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꼭 뛰어들어 아웅다웅 자신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고 피 터지게 싸우며 일상의 전쟁을 치루면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어서 쓸쓸한 어느날, 큰 다이소에 가서 "쓸모없는 물건들을 잔뜩 사보자"라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큰 다이소 중 하나로 손 꼽히는 곳으로 갔다. 이번 쇼핑의 규칙은 단 하나, 쓸모없는 물건을 사자. 사서 뭘 할건지, 바로 버리면 돈 아깝지 않은지 따위 고민하지 말고, 그냥 세상에 버림받을, 누가 이런걸 사나 싶은 것들을 사보자였다.

 

> 다이소 동서울터미널점 탐방기, 서울에서 가장 큰 다이소 중 하나

 

근데 의외로 다이소에 크게 쓸모없는 물건들은 많지 않더라. 당연한 것 아닌가, 장사하는 곳인데 쓸모없는 것들이 많으면 망하지. 그래서 큰 맘 먹고 갔지만, 생각보다 많이 사지는 못 했다. 대략 3만 원 조금 넘는 정도.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접어서 구겨 넣을 수 있는 보조가방. 이런 주머니 안에 불룩하게 가방이 들어가있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꺼내서 펼치면 이렇게 나름 보기에는 그럴듯 한 가방이 된다. 사진만 잘 찍으면 꽤 쓸모 있을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천 원 짜리 비옷 같은 재질이라서 너무 얇다. 몇 번 들고 다니면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기 딱 좋다.

 

여행용 보조 가방이라고 팔고 있지만, 재질만 보면 너무 얇다는게 티가 난다. 가방 안쪽에 물건 정리를 위한 이너백으로 사용하거나, 장바구니 혹은 정말 가볍게 들고다닐 가방 정도로 사용할 수 있겠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원예용 보석과 컬러스톤(색깔돌). 원예용 보석은 플라스틱 같은 재질이고, 컬러스톤은 조금 무거운 플라스틱 같은 재질이다.

 

화분 장식용으로 뿌려두거나, 수족관 안에 넣어두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화분도 수족관도 없는 나는 전혀 쓸 데가 없다. 그래서 사봤다.

 

 

 

원예용 보석은 너무 인공적인 티가 나고, 컬러스톤은 어느 산 속에 살짝 놓아두면 보석 발견했다고 좋아할 사람이 있을 듯 하다. 좋은 용도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원예용 미니 모종삽. 아니 이건 분갈이나 작물 심을 때 쓸모가 있는 것 아니냐 싶겠지만, 직접 만져보면 땅을 파면 금방 망가지거나 휘어질 듯 한 느낌이다. 정말 작업을 할 사람이라면 이런걸 사지는 않을 테다.

 

이 물건 바로 옆에 대충 제대로 된 원예용 모종삽도 팔고 있었으니, 필요한 사람은 제대로 된 삽을 사자.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원예용 구슬. 원예 코너에 이런 것들이 많이 있더라. 대체 원예란 무엇이길래...

 

어쨌든 구슬은 이십세기 소년소녀의 로망 아닌가. 모두가 갖고 싶었지만 아무도 사주지 않았던 반짝이는 작은 유리.

 

이만큼이 천 원이라서 아무 고민 없이 질렀다. 물론 어디다 쓸 수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고, 딱히 쓸모를 찾으려 노력도 하지 않을 테다. 이리저리 뒹굴다가 어느날 사라지겠지. 세상에 나와서 한 순간이나마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존재였다.

 

 

 

옥 처럼 생긴 구슬은 어느 시냇가에 살짝 넣어둬서 누군가에게 옥을 찾았다는 잠시의 기쁨을 선사해줘야지.

 

 

 

스마트폰 방수케이스. 이건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구입했기 때문에 살짝 규칙 위반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이걸 사용할까. 스마트폰을 물에 담글 일이 없는데.

 

비오는 날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비오는 날 비 맞으며 스마트폰을 꺼낼 때는 사진 찍을 때 뿐이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에 넣으면 사진이 멍청하게 나온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테다. 결국 딱히 쓸모는 없는 듯 하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이번에 산 것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쓸모없는 것'이라는 컨셉에 가장 잘 맞으면서도 나름 아름답다. 장미 모양의 무드등인데, 건전지를 넣고 스위치를 켜면 꽃에 불이 들어온다.

 

이 근처에서 책을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라면 정도는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물 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유용하지는 않다. 결국 그냥 불 켜놓고 보고 있는 것 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다. 말 그대로 장식용인데, 데코레이션이라는 거창한 말을 대입시키기엔 너무 싼 티가 난다.

 

정말 쓸모가 있을 듯 말 듯 하면서도 아름답지만 보여줄 만 하지는 않은 애매함. 말 그대로 예쁜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데 무려 오천 원이다. 너무 좋다. 이미 박스에 집어넣고 처박아뒀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장식용 가랜드라고 해야하나. 얇은 철사줄 같은 것에 LED 전구들이 있고, 그 줄 위에 집개로 사진 같은 것을 걸 수 있다. 헐리우드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반항하는 십대의 방에 가끔 이런게 걸려 있다.

 

카페 같은 곳에서 잘 사용하면 나름 예뻐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감각을 잘 발휘하지 않는 이상 덕지덕지 어지러운 느낌만 줄 수 있다.

 

빨랫줄에 테이프로 붙여서 장치해놓으면, 밤에 빨래 걷을 때 유용할 것 같기는 하다. 비 몇 번 맞으면 합선으로 고장나겠지만. 그래도 반짝반짝하니 삼 분 정도는 즐거웠다.

 

 

쓸모없는 존재의 즐거움, 다이소에서 구입한 잔뜩 쓸모없는 물건들

 

위의 장식용 LED와 비슷한 종류인데, 이건 그냥 레몬 비슷한 모양의 형체 안에서 전구가 빛난다. 집개로 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빛을 낸다'라는 용도만으로 사용하는 소품이다.

 

대체로 일반 가정집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즐거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쓸모없는 것들도 박스를 열고 들여다보고 구경하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더라. 쓸모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 그렇게 쓸모없는 물건들은 짧은 즐거움을 주고는 쓸모를 다하고 다시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p.s.

 

안 산 것 중에서 아직도 생각나는게 하나 있다.

 

 

 

무려 10가지 게임이 되는 3천 원짜리 전자게임기. 건전지도 두 개 포함돼있다. 이런 것, 옛날에는 꽤 비쌌는데. 반가워서 한참을 만지작거렸는데, 얘는 테트리스, 블록격파 등 화려한 고전게임이 10가지나 된다는 큰 쓸모가 있기 때문에 그냥 놓아줬다. 이런 쓸모있는 존재는 남들에게 가버려라.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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