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자전거 여행
(2005. 08. 02 ~ 2005. 08. 05)


7. 미우다 해수욕장 -> 히타카츠 -> 부산




한국 보고 상처 입다



간밤에 오징어 잡이를 갔다 온 어선들은 포구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사람들도 아마 대충 정리를 해 놓고 잠을 자거나 하고 있을 테다.
그래서 어촌은 보통의 시골마을과 달리 새벽에 조용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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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마도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민숙(民宿)이라는 간판을 내 건 집이 간간히 보인다.
어디서든 좀 쉬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민숙집을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나는 하룻밤 숙박비로 거의 육만 원에 달하는 돈을 지불하기 아까웠을 뿐이다.
거의 아무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이쪽 길 어느 구석진 풀밭에도 민숙이 보였다.
간밤에 제대로 못 잔 잠을 저런 곳에서 마저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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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가운데를 관통하는 좁은 도로를 지날 때 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늘도 맑고 쾌청한 하늘이 펼쳐졌다. 구름이라도 좀 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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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정도 밖에 안 되는 좁은 국도를 지나 마을을 벗어나니 공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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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배까지 공터에 버려 놨다. 모두 녹슬고 부숴진 폐품이었다.
어떻게 처리하려고 일단 모아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버려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썩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어디 마실 나가시는지, 할머니 한 분이 아침 인사를 건네셨다.
낯선 여행자에게 스스럼 없이 인사를 하는 게 처음엔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서양 사람들이라면 원래 그런 것 알고 있고 좀 겪어 봤으니 그렇다 쳐도,
동양인들이 이렇게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건 대마도에서 처음 봤다.

낯선 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으니,
대마도 풍경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까지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누그러지고 편해져서, 좋은 경치가 더 좋아 보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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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에 조그만 해수욕장들이 많기도 하다.
대부분 백사장 규모도 작고, 백사장도 고운 모래가 아니라 좀 거친 모래가 많지만,
다들 나름대로 이름도 가지고 있는 해수욕장들이었다.
해수욕장마다 그늘과 벤치가 마련돼 있어서 쉬어 가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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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아침 시간이었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긴 했지만, 해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 해수욕장에 올 때 까지만 해도 땀도 거의 안 났는데,
여기를 떠나기 시작하면서 땀 범벅이 돼 버렸다.
간밤에 조금 수그러들었던 팔에 난 땀띠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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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북쪽 끝 해안절벽 위에 있는 한국전망대에 도착했다.
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고,
길 가엔 그늘을 드리울 만한 큰 나무도 거의 없어서 힘든 길이었다.
맨날 보는 게 한국땅이고, 오늘 돌아갈 곳도 한국인데
이렇게 힘든 길을 올라 전망대에서 또 한국땅을 볼 필요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굳이 한국땅을 보자는 것보다는 어떤 곳인지 구경하는 데 의의를 두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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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지나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에 한국전망대가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이 먼저 보이고, 그 너머로 조그만 전망대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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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앞에는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가 있는데,
에도 시대 때 우호 증진을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조선인과 일본인 112명이
조난 당한 것을 추도하기 위한 비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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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망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쪽 옆에는 무궁화 꽃밭이 있다.
전망대 아래쪽으로는 앉아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조그맣게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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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내부는 어린이 대공원에 있는 자료실 같은 분위기.
바다 쪽 통로에는 동전을 넣고 보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 날은 부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멀리 까맣게 보이는 것이 부산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대충 둘러보고 전망대 밑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오토바이 여행자 한 명이 구경 왔다.
몇 시인지 물어보니 아홉 시쯤 됐다.
한국인들은 대마도에서 오토바이 여행을 잘 안 하는 것 같던데,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일본인들은 몇몇 있었다.
오토바이도 대마도에선 나름대로 괜찮은 여행 수단인 듯 싶었다.

전망대는 아침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발길이 뜸한 곳인지,
한 삼십 분 넘게 있었는데 구경하러 온 사람은 딱 두 사람 뿐이었다.
모두 오토바이 여행자였고, 모두 일본인이었다.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일부러 북쪽 끄트머리 쪽으로 빙 돌아 히타카츠로 가는 길.
한국전망대는 그 길의 절반 쯤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서너 시간 쯤 걸렸으니,
다시 부지런히 가면 히타카츠까지 오후 한 시 전에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다.
중간에 너무 쉬거나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다소 꽉 짜여진 스케줄이 돼 버렸다.
어쨌든 부지런히 가야 하니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전망대를 내려가는 길에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급경사에 급커브 길이라 좀 불안하긴 했지만,
이런 길 한 두 번 다니는 것도 아닌데 하며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쏟아진 햇살 때문인지, 잠시 졸았던 건지,
잠이 부족해서 정신이 없었던 건지, 그 모든 요건이 다 갖춰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자전거가 가드레일에 부딪혀서 넘어지고 말았다.
내리막길에서 넘어졌으니 팔, 다리, 손바닥이 모두 까지고 말았고,
특히 왼쪽 팔꿈치 쪽이 심하게 다쳐서 피가 철철 흘러 넘쳤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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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가 발길이 뜸한 곳임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길 가에 널브러진 짐만 대충 챙기고 자전거는 그대로 놔 둔 채 그늘로 갔다.
물로 대강 씻고, 수건으로 지혈을 했지만 피가 잘 멎질 않았다.

하필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에 이런 사고가 일어나다니.
아무래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잠은 제대로 자야 할 듯 싶다.
잠이 모자라서 정신이 멍해지니 순간 대처 능력이 확실히 많이 떨어진다.

지혈한다고 수건을 팔꿈치에 대고 쪼그리고 앉은 그 사이에도 꾸벅꾸벅 졸았으니
무슨 정신으로 자전거를 몰고 다녔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다.
아직도 그 때 상처의 흉터가 팔꿈치에 남아 있는데,
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라 생각된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 다치고 끝난 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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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상처의 행운(?)을 안고 한국전망대를 내려왔다.
역시 나에게 한국은 시련의 땅이구나 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한국 땅을 보고 나서 상처를 입다니.
한국은 내가 자기를 보는 게 싫었던 걸까? ㅠ.ㅠ
그래서 내가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잠이 모자란다.
히타카츠에 도착하면 터미널 안에서라도 잠을 좀 자야지 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잠이 많이 모자란다.
빨리 '부산에 도착했다'라고 쓰고 잠 좀 자고 싶다. ㅠ.ㅠ
(별 중요하지도 않은 여행기에 벌써 며칠을 밤샘하다시피 하고 있는 중이다.)

팔꿈치 쪽 상처는 피가 고이도록 놔두고 다니면 딱지가 자연스레 딱지가 앉을 터였다.
그런데 손바닥이 긁힌 것은 좀 문제였다.
그나마 왼손만 긁고 오른손은 안 다친 게 다행스럽긴 했지만,
피가 자꾸 나서 수건을 손에다 둘둘 감고 자전거를 타야만 했다.
상처 때문에 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가서 브레이크 잡기도 좀 힘들었다.
이러다가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배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천천히 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제 정말 장 보러 가는 아줌마의 자전거처럼 천천히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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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았고,
중간에 382번 국도를 타고 조금 가니까 낯익은 길이 나왔다.
바로 어제 히타카츠를 들어갈 때 갔던 길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처음 가 보는 길과는 달리,
이미 아는 길은 예측할 수 있어서 편하고 안전하다.
한 번 갔던 길인데도 아는 길을 보게 되니 마음이 놓였다.
아는 길을 따라, 어제 한 번 와봐서 이제는 아는 도시가 된 히타카츠로 들어갔다.





배편이 없어졌다



히타카츠에 도착할 때 쯤 햇살이 또 뜨겁게 내려 쬐기 시작했다.
그래도 오늘은 땡볕에 자전거를 달리지 않아도 되니 천만다행이다.
오늘도 이 따가운 햇살 아래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탄다면,
내 피부는 정말 흑인처럼 까매져서 다시는 희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색깔도 색깔이지만, 땀띠가 온 몸을 뒤덮을지도 모른다, 그건 정말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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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이대로 히타카츠항 터미널을 찾아가 배표를 받고,
배 출발 시간까지 기다리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면 끝이다.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아니,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터미널 안 대합실에서라도
쉴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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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히타카츠항 터미널이 어느 건물인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어제 봤던 건물 중에 바닷가에 있고, 큰 건물부터 찾아 보았다.
어제까지는 옥상에 큰 탑이 서 있는 건물이 터미널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 저건 NTT 전화 회사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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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건물 맞은편에 있는 허름한 2층 건물이 바로 터미널이었다.
국제항 터미널이라고 하기엔 많이 초라해 보이는데,
참고로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선 배도 이 터미널로 들어온다.
(히타카츠항 터미널도 마찬가지로 국제선 국내선 모두 한 건물에서 처리한다.)

터미널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TV 하나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고, 터미널 안 매점은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음료수 자판기와 아이스크림 자판기가 있긴 했지만,
어젯밤 西泊의 어느 길거리 자판기가 꿀꺽 삼켜버린 동전이 내 마지막 동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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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1층엔 일본 국내선 배표를 판매하는 매표소가 있고,
그 옆엔 관광 안내소가 있었는데, 두 쪽 다 사람이 없다.
매표소 앞에 종이를 보니, 점심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선 점심시간엔 거의 파업을 하나보다. ㅡ.ㅡ;
아무리 점심시간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일을 해도 저런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싶어 부럽기도 했다.

국제선 배편 문의나 배표 발권은 2층 사무실로 올라가라고 적힌 것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계단 바로 앞에는 식당 겸 카페 하나가 있고, 그 맞은편에 사무실이 있었다.
한국 가는 배표를 발권하는 사무실이 맞기는 맞는데, 사무실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예매할 때 받은 배표 교환권에는 분명히 출발 두 시간 전부터 와서
교환권을 배표로 발권하라고 적혀 있었는데,
내가 예약한 배의 출발시간은 두 시 쯤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남)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점심 잘 먹고 와라 하며 터미널에서 기다렸다.
어차피 두 시에 떠날 거라면 굳이 여기서 비싼 점심을 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배가 좀 고팠지만 참기로 했다.

터미널 1층에서 안과 밖을 들락거리며 시간 때우기를 했다.
터미널 안은 그늘이 있지만 바람이 통하지 않아 좀 더웠다.



한 시쯤 됐을 때 터미널 안 매점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가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음료수를 사 마셨다.
매점 문을 연 이유가 부산에서 배가 도착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점 문을 열고 십분 쯤 지나니까 배가 도착했고,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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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도착하기 바로 전 쯤에 터미널 앞은 각종 버스와 차량으로 붐비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터미널 앞에 서 있는 버스에 가서 바로 몸을 실었다.
대부분 미리 예약하고 오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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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한 때부터 마지막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지만,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관광버스나 승합차에 올라탔고,
개중에는 터미널 앞으로 몰고 온 렌트카에 바로 올라 타고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손님 태울 요량으로 서 있던 택시 아저씨가 불쌍해 보였다. ㅡ.ㅡ;

놀러 간다고 특별히 차려 입은 것 같은,
방금 배에서 내린 한국 여자들의 헐벗은 옷차림 행렬이 대충 끝 날 무렵,
이 쯤이면 사무실에도 사람이 왔겠지 싶어 사무실로 올라가 봤다.

생각대로 사무실엔 드디어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 두 시 배는 취소됐단다.
원래는 하루에 한 번 씩만 오가는 배편인데,
예매할 때는 8월 성수기 특별 편으로 두 시와 다섯 시에 각각 운항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탑승자가 별로 없었는지 다섯 시 반 배편만 운항한단다.
괜히 기다렸잖아. ㅠ.ㅠ


시간이 갑자기 남아 돌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다섯 시까지 굶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히즈하라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먹을 만한 게 있나 하고 기웃거렸지만,
사람 없는 텅 빈 식당을 들어가기도 좀 그렇고 특별히 끌리는 곳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L-VALUE 수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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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도시락과 음료수를 사서 자전거에 싣고,
어제 보아 두었던 해수욕장으로 갔다.





니시도마리 해수욕장에서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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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카츠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西泊 이라는 곳에서 미우다 해수욕장 쪽으로 뻗은 길을 가다 보면 옆으로 조그만 해수욕장 하나가 보인다.
여기가 바로 '니시도마리(西泊) 해수욕장'이다.

어젯밤에는 무시하고 그냥 지나쳤지만,
히타카츠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배 출발 시간까지 시간 때우기는 안성맞춤이었다.


백사장 넓이나 바닷물 상태 등으로 봤을 때, 미우다 해수욕장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캠프장이 없다는 이유에서일까, 이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마도 사람들만 몇 명 와서 쉬다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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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 안쪽에는 샤워실 겸 화장실이 있고,
건물 안쪽에는 햇볕을 피해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여기가 직장인지, 자원봉사인지, 공공근로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책 읽다가 가끔 한 번씩 쓰레기를 줍는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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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말고는 멀찌감치 벤치 쪽에서 놀고 있는 한 가족이 있을 뿐이었다.
건물 너머 절벽 위쪽으로 '국민숙사' 건물이 보였다.
아마 저 곳 창문으로도 이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겠지.
백사장이나 바닷물은 굉장히 깨끗했고, 사람이 없어서 조용하기까지 하니 더욱 좋았다.

이 화장실 겸 샤워실 건물 밖 그늘 아래 앉아서 아까 산 도시락을 먹었다.
좀 부실하게 보이긴 해도 오 천 원 짜리 도시락이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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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닷가를 며칠이나 보고 다녔는데 바다에 발은 한 번 담가 봐야 하지 않겠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생각해보니 3박 4일 동안 대마도 여행을 하면서 바다엔 발도 못 담갔다.

그래서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바닷가로 다가갔는데,
이미 한 낮에 가까운 시간이라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라 그런지
백사장 끝에서 바닷가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가 맨발로 걸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냥 그 정도로 뜨거웠다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그래도 최대한 운동화를 젖게 하지 않으려고 맨발로 바다까지 갔는데,
바닷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닥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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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맑아서 그런지, 햇살이 뜨거워서 그런지 물은 미지근했다.
몇 분 동안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로 바닷가를 좀 거닐다가 다시 그늘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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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로 돌아와 해수욕장을 관리하는 청년에게 시간을 물어, 카메라 시계를 맞춰 놓았다.
네 시까지 히타카츠항 터미널에 도착하면 되니까,
한 시간 반 쯤 되는 시간을 이 해수욕장 그늘에 멍하니 앉아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늘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으니 졸음이 쏟아져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조는 중간에 몇몇 사람들이 해수욕장을 찾아 왔다가 나가는 것을 틈틈이 봤다.
청년의 어머니인 듯한 아주머니가 밥을 가지고 와서 청년과 먹는 것도 봤고,
어떤 아저씨가 와서 청년에게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도 봤다.
근처 마을에 사는 듯한 고등학생 쯤 돼 보이는 여자애 둘이 바다에 들어가 놀기 시작했고,
내가 오기 전부터 놀고 있던 가족들이 차를 타고 떠나는 것도 봤다.

그러다가 등을 비스듬히 건물 벽에 기대로 진짜로 잠이 들어 버렸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스르르 눈을 떴더니 글쎄...
아까 바다에 들어가 놀던 여고생(?) 두 명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잠이 다 깨지 않은 상태라 제대로 알아 듣진 못했는데,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말 하는 것 같았다. ㅡ.ㅡ;;;
죽을 만큼 힘 들기는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죽진 않았어 라는 표시로 미소를 보내 주었다.
걔네들도 따라서 웃어 주었다.
(비명을 지르며 넘어가지 않은 걸 보니, 난 살인미소는 안 되나 보다. ㅡ.ㅡ;)

고맙게도 걔들이 날 깨워 준 시간이 마침 네 시 쯤이었다.
느긋하게 세수도 하고 발도 씻고 수건에 물도 적시고 해서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자전거를 땡볕에 놔 뒀더니 안장까지 뜨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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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자전거를 타고 니시도마리 해수욕장을 나왔다.
오는 길에 자세히 보니, 아까 내가 쉬던 건물 뒤쪽으로 좁은 길이 나 있었는데,
옆에 나 있는 차도를 따라 빙 돌지 않고 바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길을 발견했어도 이미 해수욕장을 벗어난 다음에야 알게 돼서 득을 못 봤다.

니시도마리 해수욕장 바로 아랫쪽 마을에서 아까 그 여고생 중 한 명을 다시 보게 됐다.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작별.
그냥 손만 흔들기 뭣해서 한 마디 외쳤다.
'날 살려줘서 고마워~!'
제대로 알아 들었는지, 그 애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부산으로



히타카츠항 터미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모두 다섯 시 반에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모인 사람들이었고,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덕분에 매점과 매점 옆 자판기가 불이 났고,
급기야 음료수 자판기는 거의 모든 버튼에 매진이라고 표시 돼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L-VALUE에 가서 싼 음료수 사 먹으면 되니까 별 상관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예매권과 여권을 보여주고 배표를 받았다.
이제 출발시간을 기다려 배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너무 일찍 왔는지 출발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아까는 두 시간도 기다렸는데 한 시간 정도야 뭐.

터미널 1층 바깥으로 나가 바깥바람을 쐬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배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거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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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근처에는 워낙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되놔서
정박해 있는 해상자위대 배가 많은 사람들의 사진 촬영 장소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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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배에 탑승하라는 소리가 들렸고, 여행객들이 줄을 서서 탑승하기 시작했다.
터미널이 워낙 좁아서 그랬는지 터미널에 서 있던 사람들은 꽤 많아 보였는데,
막상 배에 탑승하고 보니 오늘도 좌석은 반 이상 비어 있다.
(배의 좌석이 너무 작고 좁게 붙어있어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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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끌고 타야 했기 때문에 거의 맨 마지막으로 탑승했고,
자리에 앉자 마자 배 엔진 소리가 들리면서 항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유난히도 따가웠던 대마도의 햇볕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했던 순간들이 평생 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 곳의 맑고 푸른 자연과 함께, 내 첫 자전거 여행지로서
대마도는 아마 이후에도 내 인생에 특별한 의미로 자리잡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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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책자와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얻게 해 준 대마도 부산사무소와
자전거를 싣고 내리고 씻는 데 도움을 주신 대아해운 승무원 아저씨들,
그리고 여행 하면서 우연히 만나 여러모로 도움을 주셨던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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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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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트엔데이 2007.12.11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지로 대마도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흥미롭네요. 가고싶은 생각이 마구 드는데요 ㅋ

    • 빈꿈 2007.12.11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름에 며칠 정도 짧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다면, 저는 대마도를 꼭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꼭 한 번 가 보세요, 의외로(?) 괜찮은 곳이거든요 ^^

  2. 행복소방 2009.05.14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월 15일(2박3일 일정), 대마도 가기전 좋은 정보 보고 갑니다. 빈꿈님의 글을 보니 두려웠던것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지하철 자전거 가지고타기. 일본어라고는 인사말 정도 밖에 안된는 수준... 후후 무모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3. Stolee 2010.11.14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마도 자전거 포스팅을 한 두 번을 읽은 것 같아요 ㅎㅎ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꼭 도전해보고프네요. 홀로요.
    너무도 생생하고 레알하군요^^

    • 빈꿈 2010.11.16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마도 여행기는 꾸준히 관심가지고 들어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시 한 번 읽기 편하게 정리를 해 보려고 마음은 먹고 있는데... 마음만 먹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