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는데 나 혼자 뒷북 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내 주위 친구들 중에는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길래, 대충 알려 보자고 그려 보았음. 그런데 어찌도 문제가 많은지, 하다보니 스크롤 압박을 느낄 만큼 내용이 늘어나버렸다.

어쨌든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는 이미 현재 시행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홈페이지에 가서 알아보면 된다, 라고 말 하고 싶지만 가 봤자 자세한 사항 따위 없다.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 시스템'에 접속해서 닥치고 신고나 하라는 식이다.

기술자 신고 시스템이라니... 주변의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을 신고하세요~ 국번없이 1818. 뭐 이런 늬앙스 같다.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색출해서 신고하는 것처럼. 기술자 경력 신고 시스템이라고 해도 될 것을... 이것도 다 말도 안 되는 제도에 열 받아서 한없이 삐딱한 시선을 가지게 된 덕이다.



할 말이 많지만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르는 분들을 위해 글로 다시 한 번 이 제도에 대해 정리 해 보겠다.

일단 기본 개념은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의 경력 사항을 정부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자신의 경력을 등록 해야 한다는 것.

등록 안 하면 어떻게 되는가? 강제적인 조항은 '아직' 없다. 그런데 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이니 만큼, 뻔하지 않은가, 앞으로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인력사항 적어 넣을 때, 여기서 발급하는 경력 인증서를 첨부하도록 하지 않겠는가.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없으므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정부에서 개인들의 경력을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고, 하필이면 또 IT업종, 거기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경력만 정부에서 관리하겠다는 거. 다른 쪽으로 생각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지 않는가! 

아... 흥분하려고 한다, 가라앉히고, 이 제도에서 등록 절차를 일단 문제 삼아서 짚어 보자.



1. 자신의 경력을 등록 하려면 '근무경력확인서'와 '기술경력확인서' 두가지 문서가 필요하다.

즉, 1년 전이건, 10년 전이건, 근무했던 회사를 찾아가서 이 두가지 문서에 '회사 직인'을 찍어서 발급 받아 가야 경력으로 인정 해 준다. (이 문서는 기술자 신고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예전에 인터넷 붐이 한창일 때 회사를 다녔던 사람들이다. 그 당시 회사들 중 지금 살아 남아 있는 회사가 몇 개나 되는가. 나같이 중소기업만 다닌 사람들이라면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미 망한 회사를 무슨 수로 찾아가서 '직인'을 찍어 오는가. 회사 사장 도장은 인정 안 해 주니까, 사장 만나봐야 소용도 없다.

그러니까, 망한 회사 다닌 놈 경력은 인정 안 해주겠다는 말이다.



2. 프리랜서로 일 한 사람들은 '근로계약서'만 받아 오면 경력 인정 해 주겠단다.

이것도 수 년 지난 프로젝트들을 일일이 다 뒤져내서, 해당 회사들 다 찾아다니며 서류 받아 와야 한다는 거다. 근로계약서 따위 몇 년 동안 보관해 놓을 사람이 어디 있나, 나만 다 버린건가?

아니 그보다도, 사실 나는, 프리랜서로 일 하면서 근로계약서 써 본 적 한 번도 없다. 그냥 구두 계약 하고, 일 해 주고, 돈 받고, 프로젝트 완성하면 끝. 그게 전부였다. 이제 와서 3년 전에 일 했던 프로젝트 근로계약서 써 주세요 해야 하나? 나만 그렇게 일 한 건가?



3. 프리랜서로 일 한 사람들은 일 한 기간만 경력으로 인정 해 준다 한다.

즉, 5개월 일 하고 2개월 쉬고, 5개월 일 했다면, 1년 경력이 안 되는 거다.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형평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안 다녀 본 것도 아니고, 솔직히 까놓고 말 하자, 회사 다니면서 일 안 하는 날도 많지 않은가. 휴가도 있고, 교육도 있고, 프로젝트 없어서 쉴 때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도 회사에서 일 한 사람들은 근무기간 전체를 경력으로 쳐 주면서, 프리랜서는 딱 일 한 기간만 경력으로 쳐 주겠단다. 완전 행정편의주의다.

최소한 프리랜서들도 회사원들처럼 최소한 연월차는 쳐 줘야 하지 않는가. 일 년에 약 20일. 그리고 일 안 하고 쉬는 시간 더해서 30일. 그래서 프리랜서로 1년 일 했으면 1개월을 경력으로 더 쳐 줘도 되지 않겠는가.



4. 이건 정말 제일 황당한 건데, 국가 공인 '자격증' 없이 일 한 기간동안의 경력은 50%만 인정 해 주겠단다.

즉,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없이 4년 일 한 사람은, 경력 2년으로 쳐 준다는 뜻이다. 그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 자격증을 땄건, 오라클 자격증을 땄건, 시스코 자격증을 땄건, 자바 자격증을 땄건 아무 소용 없다.

똑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했어도, 자격증 딴 상태에서 일 했으면 경력 온전히 다 쳐 주고, 자격증 없는 상태에서 일 했으면 경력의 반만 쳐 준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 자격증 없이 일 했으면 일을 반만 했다는 건지?

자격증 없이 일 하다가 중간에 자격증을 딴 경우라면, 자격증 없이 일 한 기간은 반만 인정받고, 자격증 딴 후에 일 한 기간은 온전히 인정 받는다고 한다. 아주 전형적인 책상머리 정책 아닌가!
 
자, 이제부터 이 바닥 일 하려면 정보처리기사/기능사 자격증부터 따고 시작하는 거다.



5. SW 기술자는 모두 평등하다?

여러분들이 OS를 개발했든, 검색엔진을 만들었든, HTML 코딩만 했든, 게임 기획만 했든 상관 없다. 그냥 소프트웨어 기술자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했든 경력 3년 차, 4년 차, 이런 딱지만 붙게 된다.

웹 디자이너 여러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놀기삼아 HTML 코딩 하시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경력 인정 받으세요~


* 붙임: 이 제도 아래서 디자이너가 개발자 되는 방법

1. 디자인 하면서 틈틈이 table, button, div 정도의 html을 코딩 한다.
2. 나도 html 코딩 했다고 회사에 말하고, 경력 적어서 직인 찍는다.
   (명백한 사실이므로 회사는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3. 소프트웨어 기술자 경력제도를 통해 경력자 등록 한다.
   (협회가 제시한 기술분류:  sw 구현 -> web Coder (html, xml 등))
4. sw 기술자로 경력 인정 받는다. 끝.
   (전문 UI 개발자나 웹디자이너로 html 조금 만졌거나 상관없이 
   똑같은 기간이면 똑같은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6. 통장 사본, 국민연금 납부내역, 세금 납부 내역 이딴 거 안 먹어 준다. 받아 오라는 문서만 인정!

이건 1번과 겹치는 부분이지만,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접근 해 보겠다.

세금 납부 내역 같은 거 안 본단다. 그럼 우리 돈 조금씩 모아서 페이퍼 컴퍼니 하나 만들자. 그래서 경력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력 100년이든, 1000년 이든 막 찍어 주는거다. 그럼 다 인정 해 준다. 회사 직인만 찍으면.

나중에 무슨 블랙리스트를 관리한다고 하는데, 회사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 걸릴 정도로 멍청하게 일 하는 줄 아는가보다.

안 들키게 살짝살짝 하면, 결국 빽 있는 놈은 어느날 갑자기 경력 마구마구 쌓이는 거다. 그것도 정식으로 인증받아서!

결국 정직하게 살아가는 놈들만 또 바보 되는 거고. 또 문제는 터질 거고. 또 더 빡세지겠지.



7. 게다가 돈도 받는단다. 정부가 장사하나?

초기 등록비 3만 원.
연간 유지비 1만 원 (매년 내야 함).
경력증명서 한 번 떼는 데 5천 원.

경력 증명 100군데 하면, 100장 떼는 데 50만 원?!!! (돈 없으면 취직도 못 하겠네?)



대체, 뭐 하자는 건가!!!



내 생각에, 이 제도 도입의 가장 큰 원인은 정부 프로젝트에서 기술자들 단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 아니면 정부 차원에서 이렇게 발 벗고 나설 이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 해서, 나 역시도 아주 예전에 경력 부풀려서 내 이름 올라간 적 있다 (잡아가도 공소시효 지났다, 그래서 밝힌다 ㅡㅅㅡ;). 그런데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다. 위에서 그렇게 써 내라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그 때만 해도 학생으로 아르바이트 하는 풋내기였는데 찍소리나 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공공연히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정부 프로젝트가 눈 먼 돈이라는 거. 한 두번 해 본 사람은 다들 안다. 기술자 경력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분류되고, 그 분류에 따라 노임 단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십중팔구 서류 작성할 때 다들 경력 부풀려서 올렸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노임 단가 부풀려서 받으면 그 돈, 일 하는 사람들이 받아 가는 줄 아나? 천만의 말씀. 저어기~ 어딘가에서 다 떼 먹고, 실제로 노가다 뛰는 사람들은 애초에 계약된 돈만 받을 뿐이다.

이런 일은 일반 업체들보다도, 학교나 공공 연구소 등에서 더 많이 행해졌다. 잡아 족칠려면 그런 기관과 회사를 잡아 족쳐야지, 왜 죄 없는 개인 기술자들을 잡아 족치는 건가! 맨날 힘 없고, 빽 없는 놈들만 동네 북인가!



그래, 그런 안 좋은 사회 통념과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제도를 도입했다고 치자. 그러면 일단 조사부터 철저히 해서, 현실성 있게, 제대로 된 제도를 만들어 내 놓고 시행해야 할 것 아닌가. 은근슬쩍 소리 소문 없이 내 놓고는 바로 집행 들어가면 그 뿐인가.

내 주변에 실력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 바닥을 떠났거나, 이 나라를 떠났거나, 혹은 지금 떠나려고들 하고 있다. 그러니까, 안 건드려도 이 바닥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거다. 살리려고 노력해도 시원찮은 꺼져가는 불씨인데, 남은 불씨까지 다시 보고 비벼 끌 심산인가.

인터넷 하는 놈들 맨날 맘에 안 드는 소리나 해 대는데 그 중심에 IT 인력들이 있더라, 뭐 그런건가? 이제 또 인터넷 종량제 얘기 나오려나? 이번 정부 들어서고 이공계 살리겠다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온 것과도 관련 짓는다면 너무 억지인가?

덴장... 더 하면 쓸 데 없는 말까지 나와서 미네르기 파를 일으킬까봐 여기서 그냥 급 마무리 하겠다.

유구무언이다. 이제 키보드 치던 손에 삽자루 들어야 겠구나!



p.s.
정치인 경력 관리 데이터베이스 같은 거 안 만드나? 블로그 같은 데서 이름에 링크 걸고, 링크 클릭만 하면 그 사람이 옛날에 뭘 했었는지 주르륵 기록들이 다 나오게 하는 거. 사람 기억력이 한계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필요할 것 같은데.

p.s.2
나 사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공사판 노가다도 뛰었었다. 불과 1년 전에도. 그러니까 나 미워하지 마세효~ 언제든 삽자루 들 수 있어효~ ;ㅁ; (이게 바로 소프트웨어 프리랜서 기술자의 현 주소)

p.s.3
나는 기술자 등록 안 한다! 조만간 등록 거부 배너라도 만들어서 배포하리라! (시간 나면 ㅡㅅㅡ;)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등록 하실 분들은 하세요. 2009년 7월 31일 까지는 한시적으로 최초 경력 등록 수수료 3만 원을 면제 해 준다고 합니다. (아이쿠, 선심 쓰셨네~)



p.s.4
시간이 좀 지나면서 이 제도에도 약간씩 변경사항이 생기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협회'에서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약간 변경된 사항들로 약간 변경된 만화를 그려 봤으니 참고하세요;

IT를 갉아먹지 마라! - 소프트웨어 기술자 신고제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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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