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자전거 여행
(2005. 08. 02 ~ 2005. 08. 05)


4. 아소 베이 파크 -> 미우다 해수욕장 (1)




자판기의 유혹



아침부터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하늘은 또 얼마나 파란지, 여름에도 저 정도라면 가을엔 과연 어떨까 싶다.
이런 자연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지,
임대한다거나 판다고 내 놓은 집도 군데군데 몇몇 보였다.
이런 곳에서 조용히 살고자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 아닐까.
다만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실행하지 못하는 것 뿐.
나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이런 조용한 곳에서 살게 된다면, 따가운 햇살도 환경이 깨끗하기 때문이라며 기뻐하겠지.

하지만 지금, 자전거 여행을 하는데 쏟아지는 햇살은 견디기 힘 들 정도다.
아침에 캠핑장을 출발하기 전에 썬크림을 발랐지만,
이미 빨갛게 탄 살에 다시 햇볕이 닿으니 별 효과도 없는 듯 싶었다.
게다가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등이나 허리에 땀띠로 몇 개 생긴 듯 하다.
이래저래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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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다가 버스 정류소 앞에 멈춰 섰다.
그늘 속에서 잠시 햇살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자판기 음료수를 마시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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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면 자판기에서 자주 뽑아 마시는 음료수가 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콜라인데,
여기서는 '기간한정'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큰 캔 하나를 100엔에 마실 수 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650ml 정도 되는 듯 싶은데,
이 정도 양에 100엔이면 한국보다 싼 편이다.

사실 나는 콜라를 비롯한 탄산음료를 좋아한다.
건강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 더울 때나 갑자기 마시고 싶을 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이미 중독 단계에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가격 때문에 펩시콜라를 마시는데,
일본에서는 자판기에서 이렇게 싼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자판기를 애용한다.
(콜라를 많이 안 마신다면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팹시와 코크는 맛이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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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 콜라보다 좋아하게 된 음료수가 있다.
어젯밤 캠핑장에 설치된 자판기에서도 이미 3개나 사 마셨던 음료수였는데,
페트병에 담긴 레모네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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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도 많이 좋아하긴 하는데,
한국에서는 커피샾에나 가야 마실 수 있어서 자주 못 마셨다.

가격이 좀 비싸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레모네이드를 맘껏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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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조금만 잘 못 찍으면 노출 과다가 돼 버릴 정도로 햇살이 강했고,
그 땡볕 아래로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니까 더욱 더 음료수를 찾게 됐다.
거의 자판기가 보일 때마다 자전거를 멈출 정도였다.

물론 도로 중간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물도 많이 마셨는데,
미지근한 물만 마시다 보면 시원한 자판기 음료가 그리울 때가 많았다.
날씨가 덥다는 핑계로 탄산음료를 엄청나게 마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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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히 제주도에도 길거리 곳곳에 이렇게 자판기가 좀 있으면 좋겠다.
제주도 자전거 여행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햇볕을 피할 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이 물이나 음료수를 사 먹을 만한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긴 내가 어림잡아 생각 해 봐도,
일본처럼 저렇게 외진 곳에도 자판기를 설치해 놓으면 과연 타산이 맞을까 의문스럽긴 하다.
하루 종일 돌아가는 자판기의 전기세를 감당해야 할 텐데, 타산이 맞는 장사일까?
자판기에 사용하는 전기는 싸게 해 준다든지 하는 혜택이 없는 이상 크게 돈이 되진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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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서 웬만한 곳은 그냥 겉모습만 대강 보고 통과했고,
뭔가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 속에 멈춰 서서 안내판 글자를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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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우체국 앞에서 한글로 '우체국'이라고 써 놓은 걸 보고 좀 웃기도 했다.
빨간 우체통이나 POST라는 글자만으로도 충분히 우체국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데
약간 오버랄까, 과잉친절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뜻으로도 보여서 그리 나쁘게 생각되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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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그늘마다 쉬고, 보이는 자판기마다 음료수 마시며
거의 속력을 못 내고 달렸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길을 달리긴 달렸나 보다.

드디어 중요한(?) 삼거리에 도착했다.





382번 국도를 벗어나다



열심히 언덕을 하나 올랐다가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려와 보니,
Shell이라는 주유소를 가운데 둔 삼거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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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보이는 자판기 쪽(오른쪽) 길이 내가 달려온 길인데,
저 길에서 사진 앞쪽으로 나 있는 이쪽 길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382번 국도이다.
Shell이라는 주유소 뒤편으로 나 있는 길(왼쪽 길)은 지방 국도인데,
대마도 동쪽 해안선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이 삼거리의 어느 건물 그늘 아래서 음료수를 마시며 지도를 보며 잠시 생각했다.
어느 쪽으로 갈까.
일단 여기서 결정하면 중간에 바꾸기는 좀 힘들 테고,
택한 길을 따라 곧장 히타카츠까지 가야 할 테니까 약간 고민을 했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부터 382번 국도는 산을 관통하는 길이라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할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기에도 해안선을 따라가면 산으로 가는 것보다는 기복이 덜 할 터였다.
그 대신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은 382번 국도보다 좀 둘러가는 느낌도 들고,
꼬불꼬불한 길도 많고 해서 히타카츠까지는 꽤 먼 거리를 가야 할 듯 싶었다.

약간 망설이긴 했지만 비교적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좀 먼 거리를 둘러 가는 듯해도 이왕이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큰 힘 안 들이고 갈 수 있는 평평한 해안선을 선택한 것이다.
기복이 심하지 않다면 속력도 그만큼 더 낼 수 있으니까 빨리 갈 수도 있겠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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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달려보니 이쪽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대로 길은 평탄했고, 옆으로는 계속 바다가 보여서 탁 트인 느낌이 좋았으니까.
못 가 본 길에 대한 미련은 항상 있게 마련이라 382번 국도는 어땠을까 싶기도 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해안도로를 계속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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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해안도로라곤 해도 항상 바다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여기도 오르막 길이 있고, 터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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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운 날씨에 터널은 좋은 쉼터였다.
밝은 햇살 아래 있다가 터널로 들어가니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눈이 적응할 때까지만 쉬자 한 것이 몇 십 분을 앉아 쉬고 말았다.
대마도 터널엔 사람이나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길도 꽤 넓게 마련 돼 있으니,
이쪽 길 한쪽 구석에 앉아 쉬면 자동차 때문에 위험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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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타고 오르는 어느 오르막 길 가에 드리워진 그늘에 앉아
미리 준비해 간 초코파이와 빵으로 대충 점심을 해결했다.
아침도 못 먹은 상태에서 이런 걸로 밥을 대신하자니 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도시락을 살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식당은 몇 군데 있었는데, 대마도 물가를 생각하니 맘 놓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저녁에 진수성찬을 해 먹지 뭐 하며 대충 요기를 하니, 그것도 먹은거라고 잠이 슬 오기 시작한다.
짐 푼 김에 아예 드러누워 한 숨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늘은 정말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조금 쉬다 일어나야만 했다.
이렇게 되니 여행은 거의 극기훈련에 가까워 지는 듯 하다.
이런 점이 바로 가난한 여행자의 비애라고나 할까.
(사실 물과 음료수를 많이 마셔서 배가 고프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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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니 크고 작은 어촌마을들이 자주 나타났다.
대부분 오징어를 잡아 생활하는 듯 했는데,
낮인데도 더워서 그런지 사람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대마도의 어촌들은 이상할만치 사람 모습도 잘 보이지 않고, 너무 조용했다.
한국에서라면 동네 큰 나무 그늘 아래 모여서 잡담을 하거나,
평상에 둘러 앉아 소일꺼리를 하는 분들이 보일 법도 한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그런 조용함이 너무 낯설고 기이하기까지 했지만,
이 쯤 와서는 오히려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을 한 복판에 있어도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릴 정도의 고요함.
이런 데서 하룻밤 묵어 가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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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해안도로에는 왕복 1차선 밖에 안 되는 좁은 길도 많이 있으므로,
일단은 천천히 달려야 하고, 모퉁이를 돌 때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가끔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갓길로 천천히만 달리면 마음 졸일 것 까진 없다.
워낙 꼬불꼬불한 일차선이라 차들도 다들 천천히 달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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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정원이 있는 마을 자판기 앞에서 쉬고 있는데
한 일본인 청년이 다가와서 자전거 여행을 하냐며 말을 건다.
인상 좋아 보이는 청년이었는데,
자전거 여행에 대한 호기심과 땡볕에 뭔 고생이냐 하는 걱정이 조금 섞인 표정이다.

차 타고 다니면서 몇 명 보기는 했는데, 자전거 여행자에게 직접 말을 한 번 걸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일본인 중에서도 자전거로 대마도를 횡단하는 사람들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모르겠단다.
차 창 너머로 본 여행자들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관심을 보인 만큼, 이 청년도 자전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 자전거가 비싸고 특수한 자전거냐고 묻길래,
일본 돈으로 1만 엔 정도 하는 거라고 하니까 많이 놀란다.
여기서는 그 돈으론 제일 안 좋은 거라도 새 자전거를 사기는 힘들단다.


이 청년도 내가 피고 있는 담배에 관심을 보였는데,
한 개비 펴 보라고 주니까 자기 담배도 한 개비 건네 준다.
반응은 예상했던 데로 좀 독하다는 표정이다.

대마도에서 내가 본 일본인들은 모두 니코틴과 타르가 1.0mg인 순한 담배를 폈다.
상표는 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모두 그 담배만 폈는데,
내 담배는 그렇게 순한 담배만 피는 사람들에겐 좀 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아무 생각 없이 산 담배 껍데기에 고양이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기 폭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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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어촌 마을을 몇 개 더 지나니 '사카'라는 제법 큰 마을이 나왔다.
제법 크다고는 해도 '읍' 정도 크기의 마을이었는데, 안내 책자엔 이렇게 소개 돼 있다.

'사카는 무로마치 시대 때 도부가 설치되었다. (1408~1468)
그 동안에 조선과의 관계를 이용해 약탈짓을 행하였다.'
구체적으로 더 어떤 내용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서 좀 갑갑했지만,
그렇다고 유적들을 구경하러 온 것도 아니니 큰 상관은 없었다.


사카의 엔쓰지(원통사)라는 곳을 우연히 지나다가 발견했는데,
그리 발길을 끌 만 한 곳이 되질 못해 문 앞에서 대충 구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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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를 지나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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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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