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아는 사람들만 알고, 널리 홍보하려는 노력도 별로 없었던 '소프트웨어 개발자 신고 제도'를 나름대로 세상에 알리고 나서 별다른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별로 대수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고 생각되면 굳이 남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쓸 데 없이 아침에 일찍 깨서, 갑자기 생각난 이유로 이것에 관해 간단히 적어 본다.


뒤에 나올 주절주절 긴 글들 읽기 귀찮을테니, 딱 한 마디로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금 현 상황에서는 굳이 등록할 필요 없이, 어떻게 돼 가나 지켜보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에 덧붙이자면, 인문대학 졸업반 학생들도 다 따는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나 미리 하나 따 두라는 것 정도.


아... 할 말 요약해서 다 해 버리니 김 빠져서 더 하기 싫은데... ㅡㅅㅡ;;;

어쨌든 아래에 펼쳐질 글들은 다 구질구질한 부연설명들이다. 정 심심하면 읽으시든지.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이 글은 극히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시라는 것.




*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 관련 내용

이미 아실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사이트들을 통해 일단 개요를 파악하시기 바란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http://www.sw.or.kr/)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 - 정부가 SW 기술자 경력 관리 한단다
IT를 갉아먹지 마라! -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 반대




* 누구를 위하여 제도를 굴리나
 
내용을 아시는 분들은 대체로 공감하실테다, 이건 일단 개발자들을 위하는 제도는 아니다. 물론 이 제도를 통해 일부 이득을 보는 사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개인 입장에선 대체로 손해를 봤으면 봤지 이득 볼 건 별로 없다.

그렇다면 개발자들을 고용하는 회사는 이익을 볼까? 그것도 아닌 듯 하다. 괜히 관리하는 내용만 많아지고, 입찰할 때 첨부하는 문서나 좀 늘어날 뿐이지, 딱히 이득 볼 일은 없다. 오히려 업계 쪽도 손해 보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망한 회사의 경력은 80%만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망할 것 같은 회사는 웬만하면 안 가는 분위기가 생겨날 수 있는 거다. 월급을 엄청 많이 준다면 모를까, 망하면 경력의 80%밖에 인정 안 되는데 그런 데를 왜 가.

중소기업 참 잘 살겠수. 소프트웨어 개발 쪽 중소기업 관계자 여러분, 구직자 탓 하지 마세요.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어쩌라고.

(소프트웨어 개발 쪽으로 취업 준비하는 사람들은 골머리 터지겠다. 가뜩이나 취업도 안 되는데, 이젠 망할만 한 회사는 가면 안 된다. 경력 깎이니까. 예전에는 그래도 비전을 보고 시간투자 해 볼 수도 있었는데, 이제 상황 바꼈다. 비전따위 보지 말고, 안 망할 회사 가는 거다.)



자, 개인도 이득 보는 게 없고, 업계도 딱히 이득 보는 게 없다. 그렇다면 발주처는 이득을 볼까?

발주하는 곳도 딱히 이 제도를 통해 이득보는 건 없다(이득 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에도 경력자 속여서 적어넣고, 이름만 빌려와서 적어넣고 했는데, 이런 제도 생겼다고 그게 없어질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다니. 그렇게 순수하게 세상이 굴러간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아름답고 살기좋은 강산이 되고야 말았으리라.

중간에 중단되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프로젝트 수 좀 줄여보고자 애 좀 쓴 거 같은데, 그래봤자 이런 제도를 통해서는 나아질 것 하나도 없다는 거다. 준비할 서류가 좀 늘어나는 것 뿐, 프로젝트 따 가는 놈들은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고 바뀌는 것 하나도 없다.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나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개인도, 회사도, 발주처도 별 이득 볼 게 없는 이 제도는 이른바 '전시행정'정도 되겠고,
그 와중에 객관적으로 이득 보는 곳이 한 군데 있으니, 그 곳은 바로 '협회' 되시겠다.
(뭐 그렇다고 아주 아니꼽다고 말 하는 건 아니다. 이득 보는 곳이 한 군데나 있다는 걸 말 하는 것 뿐이다.)



참고로,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던데, 이 협회(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위에는 '지식경제부'가 있다. 이 협회는 지식경제부에서 지정한 경력관리기관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곳일 뿐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욕을 들어야 한다면 '지식경제부 소프트웨어정책과'가 그 대상이 되겠다.

(이 부분도 좀 웃기다. 작은 정부 만든다고 정통부 없애놓고는, 이런 제도 시행하니까 외주 비슷하게 줘 버리네. 그럼 근원적으로 인원 줄인 효과가 없잖아. 그저 공무원을 쫓아낸 효과 정도 밖에는. 뭔 쇼냐 이건.)




* 근본적인 한계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에 관한 만화를 포스팅하고 나서, 댓글로 제보(?)가 있었다. 건축 쪽 제도와 아주 비슷하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조사를 좀 해 봤더니, 그냥 냅다 복사-붙여넣기 신공을 부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조금 다른 거라면, 건축 쪽은 경력신고 하는 곳이 두 군데라는 것. 건축설계사무실은 건축사협회에서 경력신고를 하고, 그외 다른 건축분야 종사자들은 건축기술인협회에서 관리한다. 이직 할 경우는 그대로 이관이 가능하다. 그걸 이 제도에서는 한 군데로 몰아 넣었다는 것 정도가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태생적 한계가 있으니 소프트웨어 업계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 아닌가. 물론 반영된다 하더라도 이 틀에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한계점이 있지만.

뭐 나름 고민해서 창의적인 제도를 만든 거라고 말 할 지도 모르니까, 일단 건축 쪽 이야기는 제외하자. 그래도 문제점을 지적하기엔 전혀 무리가 없으니까.



이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술 능력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라고 보는 데 있다.

이건 마치 유령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언젠가는 되겠지, 그리고 어느 정도는 되겠지. 하지만 현재 과학기술로 명확하게 입증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다. SW 개발 능력이라는 거, 어느 정도는 경력하고 비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더 말하면 입 아프다. 현업에 종사하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테니, 탁상행정 하시는 분들은 현업 종사자들한테 물어보시면 된다.



핵심은 이거다. 프로젝트 실패율을 낮추고, 들이는 돈 좀 적게 하고 싶다면 이렇게 개인들의 능력을 측정해서 등록하게 해 봤자 별 소용 없다는 것. 수주업체들을 평가하라는 말이다, 개인들에게 족쇄를 채우지 말고!




* 시대착오적인 발상

대체 개인의 경력을 공공기관에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이 시대 상황에 맞는 건가. 이게 무슨 공산당같은 짓인가.

개별 주체들이 필요에 의해 스스로 모여서 만든다면 모를까, 정부기관에서 이런 걸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 아닌가.

이 기회에 이런 제도를 모든 산업분야에 다 적용시켜라 그냥. 노점상도 경력 등록제 시행해서 자리 줄 때 활용하고, 국회의원도 경력 등록제 하자, 어떠냐.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 경력들을 경력제로 해서, 웬만하면 이직 못하게 만들자. 그럼 가업도 생기고, 한평생 한 직업으로 먹고사는 명인도 나오고. 얼씨구 좋구나~ 




* 그 외 구질구질한 문제점들

- 자격증 없으면 경력 50% 인정, 폐업한 회사 경력은 80% 인정.

이것만 읽어도 뒷골 땡기면서 열 받을 사람들 많다. 그런데 이게 또 합체도 된다.
50%에다가 80%가 더해질 수도 있다. 뭔 소린고 하니,

자격증 없을 때 다녔던 회사가 망했다면, 그 회사에서 일 했던 경력은 40%만 인정된다는 거다.

이 즘 되면 욕이 절로 나온다. 경력이 무슨 시장바닥 나물값이냐, 깎고 또 깎게.


- 개인이 알아서 스스로

대체 돈을 왜 줘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돈 받아 처 먹으면 조직에서 좀 알아서 서비스 해 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개인이 일일이 시간 쪼개가며, 여기저기 다녀가며 꼭 그렇게 굴러야겠나.
치쳐서 포기할 때 즘 스스로 경력을 깎겠지, 그럼 개발 노임 적게 들고. 좋겠수.



파고들면 문제점들이 새록새록 감자알처럼 캐 나오는데, 별로 다 지적하고 싶지도 않다. 대충하고 넘어가자.




* 우리의 대처 방안

이미 소식 접하신 분들은 지금 즘 대충 다 대처방안을 정하셨을 테다.
자발적으로 하신 분들도 있을 테고, 회사에서 시켜서 억지로 신고 하신 분들도 있을 테고, 그냥 두고 보는 분들도 계실 테고.

아무래도 SI 업체 쪽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을 테다. 앞으로 필요하게 될 테니까.
회사에서 하라고 시켰다면 뭐, 선택권 따윈 애초에 없는 거고. 그냥 하시면 된다.
사실 그냥 신고 해 버리는 게 제일 마음은 편하다. 그러니 신고하라고 한다고 해서 회사 관두시지는 마시기 바란다.



문제는 그 나머지인데, 내 의견은 이렇다.

"어떻게 돼 가나 그냥 지켜보고만 있으면 된다"라는 것.



만약 내가 다시 SI 업체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를 SI 업체에서 고용한다는 것은 내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니까,
내가 경력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회사가 다 알아서 해 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프로젝트 관련 서류에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이 들어가거나, 아는 업체 등을 통해 내 경력이 조작되어 신고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초급으로 그냥 신고하게 해 놓고 별도의 연봉을 측정해 주거나.

어떤 형태든 가능하다.
서류뭉치에 경력자들 명단 적어 넣는 거, 옛날에도 조작했었고, 앞으로도 조작 될 거다. 그건 기술자 등록 제도가 아니라 그 할배가 와도 못 막는다. 모든 회사를 일일이 다 모니터링 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분들은 괜히 손해보면서 등록 할 필요 없다고 본다.
물론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정도는 따 놓는 게 나중을 위해 좋을 듯 하다.



이 부분은 특히나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각자 알아서 잘 판단하시기 바란다.
나중에 갑자기 '등록 안 된 개발자들은 키보드 만지지 못 하게 하는 법'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 제도 개선 방안?

수수료 좀 낮추고, 등록하는 데 혜택 좀 주고, 어쩌고 저쩌고 찌질하게 수정해 봤자, 기본 틀에서 바뀌는 것 없다. 이건 그냥 폐기되는 게 가장 좋다.

그나마 '등록제'인 것에 감사할 정도다. 왜, '면허제'로 하지 그랬어. 개발자 면허 없는 자가 개발 툴 열면, 불법 개발 행위로 감방에 처 넣는, 그런 제도를 만들었으면 애초에 찍소리도 못 했을 거잖아. 차이는 별로 없는데 좀 더 강하지 못했던 게야. 안타깝군. (혼자서 중얼중얼)

차라리 그냥 소프트웨어 개발자 국가고시를 시행해라. 사시, 행시 패스에 버금가는 기득권이나 좀 누려보자.



만약, '우린 정말 개발자들을 위해 좋은 일 하려고 만든 건데, 왜 몰라주니'라고 끝까지 주장하고 싶다면, 이런 정책 한 번 펴 보시라. 그럼 나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지하고 밀어줄께.

어떤 거냐면, 이 제도를 통해 등록된 개발자들은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에 표기된 노임단가를 '확실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거다.

즉,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에 표시된 만큼의 노임을 주지 않는 회사는, 지식경제부나 협회에서 불이익을 준다거나, 입찰을 못 하게 막는다거나 해서 강제력을 행사하는 거다.



내, 정말,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에 적힌 그대로만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지금 있는 경력 모두 다 제로로 하고, '초급기술자'부터 다시 시작해도 불만 없다. 진짜다.

'초급기술자'는 4년제 대학 졸업자거나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취득자가 자동적으로 될 수 있는, 비교적 낮은 등급이다. 그런데 이 '초급기술자'의 2009년도 노임단가가 얼마인 줄 아는가. 자그마치 하루에 140,198원 이다.

한 달 20일 근무한다 쳐도, 월급으로 환산하면 280만 원이다. 초급기술자가 말이다!

2009년도 적용 SW기술자 노임단가 공표(http://www.sw.or.kr/intro/view.asp?masteridx=1&idx=3314)



공공 프로젝트 같은 데선 분명히 이 노임단가 표를 기준으로 인건비를 준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만큼의 노임 받지 못한다. 중간에 어디선가 없어지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걸 좀 고치란 말이다. 이것 말고도 부풀려서 작성하는 서류들 엄청 많다. 일단 연구실 쪽 부터 대대적인 조사로 한 번 후려 쳐 봐라. 줄줄이 나올 거다.




* 나가는 말

아침부터 별 쓰잘데기 없는 것에 신경 썼더니 머리아프다. 이 문제에 관한 토론은 거부한다. 쓰레기의 활용법을 토론해 봤자, 쓰레기는 버리는 것 뿐이니까.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