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서울에도 눈이 많이 내렸지만, 내리자마자 땅바닥에 드럽게 얼어 붙어서는 시커면 먹물만 찍찍 뿜어낸다. 눈이 원래 이런 거였던가. 오랜 도시생활로 찌든 가슴은 하얀 눈의 아련한 낭만마저도 생활의 불편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덕유산이나 소백산 정도로 가면 곱게 쌓인 눈밭 위에서 러브스토리 한 편 알싸하게 찍을 수도 있다. '북쪽얼굴' 같은 전문 등산용품들을 변신합체 로봇처럼 덕지덕지 붙이고 챙겨 입고 하지 않아도, 따뜻한 옷 한 벌과 대충 얼음판에서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의 싸구려 아이젠 하나 정도만 챙겨 가도 충분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게, 그런걸 한 번 보고나면 또 식상하다. 어느새 '아, 나도 사람 키만큼 쌓인 눈밭 속에서 이국적인 낭만을 느껴보고 싶어라'를 꿈 꾸게 된다. 어차피 혼자가는 여행에 낭만따위 있을 리도 없지만, 일단 그리 꿈 꾸게 된다는 거다. 갔다오면 카드값에 피를 토하며 내가 왜 갔지 하며 후회의 눈물을 뚝뚝 흘릴 지라도.
그래서 삿포로를 생각해 보게 됐다. 여기저기서 우연히 접했던 삿포로는, 물론 다른 계절에도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겨울엔 특히 아름다운 곳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비록 막상 도착해서는 얼어죽을지언정, 머릿속에 남겨진 이미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결국, 그래 나도 삿포로 (홋카이도)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실은 돈 없는 영혼. 2011년 1월 현재, 서울에서 삿포로(일본 홋카이도)까지 비행기로 가면, 한 번 경유를 하는 비교적 싼 것으로 타도 대략 55~60만 원 정도 든다 (왕복요금, 세금 및 유류할증료 포함).
물론 그중에는 50만 원 정도 되는 것도 간혹 있으나, 그런 것들은 어떤 귀신같은 사람들이 이미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런 것을 재빨리 낚아채는 능력을 타고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가격표는 애초에 무시하는 것이 속 편한 일.
아, 그런데 하늘에 60만 원 돈을 펄펄 뿌리고 다닌다는 게 못내 안타깝고, 또 아깝다. 그렇게 간다면 나는 기껏 홋카이도에 가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아아, 비행기로 뿌린 내 돈이 눈이 되어 내리는 구나, 아까운데 배 부를 만큼만 먹어 볼까. 흑흑.
그래서 뭔가 조금이라도 싸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배'를 생각하게 됐다. 아무래도 비행기보다는 배가 더 싸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 갈 수 있을지 어떨 지도 모르지만, 여행바람 단단히 불어 있는 마당에 뭔 일이 손에 잡히랴. 앞뒤 무시하고, 일단 홋카이도로 갈 수 있는 배편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라도 혹시 머리에 찬바람 많이 들어가면 실행에 옮길지도 모르니까, 일단 간략하게나마 알아낸 것들을 정리해 둔다. 시간적 제약은 많이 무시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비행기값을 계산할 때도 서울에서 출발하여 삿포로로 가는 것으로 계산 했으므로, 배편을 이용할 때도 일단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일본으로 가는 배편은 부산에만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차편 요금이 들어간다.
2011년 1월 현재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버스 요금은 다음과 같다.
일반고속: 22,000 원
우등고속: 32,800 원
따라서 기본적으로 대략 6만 원 정도가 기본 차비로 들어간다. 물론 차에서 혹은 내려서 먹을 음식값 같은 것들도 계산에 넣어야 하겠지만, 그건 굶으면 되므로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다. 싫으면 알아서 얼마씩 더 추가비용으로 넣기 바란다. 아울러, 기차를 타실 분들도 알아서 계산 하시고.
* 부산 -> 후쿠오카 -> 도쿄 -> 홋카이도
일단 배로 간다고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후쿠오카로 가서 어떻게 해결 해보자 이다. 후쿠오카는 의외로 일본 국내 여기저기로 향하는 배편이 많아서, 대마도, 오키나와 등의 섬을 비롯해서, 시코쿠, 오사카, 도쿄 등으로 수많은 배들이 오간다.
하지만 후쿠오카에서 홋카이도로 바로 연결되는 배편은 없고, 어딘가를 한 번씩 거쳐서 가야만 한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도 경비가 그리 적게 들지는 않을 듯 하다. 그래도 배편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조사한다는 의미에서, 후쿠오카에서 도쿄를 거쳐가는 루트를 한 번 살펴보자.
* 부산 -> 후쿠오카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간다고 하면, 보통은 '하카다(hakata)항'으로 가는 배를 떠올린다. 일반적으로 후쿠오카를 여행할 때는 하카다항으로 가는 것이 시내로 바로 접근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산에서 가는 배편도 하카다 항으로 가는 것이 많다.
참고로 부산에서 하카다항으로 가는 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몇 시간 만에 가는 쾌속선과, 하룻밤을 배에서 자야하는 페리.
쾌속선은 부산에서 하카다항(후쿠오카)까지 약 3시간 만에 가는데, 요금은 왕복 23만 원이다. 고려훼리의 뉴카멜리아는 부산항에서 22시 30분 출발, 하카다항에 새벽 6시에 도착한다. 제일 싼 선실 요금은 왕복 171,000 원이다. 특히 뉴카멜리아호의 다인실은 때때로 외국인 강사들이 많이 탈 때가 있어서 희한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참고:
부산항-하카다항 쾌속선 코비 운임 페이지
부산항-하카다항 페리 뉴카멜리아 운임 페이지
그런데 하카다항에서는 일본 동쪽으로 가는 배편이 없다. 하카다항은 대마도를 비롯한 큐슈 주변의 섬으로 가는 배편들만 있을 뿐이다. 도쿄나 오사카, 시코쿠 등으로 가려면, 기타규슈시의 모지항으로 가야한다. 다행히도 부산에서 모지항으로 가는 배편이 있다. 부산에서 23시에 출발해, 모지항에 다음날 8시 반에 도착하는 '세코마루'호다.
가장 싼 다인실 운임은 왕복 171,000 원. 다른 배들도 다 그렇지만, 이 배도 유류할증료와 터미널 이용료는 별도로 낸다. 한국 쪽과 일본 쪽, 양쪽의 유류할증료, 터미널 이용료를 합치면 약 3만 원 정도를 추가로 더 내야한다. 그래서 실제 운임은 왕복으로 약 20만 원으로 계산하는 것이 옳다.
참고:
부산항-모지항 세코마루호 운임 페이지
* 기타큐슈 -> 도쿄
모지항(신모지항)에서 도쿄로 가는 배도 카페리다. 매일 오가기는 하는데, 시기나 요일에 따라 시간이 약간씩 달라진다. 대략 19시 30분 출발해서, 다음날 13시 쯤 도쿠시마 도착. 다시 출발해서 그 다음날 06시 쯤 도쿄 도착이다. 즉, 기타큐슈에서 도쿄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약 35시간을 배에서 보내야 한다. 대략 어떤 생각을 할지, 다들 말 안해도 알 테니까, 여기에 대한 언급은 접겠다.
요금은 가장 싼 스텐다드 2등실이 편도 14,470 엔. 왕복으로 끊으면 표 한 장만 10% 할인해 준다. 일단 할인은 무시하고, 계산의 편의상, 왕복으로 대략 29,000 엔으로 잡자.
참고:
기타큐슈-도쿄 운임 페이지 &
운항 스케줄
* 도쿄 -> 오아라이
도쿄(Tokyo, 東京)에서 바로 또 홋카이도까지 딱 이어지는 배편이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도쿄에서는 홋카이도로 가는 배편이 없다. 그럼 왜 도쿄까지 왔느냐.도쿄에서 약 10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오아라이(OARAI, 大洗)'라는 동네가 있는데, 여기서 홋카이도의 '도마코마이(Tomakomai, 苫小牧)'까지 배편이 있다.
그럼 일단 도쿄에서 오아라이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뛰어갈 수도 있지만 일본 기차도 구경할 겸, 열차를 타 보자. 도쿄에서 오아라이까지는 약 2시간 남짓 걸리고, 요금은 편도로 약 2,500 엔 정도다.
참고:
도쿄-오아라이 열차 정보
* 오아라이 -> 홋카이도
오아라이에서 홋카이도 가는 배편은 매일 있긴 한데, 시간표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시간에 배가 오가므로 딱히 몇 시 출발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대략 19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만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다. 요금 또한 기간을 나눠놓고 변동적으로 받기 때문에, 중간쯤 되는 금액을 잡기로 하겠다. 가장 싼 이코노미 룸이 편도 11,000 엔. 왕복으로 끊으면 돌아오는 표만 10% 할인 해 준다.
참고:
오아라이-도마코마이(홋카이도) 배편 운임 &
운항 스케줄
* 홋카이도 도착
어쨌든 이리하여 무사히(?) 홋카이도에 도착했다. 비록 도코마이가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 그럼 경비 정산을 해보자. 모든 경비는 왕복으로 계산했다.
서울-부산 교통비: 60,000 원
부산-기타큐슈(모지항) 배편: 200,000 원
기타큐슈-도쿄 배편: 29,000 엔
도쿄-오아라이 열차: 5,000 엔
오아라이-도마코마이 배편: 22,000 엔
총합: 26만 원 + 56,000 엔 = 대략 100 만 원!!!
(100 엔 = 1380 원 으로 계산)
* 결론
이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루트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엄청나게 걸린다. 부산에서 홋카이도까지 가는 데만 약 5~6일 걸리는 일정. 거기다 대부분의 시간을 배에서 보내야 하는 대략 난감한 사태. 내가 왜 시간 들이고 공들여서 이런걸 계산했지라는 자괴감이 느껴지고, 비행기가 좋은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이 방법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한 사람 쯤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비행기를 무지하게 싫어한다거나, 배 타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거나, 엄청난 무게의 금덩어리를 손수 홋카이도까지 운반하고자 하는 사람 등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부디 유용하게 잘 사용하시기 바란다. 나는 안 할 거다 (비용만 적게 든다면 하겠는데).
* 참고사이트
일본여객선협회:
http://www.jships.or.jp/
일본국내 페리노선도:
http://www.japan-guide.com/e/e23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