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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꼰대가 되어가는가
    잡다구리 2011. 1. 3. 02:29





    얼마전 인터넷 한쪽 구석에서는 '대전 지하철 패륜녀' 사건이 잠시 반짝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사람 별로 없는 지하철에 한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핸드폰 카메라로 그녀를 막 찍었다. 찍지 말라고 하자 그 노인은,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게 잘 한 짓이냐며 화를 내고 욕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일반적으로 노약자석이라 생각하는 끄트머리 작은 공간에 앉은 것이 아니라, 차량 중간에 위치한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당연히 노약자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앉아있었던 그녀는,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도 노약자석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고,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의 내용들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듯 갑론을박이었다. 그 노인이 잘못했다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녀도 잘 한 것 없다는 내용도 그에 버금갈 정도로 많았으며, 사회적 현상, 지하철 회사의 무관심, 노령화 현상 등에 대해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 글 이전에, 최근 새로 개통한 경춘선 전철에서도 이 비슷한 갈등이 표출된 적 있었다. 물론 경춘선 전철에 대한 글들은, 과연 이 전철이 효용성이 있는 건가를 주로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이런 글들도 적지 않게 올라와 있었다. 무임승차 노인들이 나들이로 경춘선을 대거 이용하는 바람에, 출퇴근이나 일을 위해 이용하는 젊은이들은 정작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내내 서서 가야만 한다는 내용.

    최근들어 은근히 이런 류의 갈등이 심심치 않게 한번씩 나오고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과 젊은이들 간의 갈등 말이다. 어른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은 아름다운 한국의 예절이라는 것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그 와중에 밉상스런 깡패같은 노인들이 많이 있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급기야는, 무임승차 연령 65세가 과연 적절한가, 지금의 무임승차 제도에 헛점이 많다는 이야기들도 슬슬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이제 정말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앞으로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이런 현상을 보면서 노령화 사회로 가는 올바른 윤리의식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주제넘은 짓이고 일단 생각했던 것 중 하나를 풀어보겠다. 우리가 어른이라는 입장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지난 선거 때, 오프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온라인에서 만큼은 ㅎ당을 뽑으면 안 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그 와중에 ㅎ당을 지지하는 광고에 나온 한 젊은이는 인격모독에 가까운 비난을 받기도 했고, ㅎ당을 지지한다고 발표한 대학 학생회들도 많은 욕을 들어 먹어야만 했다. 게다가 ㅎ당을 지지하는 대학생들이 꽤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보기엔 참 당연한 일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는 한탄과 함께, 저런 것들은 그냥 투표 하지 말고 놀러나 가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세상이 왜 이리 지랄같이 돌아가냐고 넋두리 했으며, 이 나라에 미래는 없느냐며 자조섞인 한숨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과연 맞는 일인지, 그럴 자격이 우리에게 있었는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였다.
     


    소위 노무현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으며, 어떤 것들을 추구했는지 알고 또 동조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의 과거 경험과 지식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런데 그 때 대학생들에게, 혹은 지금 대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과거 10여년 동안을 소위 민주세력이라는 사람들의 집권 하에서 생활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에 걸친 기간이다. 십 년이면 대략 초중고교 정도를 모두 다니고 졸업할 정도의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우리가 보기엔 참 많은 것들이 개선되었다. 콩나물 시루같은 학급상황도 개선되었고, 남녀공학도 많아졌으며, 학교 시설도 좋아졌고, 공부하는 환경 또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시선일 뿐이다.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그러했다. 부모님들이 보기에는 우리는 참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는 셈이었다. 삼십리 재너머 논밭길을 걸어서 등하교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삐걱거리는 책걸상은 차츰 좋은 것들로 교체되었고, 밥도 굶지 않았으며, 교과서 또한 다들 가지고 있었다. 책을 보자기에 싸 다니지 않아도 됐고, 전기 아껴야 한다고 밤에 공부를 못 하게 하지도 않았다. 교련도 없어졌으며, 구타도 많이 사라졌고, 참고서 또한 알록달록하게 좋아졌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의 학교생활은 낙원임에 틀림 없었다. 우리가 지금 볼 때 초중고생들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대다수 초중고생들은 아직 학교생활을 지옥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대학을 중요시하고, 남들과 경쟁하며, 성적 지상주의 세태는 별반 바뀐 것이 없다. 한마디로, 그들 또한 우리과 다름 없는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준사회인이 되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살인적인 등록금과 생활비였다. 입으로만 떠드는 원칙과는 달리, 현실은 원칙적이기는 커녕 더럽기만 하다. 최저임금은 먼 나라 이야기고, 일자리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나마 뼈 빠지게 일 해도 등록금에 생활비 대기는 벅찬 일이고.

    빈익빈 부익부는 우리 어릴 때보다 더욱 심해졌다. 있는 집 자식들이 자가용 몰고 등하교 할 때에, 나는 왜 어두컴컴한 가게에서 서빙이나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을 키웠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공부해서 장학금 타면 되지 않냐고 속 모르는 소리나 해대고, 그 와중에 주위 친구들은 스펙쌓기를 하면서 치열한 경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도태되면 완전히 무너진다는 위기감과 함께, 도무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현실의 깊은 터널 속에서 그들은 한탄에 한탄을 거듭했다. 



    그들에게 민주세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민주고 정의고 나발이고, 내 밥그릇에 밥이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랴. 당장 오늘 굶어 죽어도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흘 굶고 담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옛말도 있듯, 내 밥그릇에 밥이 없는데 무슨 얼어죽을 다 같이 사는 세상이란 말이냐.

    그나마 '꼰대'들은 어떤 형태로든 직장을 다니며 그럭저럭 먹고 살 만 하니까 그런 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미래는 어두운 밤하늘 같은 것. 당장 먹고 살 것도 없지만, 앞날을 생각하면 더욱 아득하기만 했다.

    아마도 그런 반발심리도 있었을 테고, 뭔가 좀 바꿔 보자는 생각도 있었을 테다. 그리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에 혹해서 넘어간 순진무구함도 한 몫 했을테고. 물론 나름대로 그 청사진들을 보면서, 아 정말 경제가 조금은 살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을 테지.

    결국 우리가 옳지 않았느냐라는 연륜을 앞세운 그것봐라 식의 조롱은 일단 접기로 하자. 나 역시도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할지 참 난감해서 애둘러 가고 있긴 한데, 지금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 핵심을 말 하자면, 우리는 어떻게 나쁜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얼마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여기서도 갑론을박이 있었고, 또 이야기를 꺼내면 찬반이 갈라질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노인들의 무임승차 제도를 바꾸고 그 돈으로 어린 아이들 밥 먹여주자고 나서는 어르신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류의 제안을 들고 나온 정치인도, 내 기억으론, 하나도 없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무임승차 없애고 무상급식 하자는 제안은, 표를 깎아먹을 지언정, 도움 될 일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초등학생들에겐 투표권이 없으니까. 그런 제안으로 감동받고 지지해 줄 초등학생 학부모들 보다, 그 말로 잃을 노인들의 표밭이 더욱 크니까. 그것이 바로 선거주의의 한계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소위 '어버이'들 까지도 그랬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마도 똑똑한 초중고교 학생들은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수치스럽지 않게 밥 먹을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은 이 세상 사람들과, 그들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보여주지 않은 소위 어르신들. 그들은 그것을 묵묵히 보고 있었고, 먼 훗날에도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청소년들이, 후에 이 사회에 어떻게든 영향력을 미치려 노력할 테다.

    이제 곧 그들의 시대가 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시대는 절대로 밝지 않다. 이미 노령화 사회. 젊은이 한 사람이 세 명 이상의 노인을 먹여살려야만 하는 세상이 예약되어 있다. 꼰대들이 받아가는 연금이 자신의 피땀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테고, 꼰대들의 나들이 차비를 그들이 내야한다는 것도 알게 될 테다. 앞으로 생길 또 다른 그 어떤 '복지'라는 이름의 제도들도, 결국은 그들의 피땀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다.

    그렇다면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일단은 돈 벌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면서 세상 일은 신경 끄는 것이 최우선이겠지. 그게 어렵다고 생각되면, 적극적으로 노인들의 복지제도 개선과 확산에 반대하게 될 테다. 도덕적으로 이기적이라 비난받겠지만, 다들 알지 않는가, 비난 받을 때 받더라도 일단은 내 먹을 밥이 더 중요하다는 거.

    그런데 그들은 그마저도 용이하지 않다. 노령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아질 텐데, 그 사람들은 복지제도 개선을 요구할 테니까. 그리고 정치권은 그들의 투표권을 무서워 할 테고, 결국 사회는 그들이 의기투합 하는 쪽으로 굴러갈 테다. 여기서 '그들'이 바로 우리다. 그렇게 우리는 원치 않아도 저절로 꼰대가 되어갈 것이다.



    결국 의식은 바뀐다. 힘들게 일 하고 비싼 돈 내고 탄 전철과 버스에서, 무임승차한 사람들에게 자리 다 빼앗기고 서서 간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뭔가 부조리하고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할 테다. 대놓고 뭐라 말은 못 하겠지만, 그런 생각들은 은연중에 어떻게든 표출되고야 말 터. 젊은층과 노인층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져 갈 수밖에 없다.

    지금 노인들은 그냥 지금 노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며,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신경 쓴다 해서 그들이 바뀌거나 말을 듣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대로 놔 두고, 되도록 부딪히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문제는 우리다. 우리 역시 참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어떻게든 직장에 빌붙어 어찌어찌 먹고 살고 있지만, 퇴직 연령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모은 돈은 없으며, 사회적 안전망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다. 국민연금에 기대기도 터무니 없고, 앞으로 남은 짧은 젊음으로 큰 돈을 벌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앞으로 복지제도를 개선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고, 대다수의 정치인들도 나이가 있으므로 그런 요구에 어느 정도는 호응해 줄 테다. 그리고 덧붙여 우리는, 어떻게든 늙어서 비참하지 않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도 그리 말 하겠지. 요즘 젊은 것들은 정치를 몰라.
      


    다들 알고 있지만 이미 세상은 노인들의 지식과 연륜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고, 기꺼이 노인을 먹여 살릴 젊은이 또한 없다. 그 옛날에는 노인들이 뜻을 모아 서당이라도 열고, 농법이라도 가르치며, 동네의 평안이라도 유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이 뭔가 해 주려고 해도 해 줄 것이 없고, 그나마 그런 노력마저 하지 않고 푹 늘어진 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또한 지금 어린 이들의 피땀을 어떤 식으로든 빨아먹고 살아야 할 테다. 꼰대의 완성.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거리의, 전철의, 공공장소의 일부 몰상식하고 꼴 사나운 노인들처럼 되어야 할 것인가. 큼지막한 등산가방 울러매고 산에 올라 갈 힘은 있으면서, 버스에서 좀 서서 가는 것이 그리도 억울해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그런 인간이 되어갈 것인가.

    조용한 삶을 택할 수도 있다. 가끔 나가는 공짜 나들이를 고마워하면서 조용조용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조용히 산다해서 다가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젊은 이들의 등에 업혀 있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은 기브앤 테이크라는데, 어찌 그리 빌어먹을 수 있단 말이냐.



    다시 말 하지만 이건, 지금 노인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글이다. 멋진 어르신은 아니더라도, 못난 꼰대는 되지 말자는 작은 푸념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어떤 대책이나 좋은 방법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참 대책 없다. 당장 먹고 살기도 대책 없고, 당장 세상 살아가기도 대책 없으며, 당장 내일 출근할 것 생각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쌓인 생각들이 훗날 우리를 만들지 않을까. 조금씩 나온 말들이 좋은 방안으로 나오지 않을까. 조금씩 바뀐 행동들이 세상을 바꾸지 않을까. 나이 먹기는 참 힘든 일이다. 최소한 우리는, 그래도 우리 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나이 먹고는 젊은이들을 욕하는 삶이 되진 말자. 

    새해, 나이 한 살 더 먹었음을 슬퍼 말고, 나이 먹음에 걸맞는 인격을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슬퍼하자. 변화의 시작을 그 즈음으로 삼기엔 딱 좋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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