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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fe in Dolby
    사진일기 2009. 1. 14. 02:47
    하루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생각들을 하고, 수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삶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섞여 이것저것 뒤범벅이 되어 있어 오히려 무의미해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일상, 일상이다.



    지친 하루의 한 복판에서 도무지 무기력함에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을 때, 의외로 미술관은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는 곳이 될 때도 있다. 무슨 유명한 작품들이나, 대단한 작가의 전시회가 아니라도 좋다. 익숙한 예쁜 그림이 아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괴물같은 작품들만 줄줄이 놓여 내 머릿속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뒤집어 놓아도 좋다. 이 세상을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그 누군가의 색다른 시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일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때때로 미술관은 전시된 작품들보다는 미술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미술관을 찾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테다.



    어느 바람 많이 불던 날, 따스한 햇볕이 바람에 쉽게 날리며 겨울을 알리던, 희미한 한 낮의 미술관. (희미한 한 낮의 미술관/2008/서울시립미술관 사당 분관)



    어쩌면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를 선택해서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실 빤히 보고 선택한 것이지만,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기 자신조차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이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것인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일상도 꾸역꾸역 참아가면서 살아갈 만 한 건지도 모른다. (디오라마/2008/명동)



    겨울은 의외로 빨리 찾아왔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곧 들이닥칠 동장군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없었다. 이제 푸른 눈밭 한 가운데 서 있지만, 나는 역시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올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잔혹했고, 난 이미 포기해버렸다. 될 데로 되라지. 살아남으면 다시 봄을 맞을 테니까.



    좁은 길이었다. 우연히 옷깃을 스친 한 신사분이 좋은 곳이 있다며, 이왕 밥 먹을 거라면 자기가 가는 곳으로 가잔다. 어차피 밥 먹을 생각이니까, 어차피 딱히 갈 곳도 없었으니까,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이상한 만남에 끌려 별 생각 없이 그 노신사를 따라갔다. 거기서 우연히 만나게 된 시인들. 오랜 세월을 하나의 목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 만남을 가진다는 것, 지긋한 나이에도 그런 모임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다는 것, 일회용 만남이 판치는 세상에선 참 신기한 일이었다. 많이 부러운 일이었다. 많이 즐거운 일이었다. 많이 따뜻한 일이었다. (시인의 골목/2008/인사동)
     


    나는 너에게 닿고 싶다. 방향도 알고 있고, 멀지도 않았으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길에 작은 장애물 하나가 있었을 뿐. 그런 식으로 언제나 내 마음은 내 마음에 부딪혀 되돌아 나오곤 했다. 사실 이젠 그게 더 편하다. 다른 어떤 것에 부딪힌다면 나는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철철, 피를 흘리다가 쓰러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사실은 너의 마음에 닿고 싶었다. 방향도 모르고, 가깝지도 않았으며, 그리 쉬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길에 작은 장애물 하나가 있었을 뿐. 그런 식으로 언제나 내 마음은 네 마음에 부딪혀 되돌아 나오곤 했다. 사실 이젠 그게 더 편하다. 내 마음에 부딪힌다면 나는 그 아픔에 철철, 눈물을 흘리다가 쓰러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정말로, 정말로 말 하자면, 나는 이미 너에게 닿아 있다. 너는 길을 헤매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너를 보고 있었던 거였다. 피를 흘리며, 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있던 그 순간에도, 나는 손길 한 번 건내주지 않았던 너를 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언제나 너에게 닿.아. 있었다.

    (너에게 닿고 싶다/2008/종로)



    좀 더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의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여행자로써의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지만. 일상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여행자로써의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힘이 들어 더이상 그런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나는 힘이 들어 더이상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었다. 나는 숨었고. 나는 숨겼고. 나는 숨겨졌다. 일상이란 그토록 무시무시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도저히. 나는 계속 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일상적인 여행/2008/서울)



    나는 여행이 봉사활동이 되는 것은 찬성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이 여행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 그래서 여행과 봉사는 함께 하더라도, 봉사와 여행은 함께 하지 않을 테다. 그것은 마치 곰이니까 겨울잠을 자는 것과, 겨울이니까 곰이 잠을 자는 것의 차이와 같다.

    마찬가지로, 일상이 여행이 되는 것은 찬성한다. 하지만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은 반대한다. 그건 마치, 놀기 위해 나가는 것과 나갔으니 노는 것의 차이와 같다. 여행의 잡음을 제거하면 일상이 되지만, 일상의 잡음을 제거하면 여행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일상을 돌비 시스템으로 꾸며 보자. Life in Dol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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