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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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려나 보다사진일기 2008. 9. 9. 01:32
가을이 오려나 보다. 가을의 빛깔은 여름처럼 맑지도, 겨울처럼 선명하지도 않은 포근하다면 포근하고, 아늑하다면 아늑하기도 하지만, 다소 어눌한 색깔. 원래 가을을 몹시도 심하게 타는 성향이지만, 이번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허하다.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서 원래 잘 하지 못 했던 영어 회화가 많이 어눌해졌고, 한국어도 어눌해졌고, 생각도 판단도 마음가짐도 몹시도 흔들려 어눌해졌다. 이러다가 내 인생 자체가 어눌해 지는 게 아닌가 내심 불안해하면서 위태로이 노란 안전선을 안을 비틀비틀 걸어가다가, 어느샌가 떨어지는 눈물을 추체할 수 없어 길 가에 앉아 펑펑, 울고야 말았다. 가을이 오려나 보다. 분명 아름다운 계절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잔인한 계절이기에 난 이제 그만 가을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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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냄새사진일기 2008. 8. 21. 23:19
어쩔 수 없는 유목민 형 인간이 한 곳에 붙박혀서 정착민처럼 살려니 아주 미쳐버리겠는 거 있지. 아, 그래, 누구나 그러하듯이 누구나 그런 것 같은 일상을 사는 것 뿐이라구. 하지만 어느날 문득, 계절이 바뀜을 알리는 바람의 냄새가 저 먼 하늘을 꿰뚫고 내 가슴을 비수같이 찔러 시린 마음 가눌 수 없이 휘청거리게 흔들어 놓았을 때, 아 이제 더 이렇게 버티기는 힘 들구나라는 걸 직감해 버렸다는 거지. 내가 마지막 여행을 갔다 온 게 언제였더라하며 먼 추억 되뇌이는 듯 기억해 보니, 사실 몇 달이 채 되지도 않았어 그 사이에도 조그만 여행들을 수시로 했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어쩔 수 없는 바람의 냄새 때문에 그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는 거야. 바짝 마른 흙먼지가 푸석푸석하게 날리는 어느 여름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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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시들지 않는 꽃을 선물하고 싶었다사진일기 2008. 8. 16. 02:57
날이 밝는다, 밤이 떠돈다. 나는 이 밤을 가르는 저 비 속의 한 줄기 빛처럼 하릴없이 허공을 맴돈다. 당신은 그 선한 눈망울로 먼 하늘을 바라보며 곧 사라질 미소처럼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고, 나는 이미 영혼을 팔아버린 새처럼 지쳐 있다. 나는 당신의 세컨드라도 되길 원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 마음의 일부분이나마 차지할 수 있다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떳떳하게 이 어둠 속을 벗어날 수 없다 할 지라도 행복하리라 믿었다. 당신은 이미 세상 모든 이의 어렵고 답답한 바램을 들은 비 맞은 천사처럼 무겁게 주저앉아 있었고, 내 작은 소망은 지난 밤 기억도 나지 않는 술자리 술병 처럼 깨어져 있다. 슬프지 않다, 슬프지 않다. 누군가가 말 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또 누군가가 말 했다, 그렇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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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같은 날들 속의 의미 없는 넋두리사진일기 2008. 7. 15. 00:31
이런 사진 몇 장 올려 놓고 제목은 그리움이나, 기다림, 추억 정도로 지어 놓는 거야. 그리고는 으스대듯 '무보정' 임을 강조하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곳이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텍스트 하나 대충 써 넣으면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정도의 댓글 달리겠지. 그 일련의 과정들, 아무 쓰잘데기 없고,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도움도 안 돼. 그걸 이제서야 깨닫는 거야. 느리게 느리게 배워가는 거지. 그래, 내겐 아무 의미 없어. 내 메인 카메라는 바로 저 똑딱이다. 그러니까 아무 의미 없다구, 그런 것들 따위. 사진을 잘 찍고 싶어. 하지만 남들이 보고는 잘 찍었다고,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사진을 찍으려는 건 아니야. 내 감각의 표현 수단 중 하나로써 사진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하고 싶은 것 뿐. 굳이 숙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