓明星)만한 붉은 점이 있고, 해의 아래쪽에 있는 무지개 바깥으로 서쪽에 붉은 점이 있는데 서쪽 점이 조금 크며, 두 점의 빛 꼬리가 서로 해를 쏘아 꿰었다. 흰 빛은 미시말(未時末)에 사라지고, 무지개 빛은 신시말(申時末)에 사라졌으며, 붉은 점은 해와 함께 졌다. 남원(南原)·해남(海南)에서도 거의 이와 같은 해의 이변이 있었다.

     

    중종 15년 2월 19일
     
    전라도 곡성현(谷城縣)에서는 밤 하늘에 둥근 적기(赤氣)가 나타나 그 빛이 산야(山野)를 밝게 비추었고, 마을의 집까지 셀 수 있었는데, 한참 만에 사그라졌다.

     

    중종 15년 2월 20일
     
    이날 밤 동쪽 하늘에 거위알 같은 물건이 달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으며, 3경(更)에는 지진(地震)이 있었다.

     

    중종 15년 3월 24일


    승지 윤은필(尹殷弼)·김희수(金希壽)가 아뢰기를,

    "어제 저녁 4경(更)에 일관(日官)이 와서 ‘남방에 붉은 기운이 있는데 매우 이상하다.’ 하므로 신 등이 일어나 보니, 과연 남방에 붉은 기운이 하늘에 떠 있는데, 마치 횃불과 같이 꺼지는 듯하다가는 타오르고 타오르다가는 꺼지는 듯하며, 혹 남쪽인 듯했다가는 동쪽이며 앞으로 나오는 듯하다가는 뒤로 물러나 일정함이 없어 지극히 놀라왔습니다. 아침에 또 일관에게 물어보니, 일관이 말하기를 ‘초경(初更)에서 5경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근래에 지진·일월 성신의 재변이 그칠 줄 모르고 연이어 일어났는데, 지금 또 이와 같은 변이 있으니 내가 매우 두렵다."

    하였다.

     

    중종 28년 3월 9일


    강원도 흡곡(翕谷)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갔다. 철원(鐵原)에 유성(流星) 있었는데 크기가 바가지만하고 길이가 2척이나 되었다. 흘러가면서 폭죽(爆竹) 터뜨리는 소리를 냈으며 사라진 후에는 잠시 우레 소리가 났다.

     

    이천(伊川) 동남쪽 사이에서는 크기가 마치 유기 양푼만한 불기운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는데 떨어진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뇌성을 하였는데 동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향했다. 금성현(金城縣)에서는 술시(戌時)에 횃불만한 불기운이 하늘 가운데 있었다. 이 불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다가 땅에 떨어진 후에는 지진을 했는데 소리가 천둥 같았다. 금화(金化)에서는 해가 캄캄해지면서 하늘 가운데 작은 동이만한 불기운이 있었는데, 서남쪽으로부터 동북쪽에 이르자 천둥을 하였다. 평강(平康)에서는 하늘에 횃불만한 불기운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사라졌다.

     

    중종 28년 3월 9일


    저녁에 유성이 북극성(北極星) 아래서 나와 북쪽 하늘 가로 들어갔는데 형상이 동이처럼 생겼고 빛은 붉어서 마치 횃불 같았으며, 꼬리의 길이는 8∼9척쯤 되었다. 천천히 돌면서 갔다. 또 천시(天市)의 서원(西垣)에서 나와 남쪽 하늘가로 들어갔는데 형상은 병 같고 꼬리의 길이는 7∼8척쯤 되었으며 붉은 빛깔이었다. 이때에 일어난 천변(天變)은 극도에 이르렀다고 할 만하였다.

     

    날짜를 모르는 어느 날에는 종친(宗親) 서성 정(瑞城正)의 집에서 한 여종이 한꺼번에 아들 세쌍둥이를 낳았는데 사람 몸둥이에 개의 머리여서 듣는 사람들이 모두 해괴하게 여겼다. 음양(陰陽)의 기가 서로 화합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중종 34년 12월 26일
     
    전라도 화순(和順)에서 해뜰 무렵에 베 반필 길이의 광선이 희미하게 무지개 빛과 서로 엉겨 움직이는데 백색이었다가 흑색으로, 청색이었다가 자색으로 그 빛깔을 바꾸고, 나가기도 하고 물러가기도 하며 번복(飜覆)하고 회한(回還)하는 것이 마치 연자 방아를 찧는 모양과 같았는데 일식경(一食頃)쯤 있다가 그쳤다. 해의 남북 양쪽에 해 모양과 같은 무지개가 생겼는데 조금 작고 희미한 백색으로 그 형상을 확실히 볼 수가 없었다. 진시(辰時)에 이르러 북쪽의 무지개가 해를 꿰었고 또 서쪽에는 두 곳에 무지개 모양이 나타났는데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었다. 안쪽은 자황색(紫黃色)이었고 바깥은 청흑색(靑黑色)으로 진시 말경에 이르러 없어졌다.

     

    인종 1년 1월 19일

     

    함경도 관찰사 이청(李淸)이 장계(狀啓)하기를,

    "종성 부사(鍾城府使) 유지선(柳智先)의 첩정(牒呈)에 ‘갑진년054) 12월 14일 신시(申時)에 해의 북쪽에 세 무지개가 나란히 섰다. 길이는 하늘 끝까지 닿았고 세 무지개가 중간이 서로 맺었고 양끝은 다 태양이 희미하게 비쳤으며 형상은 둥근 쟁반과 같았는데 한참 만에 사라졌다.

     

    같은 달 15일 초경(初更)에 달무리가 졌는데 달무리 남북에 큰 쟁반 같은 형상의 백기(白氣)가 일고 또 피륙을 누인 듯한 백기가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달무리의 북쪽 고리를 꿰고 또 달 가운데를 꿰고 또 남쪽 고리를 꿰고서 서쪽을 향하여 앞의 끝과 서로 만났다. 그 길이는 하늘 끝까지 닿았고 형상은 긴 고리와 같았는데 이경(二更)에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하였으므로, 형상을 그려서 올려 보냅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청의 서장(書狀)과 해와 달의 그림을 좌의정 윤인경에게 내어보이고 이르기를,

    "이달 1일에 일변(日變)이 있었으므로 바야흐로 황공스러운데 이제 또 이러한 재변이 있었으니 더욱 미안하다."

    하니, 윤인경이 아뢰기를,

    "재변이 여러번 있으므로 매우 놀랍고 두려우니 천문을 아는 의정부 좌찬성 성세창과 병조 참의 안현(安玹)을 불러 함께 의논하겠습니다."

    하였다.

     

    성세창 등이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천문을 살펴보면 운기(雲氣)가 해 위에 있는 것을 관(冠)이라 하는데 그에 대한 재해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백기(白氣)가 달을 꿰고 햇무리가 세 겹이고 백기가 태양을 범하였으니 이는 병상(兵象)입니다. 위에서 처음 하시는 정사인데 재변을 부를 잘못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재변은 헛되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처음 정사에 더욱 덕을 공경하여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소서. 대저 천변(天變)의 발생을 무슨 일의 응보라고 분명히 지적할 수는 없으나 변방의 경보와 방비 등에 대해 각별한 조처를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변방의 방비에 대한 조처는 해당 관원에게 신칙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명종 즉위년 7월 25일


    사시(巳時)에 태백이 오지(午地)에 나타났고 햇무리가 졌다. 밤에 손방(巽方)에 황백색의 구름같은 운기가 중천을 향하여 뻗쳤다가 잠시 후에 사라졌다. 또 흰구름 같은 운기 여섯 가닥이 한꺼번에 서방에서 생겨났는데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구부러지기도 하였다. 모두 중천을 향하여 뻗쳤다가 점차 북방으로 옮겨가면서 사라졌다. 또 흰 운기 한 쌍이 동방에서 서방까지의 하늘에 펴져 있었다.

     

    명종 3년 1월 11일
     
    밤에 길이가 3장(丈)쯤 되는 흰 빛깔의 운기(雲氣)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하늘 저 끝에 비껴 있다가 점점 하늘 가운데로 옮겨와서 사라졌다.

     

    명종 7년 7월 20일
     
    신시(申時)에 운기가 동쪽에서 서쪽의 구름 속으로 들어갔는데 청흑색(靑黑色)이었다. 유시(酉時)에 이르러 두 갈래로 나뉘었다가 한참 후 사라졌다.

     

    명종 10년 9월 12일
     
    해 위에 배(背)가 있고 양 옆에 이(珥)가 있었는데, 모두 안은 적색이고 바깥은 청색이었다.

     

    명종 16년 4월 12일


    경상도 동래부(東萊府)에 묘시(卯時)에 사방(四方) 하늘가에 전혀 비올 징조도 없는데 동방(東方)에는 기운과 같은 흰 구름이 잠시 보였으며 가끔 단홍(斷虹)이 있었다. 색깔은 홍색·백색·청색이었고 베 한 필쯤의 길이였다. 태양 남쪽 7∼8척쯤의 지점에 탁기(濁氣)가 잔뜩 일어나 옆으로 태양의 중앙까지 촉범(觸犯)해 가다가 이윽고 저절로 사라졌다.

     

    명종 19년 11월 28일
     
    청홍도의 평택(平澤)에 해가 뜬 뒤에, 해 곁의 남·서·북·세 편에 단홍(斷虹)이 함께 나타났는데 안은 청색이고 밖은 적색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서 없어졌다.

     

    선조 25년 4월 30일


    왜구가 상륙한 후에 상이 침전(寢殿)에 앉아 계셨는데 침전 서쪽 작은 못에서 푸른색 무지개가 나타나 그 기운이 동쪽을 향하다가 북쪽으로 향하여 중문(中門)을 뚫고 전상(殿上)에 올라 어좌(御座)에까지 접근했다. 상이 피하여 서쪽으로 앉으면 서쪽을 향하고 동쪽으로 피하면 동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선조 28년 11월 8일
     
    황해도 관찰사 유영순(柳永詢)이 보고하였다.

    "본월 2일 초경(初更)부터 시작하여 붉은 운기 한 줄기가 서방에서 일어났는데 형상이 횃불과 같고 빛이 하늘의 반을 비추었습니다. 조금 뒤에 남방과 동방에서도 일시에 모두 일어났다가 닭이 운 뒤에 점차 사라졌습니다. 5경 뒤에 동북간에서 붉은 운기가 또 일어났는데 형상이 맹렬한 불꽃과 같았으며 평명(平明)에야 사라졌습니다."

     

    선조 34년 1월 13일


    충청도 관찰사 장만(張晩)이 치계하기를,

    "충주 목사(忠州牧使) 김순명(金順命)의 정(呈)에 ‘12월 25일 밤 2경 쯤에 붉은 빛이 처음에는 진방(辰方)에서 일어나더니 조금 후에는 또 해방(亥方)에서도 일어나 한동안 맞비치다가 진방에서 일어난 것은 남방을 거쳐 서방으로 점점 돌고 해방에서 일어 난 것은 북방을 거쳐 동방으로 돌았다. 그대로 하늘을 가리우고 사방에 빛을 발하였는데, 불빛 같기도 하고 달빛 같기고 하여 사람 그림자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가 오랜 후에 없어졌다.’ 하였고,

     

    연기 현감(燕岐縣監) 권수기(權守己)의 첩정에 ‘12월 27일 늦은 아침에 햇무리가 지고 양이(兩珥)가 있더니 거기에 또 적황기(赤黃氣)가 있어 희미한 관(冠)이 되었다. 또 적황기가 있어 해 아래에서 희미하였는데, 양이·햇무리가 서로 연결되었다. 또 청적기(靑赤氣)가 있어 관(冠) 위에 있다가 북쪽을 향하였다. 또 백기(白氣)가 양이 아래에서 나타나 서쪽을 향해 서로 이어져 있었다. 또 적백기(赤白氣)가 있어 남쪽에서 곧바로 올라와 백기와 맞닿아 있다가 한참 후에 점점 사라졌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예조에 계하였다.

     

    선조 34년 11월 21일
     
    "성주(星州) 지방에 이달 6일 초저녁에 진방(辰方)·사방(巳方)·미방(未方)·축방(丑方) 하늘가에 적색 기운이 있었고, 적색 기운 위에 또 백색 기운 한 줄기가 있었는데 형상이 무지개 같고 길이가 2, 4장(丈)쯤 되었습니다. 아래로부터 올라 가서 혹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희미하기도 하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없어졌는데, 동남쪽에 적색 기운이 더욱 성하였습니다. 변이(變異)가 비상합니다."

    하였는데, 입계하였다.

     

    선조 37년 7월 3일


    묘시(卯時)에 푸르스름한 구름 두 가닥이 운기(雲氣)처럼 남방의 하늘가에서 일어났는데, 모양은 누인 비단 같고 너비는 1척쯤 되었다. 한 가닥은 간방(艮方)의 하늘끝까지 이르러 해의 동쪽에 있었고 한 가닥은 묘지(卯地)까지 이르러 해 위에 있다가 점점 손방(巽方)으로 옮겨갔는데 한참 뒤에야 사라졌다. 미시에 태백이 사지에 나타났다. 유시(酉時)에 햇무리가 지고 좌이(左珥)가 있었다. 햇무리 위에 관(冠)이 있었는데 안은 적색(赤色)이고 밖은 청색(靑色)이었다.

     

    사진: mdherren, CC0

     

    광해 1년 8월 25일

    선천군(宣川郡)에서 오시에 날이 맑게 개어 엷은 구름의 자취조차 없었는데, 동쪽 하늘 끝에서 갑자기 포를 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하늘의 꼴단처럼 생긴 불덩어리가 하늘가로 떨어져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불덩어리가 지나간 곳은 하늘의 문이 활짝 열려 폭포와 같은 형상이었다.

     

    광해 1년 8월 25일


    〈사시(巳時)에〉 태백성이 〈미지(未地)에〉 나타났다. 오시(午時)에 영두성(營頭星)이 〈천중(天中)에서 나와 간방(艮方)을 향하였다.〉 크기는 항아리만하였고 빠르게 지나갔는데 마치 횃불과 같고, 요란한 소리가 났으며 〈크기는 가히 3, 4자 정도이고 황백색이었다. 밤 5경에 유성이 벽성(壁星)의 자리에서 나와 건방(乾方)의 하늘 끝으로 들어갔는데, 모양은 주발과 같았고 꼬리의 길이가 6, 7척 정도였으며 적색이었다.〉

     

    광해 1년 9월 25일
     

    강원 감사 이형욱(李馨郁)이 치계하였다.

    "간성군(杆城郡)에서 8월 25일 사시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태양이 비치었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는데, 우레 소리가 나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갈 즈음에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니, 푸른 하늘에서 연기처럼 생긴 것이 두 곳에서 조금씩 나왔습니다. 형체는 햇무리와 같았고 움직이다가 한참 만에 멈추었으며, 우레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났습니다.

     

    원주목(原州牧)에서는 8월 25일 사시 대낮에 붉은 색으로 베처럼 생긴 것이 길게 흘러 남쪽에서 북쪽으로 갔는데, 천둥 소리가 크게 나다가 잠시 뒤에 그쳤습니다.

     

    강릉부(江陵府)에서는 8월 25일 사시에 해가 환하고 맑았는데, 갑자기 어떤 물건이 하늘에 나타나 작은 소리를 냈습니다. 형체는 큰 호리병과 같은데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컸으며, 하늘 한 가운데서부터 북방을 향하면서 마치 땅에 추락할 듯하였습니다. 아래로 떨어질 때 그 형상이 점차 커져 3, 4장(丈) 정도였는데, 그 색은 매우 붉었고, 지나간 곳에는 연이어 흰 기운이 생겼다가 한참 만에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사라진 뒤에는 천둥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천지(天地)를 진동했습니다.

     

    춘천부(春川府)에서는 8월 25일 날씨가 청명하고 단지 동남쪽 하늘 사이에 조그만 구름이 잠시 나왔는데, 오시에 화광(火光)이 있었습니다. 모양은 큰 동이와 같았는데, 동남쪽에서 생겨나 북쪽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매우 크고 빠르기는 화살 같았는데 한참 뒤에 불처럼 생긴 것이 점차 소멸되고, 청백(靑白)의 연기가 팽창되듯 생겨나 곡선으로 나부끼며 한참 동안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우레와 북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다가 멈추었습니다.

     

    양양부(襄陽府)에서는 8월 25일 미시(未時)에 품관(品官)인 전문위(全文緯)의 집 뜰 가운데 처마 아래의 땅 위에서 갑자기 세숫대야처럼 생긴 둥글고 빛나는 것이 나타나, 처음에는 땅에 내릴듯 하더니 곧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는데, 마치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습니다. 크기는 한 아름 정도이고 길이는 베 반 필(匹) 정도였는데, 동쪽은 백색이고 중앙은 푸르게 빛났으며 서쪽은 적색이었습니다.

     

    쳐다보니, 마치 무지개처럼 둥그렇게 도는데, 모습은 깃발을 만 것 같았습니다. 반쯤 공중에 올라가더니 온통 적색이 되었는데, 위의 머리는 뾰족하고 아래 뿌리쪽은 짜른 듯하였습니다. 곧바로 하늘 한가운데서 약간 북쪽으로 올라가더니 흰 구름으로 변하여 선명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이어 하늘에 붙은 것처럼 날아 움직여 하늘에 부딪칠듯 끼어들면서 마치 기운을 토해내는 듯하였는데, 갑자기 또 가운데가 끊어져 두 조각이 되더니, 한 조각은 동남쪽을 향해 1장 정도 가다가 연기처럼 사라졌고, 한 조각은 본래의 곳에 떠 있었는데 형체는 마치 베로 만든 방석과 같았습니다. 조금 뒤에 우레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끝내는 돌이 구르고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그 속에서 나다가 한참만에 그쳤습니다. 〈이때 하늘은 청명하고, 사방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습니다.〉"

    * 참고: 광해 1년 8월 25일 있었던 이 사건은 대표적인 조선왕조실록의 UFO 기록으로 사용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이 기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 있다.

     

    광해 3년 4월 7일
     
    정원이 아뢰기를,

    "삼가 황해 감사 최동립(崔東立)의 서장을 보건대 ‘해주(海州)에서 정월 2일 초혼(初昏) 무렵 동서 하늘가에 붉은 빛이 있었고, 밤 3경에는 서남쪽에 화기(火氣)가 공중에서 마치 기둥이 늘어서듯 아래로 드리운 것이 네 개 있었는데, 그 길이가 각각 서너 장(丈)쯤 되었고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약간 길었으며, 서북쪽에도 기둥 같은 화기가 있어 대낮의 해처럼 빛이 환했는데 저물녘이 되어서야 없어졌으니, 변이가 심상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변고를 서울에 있는 일관(日官)이 하나도 보고하지 않았으니, 그가 천상(天象)에 어두운 것이 심합니다. 놀랍기 짝이 없는 일이니, 관상감의 관원에게 살피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광해 5년 2월 27일


    밤 1경에, 크기가 한두 아름, 길이가 서너 길, 모양이 횃불 같은 붉은 기운이 북두성 아래에 3개, 남방에 2개, 동방·동남방에 각각 1개가 줄지어 섰는데, 오래도록 있다가 없어졌다.

     

    숙종 27년 11월 3일
     
    경상도(慶尙道) 동래부(東萊府)에서 10월 18일 신시말(申時末) 건해방(乾亥方)에 붉은 빛 한 덩어리가 있었는데, 별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것이 바리때 같은 모양이었다. 잠깐 사이에 흰 명주 모양으로 변하여 길이가 5, 60척 가량 되더니, 점차 서쪽 하늘로 가로 뻗치어 일곱 마디의 굴곡(屈曲)을 이루었다. 또 머리와 발이 있어 용(龍) 모양 같았는데, 유시말(酉時末)에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였다가 얼마 후 사라졌다.

     

    숙종 37년 5월 20일


    경상도(慶尙道) 김해(金海)·양산(梁山)·칠원(漆原) 등의 6읍이 해시(亥時)에 하늘이 이상(異常)하게 검더니 잠시 후에 화광(火光)이 낮과 같았고 하늘 위의 한 물건이 위로 뾰족하고 아래는 넓었으며 그 크기는 항아리[缸] 같았는데,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갔다. 소리는 대포(大砲)와 같은 것이 세 번 났으며, 천둥 소리가 계속하여 나더니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 같은 현상이 있었는데, 화광(火光)도 또한 따라서 없어졌다.

     

    인조 2년 1월 7일


    햇무리가 지고 양이(兩珥)가 있었으며, 햇무리 위에 관(冠)이 있었는데 안은 적색이고 밖은 청색이었다. 흰 운기 한 가닥이 간방(艮方)에서 일어나 하늘을 돌아서 남방을 향하다가 한참만에 사라졌다. 밤 1경에 동방·손방(巽方)·서방에 불빛같은 운기가 있었다. 4경에 남방에 불빛같은 운기가 있었다.

     

    인조 2년 1월 29일


    사시(巳時)에 무지개 같은 운기가 손방(巽方)에서 일어나 길게 하늘에 걸쳐 건방(乾方)을 향하였다가 이윽고 세 가닥으로 나뉘어 구불어져 동북으로 향하였는데, 빛은 앞이 적황(赤黃)이고 뒤가 창백(蒼白)하였으며, 한참만에야 사라졌다.

     

    인조 21년 5월 17일


    달 가운데에 검은 기운이 있었는데 그 모양이 날아가는 새와 같았다. 유성(流星)이 심성(心星) 아래에서 나와 손방(巽方)으로 들어갔다.

     

    숙종 37년 5월 20일
     
    경상도(慶尙道) 김해(金海)·양산(梁山)·칠원(漆原) 등의 6읍이 해시(亥時)242) 에 하늘이 이상(異常)하게 검더니 잠시 후에 화광(火光)이 낮과 같았고 하늘 위의 한 물건이 위로 뾰족하고 아래는 넓었으며 그 크기는 항아리[缸] 같았는데,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흘러갔다. 소리는 대포(大砲)와 같은 것이 세 번 났으며, 천둥 소리가 계속하여 나더니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 같은 현상이 있었는데, 화광(火光)도 또한 따라서 없어졌다.

     

    영조 20년 11월 28일

     

    공흥도(公洪道) 면천(沔川) 등의 고을에서 어떤 소리가 동방에서 일어났는데, 마치 대포소리 같기도 하고, 또 북소리 같기도 하였는데, 세 번 울리다가 그치었다. 소리가 일어나는 곳에 불빛이 있었고 그 아래에 큰 종과 같은 물건이 있었는데, 모양과 빛깔이 붉어서 불과 같았다. 또 요란한 천둥과 같은 소리가 있었는데, 인방(寅方)과 간방(艮方) 쪽으로 달리다가 한참 동안 지나서야 그치었다.

     

    p.s. 참고

    모든 기록은 아래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에서 원문과 번역본을 찾아볼 수 있다.

    >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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