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 온천 관광지구를 벗어나 시내 쪽으로 향하면 은근히 슬슬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무래도 조령이 있으니 밑에서부터 조금씩 경사가 시작되는 듯 하다.

 

자전거 국토종주 길은 수안보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 차도로 나 있다. 밥을 먹거나 할 요량이면 길에서 조금만 벗아나 시외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면 된다.

 

 

수안보는 작은 동네라 조금만 페달을 밟아도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데, 이제 여기를 벗어나면 문경새재 꼭대기까지는 별다른 가게가 없다. 물이나 식량을 충분히 준비해두는 게 좋고, 너무 땡볕이라든가 컨디션이 안 좋다 싶으면 차라리 수안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것도 고려해보자.

 

웃자고 하는 여행에 죽자고 달려들면 탈이 날 수도 있다. 물론, 문경새재가 사람들 사이의 소문만큼 그리 힘든 곳은 아니라서 크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수안보의 마지막 공원을 벗어나면 자전거길은 슬슬 국도를 벗어나 산으로 간다. 사공이 많지도 않은데 산으로 가는 것은 배가 아니라 자전거라서 그렇다.

 

조령산을 넘다보면 이화여대 수련관이라는 푯말이 나오는데, 저쪽으로 가면 수옥폭포 근처에 야영장이 하나 있다는 소문이 있다. 수안보에서 잠자리를 못 구했을 때는 저쪽으로 가보려 했는데, 좋은 숙소 구해서 잠을 잘 잤기 때문에 그런 모험은 하지 않아도 됐다. 혹시 모르니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서 이런저런 정보는 많이 모아두는게 좋을 테다. 물론 그 정보가 다 맞다는 보장은 없다.

 

 

 

고개를 하나 넘으니 폐허 같은 작은 동네가 하나 나왔다. 사람이 사는 동네인 것 같기도 하고, 가게 비슷한 게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좀 을씨년스러워서 잠시 쉬었다가는 용도로만 활용했다. 어쨌든 어느새 조령을 넘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연풍면의 행촌사거리가 나온다. 행촌사거리는 오천 자전거길과 새재 자전거길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가보면 아무것도 없다. 도장 찍는 부스 하나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쉼터 뿐. 그나마도 햇살 따가운 상황이면 빨리 산 그늘이나 나무 그늘을 찾아서 가는 것이 나을 정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조령은 그리 힘든 고갯길이 아니기 때문에, 오천 자전거길의 시작을 수안보로 잡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 하다.

 

참고로 오천 자전거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연풍 버스터미널에서 내려서 시작하더라. 수안보나 충주 등에서 연풍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연풍 터미널에서 행촌사거리 인증센터까지는 멀지 않다.

 

 

이제 문경새재가 시작된다. 대체로 문경새재를 자전거로 넘는다/넘었다 하면, 안 가본 사람들은 '우와'하는데, 여기도 그렇게 엄청나게 힘든 길은 아니다.

 

물론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정상까지 페달질로만 올라가는 훈련을 한다면 힘들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적당히 끌고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쉬어가며 경치 구경하고 하면 어느새 정상이다. 높이라고 해봤자 대략 650미터 정도라고 하더라. 옛날에야 길도 험하고 깊은 산 속이라 위험했겠지만, 지금은 아스팔트 잘 깔린 길이라 그리 위험하지도 않다.

 

다만 산 속 길을 계속해서 올라가니 나무에 가려 딱히 경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단조로운 길이 계속되는 것이 오르막길 오르는 것을 더 재미없게 만들어줘서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가끔 나오는 전망대 같은 곳에서 경치 구경 좀 하고

 

 

그늘 쉼터에서 물 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슬금슬금 자전거 끌고 올라가다보면

 

 

 

어느새 이화령 고개. 참 쉽죠.

 

자전거 끌고 올라가느라 땀도 많이 흘리고, 시간도 좀 걸렸지만, 그리 힘든 길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자전거 끌고 미시령을 한 번 올라가봐야, 아 이건 조금 힘들구나 하는거지 뭐 이정도 가지고.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문경새재하면 덜컥 겁을 먹을 텐데, 그러지 말자는 얘기다. 의외로 올라가보면 오를만 하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자동차들은 좋은 길로 달려서 터널을 쓩쓩 통과한다.

 

 

이화령 고개 휴개소 인증센터 뒷쪽엔 매점과 식당이 있다. 휴게소를 본 김에 점심 겸 해서 뭔가를 먹기로 한다.

 

 

콜라와 소세지. 식당은 비싸서 안 되는 걸로. 어차피 이제 내리막 길이니 쭉 내려가서 편의점 찾아가면 된다. 잠깐의 충동을 참으면 돈이 남는다. 배고픔은 잠시 후에 채울 수 있지만, 통장 잔고는 아무리 페달을 밟아봤자 1원도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가난뱅이 여행자의 기본 자세. 좋지는 않아.

 

이 휴게소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 자동차로 자전거를 싣고 올라와서 내리막길만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니 인생 내리막만 즐기면 무슨 재미. 오르막도 즐겨 보시자.

 

 

 

이후 꼬불꼬불한 내리막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서 바로 문경까지 내려왔다. 자전거에 짐이 많으면 내리막길에 가속도가 붙어서 위험하다. 무작정 빨리 달리다간 엄청난 병원비를 치뤄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잡아야 했는데, 나중엔 브레이크 잡느라 손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중간에 끊을 수는 없지. 어차피 딱히 빼어난 경치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다운힐에서 한 번도 사고 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오토바이든 자전거든 속력을 마구 내는데, 사고 한 번 나보면 그때부터 조심하게 된다. 인간이란게 참 웃기지, 꼭 실제로 데여봐야 뜨거운 걸 안다. 나도 그랬던 터라, 다른 사람에게 속력 내지 말고 천천히 달리라고 딱히 말을 꺼내진 않는다. 운 좋으면 평생 속력 내면서 달려도 별 일 없을 테고, 운 나쁘면 크게 한 번 당해보고 뭔가 배울 테고. 똑같은 경험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 타고난 운이 있기 때문에 인생은 원래 공평하지 않은 거니까.

 

 

쭉쭉 와서 하나로마트가 보이길래 여기서 빵과 음료수를 사 먹었다. 문경 쪽은 관광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고, 실제 관광지를 지나치기도 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빨리 여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관광지는 사람이 많은 것도 흠이지만, 물가도 비싸고 숙박비도 비싸기 때문에 무조건 빨리 벗어나야 한다.

 

 

 

 

문경 지역에서는 정말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었다. 여기저기 정보를 검색해보니, 문경 쪽에서는 대체로 여행자들이 문경버스터미널 근처나, 문경시청 근처에서 숙소를 잡더라.

 

근데 이 동네는 다른 시골동네와는 달리 관광지 분위기라 숙박도 좀 비싼 편이다. 물론 문경시 안쪽으로 들어가면 적당한 모텔이 있기야 있겠지만, 연일 계속해서 숙소에 돈을 내면 난 밥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잠 자는데 돈을 쏟아붓느니, 차라리 노숙을 하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는게 낫다는 게 기본 철학(?). 그래서 오늘은 적당한 곳이 나오면 해가 다 지지 않았더라도 그냥 야영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느닷없이 홀연히 앞에 무료 야영장이 떡하니 나타났다.

 

 

 

마성면의 '소야솔밭'. 이름처럼 소세지 야채가 있는 솔밭은 아니고, 그냥 귀여운 이름의 솔밭이다. 이 앞쪽엔 소야삼거리도 있다.

 

국토종주자전거길 바로 옆쪽에 있는 솔밭이라 우연히 지나면서 발견했다. 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무료 야영장이라길래,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하루를 마감했다. 더 가봐야 딱히 대책도 없겠고.

 

이미 삼거리를 지나오면서 이 동네에 중국집과 편의점이 있다는 것도 봐놨기 때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빈 자리에 텐트를 펼쳤다.

 

 

대충 텐트를 펴고 자리를 잡자마자 달려간 중국집. 초록색 면이 독특한 짬뽕. 여기에 밥도 말아 먹었다. 삼거리 쯤에 중국집이 있고, 그 바로 옆쪽에 편의점도 있다. 그리고 길따라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하나로마트도 있다. 하나로마트는 쉽게 찾아내기 어려우니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나도 이 정도 마을이면 하나로마트 하나쯤 있겠지 싶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찾아냈는데, 좀 구석진 곳에 있더라.

 

 

시골에 가보면 은근히 여름철 한정으로 야영장을 운영하는 곳들이 있다. 대체로 그냥 여기가 무료 야영장이오 써붙여 놓고 관리자는 없는 경우가 많은데, 소야솔밭은 마을 주민 몇몇이 관리 비슷하게 나와 있었다.

 

언뜻 생각해보면 이런걸 운영하면 아무래도 쓰레기도 치워야 하고, 이런저런 귀찮은 문제도 발생하고 해서 싫을 텐데 왜 할까 싶다. 그런데 시골에선 '가끔 여름에 사람들 찾아와서 떠들썩하면 동네도 살아있는 느낌 나고 좋지 뭐'하는 분들이 많다. 이러다 유명해지면 유료로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간간이 이런 곳이 있어서 가난뱅이 여행자가 기분좋게 다닐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솔밭이 규모가 작기는 해도 아담한 느낌도 나고, 시원하기도 해서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솔 향기도 향기지만, 솔밭 기운이 너무 좋다.

 

 

 

 

다음날 아침에 짐 정리한다고 솔밭 옆쪽으로 나와서 찍은 사진. 아마도 여기는 여름철에 한시적으로 캠핑장으로 운영하는 듯 했다. 나만 아는 곳으로 간직하고 싶었지만, 내가 여길 또 언제 가겠나 싶어서 그냥 공개. 솔밭 기운을 충전했으니 다시 또 달려보자.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