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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종이달 - 달과 6펜스 그리고 매트릭스리뷰 2017. 10. 6. 18:35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은행에서 계약직 직원이 된 주인공 리카(미야자와 리에). 은행 영업직원으로 고객들의 집을 방문하여 상품도 추천하고, 예금과 출금 서비스를 하는 것이 주 업무다.
어느날 외근을 마치고 잠시 들른 백화점에서 충동구매를 하고는 돈이 부족해서 고객의 예금에서 1만 엔을 꺼내 쓴다. 물론 곧바로 ATM기에서 돈을 뽑아서 메꾸기는 했지만, 여기서부터 리카의 일상에 금이간다.
그리고 한 고객의 집을 방문하다가 알게 된 대학생과 불륜을 벌이면서 돈이 필요해진 리카는, 결국 고객의 예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후 그녀의 범행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규모가 커진다.
영화 종이달(紙の月)은 시각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원작의 시대배경이 1996년 일본의 버블경제가 가라앉고 장기침체가 시작되던 때이므로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을 그린 것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파트타임과 계약직 직원이었던 것에 집중하면 노동환경이나 사회적 신분에 집중해볼 수도 있다. 또한 주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여성과 주부 쪽을 집중해서 해석해볼 수도 있다.
내 경우는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가 떠올랐다. 어느날 갑자기 마치 어떤 계시를 받은 것 처럼 6펜스의 세계를 떨쳐내고 떠나버린 스트릭런드가 향한 곳은 예술이라는 달의 세계였다. 인생 혹은 인생의 행복을 하나의 예술로 놓고 본다면, 리카가 본 달도 거의 비슷한 것일 테다. 거의 후회도, 사과도 없다는 점도 두 주인공이 딱 닮았고.
종이달에서 불륜 대상이었던 대학생이 다른 여자와 있는 장면을 들키고 나서 이런 말을 한다. "가끔 그 방에 있으면 미칠 것 같아. 언제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될까하고". 아마 이건 주인공이 하고 싶었던 말일 테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을 테다.
이 대목에서 달과6펜스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단 말이오. 나 스스로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소.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을 잘하건 못하건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칠 수밖에 없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물에 빠진 사람은 수영을 잘하건 못하건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리카도 살기 위해서 잘하건 못하건 헤엄을 쳤는지도 모른다. 달을 향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우선순위의 가치마저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결국, 종이조각과 숫자로 표현되는 6펜스가 오히려 환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탈출하게 된다. 무지개의 끝을 본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영화 '최악의 하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연극을 하고 있을 때는 그게 현실이에요. 끝나면 가짜지만".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벌이는 연극이 진짜인지, 혹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연극이 진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달을 쫓을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는 잘 하든 못 하든 연극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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