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 로드 Khaosan Road



카오산 로드(Khaosan Road)는 태국의 수도 방콕에 있는, 100미터 남짓한 짧은 길이다. 해외여행을 좀 다닌 사람들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지금의 카오산은 전 세계인들에게 유명한 여행자들의 집합지다. 각종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술집, 상점, 마사지 샵, 여행사 등이 들어차서, 방콕에서도 최고의 유흥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자에게 카오산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한다. 태국 여행의 베이스 캠프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태국과 인접한 여러 나라들을 가기 위한 중간 체류지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은 더 나아가 유럽, 아랍 등 세계 각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경유지 역할을 하기도 하고, 또 카오산에서 여행 계획을 세워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한다. 한 작가가 카오산을 '사라지기 위한 곳 (The Place to Disappear)'이라고 말 했을 정도로, 지금 이곳은 세계 여행자의 메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카오산도 3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카오산(khao san)은 태국어로 milled rice라는 뜻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제분한 쌀'이라는 의미다. 그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카오산 로드는 원래 쌀이 거래되던 길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태국 현지인들을 위한 작은 숙소와, 승려들을 위한 가게 등이 조촐하게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카오산 로드에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각종 숙박업소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아시아 여행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방콕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방콕은 주변 여러나라들로 가기도 좋은 편이고,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생활하기 편하고, 물가도 싸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방콕은 자연스럽게 그 중심에 놓이게 됐다. 

초창기에 여행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주로 방콕 중심가의 비싼 호텔들을 이용했다. 그러다가 가난한 배낭여행객들도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방콕 중심가의 비싼 호텔들을 벗어나면서도 비교적 위치가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그렇게 둥지를 틀게 된 곳이 바로 카오산 로드였다.

 







나의 카오산



내가 처음 카오산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미 카오산이 여행자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를 잡고 난 후였다. 죽기 전에 앙코르 왓을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여행에서, 카오산은 그저 캄보디아를 가기 위해 잠시 스쳐가는 동네였을 뿐이었다. 그 당시는 시엠리엡으로 가는 직항로가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로 이동하든, 육로로 이동하든, 무조건 태국을 꼭 거쳐야만 앙코르 왓을 보러 갈 수 있었다.

그 여행에서 태국이라는 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그 후 거의 일 년에 한 번 꼴로 카오산을 방문했다. 싼 항공편이 많이 다녀서 만만하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다른 나라로 갈 일이 있어도 일부러 스탑오버를 해서 카오산을 들렀다 가기도 했다. 



물론 카오산을 방문한다고 해서, 진짜로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잡는 것은 아니다. 카오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 한 구역 내에서 숙소를 잡을 뿐이다. 사실은 진짜 카오산 로드라고 부르는 그 길은 밤에만 잠시 마실 나가는 정도일 뿐, 내게 큰 의미가 있거나 크게 관심을 끌거나 하지는 못 한다. 단지 그 일대 전역을 카오산이라고 부르는 것 뿐.

카오산 로드를 아는 현지인들은 대체로 카오산 로드라고 불리는 그 길만을 콕 찍어서 카오산 로드라고 말 한다.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들의 경우는 카오산 로드와 그 일대를 통털어 카오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처럼 길 이름을 부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 역시도 카오산 로드 일대를 그냥 카오산이라고 부른다. 카오산 로드에서 파생된 여행자 밀집 지역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자주 방문하다보니 카오산은 내게 점점 더 편안하고 익숙한 곳이 되었고, 그 어떤 여행도 일단 카오산에서 마무리를 하며 정리를 하는 습관이 들게 됐다. 카오산은 내게 여행지라기보다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워밍업의 장소, 혹은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마감의 장소로써, 일상과 여행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점차 카오산에 들어가면 딱히 뭔가 둘러보려고 부지런히 발품 팔아 돌아다니지 않게 됐고, 마치 옆동네 마실 나온 것 처럼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휴식을 취하는 형태가 돼 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지 상인들과도 안면을 트게 됐고, 인사를 하게 됐고, 서로 어설픈 영어를 쓰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매일 저녁 시장골목 안쪽에서 맛있는 쌀국수를 퍼 주며, 너같이 팟찌 좋아하는 외국인은 매번 봐도 신기하다며 놀리던 아저씨. 낮시간에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헌책과 새책을 섞어 팔면서, 자기도 돈 버는 족족 여행을 떠난다며 내게 이런저런 여행 팁을 알려주던 노총각. 삐까번쩍한 호텔 바로 앞쪽에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허름한 건물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할머니. 여행사 가이드 겸 사무 일을 보면서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배우고 싶어했던 청년. 그리고 람부뜨리 빌리지 앞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오전에만 오렌지 주스를 팔던 까만 얼굴의 아줌마.

처음에 우리는 그저 데면데면 지나치는 현지 상인과 외국인 여행자의 관계였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서로 인사를 하고 농담을 하며, 태국에 또 왔다며 환히 웃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대충 세어보면, 이 사람들과는 거의 5년 가까이 인사를 하고 지냈다.

어쩌면 그들 덕분에 카오산이 내겐 더욱 친숙하고, 즐겁고, 기분좋은 곳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분명 그 이유가 맞을 테다. 먼 이국 땅에서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반겨 준다는 것, 일 년에 한 번 정도 찾아올 뿐인 여행자를 환히 웃으며 맞아준다는 것. 그건 정말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며, 여행의 아름다움을 넘어 삶의 낙이라고 할 정도로, 내겐 큰 위안이었다.









변해버린 카오산



그런데 올해(2011년) 방콕을 다시 가 본 나는 우울함과 상실감에 비실비실 거리를 맴돌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들이 모조리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주로 태국산 말아 피는 담배를 사러 갈 때 들르는 그 허름하고 조그만 구멍가게 할머니만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라고는 숫자 정도만 겨우겨우 할 줄 아는 그 할머니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할머니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하며, 무뚝뚝하지만 나를 알아봐 주는 그 손길로 담배 한 봉지와 펩시 한 캔을 건네 받고 나올 뿐.

어째서 카오산에서 장사를 하던 그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을까. 여행하다가 알게 된 태국인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새 인생 찾아서 떠났겠지'라는 반응이었다. 카오산에서 노점하는 장사치들 중에는 부자가 많다며, 돈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제 편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 떠난 것 아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카오산에서 돈을 자루로 긁어 담는 상인도 있긴 있을 테다. 하지만 길바닥에서 반나절을 '오렌지 주스 텐 밧(10 baht)'을 외치며, 기껏해야 한 통에 10밧, 25밧 하는 오렌지 주스를 팔아 얼마나 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10밧은 대략 400원). 그리고 하루종일 함께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던 책장사의 경우, 하루에 두세권 팔면 많이 팔았다고 할 정도의 장사로 과연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짚히는 것은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시원하게 말 해주지 않았고, 더 깊은 내용은 피하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추측과 의심을 그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외국인 여행자나, 게스트하우스 주인, 한국인 여행자들 정도였다. 그들 중에는 내 의문의 내용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은 지난 시위 때문이 아닌가라는 추측이다.











방콕의 시위



지난해(2010년) 3월 중순 쯤, 방콕은 내란이라도 일어난 듯 시끄러웠다. 방콕 도심에서 시위대가 두 달여간 소위 반정부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약 90여 명이 사망했고, 1,900여 명이 부상했다.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인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외신을 통해 짤막히 소개되었다. 빨간옷을 입은 시위대를 주로 폭도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식이었다. '반정부 세력'이라고 강조된 이들 때문에 방콕이 위험에 처하게 되어, 간만에 준비한 즐거운 태국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것 처럼 보도됐다. 게다가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조차 친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을 혼돈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에 관해, 그리고 시위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면 짤막하게나마 태국의 정치 상황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무턱대고 정부를 뒤집어 엎으려고 거리에 나온 것은 아니니까.
 
1990년대 이전까지 태국은 주로 군부세력이 정치를 장악했다. 군부세력의 정치가 오랜기간 계속된 탓에, 군부 내에서도 파벌이 생겨서 쿠데타에 쿠데타가 줄을 이어 벌어졌다.


1932년 군부세력의 쿠데타로 태국은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었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근 80년간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대략 4년에 한 번씩 쿠데타가 일어난 셈이다. 쿠데타가 정권교체의 주된 수단이라 여겨질 만큼, 태국의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92년 5월에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그 이후 헌법개정 등으로 태국도 착실하게 민주주의가 자리잡혀 가는 듯 했다. 그런데 다시 2006년에 군부세력이 탱크를 몰고 진입해서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탁신정권을 몰아냈다. 2007년에 탁신세력이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자 해외로 도피했던 탁신이 돌아왔고, 2008년에 반 탁신 세력이 시위를 해서 탁신은 다시 해외로 도피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 태국의회는 합법적인 선거 없이 정치적 술수를 써서 그들만의 총리를 임명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후에 일어난 것이 바로 2010년 3월 시위였다. 빨간옷을 입은 일명 '레드셔츠'들이 방콕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의 요구는 누구누구 물러가라 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기 총선' 뿐이었다. 지금 총리가 총선을 거치지 않고 임명된 것이니, 총선을 실시하자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시위는 두 달여를 지속하다가 결국 무력강경진압으로 끝을 맺었다.

레드셔츠들이 조기총선을 외친 것은, 이들이 탁신을 원했기 때문이다. 지금 태국은 레드셔츠로 대표되는 태국의 빈민들 대다수가 탁신을 지지하는 상황이라, 총선을 치르면 탁신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래서 현 정권에선 총선을 거부하고, 강경진압에 나선 것이다. 











탁신



그렇다면 태국의 빈민들은 왜 탁신을 지지할까. 탁신은 그 전까지 태국의 그 어떤 정치인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다. 농가 융자를 늘리고, 채무탕감을 했고, 저소득층에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을 우선 개발하는 정책을 폈고, 동시에 개혁정책을 통해 기득권 계층이 운영하는 유흥사업에도 대담한 칼질을 했다.

탁신은 농민들과 빈민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뽑은 정치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니까 좋아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군부세력과 결탁해 오랫동안 권익과 부를 독차지하고 유지해온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안위에 위협을 당하니까 싫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태국의 산업부흥과 경제발전은 빈민들, 특히 태국 북동부의 이산지역 농민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밭에 곡식이 탐스럽게 익어가도 대부분은 지주들에게 갖다 바칠 것 뿐. 빚이 빚으로 이어지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에 이들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며 겨우겨우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도시로 뛰쳐나온 이들이 하는 것이 노점상이나 일용잡부 등의 힘들고 고된 일이다. 게다가 그 중 예쁘장한 딸들은 도시 여기저기 사창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기도 한다. 어떤 여행자들은, 태국은 자기 딸이 술집에서 일 하는데도 부모들이 별로 뭐라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참 이상한 나라라고 말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부모가 딸을 그런 곳에 내 놓고는 편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함께 있다가 굶어 죽는 것 보다는, 그나마 그렇게라도 먹고 사는게 나으니까 가만 있는 것 뿐.

그런 사람들에게 탁신은 실질적으로 몸에 와 닿는 이득을 줬다. 전생의 업으로 알고 하루하루 견뎌야 했던 운명이, 윗대가리가 잘만 하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다. 이들이 탁신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지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사실 탁신은 분명히 비리와 탈세 등으로 얼룩져 있는 인물이다. 진정 빈민들을 어여삐 여겨 선정을 배풀었다기 보다는, 똑똑한 머리와 뛰어난 정세 판단으로 자신에게 득이 될 행보를 잘 선택한 정치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빈민들 입장에서는, 똑같은 도적놈들 속에서도 그나마 나은, 그나마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무리의 도적떼들은 내 밥그릇의 밥도 빼앗아 가는 도적들이다. 그런데 탁신은 그나마, 내 밥그릇에 밥을 갖다주는 사람이었다.










시위와 카오산



그렇다면 그 시위가 카오산 상인들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전혀 없지만, 뜻이 맞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추측해 본 것은 이렇다.

카오산 일대에서 장사를 하던 빈민들이라면, 항상 외국인들을 보며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를 했을 테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지겹게 쌀국수나 말고 있는데, 쟤네들은 어떻게 저렇게 매일매일 개차반으로 놀며 즐기며 돈을 펑펑 쓰며 다닐 수가 있는거지, 라는 의문에서 비롯한 자각. 게다가 외국인의 자유로움과 이국의 소식들 또한 이들의 사고에 영향을 끼쳤을 테고, 또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그 바닥의 이권다툼이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테다. 



방콕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깡촌에 사는 사람들마저도 탁신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카오산 일대의 가난한 빈민들이라면 오죽했을까. 게다가 시위의 시작은 카오산에서 상당히 가까운 랏차담넌 거리였다. 그러니 카오산 일대의 상인들도 많이들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게 그들이 시위에 가담했다면, 무력진압 후에는 정부의 지휘 하에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태국은 온갖 비리와 불온한 사업, 각종 스캔들 등을 파 보면, 결국 경찰과 공무원과 군인들이 줄줄이 엮여 나온다고 할 정도로 비리가 만연한 혼탁한 사회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권을 취하기 위해, 시위에 가담한 상인들을 내쫓았을 수도 있다. 

물론 시위 도중 죽거나 다쳤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애써 생각하기도 싫다. 그런 슬픈 이야기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자, 가뜩이나 슬픈 이야기에 더 어두운 면을 추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우리의 카오산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 여행자들이 태국에서 싼 값으로 안락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들의 희생 덕분이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 하기도 힘겨운 농촌을 벗어나,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 보겠다고 도시로 뛰쳐나온 그들. 최저임금도 합당한 노동시간도, 법적인 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며, 굳은 일을 헐값에 도맡아 하는 그 빈민들 말이다.

내가 알던 그들이 정말 그런 일에 연루되어 쫓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도 카오산 일대에는 그런 빈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점에서 하루종일 서서 장사를 하기도 하고, 숙소에서 청소와 허드랫 일들을 도맡아 하며, 마사지 샵이나 식당, 술집 등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또한 거리 청소를 하고 있으며, 짐꾼이나 일용잡부로, 혹은 페트병을 주워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고, 현재 진행형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떻게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다시,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다. 여행과 관광을 구분짓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여행과 관광은 다른 것이 틀림 없다. 주로 여행사 패키지로 떠나면 관광이고, 배낭여행으로 떠나면 여행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그런 단순한 분류는 수긍할 수 없다.

관광(觀光)은 말 그대로 '경치를 보는' 행위다. 영어로도 sight-seeing. 현지인과의 교감이나 대화, 소통 같은 것들은 전혀 내재되어 있지 않다. 여행(旅行)은 '나그네가 다니는' 행위. 나그네라는 단어(旅)가 들어감으로써, 그저 경치만 보고 다닌다는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travel 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travel 이라는 단어는 불어의 travail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travail의 뜻은 suffering 이다. 이 단어는 세 개(tra, tri)의 작대기로 이루어진 로마의 고문도구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영어로 '여행(travel)'은 '고통'을 어원으로 했다는 뜻이다.

'여행은 고통이다'라고 놓고 보면,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퍼뜩 떠오른다. 그 정도면 고개를 끄덕일 만 한 하다. 그런데 그 의미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나 자신의 고통을 넘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는 것, 겪는 것, 체험하는 것 또한 여행이 아닐까. 나 자신의 고통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까지 합쳐서, 고통의 극한을 체험하는 자위고문이 바로 여행인 것은 아닐까.



그것이 맞다면, 그것이 여행이라면, 좀 더 여행을 여행답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것 또한 위선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다시 긴 한숨을 내쉰다. 더이상 나무지팡이 하나에 괴나리 봇짐 하나로 타박타박 떠나는 고행길이 아닌 여행.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현대인의 쾌락 속에, 자본의 무서운 힘은 우리 모두를 공범으로 몰아 넣었다.

제3세계의 가난과 핍박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매이저 브랜드 커피를 홀짝거리는 현실 속에, 대체 어떤 말들이 진심일 수 있는가. 진정성 비슷한 것으로 포장한 싸구려 감동. 단지 우리들에게만 통하는 우리들만의 자위, 그리고 가식과 기만.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생각하지 않으면 더욱 나쁜 이 현실을, 대체 어쩌면 좋은가 말이다.

머릿속에 수만가지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드디어 모든 사고의 회로가 끊어지고 만다. 방콕 공항 전면을 도배한 국왕 사진을 처음 마주하고는 황당했던 그 때처럼, 그렇게 헛헛하니 황망하니 텅 빈 공간을 유영하는 먼지처럼 나는, 두둥실 붕 떠버리고 만다. 생각하면 답이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쁜놈이 되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단지, 나를 반겨주었던 그 얼굴들이, 태국 지인들의 말처럼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한 새 인생을 찾아 떠난 것이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바램을 가질 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일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을 기억해주는 이국의 한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으로 그 모든 미안함을 대신하고자 한다. 4천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의 삶이 최소한 완전히 무의미한 인생은 아니었음을, 되뇌이고 또 되뇌이고 되뇌어 추억이 다 할 때까지 기억하고 간직해 주려 한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그 땅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부디 모두 행복하고, 또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자료

The Place to Disappear (by Susan Orlean)
http://www.susanorlean.com/articles/place_to_disappear.html

Wikipedia, Thailand - Political crisis
http://en.wikipedia.org/wiki/Thailand#Political_crisis

태국시위의 원인과 전개과정 그리고 왕의 움직임이 없는 이유
http://blog.daum.net/thaistart/18313229


Posted by 빈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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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안개 2011.03.1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빈꿈님이 말한 가식이라는 단어...
    그 단어보단 현재 못사는 사람들 덕분에 이득을 본다는
    그런 것을 알고 있는것자체가... 대단하신거 같아요...
    그리고 이런 것을 매번 느끼면 솔직히 여행이라는게...
    심적인 것을 단련하는 듯 싶네요.. 저도 여행자가 되고 싶지만
    현재는 용기도 없고 일이라는 핑계에 여행을 가지 못했지만
    여행지에서 겪은 일과 사람 사는 것을 보면 많이 느낄 듯 싶어요...
    진정한 여행자인거 같습니다. ^^

  2. 뉴욕에서부터 2011.03.13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웹서핑하다가 님의 글을 봤는데요 상당히 분석적인 글 잘 봤습니다 태국이 아직도 외국인한테는 싸고 여행하기좋은 곳이라는 인식이 남는건 님이 지적하신 그대로이겠지요 태국이 관광대국이지만 관광으로 벌리는돈이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쓰이지는 않는것같고..... 많은걸 생각하게하는 좋은글 잘 봤습니다

  3. DJ 2011.11.10 2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년 여름에만 해도 카오산이 상인들로 북적거렸는데 올해들어 달라졌나봐요..

  4. 황약사 2013.07.16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에 대한 그 신선한 정의. 인상깊게 공감합니다. 고통의 체험, 자위고문이 여행 맞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