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거의 잠을 못 잤다. 중간에 조금 자기는 했지만, 잠이라기보다는 잠시 기절했던게 아닌가 싶게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하다.

 

아직 해 뜨기 전에, 사브작이 밝아오는 어스름한 하늘을 보며 일찌감치 일어나 길을 나섰다. 그래도 눈을 좀 붙이긴 붙였다고 피로가 약간은 풀렸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아침부터 상주보를 달린다. 아직 여름이지만 강 주변은 쌀쌀하다. 딱 이 정도 상태만 계속된다면 자전거 타기에 딱 좋을 텐데, 그럴리는 없겠지.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가까운 산 머리에 구름이 잔뜩 덮힌걸 보고는 오늘 살짝 비가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예 폭우가 쏟아지면 다니기 어렵지만, 흐리거나 보슬비가 살포시 내리는 정도라면 오히려 자전거 타기가 좋다.

 

물론 속력을 중요시 한다면 작은 비에도 미끄러지기 쉬워서 싫겠지만, 느리게 다니는 나는 비가 조금씩 흩뿌리는 날이 좋더라. 하지만 오늘도 햇볕 쨍쨍한 날이 이어졌다.

 

 

인증부스엔 가끔 이렇게 다른 인증부스나 다른 자전거길 소식이 붙어있을 때가 있다. 친절한 곳은 힘들지 않는 길로 둘러가는 지도를 붙여놓은 곳도 있다.

 

강따라 다니는 자전거 국토종주는 이제 유행이 좀 시들해져서 관심 있는 사람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경향이 있는데, 그래도 꾸준히 관리하는 인증부스가 꽤 있다. 물론 아예 관리 안 하는 인증부스는 언제 교체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인주가 말라붙은 채 방치돼 있기도 하지만.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아무도 없는 새벽, 상쾌하게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자전거나 타야지 뭐.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다시 해가 떠오른다. 상주보 인증센터에서 대구까지는 쭉 뻗은 길들이 많다. 짐 없는 로드 자전거라면 대구까지 순식간에 가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길이 좋은 편이지만, 느리게 갈 때는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지루하지 말라고 가끔 이런 길도 나와주니 참 고맙기는 개뿔.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작은 마을로 통하는 농로를 잠깐 타기도 하지만, 바로 다시 낙동강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달린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낙단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낙단보

 

쭉쭉 달리다보면 어느새 낙단보 인증센터.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평탄한 길이다.

 

인증센터 같은 곳에 가끔 자판기가 있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항상 동전이나 천 원 짜리 지폐를 준비해두는게 좋다. 인천 앞바다에 자판기가 떴어도 잔돈 없으면 콜라를 못 먹어. 이날 내가 그랬다. 아이고 슬퍼.

 

국토종주 자전거길: 낙단보

 

여기는 신기하게도 자전거길 주변의 식당과 숙박시설 정보를 잔뜩 적어놨다. 거의 대부분이 식당 정보이긴 한데, 누군가는 이런 정보가 도움이 되겠지. 이왕 인증센터가 있는 김에 이런 정보를 적어놓는 것도 괜찮긴 하다. 몇 개 안 되지만 모텔이나 여관 정보도 있으니 현장에서 잘 살펴보도록 하자.

 

국토종주 자전거길: 낙단보

 

낙단보 지나서 길을 조금 잘 못 탔더니 국도로 가게 됐다. 가드레일 바깥쪽으로 자전거 길이 있는게 보이는데, 그 길로 갈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전거를 들고 가드레일을 넘고 싶었지만, 그걸 넘으면 조금 깊어보이는 수렁(?)을 또 지나야 자전거길로 넘어갈 수 있었다.

 

어디서 길을 잘 못 탔는지 대강 짐작이 가긴 했는데, 여기서 돌아가면 역주행이 된다. 이런 곳에서 역주행을 하면 차도 놀라고 나도 불편해진다. 그냥 갓길로 계속 달리는게 오히려 서로 안전하다. 그래서 한참을 가다가 가드레일 틈으로 개구멍 비슷하게 뚫려 있는 길로 간신히 자전거길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아, 기억하자, 한 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인생이라는 게임의 법칙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도에서 넘어오니 이렇게 잘 닦인 자전거길이 떡하니 놓여 있다. 아아 억울해. 그래도 아직 쭉 뻗은 길이 많이 남았으니 뒤늦게라도 상쾌하게 즐겨봤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보

 

여기가 구미보 맞던가. 구미보 인증센터 사진이 바로 뒤따라 나오니 맞겠지. 뭔 보가 계속해서 나와서 이젠 뭐가뭔지 헷갈린다. 맨날 보만 내기 때문에 나는 가위를... 재미없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보

 

구미보 인증센터는 유인 인증센터로 운영 중이었다. 유인 인증센터에선 수첩에 스티커를 받거나 수첩을 사거나, 지도를 사거나 할 수 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보

 

 

쉼터 바로 아래 큰 건물이 보이길래 저건 대체 뭔가 싶었는데, 화장실이다. 뭔 화장실을 저리 크게 지었나 싶을 정도지만, 뭐 하나쯤은 저런 곳도 있어야 마음 놓고 싸고 가지. 하지만 저길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올 때는 당연히 계단을 올라야겠지. 귀찮아서 안 감. 오줌은 땀으로 배출하자.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드론으로 찍으면 멋질 것 같은 구미보 인근 낙동강 모습. 다른 자전거 여행 후기도 좀 그런 면이 있는데, 와 여기 멋있다라고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별로 멋있지 않다. 사진으로 봐서 그렇다. 대체로 여기 정말 멋있다고 적어놓은 곳을 자전거 타고 직접 가보면 정말 좋다. 자전거로 다녀야만 볼 수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고.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구미 시내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길도 시원시원하고 강바람도 시원하니 정말 자전거 타기 딱 좋다. 이런 길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이런 길도 지날 수 밖에 없는 숙명. 이 길로 구미를 몇 번 들어간 적 있는데, 들어갈 때마다 바로 앞 건물에 엘지가 큼지막하게 보여서 구미의 첫 인상은 항상 엘지다. 엘지 동네 같은 느낌.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구미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계속해서 강따라 내려간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자동차 공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많은 차들이 있는 주차장. 강 가의 저 좋은 땅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건 일부만 찍은 사진이고, 옆쪽으로 더 길게 주차장이 이어진다. 정말 넓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이쪽 자전거길은 관리 안 하는 티가 팍팍 난다. 풀만 우거져 있는게 아니라, 잘 보면 우레탄이 밀려 올라가서 울퉁불퉁하게 돼 있다. 완전히 깨져서 뻥 비어있는 구멍도 있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자전거가 부숴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한동안 이 구간 전체가 울퉁불퉁해서 오히려 비포장도로보다 못하다.

 

그나마 내리막길이라 천천히 몰고 내려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고 가다간 펑크라도 나겠다 싶어서 내려서 끌고 다녔다. 와 여긴 정말 너무한다. 자전거길 만든 이후로 한 번도 관리를 안 한 느낌이다. 아마도 지역 주민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길이라 이런게 아닐까. 지도를 보면 강 건너편에도 자전거길이 있는데, 아마 그쪽은 공원도 있고 하니 잘 돼 있지 않을까 싶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남구미대교를 건너간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구미

 

남구미대교를 건너서 조금만 직진하면 프라임 24시 편의점이 나온다. 일반 편의점과 비슷한 분위기고, 안에서 컵라면 같은 것도 먹을 수 있는데, 내부에 자전거 관련 용품들을 꽤 진열해 놓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후미등이나 거치대 같은 소품들은 물론이고, 무릎보호대나 헬맷 같은 것도 판다. 가격도 괜찮은 편이더라. 중간에 장비 보충이 필요하면 여기를 한 번 들러보자.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라, 주인 아주머니가 자전거길에 관한 최신 소식이나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알려주기도 한다.

 

 

여기서 본 다른 사람 자전거. 안장 바로 아랫부분에 묶어놓은게 텐트다. 텐트를 저렇게 묶어서 다닐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계속해서 자전거길로 가려면 이 편의점 앞을 지나서 빙 둘러 나가야 된다. 처음 가는 사람은 좀 헷갈릴 수 있게 돼 있어서, 실제로 계속해서 앞으로 쭉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여기서 봤다. 거의 이 편의점 지나자마자 꺾어지는 작은 길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다시 강변으로 나갈 수 있다.

 

 

요로코롬 편의점 바로 옆으로 난 작은 길을 통해서 빙 둘러서 다시 강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지도엔 자전거길이 입체적으로 표시돼 있지 않아서, 마치 편의점 전에 길이 있는 것 처럼 인식하기 쉽다. 실제로는 다리 밑으로 길이 나 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칠곡보

 

그러면 바로 칠곡보. 칠곡보까지는 별거 없다. 수풀 잔뜩 우거진 강변에 자전거길이 있어서 그냥 쭉쭉 달리면 된다. 가끔 아파트는 보이는데, 수풀이 잔뜩 우거져있어서 강은 잘 안 보인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칠곡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칠곡

 

칠곡 쪽도 공원으로 조성된 낙동강변에 자전거길이 놓여 있다. 그냥 길따라 쭉 가기만 하면 된다. 한강 자전거길과 별반 다를게 없다.

 

근데 칠곡 쪽은 위 사진에 보이듯이, 시내 쪽으로 가려면 정말 엄청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저 계단을 보는 순간, 밥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계속 페달만 밟을 수 밖에 없다. 아까 편의점에서 대충 요기를 하지 않았다면 쫄쫄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칠곡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칠곡, 왜관 벗어나서 시골길을 달린다. 구미의 그 완전 망가진 자전거길만 제외한다면, 상주보에서 대구까지는 평탄하고 잘 닦인 길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 구간에선 속력 내서 좀 많이 달릴 수 있다.

 

낙동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상주보 - 대구, 강정고령보

 

국토종주 자전거길: 대구, 강정고령보

 

강정고령보 인증센터. 드디어 대구다. 대구라고 딱히 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인증센터가 있는 동네는 죽곡리. 대구 변두리 지역이다.

 

가게 주인장들 말로는, 이 동네엔 모텔 같은게 없다 한다. 시내 쪽으로 들어가야 있다고. 대구 시내를 들어가려면 여기서 다리를 건너서 어찌저찌 가야하는데, 딱 귀찮다. 들어가면 또 나와야 하는데,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는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그냥 이 동네에서 하룻밤 조용히 보내고 아침 해 뜨자마자 다시 길 떠나자 싶어서 인터넷 검색해서 민박집(?) 하나를 찾아냈다.

 

 

 

남는 원룸 하나를 에어비앤비 처럼 운영하는 듯 했다. 나도 인터넷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장사를 계속 할지 어떨지 알 수는 없다. 죽곡리 숙소 같은 키워드로 한 번 검색해보시라. 전혀 없지는 않더라.

 

이 동네는 대구 사람들이 스노우 자전거(왕발통)라든지, 전기 킥보드 같은 것을 즐기는 곳으로 형성돼 있었다. 그런 것 빌려주는 가게도 많고, 빌려서 타는 사람들도 많다. 동네 자체도 그런 것들 타기 좋게 돼 있다.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공터도 있고 공원도 있다.

 

 

어쨌든 오랜만에 제대로 샤워를 하고 사람 꼴을 해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워낙 작은 동네라 그런지 식당이 별로 없다. 치킨집은 서너개나 있던데 식당은 열 개도 안 되는 듯 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짜장면을 먹을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짬뽕을 먹었다. 밥도 말아 먹었으니 됐다. 그냥 자자.

 

Posted by 빈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