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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 러이 끄라통 (Loy Krathong)해외여행 2012. 12. 1. 23:58
태국 달력으로 음력 12월 보름, 이때가 되면 태국에서는 전국적으로 큰 축제가 펼쳐집니다. 바로 '러이 끄라통 (Loy Krathong)'이라는 행사인데, '러이'는 '보내다'라는 뜻이고, '끄라통'은 연꽃처럼 생긴 배를 뜻합니다.
이 축제의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르고, 여러가지 설들만 전해 내려옵니다. 첫 수확을 즐거워하며 다함께 모여서 놀기 위해 마련된 축제라는 말도 있고, 배에 식량 등을 실어 내려보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죄를 씻기 위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물론 신화적으로 착한 신이 악한 신을 물리칠 때 이 방법을 쓴 데서 이 축제가 유래했다는 말도 있고, 부다가 '후에 내가 열반에 들 거라면 이 쟁반이 상류로 올라갈 것이다'라며 쟁반을 강에 띄운 것이 시작이라는 설도 있지요.
쑤코타이 사람들은 이 축제가 쑤코타이에서 유래됐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전국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를 치른다고도 합니다. 풍문만 들었을 뿐 아직 확인하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어쨌든 러이 끄라퉁은 전국적인 행사이기에, 이 축제가 시작되면 태국의 강에는 촛불을 밝힌 작은 배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태국 사람들은 강에 이 조그만 배를 띄우는데, 그 배에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밝혀 소원을 빕니다. 초가 오래오래 꺼지지 않고 잘 떠내려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더군요.
일년에 한 번 있는 날에 저마다의 소원을 빌어서인지, 강변에서 작은 배를 띄우는 사람들의 표정은 아주 진지합니다. 배에 촛불을 밝혀놓고, 강에 띄우기 전에 곱게 무릎을 꿇고 양손을 가슴에 모아, 정말 간절하게 무언가를 비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혼자 와서 배를 띄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족이 함께 띄우기도 하고, 연인들이 함께 띄우기도 하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장난치며 웃던 사람들도 배를 띄우기 직전에는 모두들 진지해지곤 했답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배에 돈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띄워 보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표시해서 간절한 소원임을 표시하는 거겠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띄워 보내기도 하는 거겠지요.
그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류쪽엔 배를 끌어당겨서 돈이나 물건들을 뒤지며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도 보였어요. 러이 끄라통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죄를 씻는다는 목적이라면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더군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한 태국 북부지역은 러이 끄라통 때, 촛불 밝힌 배를 띄우는 것 외에도 '콤 러이(Khome Loi)'라는 행사도 함께 진행됩니다.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풍등(風燈)을 하늘로 띄워 올리는 행사죠. 이 풍등을 '콤'이라고 하는데, 흔히들 '콤러이'라고도 부릅니다.
풍등 아랫부분에 불을 붙여서 그 열기로 등이 하늘로 올라가도록 하는 형태라서, 이 행사기간 중에는 치앙마이 하늘 여기저기에 붉게 빛나는 풍등이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때때로 도시를 휑하니 걷다가 밝은 달을 향해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풍등을 보면, 누구의 소원이 저리도 간절할까하며 넋을 놓고 멍하니 한참을 쳐다볼 수 밖에 없답니다.
러이 끄라통 당일날에는 치앙마이 외곽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의 '빙' 강에서 퍼레이드를 시작합니다. 태국 전설이나 신화, 역사적 인물 등으로 치장한 가장행렬 비슷한 퍼레이드인데요, 뒤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는 우리나라 농악대처럼 풍악을 울리며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람들도 있어서, 정말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지요.
이 퍼레이드는 치앙마이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기로 유명한 '타 패' 게이트까지 이어져서, 축제때 이 지역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만큼, 수많은 배들이 강을 장식했고, 또 많은 풍등들이 하늘을 수놓아, 치앙마이는 정말 하늘에도 땅에도 따뜻한 주황색 별들이 가득했지요.
하늘에는 영롱하게 깜빡이며 빛나는 풍등의 별들이, 강에는 반짝반짝 깜빡이며 흔들리는 작은 배 촛불의 별들이, 그렇게 수많은 별들이 가만가만 온 세상을 수놓고 있는 모습은 참 아련하고도 애틋한 모습이었답니다. 그 별들 하나하나가 모두 누군가의 소원이고, 바램이고, 마음이었으니까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희망들을 가지고, 저마다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 하늘에, 강에, 세상에, 또 누군가에게 고이고이 보내고 있었어요. 반짝이는 그 별빛들의 모습보다도, 흥겨운 그 축제의 분위기보다도, 무언가를 바라고 또 소원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들이 눈에 보이는 듯 해서 더욱 찬란했던 밤이었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저도 작은 배를 두 개 띄웠지요. 실은, 이렇게 소원을 비는 것은 정말 부질없다고 생각했더랍니다. 소원은 마치 돌아오지 않는 약속 같은 것이라서, 기약 없는 기다림 같은 것이라서, 스치는 바람 같은 것이라서, 간절히 빌면 빌 수록 더욱 서글퍼지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이런 기회가 올 때면 늘, 저는 통일을 빌곤 했지요. 물론 통일이 되어 육로로 세계일주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소원을 빈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나도 서글펐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넘어가곤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돌아오지 않는 마음이라도 좋으니까 부디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애틋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습니다. 제발, 다시 당신을 만나게 해 달라고.
다시 만나서 저 작은 두 배들처럼 조용히, 세월의 강을 따라 떠내려가게 해 달라고. 물론 가다가 급류를 만나고, 물 속에 잠기기도 하고, 또 여러가지 고난들을 겪기도 하겠지만, 함께 꼭 잡은 두 손 끝까지 놓지 않고 바다로, 저 멀리 아름다운 그 어떤 곳으로 오래오래 함께함께 헤치고 나가게 해 달라고. 그렇게 조용히 두 손 모아 빌었답니다.
물론 우리가 함께하려면 서로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고 헤쳐가며 함께 있고자하는 우리 두 마음이,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노력이, 행동이,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불안감에, 이렇게라도 조금이라도 간곡하게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며 위안을 얻으려는 이 마음.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어리석다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 그저 이렇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 마음만 고이고이, 흘러흘러 잘 전달 되었으면 합니다.
콤러이라는 풍등으로도 소원을 빌기도 하는데, 이 풍등이 하늘을 날다가 떨어지면 슬픔과 액운도 함께 떨어진다 합니다. 그래서 끄라통 배를 띄우는 사람들은 또 콤러이 풍등을 날렸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혹은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혹은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혼자서 띄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풍등을 띄우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 우리 두 손 맞잡고 서로의 눈을 확인할 때까지, 내 슬픔과 액운은 그대로 간직하려 합니다. 당신에게 위로 받고 싶으니까요. 내가 다독이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함께 마음을 모아, 서로의 슬픔을 모두 합쳐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아니, 조금 초라해졌다 하더라도 개의치 마세요. 당신의 마음만 그대로라면, 당신이 나를 보던 그 눈빛만 아직 그대로라면, 어떤 모습이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부디 다시 돌아오기만 하세요. 우리는 하늘로 올려보낼 아름다운 별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야만 올려 보낼 수 있습니다. 당신 없이는 세상 그 누구라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부디, 세상이 당신을 지치게 만들고, 인생이 당신을 힘들게 만들어도, 쓰러지지 말고 나에게 돌아오세요.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이 올 때까지,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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