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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대신 서울식물원 - 서울에서 열대와 지중해 식물을 만나보자서울미디어메이트 2018. 12. 29. 14:02
올 겨울도 어김없이 한파가 몰려왔다. 연일 추위에 움츠려 꼭 가야할 곳을 갈 때만 외출한다. 쉬는 날이 와도 야외는 나갈 엄두가 안 나고, 실내로 놀러갈 수 있는 곳들은 대개 뻔하다. 사람도 많고, 공기도 탁하고, 돈도 많이 들고, 별로 신나지도 않는다.
남들은 추위를 피해서 동남아로 해외여행 간다는데 난 이게 뭔가 싶을 때, 어느날 느닷없이 불어온 차가운 바람이 쓰러질 듯 무겁게 내 영혼을 적실 때, 식물원에 가보자.
그곳에는 인간이 조절하고 식물이 내뿜는 따뜻하고 상쾌한 공기가 있고, 든든하고 우람하고 멋진 나무들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두 팔 벌려 맞이해준다.
'서울식물원'은 마곡 도시개발지구에 자리잡은 공원 겸 식물원이다. 총 넓이 50만4천 제곱미터로 여의도의 2.2배에 달하는 면적 대부분이 공원이다. 그 속에 '주제원'이라는 이름으로 식물원이 자리잡고 있다.
'주제원'은 한국의 식물을 정원 형태로 보여주는 식물원인데, 지금은 겨울인데다 정식 오픈 전이라 크게 흥미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주제원 안의 '식물문화센터'에는 큰 온실이 있는데, 여기는 겨울이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가볼 만 한 곳이다.
온실 규모는 직경 100미터, 최고 높이 28미터인데, 일반적인 돔형 구조가 아니라 가운데가 오목한 그릇 같은 독특한 형태다. 가운데로 빗물을 받아 재활용하는 구조인데, 처음엔 건설사들이 이런 건물을 건축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여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다.
어쨌든 서울식물원의 랜드마크인 식물문화센터는 2019년 5월에 정식 개원을 할 예정인데, 그 전에 준비 운영 기간을 가지기 위해서 임시 개방 중이다. 임시 개방 중에는 주제원과 온실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니, 추운 겨울날 열대 지역으로 여행 간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 관심을 가져보자.
식물문화센터 온실은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열대관과 지중해관이다. 기후대별로 총 12개 도시의 식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노이, 자카르타, 상파울로, 보고타는 열대관에서 볼 수 있고, 바르셀로나, 센프란시스코, 로마, 아테네, 이스탄불, 타슈켄트, 퍼스, 케이프타운 식물들은 지중해관에 있다.
식물문화센터 입구로 들어가면 로비와 교육문화공간이 나오고, 옆쪽으로 온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입구 있는 곳이 지하 1층이고, 한 층 올라가서 카페가 있는 곳이 1층이다.
처음 방문할 때는 입구가 지하 같지 않게 돼 있어서 지상 1층인 줄 알기 쉽다. 그래서 안내하시는 분이 "한 층 올라가서 1층으로 가라"고 하면, '여기가 1층이 아닌가?'하면서 헷갈리기 쉬우니 주의하자.
온실 입구에 들어서니 갑자기 몰아 닥친 더위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문 하나를 두고 바깥과 안쪽이 기후가 완전히 다르다. 마치 겨울에 동남아에 가서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것 같은 느낌. 방금 전까지 추위에 벌벌 떨며 걸어왔는데,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땀이 줄줄 흐른다.
열대관은 덥기만 한 게 아니라 습하기도 하다. 열대의 덥고 습한 기후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단순히 덥고 습하기만 하다면 찜질방을 가면 되지만, 식물원 온실은 당연히 그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식물들을 만나면서, 정말 열대 지역에 온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입구에서 잠시 기후 적응을 한 다음 천천히 걸어나가면, 작은 인공 호수와 폭포로 마치 정글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마치 여행을 간 느낌으로, 립스틱야자, 인도보리수, 대왕야자, 나무고사리, 코코넛야자 같은 열대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반팔에 샌달 신고 슬슬 돌아다니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코트를 벗을 수 없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다녀야만 했다. 동남아에서 코트 입고 다니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는데, 이것 또한 나름 독특한 체험이라 여겨도 좋다.
바깥 날씨 때문에 두꺼운 코트를 입고 들어설 수 밖에 없는 온실이지만, 그래도 이곳은 겨울에 구경하는게 낫지 싶다. 여름엔 바깥도 더운데 안까지 더우면 더 참기 힘들 테니까.
길따라 구경하다보면 계속해서 지중해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 열대관과 지중해관은 분리 돼 있고, 문을 지나서 갈 수 있다.
지중해관은 열대관보다는 온화한 기후를 하고 있다. 온도와 습도가 모두 열대관보다 낮아서, 겨울 코트를 입고도 대충 견디며 돌아다닐만 하다. 어쩌면 열대관을 먼저 겪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지중해관은 아기자기하게 꾸며놔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로마의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광장과 함께 로마의 정원 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는 장미 터널과 정원사의 방이 있어서, 관람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12월 24일부터 서울식물원은 윈터가든을 운영 중인데, 이 로마 광장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고, 정원사의 방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으로 꾸며져 있다. 계절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되겠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테마로 한 곳엔 선인장과 용설란 등이 있다. 사막 비슷한 모습도 볼거리지만, 여기 선인장 하나에 산타 모자가 씌워져 있다. 이것도 윈터가든 프로그램으로 꾸며놓은 것들 중 하나다.
시즌 이벤트로 이런 것들 설치해놓고 이벤트를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온실 내부 식물 몇몇에 산타 모자나 작은 장식을 해놓고, 모두 찾아서 사진 찍어 올리면 박수를 쳐 준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돔형 온실은 가운데가 높기 때문에, 키 높은 나무가 가운데 몰려 있다. 하지만 서울식물원 온실은 그릇 모양처럼 바깥쪽이 더 높게 돼 있어서, 키 높은 나무들이 바깥쪽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시야가 확 트여서 온실 전체를 파노라마 처럼 볼 수 있고, 규모도 좀 더 커 보인다.
온실 천장에는 여기저기 열기구 모형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방문자가 탐험대가 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장식이다. 식물원 홈페이지 자료실을 보면 식물탐험대 셀프가이드도 있고, 어린이를 위한 탐험일지 팜플렛도 있다.
서울식물원은 시민들이 단순히 식물을 구경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탐험가가 되어 식물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문화를 정착시키려 한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식물에 관한 교육과 상담도 진행한다. 식물을 들고가면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시민들에게 씨앗을 빌려줘서 다 키운 식물로 갚도록 하는 제도도 운영한다.
바오밥나무는 흔히 생각하는 뚱뚱한 형태가 아니라, 날씬한 종류였다. 길따라 몇 그루가 쭉 늘어서 있어야 멋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실물을 볼 수 있다는데 만족하자. 근처에는 독특한 모양의 아프리카 물병나무도 있다.
스카이워크로 올라가면 열대관 쪽으로 다시 돌아나갈 수 있다. 스카이워크는 열대관 온실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색다른 시각을 선사하는 동시에, 출구로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스카이워크가 좀 더 길게 설치되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간도 좀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 출구로 나가는 역할 정도만 하는 듯 해서 못내 아쉽다. 그래도 그렇게 짧기만 한 길이도 아니니, 천천히 즐기며 아쉬움을 달래보자.
이렇게해서 온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겨우 온실 안 기후에 적응했는데 다시 밖으로 나가자니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가서도 한동안은 추위가 느껴지지 않으니 뭔가 얻은 게 있는 기분이다.
이어서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흔히 오아시스 링이라 불리는 플로랄 폼에 꽃과 식물을 꽃아서 만드는 장식용 리스였다. 선생님 하는 걸 보니 쉬워보여서 쉽게 했더니 쉬워 보이는 리스가 돼버렸지만, 식물원에서 식물로 뭔가를 만드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물론, 이건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수업은 아니고, 특별한 이벤트 등으로 참여가 가능한 수업이다. 하지만 서울식물원에는 누구나 신청을 해서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다.
식물원을 산책하며 힐링을 하는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민화 문자도, 야생화 자수, 세밀화 수업, 심지어 요가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홈페이지의 '교육프로그램' 메뉴를 둘러보고 예약하면 된다.
이외에도 식물문화센터에는 카페와 식물도서관, 기념품 판매소 등이 있으니, 온실을 나와서도 이것저것 둘러보거나 쉬어가기 좋다.
특히 카페는 넓직한 테이블 중앙을 큰 화분처럼 활용해서 식물을 배치하고 있어서,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하면서도 식물원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윽고 폐장 시간이 되자, 공원 여기저기에 조명이 켜졌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온실 속에서 켜진 조명이었는데, 시간을 두고 여러가지 색깔로 바뀌었다. 나중에 정식 개장을 하면,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슈퍼트리 그로브 처럼 운영을 할 계획이라 한다.
아직 어떤 식으로 운영될지 알 수 없지만, 온실 뿐만 아니라 서울식물원 공원 부지 전체를 활용해서 싱가포르의 슈퍼트리 그로브 같은 것을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굳이 수퍼트리가 아니더라도, 돈 많이 들지 않고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을 테다. 어쨌든 공원 전체가 환하고 예쁘면, 늦은 밤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고, 관광지로도 활용할 수 있을 테다.
지금은 야간에 '윈터가든' 프로그램이 운영중이다. 저녁 5시부터 밤 10시까지, 공원 곳곳에서 빛으로 된 장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온실 입구에 있는 12미터 높이의 '대형 빛 트리'도 윈터가든 프로그램 중 하나다.
관람을 끝내고 바로 지하철 타러 가지말고, 온실 건물을 옆으로 끼고 호수원 쪽으로 넘어가보자. 조금 춥기는 하지만, 예쁜 빛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어린이정원학교의 별빛정원, 호수원의 무지개 파노라마와 윈터 포레스트, 그리고 마곡나루역 쪽 입구의 LED 실버트리를 끝으로 서울식물원 야간 관람을 모두 마칠 수 있다.
서울식물원은 크게 네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온실이 있는 주제원이 지금은 가장 볼만 한 곳인데, 봄이 오고 정식 개장이 다가오면 앞으로 다른 곳들도 차츰 예쁘게 피어날 테다.
열린숲은 입구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방문자센터와 잔디마당, 숲문화원 등이 있어, 앞으로 축제나 전시 등이 펼쳐진다. 2020년에는 LG아트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호수원은 인공호수 주변으로 산책과 함께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습지원은 습지 동식물 관찰과 한강 전망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습지원은 아직 개방을 하지 않았는데, 이 공간이 개방되면 한강 자전거길을 타고 식물원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이중에서 주제원만 정식 개장 후에 입장료를 받는 공간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공원으로 활용된다.
아무래도 정식 개장을 해야 공원 전체에 볼거리가 많겠지만, 지금도 주제원의 식물문화센터 온실은 충분히 가볼 만 하다. 너무 햇볕을 안 보면 몸이 허약해져서 이불 안도 위험하니, 따뜻한 식물원으로 가볍게 떠나보자.
p.s. 참고
* 12월 7일부터 2019년 2월 28일까지, 동절기 주제원(온실, 정원) 관람시간은 09시부터 17시까지. 입장 마감은 16시까지다.
* 월요일 휴관.
* 온실이 있는 식물문화센터는 양천향교역이 더 가깝지만, 서울식물원 정식 입구는 마곡나루역 쪽이다. 마곡나루역 쪽에서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길을 달리하면, 공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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