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길 국토발전전시관 - 국토 개발 역사 전시 박물관
정동길 나들이를 가서, 캐나다 대사관 앞의 회화나무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나무 뒷쪽으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번쩍번쩍하면서도 규모도 꽤 큰 건물에, '국토발전전시관'이라는 이름이 크게 붙어 있었다.
바로 앞에 있으니 한 번 다가가봤더니,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한글과 함께 영어로 'Korea Territorial Development Museum'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뮤지엄이라고 돼 있으니,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뭔가가 있나보다해서 들어가봤다.
그냥 '전시관'이라고 해 놓으면, 요즘 아파트나 빌라촌 전시관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좀 헷갈릴 수 있고, 접근도 조심스럽다. 박물관이라고 해놔야 그나마 무료일까 아닐까하며 접근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도 긴가민가하며 museum이라는 단어를 보고서야 일단은 박물관이구나 하고 접근해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여기는 박물관으로, 입장료가 무료여서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앞쪽에 있는 나무가 캐나다 대사관 앞의 오백 년 넘은 회화나무다. 뒷쪽으로 가까운 곳에 국토발전전시관 건물이 보였다.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에서 내려오면 이쪽 길로 나오기 때문에, '고종의 길'을 걷고 나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니, 관람을 하려면 바로 직진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라고 안내해준다. 1층 로비에는 신혼희망타운 홍보 전시를 하고 있다.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 관련 뭔가인 듯 한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나는 상관 없는 일이니 그냥 전시관 관람을 위한 동선을 따라갔다.
1층 한쪽에는 조그만 카페 공간도 있다. 한쪽 벽면을 책장으로 장식해서 서재 같은 분위기로 꾸몄고, 탁자도 넓어서 여러명이 모여서 뭔가를 하기 좋게 돼 있다. 근데 전체적으로 좀 사람이 없고, 썰렁한 분위기라, 동선을 벗어나서 카페로 들어가면 뭔가 규칙을 어기는 듯 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다. 물론 카페도 자유롭게 이용해도 되겠지, 아마도.
표시된 길을 따라서 1층 끝까지 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처음엔 왜 엘리베이터가 아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라 하나, 그걸로 층층이 올라가려면 피곤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건 1층에서 4층으로 직행하는 긴 에스컬레이터다. 이거 한 번 굴리는 데만도 전기 꽤 잡아먹겠다 싶을 만큼의 길이다. 내려오는 건 없고, 올라가는 것만 있어서, 아예 처음부터 동선을 이렇게 짜놓고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어쨌든 4층으로 직행해서 위에서부터 구경하며 내려오면 된다.
올라가면 입구 옆에 팜플렛이 있는데, 군데군데 잘려지고 접히는 선도 있어서 모양이 좀 희한하다. 테이블에 전시해 놓은 것을 보니, 팜플릿을 잘 접으면 나름 저금통이 되도록 만들어 놨다. 이런 건 머리 잘 썼다.
이런 데서 주는 설명서는 한 번 보고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는 경우가 흔한데, 이렇게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애를 썼구나. 다른 곳도 이것과 비슷하게, 팜플렛으로 종이 공작을 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
물론, 팜플렛으로 저금통 만들었어도, 우와 다 만들었다하고 버렸지만, 그래도 뭔가 만드는 기쁨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 입구로 들어가니 개요 비슷하게 홍보 영상이 딱 나온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센서가 감지해서 거기에 맞춰서 영상이 나오도록 돼 있다. 교육방송이나 예비군 훈련 교육 같은 느낌이라 끝까지 듣고 있기 힘들었다.
뒷쪽으로 다가가서 센서에 맞게 움을 잘 움직이니 문이 열렸다. 원래는 영상이 끝나면 자동으로 지잉하고 열리는 극적인 효과를 노린 듯 한데, 싫어, 난 중간에 나갈래. 중간에 나갈 수 없는 공간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잖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센서로 컴퓨터가 잘 인식할 수 있게 인간이 잘 움직여줘야 한다는 거다. 자동문이 다 그렇잖아, 인간 따위가 잘 움직여줘야지 기계님이 문을 열어주신다.
국토발전전시관은 국토교통부가 국토교통 역사와 정책 등을 홍보하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옛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2017년 11월에 개관했다.
4층 국토세움실은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중심으로 과거의 상황과 국토 개발 과정 등을 보여준다. 3층 국토누리실은 도로망, 철도, 항공, 항만 사업 등을 테마로 보여주고, 2층 미래국토실은 해외 건설 사례와 미래 계획 등을 보여준다. 1층에도 기획전시실이 있는데, 여기는 시기에 따라 전시 주제가 바뀐다.
이 박물관의 건립 추진계획을 확정한 것이 2013년 10월. 초기 기획이 대략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은 가지만, 어쨌든 정권이 바뀌고 나서 개관을 했다. 자세한 짐작은 생략한다.
옛날에 국토부에서 사용한 '타자기'라고 소개 돼 있던 기기. 타자기라기보다는 워드프로세서가 맞는 용어 아닐까 싶지만, 요즘 워드프로세서라고 하면 한글이나 MS워드 같은 소프트웨어만 생각할 테니까, 타자기라고 표현하는게 이해하기 쉽긴 하겠다.
어쨌든 양식 맞춰서 척척! 프로그래밍 가능! 이라고 돼 있는 스티커도 떼지 않고 잘 사용했구나. 당시엔 첨단 기기여서 애지중지 했을 테지 아마.
4층 전체가 국토종합개발계획 홍보관으로 꾸며져 있다. 한국전쟁 후에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짠 하고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보통 이런 전시를 하면 판넬을 주로 이용해서, 사진과 설명을 담기 때문에 지루한 감이 있는데, 여기는 그래도 모형을 좀 많이 갖다놓고 보여주려고 노력한 티가 난다.
판넬로 사진과 설명만 줄줄이 있는 전시는 죽은 전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시관을 가도 그런 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전시는 몇 층으로 꾸며져 있어도 십 분도 안 돼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사진과 글을 읽으려면 굳이 이런 현장을 가 볼 필요가 없잖아, 그냥 사이트를 만들어서 인터넷 전시를 하면 되지.
이렇게 정감 넘치던 골목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변했어요.
아파트를 쌓으면서 주택 보급이 늘어났어요.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만 집을 몇 채씩 가지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주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다. 다행이다.
롯데타워와 63빌딩 모형도 있다. 롯데타워 전망대는 언제 올라가보나. 입장료가 만 원으로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마 죽기 전엔 못 가 볼 듯.
뭔가 이렇게 저렇게 꾸며져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전시관들이 그렇듯, 여기도 내부를 아기자기하게 공간을 변형시켜가며 예쁘게 잘 만들어 놨다. 이것저것 보다보면 시간 잘 간다. 나중엔 뭘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게 문제지만.
차세대 고속철도 '해무' 시물레이션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아무때나 되는 건 아니고, 시물레이터가 작동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듯 한데, 운 좋게도 관람하다가 체험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체험이 가동되면 아이들이 달려오지만, 이날은 아무도 없었다.
기관차 좌석에 앉아서 기차를 운행하는 듯 한 느낌으로 영상을 보는 체험 기기였다. 버튼 같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모두 모형이고, 작동하는 버튼은 시작 버튼과 경적 울리는 버튼 등 몇 개 뿐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니 영상에서 꼬맹이가 나와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데, 속력 레버를 돌려서 속력을 높여라 줄여라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데, 레버를 조절해봤자 속력 따위 조절되지 않는다. 조절된다는 기분만 느낄 수 있는 페이크일 뿐. 어차피 아이들 체험용이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근데 이런 걸 보면 좀 그렇다. 길거리 횡단보도의 신호등 버튼도 이런 식이다. 버튼을 누르면 곧 바뀐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줘서 희망을 가지게 만든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도 정해진 시간에만 신호등 불빛이 바뀌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 동네도 이런 신호등 횡단보도가 있는데, 몇 년 하다보니 동네 사람들도 이미 다 알아채서, 이젠 아무도 버튼 따위 누르지 않는다. 초반에는 희망을 줘서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사회에 대한 불신 장치로 자리잡았다. 뭐 그냥 페이크 버튼이 나온 김에 떠오른 거다.
그래도 해무 체험이 가장 재미있긴 했다. 관람 중간에 앉아 쉴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체험 중간에 동영상을 찍어봤으니, 대략 어떤 것인지 보고싶다면 아래 유튜브 링크로 가서 보시라.
또 다른 체험 공간이 있었지만, 이건 작동 시간이 안 돼서 체험해 볼 수 없었다. 이후에는 다시 일반 전시관 처럼 이것저것 구경하며 다니는 형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등이 한국 기업이 참여해 건설했다고 전시하고 있다. 훌륭하긴 한데, 이런 건물의 설계는 다른 나라 업체에 맡긴다는 것이 못내 씁쓸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리나 베이 샌즈와 부르즈 할리파를 동시에 사진에 담을 수 있어서 독특한 전시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모형이 좀 부실해서 안타깝다.
미래 정책을 보여주는 곳은 마치 아직 단장을 못 끝낸 듯 한 모양새였다. 테이블과 판넬로 설명하는게 전부이고, 조명도 어스름했다. 다른 층들은 각종 모형들로 내부를 잘 꾸며놓고는 이 전시실은 왜 이렇게 썰렁하게 만들어놨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했다. 미래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아마도 뭔가 사정이 있었을 듯 하다. 차라리 여기는 관람 끝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 코너로 꾸며 놓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미래엔 좀 쉬자는 의미를 넣어서. 싫으면 말고.
이렇게 4층부터 2층까지 관람을 끝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전히 조용해서 들어가기 무서운 카페를 지나, 로비를 지나서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관람이 끝났다. 건물 크기가 큰 만큼, 전시관 크기도 크고, 다양하게 이것저것 갖다놔서 나름 구경할 것도 많다. 그래서 한 번 쯤 아이들 데리고 가볼 만 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국토교통부 건물이라 이런 전시관을 기획한 거겠지만, 그래도 정동길에 이런 전시관은 좀 쌩뚱맞은 감이 있다. 정동길 전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구한말 테마로 조성되어 있는 현실이니, 그에 맞는 전시관을 만들었다면 좀 더 의미도 있고 관람객도 많지 않았을까.
정동길 혹은 주변 어느 곳에 이런 박물관이 하나 생겼으면 한다. 일제에 의해 파괴되거나 훼손된 건물들, 그리고 그 후 난개발로 사라지거나 훼손되거나 엉터리 복원된 문화재들을 정동을 중심으로 정리해서 전시하는 전시관 말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정동길에는 이런 것이 더 어울릴 듯 하다.
p.s. 국토발전전시관
입장료: 무료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09:30-17:30 (17시까지 입장 가능), 월요일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