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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사진일기 2010. 10. 13. 13:29







    *

    핫초코와 브라우니의 달콤한 향기가 아직 눈에 아른거리는 늦은 밤,
    푸른빛의 레몬같이 따스하고 편안한 카페 불빛을 뒤로하고 올라탄 지하철.

    이미 막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전철 안은 승객이 별로 없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졸거나, 신문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각자 나름대로 하루를 마감하며 조용한 귀가길에 올라 있었다.



    그때 정차한 어떤 역에서 들어온, 술냄새가 확 풍기는 두 남자.
    어깨동무를 했지만 단순한 어깨동무라기보다는,
    서로서로 뒤엉켜서 보듬어 안고 들어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모습.

    들어올 때부터 조잘거리며 낮은 웃음을 웃던 그 둘은,
    승객이 없는 텅 빈 길쭉한 의자에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고,
    거의 포개앉다시피 딱 붙어 앉았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낮게 속삭이며 즐거워했다.



    *

    대화중에도 그들의 손은 상대방의 몸 곳곳을 끊임없이 갈구했는데,
    어깨, 무릎, 허벅지 등은 물론이고, 뺨과 머리와 목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한 쪽은 수줍은 타입이었지만, 한 쪽은 밝고 쾌활한 타입인 듯 했다.
    주로 한 쪽이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다른 한 쪽은 수줍게 받아주는 모습.

    어떻게 보면 스킨쉽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술에 취해 그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감출 수가 없었다.

    서로서로 말을 할 때, 지긋이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던 그 눈빛.
    마치 입으로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 수 있다는 것 처럼,
    그들은 오래오래 나즈막이 서로의 눈에 눈을 마주대고 있었다.



    *

    사랑. 사랑이었다.
    누가 어떻게 보든 알 수 있는 그 눈빛의 따스함은, 사랑이었다.
    그것은 분명히, 세상 누구라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사랑이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는 것처럼 구석구석 탐색하는 그 눈빛,
    조금이라도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싶어서 떼지 못하는 그 눈길,
    행여나 놓칠새라 잠시 돌린 시선마저 안타깝게 따라가는 그 시선.



    하지만 그 시선 한켠에 숨어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즐겁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행복하지만 눈물을 감출 수는 없는,
    그런 아스라한 앨리스블루 빛깔의 희미한 무언가가 그 속에 있었다.

    라벤더일까, 허니듀일까, 아니면 화이트스모크 혹은 고스트화이트?

    그들의 색깔은 회색과 블루와 핑크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갔다.
    전철이 달리고 또 달려서 정거장을 지나고 또 지날수록,
    그들의 빛깔은 더욱 더 떨렸고, 더욱 더 강렬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들의 사랑은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구나.



    *

    사랑에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 이전에,
    용기와, 자신감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
    없어도 상관은 없지만, 있으면 더욱 굳건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것.



    그들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도 어려운 마당에,
    싸워야 할 수많은 사람과, 상황, 그리고 세상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개인의 자격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벽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좌절시켰을 텐데.



    그래서 이제 끝으로 가는가.
    그래서 이제 서로의 손을 놓으려 하는가.
    그래서 이제 그 마지막을 애닲은 손길로 어루만지려는가.
    그러면서도 아직 애절한 그 끈을 놓지 못해,
    저리도 간절히, 간절히, 서로의 눈길을 갈구하는가.



    *

    거의 텅 비다시피 한, 몇 안되는 사람들마저도
    못볼 것 봤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던 그 심야의 차량에서
    그들의 애정행각은 지탄받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사랑만큼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그 애절한 눈빛의 대화만큼은
    내가 보았던 그들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아무쪼록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어졌으면 한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누군가의 눈길을 애절하게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아쉬움에 애간장이 녹아드는 깊은 밤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라면,
    혹은 이제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체념하고 돌아서 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어떤 상황이든
    사랑마저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라면,
    세상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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