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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루셔니스트] 잔인한 로맨티스트
    리뷰 2007. 3. 12. 15:55
    (결말을 알고 싶지 않다면 읽지 마세요)

    `일루셔니스트를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환영술사 정도 되겠지만, 그냥 마술사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19세기 말 비엔나의 한 마술사에 대한 이야기로, 마술쇼를 보여주면서도 러브스토리가 가미된 영화다. 신분의 벽에 가로막힌 마술사와 그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 첫사랑의 여인이 황태자의 약혼녀이기 때문에 마술사는 다시 또 현실적으로 힘든 사랑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마술사의 마술 장면은 사실 그리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지 않는 이상, 영상매체로 보여 주는 마술은 김 빠진 사이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나오는 마술이 신기하다며 감동 받을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런 것을 감안했다면 아예 그냥 현실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화려하고 현란한 마술을 과감하게 보여 줬더라면 영상미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술사의 마술이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한 이유로 관심은 자연스레 스토리로 집중이 되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편적으로는) 신분의 벽을 뛰어 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황태자라는 커다란 사회적 권력마저도 극복하는 엄청난 사랑이다. 그래 참 대단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거야 하고 짝짝짝 박수 치고 일어날 수도 있지만, 쓸 데 없는 생각 몇 가지를 더 해 본다.

     현실적인 이유로 황태자의 약혼녀가 된, 왠만한 사람들이 볼 때는 분명 땡 잡은 것이 틀림 없는 여인이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 한다는 것. 물론 돈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겠지만, 황태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정말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밝혀진다면 자기 집안 가족 모두에게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이 틀림 없는데도 오로지 자신의 사랑만을 위해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 정말 무서운 여자다. 황태자 입장에서 봤을 땐 팜므파탈이라 할 수 있다. 후에 마술사 따라 가서 생활고에 시달리면 또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뭐 그 때 까지는 잘 먹고 잘 살라.

     또 다른 시각으로 불쌍한 황태자에게 눈길을 돌려 보자. 그는 마술사의 마술이 속임수일 뿐임을 밝혀 만인에게 보여 주고 싶어 했다. 마술사는 경찰에 잡혀갈 때까지 자신의 마술이 속임수라고 분명히 밝힌 적 없다. 물론 속임수가 아니라고 말 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황태자는 그 마술이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을 했는데, 사람들은 재미있으니 그냥 보자고 한다. 심지어는 그 환상을 사실로 믿고 마술사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이 즘 되면 마술사를 사기 죄로 잡아들여도 큰 문제 없는 상황이다. 황태자는, 인간성이 별로 안 좋긴 하지만, 진실을 알리고 싶었던 거다. 그 노력 때문에 스스로 함정을 판 꼴이 됐고, 급기야는 억울한 일을 당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결국 황태자가 최소한 이 일에 있어서만큼은 정당했음이 밝혀지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악인이고 누가 선인이란 말인가. 사랑의 이름으로 그 모든 것들이 덮어 지는 것인가.

     신분, 권력 등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선 강하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그냥 즐겨도 별 문제는 없는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사랑이면 장땡이다'라는 위험한 발상을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어서 그리 마음 편하고 개운한 영화는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겨우 연애행각때문에 벌인 일 치고는 좀 너무 심하지 않은가.

    (www.emptydrea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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