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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하루
    잡다구리 2009. 2. 22. 18:20

    한동안 대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은둔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였다. 휴일날, 특별한 일 없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공원에 나갔다.

    엑스포 과학공원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를 건너면 갈 수 있는 그 공원에는, 한밭수목원이 있었고, 대전시립미술관이 있었다. 그 공원 이름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딱히 별 볼 것 없는 빈 공터에 항상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환한 빛 한쪽 구석 그림자 속에서 나는 그들의 모습들을 지켜보며 해바라기를 하는 시간을 나는 즐겼다.   




    그 공원은 가족이나 연인들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수많은 꼬마들이 각종 탈 것 들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종류도 전동 자동차를 비롯해서, 인라인 스케이트,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 킥보드 등 아주 다양했다. 모두 주말이 되면 공원 입구에서 어디선가 나타난 상인들이 돈을 받고 빌려주는 기구들이었다.

    꼬마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전거나 인라인 등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외발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었다. 거의 매주 여럿이 어울려 나와서, 많이 다쳐가면서도 땀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이 참 즐거워 보였다.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대전만의 독특한 분위기여서 더욱 끌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낀 대전은, 두 개 파(?)로 나누어져 있다. 돈 벌기 위해 억지로 내려와 있는 이방인 부류들과, 그 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눌러 사는 대전 토박이들.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대전 토박이들은 다소 여유가 있고, 느긋하며, 인정도 있는 편이었다. 대전에서 주로 도움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대전 토박이들이어서 그들에 대한 인상이 더욱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대전이 단지 직장을 위한 일터인 이방인들의 경우, 주로 서울 쪽 사람들인데, 대도시의 삭막함과 각박함, 조급함 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여유로움과 여백들 속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대전은 단지 지겹고, 재미없고, 단조로운 곳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주로 실망하고 당했던 사람들이 그 쪽 부류들이다.

    금요일만 되면 서울 집으로 쌩하니 올라가버리는 사람들이 대전 지역 경제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평일날 밥이라도 사 먹으니 도움이 되긴 되겠지라고 막연히 추측 했었다. 하지만 주말에도 (서울 쪽에 비해서)썰렁하기만 한 대전의 중심가들을 보면,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인심 좋은 고장의 물만 흐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하긴 나 역시도 대전에서 일 하며 잠시 살았지만, 대전은 나와 별 상관 없는 곳이다라는 생각이 강했으니 남들을 탓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단지, 그저, 내 고장이 아니니까 별 애착도 못 느끼는 상태에서, 그냥 돈만 벌어서 먹고 살다가 언제든 서울로 갈 기회가 생기면 떠나면 된다라는 분위기 속에서, 대전도 서울처럼 삭막한 도시가 되어 가지는 않을까라는 쓸 데 없는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쩌다 약속이 생기면 꼭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사실 서울 시내에서도 약속을 위해 이동하려면 한 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대전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으니까 시간 면에서는 그리 부담 되는 편은 아니었다. 차비가 좀 비쌌고, 멀리 움직이기 귀찮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기차역보다는 버스터미널이 가까워서 정말 문지방이 닳도록 터미널을 드나들었다. 대전, 특히 유성구 쪽에는 너무 많아서 헷깔릴 정도로 간이 시외버스 터미널들이 많이 있었다.  얼마나 뜨내기들이 많은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나 역시도 그 뜨내기들 중 일부로, 기회만 있으면 서울을 오갔던 피곤했던 나날들.

    사실 서울도 그리 애착이 가거나 좋은 감정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먹고 산다면 서울이 낫다, 혼자 놀기도 편하고.


    신촌의 어느 카페. 다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거의 얼굴만 보고 온다는 정도의 의미만을 부여할 수 밖에 없는 모임들. 그래도 서울에 살 때보다 더욱 부지런하게 약속장소를 오갔던 것은, 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내려가는 차편은 서울 쪽의 약속 장소에 따라 그때그때 바꼈다. 버스터미널 쪽이 가까우면 버스, 기차역 쪽이 가까우면 기차.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여행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디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부유물.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약간의 위안을 얻고, 또 축 늘어진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기에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아무 의미 없었던, 내 인생의 잃어버린 한 조각들. 결국 남은 것도 없이, 건진 것도 없이, 그렇게 스르르 사라져갔다.


    지나고 나면 아쉬운 법. 가끔은 생각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동네, 노을은 볼 만 했으니까. 미술관에 못 가 본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가 볼 날이 있겠지. 지금은 기억 저 편에 쑤셔 박아 넣어 두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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