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을 먹으면 아사한다는 말이 있다.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픔이 느껴져서, 먹고 또 먹다가 결국 아사하는 꽃이 진달래라고.

아마도 그건 약간 우회해서 만들어 낸 이야기인 듯 싶다. 옛날 아주 어려웠던 시절, 보릿고개가 있어 봄이 몹시도 두려웠던 그 시절에, 먹을 것이 없어서 진달래를 먹다가 아사한 사람들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거겠지. 마치, 밤 새 두견새가 울어 피를 토해서, 꽃이 진분홍 색으로 물들었다 하여 두견화라 부르는 전설처럼.

그런데 어린 마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였을까. 봄이면 지천을 빠알갛게 물들이던 그 꽃을 먹을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배가 고파졌다. 시골 할머니 댁에 잠시 맡겨져 있었던 나는, 봄이면 희한하게도 진달래 꽃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이렇다 할 주전부리 없는 첩첩산중 오지 마을에서, 내게 진달래 꽃은 봄이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진달래 꽃은 사실 별다른 맛이라는 게 없다. 하늘하늘 얇은 꽃잎을 입 안 가득 넣고 씹으면 물이 나오고, 동시에 입 안 가득 꽃내음이 퍼지는 것이 전부였다. 맨 처음 혀 끝에 닿는 것은 부드러운 꽃잎의 감촉. 씹으면 물로 변하는 촉촉하고 매끄러운 비단결의 느낌. 그 너머로 약간 텁텁하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워, 입 안 가득 마치 푸짐한 음식을 먹는 착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봄이오면 내 눈은 그 빨간 꽃을 따라 산등성이를 타고 흘러흘러 다녔다. 눈은 색에 취하고, 입은 향에 취하고, 몸은 봄에 취해서, 내 머리는 온통 빨간, 그 빨간 꽃 진달래 뿐이었다. 그렇게 하나, 또 하나 듬성듬성 꽃을 따다 입 안에 넣다보면, 어느새 나는 문득 정신이 반짝 들었다. 희한하게도 정신이 깨면서 드는 생각은 항상 똑같았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그러면 나는 이미 한 움큼 쥐고 있던 꽃들을 내팽개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곧장 집으로 휑하니 달려갔다. 할머니는 내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항상 잘 보이는 곳에 서서 나를 반겨주었다.

입 가에, 손에, 옷에, 몸 여기저기에 묻어 번진 붉은 꽃물을 보며 한 차례 타박을 하시고는, 따로 말 하지도 않았는데 이내 어디선가 휑하니 따뜻한 음식을 꺼내 왔다. 때론 밥 한 공기에 김치 한 종지였고, 때론 고명 없는 민 국수 한 대접, 때론 달걀 풀어 끓인 라면일 때도 있었으며, 때론 따뜻하게 데운 베지밀 한 병일 때도 있었다.

어떤 음식이 나오든 상관없이 나는, 아사하기 직전까지 따 먹었던 그 꽃잎대신, 할머니가 건네주는 그 따뜻한 음식을 또박또박 맛깔스럽게 폭폭 퍼 먹었다. 빨간 꽃물에, 급하게 퍼 먹은 국물들이 튀어, 옷이, 얼굴이 알록달록 물들어 갈 때 쯤, 나는 환한 웃음을 웃으며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 때서야 나는, 세상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눈이 크게 떠 지는 것을 느끼며, 비로소 따뜻하고 나른한 계절 봄, 봄을 꿈 속으로 가져갔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동네 구석구석 골목길까지 훤히 다 아는 여행지를 맴돌았다. 이미 여러번 방문해서 익숙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이국이라 항상 낯설음이 있는 도시였다. 여느 때처럼 그곳은, 그 날 밤에도 어김없이 수많은 노점상들이 어둠을 하얗게 밝히고 있었다. 언제나 축제같은 야시장 분위기의 그 동네 길바닥을 하릴없이 거닐며, 어느때 부턴가 내 머리 속엔 한 가지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하지만 따뜻한 게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따뜻한 것을 먹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이미 따뜻한 국물의 쌀국수를 먹었고, 따뜻한 핫도그를 먹었으며, 따뜻한 차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손에는 또 하나, 아직 따끈한 팬케익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또 찾고 있었다. 따뜻한 그 무언가를, 정말 타 들어가는 사막 한 가운데서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 한 사람처럼, 그렇게 애타고 찾고 또 찾았다.

내가 먹었던 것은 모두 진달래 꽃이었을까. 저 까만 밤을 반짝반짝 빛내는 화려한 불빛들은 모두 진달래 불꽃이었던 걸까. 거리는 꽃내음에 취해 흥겨운 사람들로 가득했고, 여기저기 맛있는 냄새들의 진달래 꽃들이 가득가득 피어올랐다. 하지만 난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진달래 꽃이 아닌, 따뜻한 것을 먹으러, 집으로 한 달음에 달려가야 할 때가 왔음을, 문득 깨달았던 거다.



그러다가 그들을 보았다. 어느 오래된 성곽 맞은편, 인적 드문 아스팔트 도로 위에, 희미한 백열등 불빛 하나만을 위태롭게 밝히고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 부부. 그들이 팔겠다고 펼쳐 놓은 품목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꼬지면 꼬지, 튀김이면 튀김, 과일이면 과일 하나만 집중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되는 데로 무작정 조금씩 조금씩 주르륵 펼쳐 놓고 있었다.

품목도 품목이려니와 엉거주춤 어설프게 장사하는 폼이 딱 신출내기 장사꾼 표시가 났다. 그래서 아마 사람 붐비는 길목에는 자리를 펼 수 없었겠지. 이미 몇 년, 몇십 년 장사해 온 사람들 텃세에 밀렸을 테지. 아니, 어쩌면 기가 죽어 애초에 들이 대 보지도 못 한 채, 이 어둡고 쓸쓸한 차길 가에 자리를 펴고 장사를 하겠다며 쌀쌀한 밤이슬을 맞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차도 별로 없는 깊은 밤. 조심성 없는 차량들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도로 옆에서, 이따금 지나가는 행인들조차 전혀 관심 주지 않는 노점. 그나마도 무슨 생각인지 사람 다니는 길 쪽으로 보고 있지 않고, 차길 쪽으로 보고 장사를 한다고 하고 있는 그들.



처음에는 저래서 어찌 장사를 한다고 나온 걸까 싶어 눈길이 갔던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젊은 부부가 계속 움직이고 굽고 튀기고 자르며, 한시도 쉬지 않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이끌려 나는, 그만 시간을 잊고 물끄러미 그들을 지켜보게 됐다.

이윽고 무심코 내 쪽으로 뒤돌아 본 노점상 사내와 눈길이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멋쩍어 하는 폼에, 나도 모르게 그만 발길이 그 쪽으로 향했고, 기계적인 웃음과 함께 아무거나,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하나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랬더니 뭔가, 찍어 먹어야 한다는 건지, 뿌려 먹어야 한다는 건지, 무슨 말을 하면서 이것저것 꺼내 보여주는 색색깔의 가루들. 부부는 서로 나를 보며 이야기를 또 나누고, 웃으며, 내게 이것저것 챙겨주고는, 또 뭔가 말을 걸고, 건내주고, 둘이 서로 쳐다보고, 미소를 짓고, 또 웃고, 또 웃고, 그러는 사이 나는 그만 울컥, 목이 메어 버렸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나 만큼이나 놀라서 당황해하던 그들이 건내주는 물 한 잔, 손수건 하나에 대충 목을 넘기고 수습하며 애써 미소를 보였다. 그리곤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대체, 갑자기, 느닷없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나도 정말 예상치 못했던 어이없는 돌발상황이었다. 정말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늘을 보고 허허 웃었지만, 이미 붉어진 눈과 두근두근 뛰는 심장은 정말 어떻게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오늘 밤은 취하지 않고는 잠 들 수 없을 것 같아. 가까운 어디로든 선술집에 걸터 앉아 싸늘한 칵테일을 머리 끝부터 퍼부어야지. 하며 가까스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발 끝에 무게를 싣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살짝 당기고, 시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한 걸음 옮기려던 찰라, 나는 그만 무너져, 주저앉고 말았다.



할머니,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따뜻한 게 먹고 싶어.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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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C 2011.02.11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니가 드뎌 외롭다고 느끼는군

  2. 비안개 2011.02.14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꿈님... 여행지에서 문득 외롭다고 느껴... 따뜻한 것을 찾고 있었나보네요... 언제가는 그런 사람이 생기겠죠... 위로할 군번은 안되지만... 분명히 생길꺼예요...

  3. seha 2013.08.02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 내가 울컥...

  4. seha 2013.08.02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 내가 울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