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자전거 여행
(2005. 08. 02 ~ 2005. 08. 05)


3. 이즈하라 -> 아소 베이 파크 (2)



아소 베이 파크에서 캠핑



아소 베이 파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자전거로 달리기 좋은 평평한 직선 도로 한쪽 길가에 있었기에,
안내판을 못 봤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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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캠프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다섯 시 쯤이었다.
대마도의 캠프장 관리소는 대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늦게 도착하면 관리소에 사람이 없어서 캠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므로,
일찌감치 캠프장에 도착해서 야영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날도 조금만 더 달리면 '신화의 마을'에 있는 캠프장까지 갈 수 있었을 텐데,
저녁 6시 안에 가기는 불가능해서 이 캠프장에 묵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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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장 약도를 그려 놓은 안내판 옆에 있는 길로 조금 올라가니 관리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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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 안에는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실 아저씨라 하기엔 나이가 좀 드셨고, 그렇다고 할아버지라 부르긴 좀 뭣한,
그 중간쯤 되는 연령으로 추측되는데, 그냥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하겠다.

관리소 아저씨는 웃으며 어서 오라고 반겨 주면서 일단 관리소 안으로 들어오란다.
해가 서산으로 좀 기울긴 했지만, 아직 햇살이 완전히 사그라들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어디서 왔느냐, 집이 어디냐, 언제 대마도에 도착했느냐 등을 물으셨는데,
'어제'라는 단어가 생각 나지 않아 머뭇거리자 책장에서 책을 한 권 꺼내셨다.
그 책은 한국인 관광객이 왔을 때를 대비해서 손님과 대화 중 사용할 법한
내용들이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로 쓰여져 있었다.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크게 느낀 점은, 한자라도 좀 쓸 줄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필담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한자보다는 영어를 중요시하는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는 핑계를 대긴 하지만,
간단한 한자도 대충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은 모른다는 것이 좀 부끄럽다.
그러면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한자 공부를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손짓 발짓 해 가며, 어제 도착했는데 폭우 때문에 고생했다는 둥의 얘기를 했다.
아저씨의 맞장구를 들으면서 이 날, 일본어로 어제, 비, 고생, 바람 등의 단어를 배울 수 있었다.
물론 글자로 쓰라면 못 쓰지만, 그래도 하루에 일본어 단어 몇 개를 배웠으니 보람찬 하루였다. ^^


잡담을 하다가 슬슬 중요한 금전 얘기가 나왔다.
관리소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요금표를 보여 주셨는데, 텐트 대여료가 5600엔 이었다.
텐트를 빌리면 취사용 도구도 함께 빌려 준다는데, 정말 놀랄 만 한 가격이었다.
그래도 텐트가 꽤 큰 것이니, 여럿이서 여행을 다닌다면 괜찮은 선택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는 텐트도 있고, 취사도구도 있으므로 '텐트 설치 장소 대여료'만 지불했다.
나처럼 텐트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장소 대여만 하면 되는데, 가격은 1800엔 이었다.
아... 이 가격이면 한국에선 모텔에서 묵을 수 있는데... ㅠ.ㅠ


돈을 지불하니 텐트 칠 장소로 데려다 주겠다며 따라오란다.
걸어서 갈 줄 알았더니, 아저씨가 차에 올라 타시는 걸 보고 나도 자전거를 탔다.
캠핑 장소는 관리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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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한 번 오르락 내리락 하더니,
한 눈에 보기도 캠핑장소구나 싶은 넓은 터가 나왔다.
산으로 빙 둘러싸여서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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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은 대강 축구 경기장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에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잔디밭 바깥쪽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잔디밭 위에는 나무로 된 사각형의 마루 같은 것이 놓여 있는데,
그 나무판 위에 텐트를 치는 거였다.

사진을 보면 나무판 위에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는데,
그 의자와 탁자는 잔디밭 위로 내려 놓고 사용한다.

텐트 칠 수 있는 장소는 열 너덧 개 정도 되는데,
내가 갔을 때는 텐트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고 나머지는 다 빈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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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이것이 바로 여기서 빌려주는 텐트이다.
남자 네 명이 들어가도 공간이 남을 정도의 넓이.

어제 자전거를 타고 온 청년 네 명이 저 텐트에서 잤다고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저 텐트를 치느라 고생 좀 했다며 웃으신다.

그 네 명도 한국인이라는데,
오늘 이곳으로 다시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고 해서 저렇게 텐트를 그냥 놔 뒀다고 하신다.
밤 9시 쯤 까지 기다려보고 안 오면 그냥 퇴근할 생각이란다.
이렇게 미리 말을 해 두면 밤 9시까지 기다려 주기도 하나보다.



어쨌든 이제 내 텐트를 쳐야 할 터인데, 문제가 하나 있다.
텐트를 쳐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 ㅡ.ㅡ;
이 텐트는 침낭하고 함께 남대문에서 오만 원 주고 산 텐트인데,
전시용으로 사용하다가 파는 거라서 싸게 산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텐트 안에는 설명서도 없었다.

뭐, 조그만 텐트 하나 치는데 그렇게 어렵기야 하겠어? 대강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작고 간단한 텐트이긴 하지만, 처음 쳐 보는 거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서 아저씨도 함께 텐트를 잡고 씨름을 했는데,
이렇게 저렇게 온갖 방법을 써 가며 근 한 시간을 보냈다. ㅠ.ㅠ

게다가 바람도 많이 불어서 가뜩이나 힘든 설치작업이 더 힘들었다.
급기야는 '그냥 여기서 빌려주는 텐트를 사용하고 말자'라는 포기 상태에 이르렀는데,
아저씨께서 오히려 '돈 아깝잖아, 조금만 더 해 보자'라고 하셨다. ㅡ.ㅡ;;;

그래, 돈이다 돈!
이거 설치 못하면 생돈 몇 만원이 날아가는 거다!
역시 금전적인 생각이 머리에 박히면 작업에 열정을 띄게 되나 보다.
이미 이 궁리 저 궁리로 한 시간을 보내고, 또 삼십 분 정도를 작업한 끝에
결국에는 텐트 설치에 성공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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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설치한 게 맞는지 어떤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거의 90%는 맞게 설치한 것 같다.
'제대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잘 수는 있을 것 같지?'
라며 아저씨도 기뻐하셨다.

나중에 다시 와 볼 테니 씻고 좀 쉬라는 말을 남기고 아저씨는 다시 관리소로 가셨다.
나는 젖은 침낭을 펴 말렸고, 가방에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텐트 설치가 빨리 끝나면 자전거를 끌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볼 생각이었지만,
지금 자전거를 끌고 나가봤자 곧 해가 질 것 같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그럼 이제 식사나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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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즈하라 시내에서 산 일본 라면들을 꺼냈고, 버너와 냄비로 물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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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에 계란을 넣고 끓이라고 돼 있는 라면을 먼저 먹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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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좀 잘 못 잡아서 국물이 거의 없게 돼 버렸는데,
이 라면은 면발이 컵라면 비슷한 것이 먹을 만 했다.
계란을 넣으면 좀 더 맛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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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먹은 것 소화도 시킬 겸, 잠시 이 근처를 빙 둘러 보았다.
캠프장의 화장실 너머엔 간이 선착장이 있었고,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밤에 저 멀리로 배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이긴 했는데,
이 선착장에 들어오는 배는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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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언덕을 올라가다가 해 지는 것이 보여서 다시 내려왔다.
해가 지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듯 해서다.



다시 캠핑장으로 내려오니 대마도 주민인 듯한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놀고 있었다.
공놀이도 하고, 잔디밭 주변으로 달리기를 하기도 했는데,
저녁에 자주 이곳에 와서 그렇게 놀다 가나보다.

캠핑장 앞쪽에 서 있는 2층 건물에는 화장실 겸 샤워장이 있는데,
샤워장은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한 넓이였고, 뜨거운 물은 안 나왔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심장마비 걸리는 줄 알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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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면서 오늘 입었던 옷을 빨았다.
땀에 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 빨래를 해야만 했다.



샤워실을 나오니 이미 해가 져서 깜깜했고, 놀던 사람들은 차를 타고 떠났다.

빨래를 주변 나뭇가지와 탁자 등에 얼기설기 널어놓고,
어제 비에 젖어 냄새가 나려고 하는 가방도 대충 물에 적셔서 널었다.

신발도 대충 빨아서 바람 잘 통하는 곳에 세워 두었는데,
슬리퍼 같은 게 없어서 아스팔트 쪽으로 맨발로 걸어 다녔다.
이래서 여름 여행에서는 샌들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운동화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것저것 하고 있는 사이, 관리실 아저씨가 오셨다.
벌써 아홉 시가 된 것이다.
저쪽 텐트 사람들은 아직 안 온 걸로 봐서는 오늘은 안 올 것 같다며, 이제 퇴근하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지나 않을까 약간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또 이렇게 됐다.

아저씨는 캠핑장 안의 시설들에 불을 켰다.
화장실, 취사대 가로등 등에 한꺼번에 불이 켜 졌는데,
이 캠핑장은 오히려 낮보다 밤에 분위기가 더 좋았다.
너무 어두워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어둠이 아니라 호젓하고 조용한 어둠이었다.
우렁이 각시가 나타나 밤 새도록 별 얘기라도 해 줄 듯한 그런 편안한 어둠.

어쨌든 아저씨는 퇴근하셨고,
그 날 밤 이 넓은 캠핑장엔 나 혼자만 쓸쓸히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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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데, 텐트 안에 들어가니 땀이 흐른다.
아무래도 텐트가 바람 방향에 제대로 못 맞춰진 것 같다.
하기야 텐트 친 것만 해도 다행인 마당에 무슨 텐트 방향까지 따질까.

더워서 텐트 밖에 나와 있다가 문득 출출함이 느껴져서 취사장으로 갔다.
야식 겸 내일 아침밥 겸 또 라면을 끓여 먹었다. ㅡ.ㅡ;
아까 것과는 다른 빨간 포장 라면이었는데, 이번 라면은 맛이 없었다.
여전히 물 양을 가늠하기 힘들어서 또 국물 없는 라면이 되어 버렸고.
(일본 라면은 보기엔 작아 보이는데, 끓이면 생각보다 양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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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고 나서 캠핑장 주변을 걷기도 하고,
드러누워 별을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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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베이 파크의 아침



아침이 밝았다.
텐트 안이 후텁지근해서 잠을 깨니 벌써 아침이었다.
방충망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불긴 하는데,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다.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되리라는 것은 뻔 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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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뜨겁긴 했지만, 이 캠핑장 자체가 워낙 바람이 많은 곳이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텐트 안에서 덜 깬 눈으로 밖을 내다 보는 것도 꽤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잔디밭 위에 텐트 쳐 놓고 나른하게 누워 바깥을 내다 보는 한가로움.


아소 베이 파크에서의 캠핑이 내 생애 최초의 캠핑이었다.
여행을 꽤 다니는 편이지만, 여태껏 텐트 치고 야영할 기회는 한 번도 없었는데,
대마도 땅에서 그 첫경험을 한 것이다.

첫 캠핑의 느낌은, 밤 하늘의 수많은 별과 아침의 한가로움이었다.
텅 빈 방 안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또 시작하는 것과는 굉장히 달랐다.
아무래도 캠핑 매니아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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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치는 장소 앞에는 전기로 켜지는 등이 하나씩 있다.
어젯밤에는 그냥 불만 켜지는 등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 충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도 있었다.

야영을 하면 충전을 못 할 테니 하루 정도는 민박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시설이 있다면 대마도에선 캠핑만으로 전 일정을 소화할 수도 있을 듯 싶다.
디카때문에 충전에 많이 신경 쓰는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시설이다.



어제 널어둔 빨래들은 이미 잘 말라 있었다.
운동화가 아직 덜 말랐지만 어쩔 수 없이 신을 수 밖에.
빨래를 걷고, 짐들을 다시 가방에 챙겨 넣고 텐트를 걷었다.

라면봉지 등의 쓰레기들은 비닐봉지에 넣어 자전거에 실었다.
캠핑장 안에는 이런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없어서 나중에 버릴 생각이었다.
그 나중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떠나는 날 터미널에선 버릴 수 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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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걷은 텐트를 접어서 넣으려고 할 때, 관리소 아저씨가 오셨다.
오늘은 다른 아저씨 한 분과 함께 오셨는데,
어제 걷지 않은 그 대여용 텐트를 두 분이 철거하기 시작했다.


관리소 아저씨가 출근했으니 시간은 오전 아홉 시 쯤 됐을 테다.
오늘 일정을 생각한다면 좀 늦은 감이 있는 출발이다.
서둘러 짐을 자전거에 싣고,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캠핑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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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태양 아래 푸른 잔디는 반짝반짝 빛났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 보니 어제 보았던 별들이 떠오른다.

내 첫 캠핑지여서 애착이 더 가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시설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괜찮은 축에 속하는 캠핑장이었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은 캠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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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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