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청 쪽으로 접어드니 소위 구시가지라고 불리는 지역이 나왔다. 쭉 뻗은 큰 길가에 아파트와 건물들이 즐비한 신시가지와는 반대로, 구시가지는 다소 낙후된 모습이다. 하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시가지 쪽이 더 볼 것 많고 정겨운 느낌이다.

 

도로가 좀 좁아지고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평일 낮이라 그런지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다른 대도시보다는 자전거 타고 가기가 수훨한 편이었다.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구시가지

 

죽도시장 옆을 지나, 북구청을 지나서, 포항 여객선 터미널 쪽으로 향했다. 울산에서 경주를 지나면서는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됐다. 이젠 고성까지 바다를 놓치지 않을 테다.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구시가지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구시가지

 

북구청 인근에서 바다 쪽으로 나오니 작은 수변공원이 조성돼 있었고, 자전거길도 놓여 있었다. 포항도 나름 바다를 끼고 자전거 타기 좋은 곳이더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구시가지

 

해양수산청 인근에서 영일대 해수욕장 가는 길부터는 차도 옆으로 자전거길이 잘 조성돼 있었다. 옛날엔 제주도 자전거길도 이렇게 깨끗할 때가 있었는데.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드디어 영일대해수욕장. 바로 뒷쪽에 도시가 펼쳐져 있어서, 어쩌면 광안리나 해운대보다 더욱 도시스러운 느낌이다. 마치 도심에 있는 백사장 깔린 공원 같은 느낌이랄까. 먹고사는 문제만 제외한다면,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심심하면 바닷가 산책을 나올 수 있어서 좋겠더라.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이것저것 아기자기하게 설치된 것들이 많아서,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수변 공원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백사장을 사진으로 찍으면 다 비슷비슷해서 재미가 없는데, 이런 피사체가 있으니 나름 촬영 포인트가 되더라. 의미따위 없으면 어떠냐, 사진만 보고 아 거기다 할 수 있는 어떤 포인트만 되면 되지.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무인 인증센터

 

가장 최근에 업데이트 된 '동해안 종주 자전거길 인증센터' 정보에 따르면, 동해안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인증센터는 영덕의 해맞이공원이다. 포항에서 북쪽으로 약 50킬로미터를 더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북쪽 끄트머리에는 '영일대 무인 인증센터'가 있었다. 물론 부스 안에는 도장도 스템프도 없다. 그냥 부스만 있는 상태다. 국토종주 자전거길 수첩에도 여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도 동해안 종주를 할 수 있다. 중간에 약간 길인 듯 아닌 듯 한 곳이 나오긴 하지만, 그럭저럭 자전거길로 연결해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 공식적으론 표시하지 않지만, 대략 포항까지 동해안 자전거길로 넣어도 될 듯 하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영일대 지나서 북쪽으로 살짝 올라가니 세상 갈매기들이 여기 다 모여 있구나. 거의 거대한 갈매기 화장실.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포항에선 바닷가로만 달릴 수는 없다. 중간에 살짝 동네로 들어가서 국도를 타야 한다. 그래도 자전거길 표시는 끊기지 않게 잘 돼 있었고, 도로에도 자전거길이 따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포항 시내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하나도 못 봤다.

 

 

영일만 산업단지 지역을 살짝 지나면 바로 칠포해수욕장이 나온다. 이쪽 산업단지는 울산 공업단지에 비하면 아주 안전한 편이라서 걱정할 것 없다.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칠포해수욕장을 처음 봤을 땐, 과장 조금 보태서 이게 백사장인지 사막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쪽은 백사장 넓이가 적당했지만, 다른 한 쪽은 정말 사막처럼 넓은 모래밭이었다.

 

공식 설명을 보면, 백사장 길이가 2km, 폭 70m로 하루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백사장 폭이 70미터가 넘어 보이는 곳도 있더라. 어쨌든 규모가 큰 해수욕장인 것은 틀림없다.

 

 

 

저기 앞에 잘 보면 쓰레기 처럼 보이는 짐이 있다. 서양 여인 둘이 이쪽으로 오더니 짐을 턱 놔두고 물에 들어가서 노네. 어쩌라고. 나보고 짐 보고 있으라는 거냐. 반경 100미터 내엔 아무도 없는데.

 

이 서양 여인네들, 반바지에 티셔츠 입은 평상복 그대로 물에 들어가서 놀더라. 동남아 같은데 가보면 대체로 서양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영복 없어도 그냥 훌훌 벗고 속옷만 입고 물에 들어가는데. 얘네는 아무래도 한국 패치가 된 모양이다. 조금 슬프다. 뭐가 슬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하던데로 바다 보면서 여기저기 사진 찍으면서 앉아 있었고, 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조금 놀다가 나와서는 짐 챙기면서 나를 보며 생긋 눈인사를 하더라. 아아, 너네 진짜 나를 짐 지키는 사람으로 활용한 거였냐. 거의 선녀와 나뭇꾼 상황이었지만, 나뭇꾼이 선녀 옷을 가져가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이쯤 되니까 신발 밑바닥도 다 망가져 있었다. 뒷꿈치 쪽은 구멍이 나서 아스팔트를 맨발로 밟고 다니는 상황. 그래서 뒷꿈치는 최대한 땅에 안 닿게 걸어다녔다. 딱히 신발 살 곳도 없고, 사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양호한 편이었다. 이 상태에서 더 신고다녔더니, 나중엔 앞바닥도 구멍이 났다. 그래도 꿋꿋이 신고 다녀서 나중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미련없이 버렸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 잘 한 것 중에 하나가, 만 원짜리 아쿠아슈즈를 신고 갔다는 거다. 새걸로 신고 나가서 딱 한 달 내내 신고다니다가 버리기 딱 좋았다. 운동화였으면 신발보다 발이 더 망가졌겠지. 아쿠아슈즈니까 물도 잘 빠지고, 잘 말라서, 여행 내내 발은 편하더라. 걷는게 편한 게 아니라, 물에 빠져서 젖더라도 한 시간 이내에 말라버리니 발 건강에 좋다는 뜻이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칠포에는 가게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호텔 같은 것들이 조금 있으니까, 다들 거기서 밥 같은 걸 해결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해변 가까이에 가게가 하나 있어서, 물이나 컵라면 정도는 구입할 수 있었다. 사실 하룻밤 캠핑하는데는 별 부족한 게 없었다.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 칠포 해수욕장

 

가게 앞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노르웨이 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덩치에 비해 자전거가 너무 작았지만, 비행기로 날라오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 그래도 커다란 텐트에 코펠, 버너 같은 것도 다 있더라. 자전거는 작지만 짐은 나보다 서너 배 더 많았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까지 갈 거라고 하고, 돌아가면 여행 이야기로 강연회 같은 걸 열어서 돈을 벌고 또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최근에는 일본 시코쿠 순례길을 킥보드로 여행했다고 한다. 전동킥보드가 아니고 오리지널 올드타입 발동킥보드. 이걸 듣고는 나는 머리에 불이 켜 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하지만 그 동네는 숙박비 등이 비싸서 해 볼 엄두는 안 났다.

 

그래도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 괴상한 여행 방법에 대한 힌트를 많이 얻었다. 이렇게 점점 이상한 곳으로 흘러흘러 가는구나. 서울도 부산만큼 큰 도시냐는 질문에서 잠시 말문이 턱 막혀버리기도 했지만, 뭐 어쨌든 함께 과자 먹으면서 재미있는 수다를 떨었다.

 

 

백사장 뒷편에는 넓은 솔밭이 있었고, 비수기에도 야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해 지니까 다들 조용해져서 오랜만에 편하게 잠을 잤다.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사람들, 그리고 적당한 곳에 가게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야영지다.

 

밤엔 꽤 쌀쌀했는데, 그 노르웨이 인은 문이 망충망 같은 것으로 돼 있어서 안이 훤히 보이는 텐트로 이불도 없이 그냥 자더라. 노르웨이에 비하면 여기는 아직 여름이 맞다면서.

 

아마도 우리가 동남아인들이 십 몇도에 얼어죽는다는 뉴스를 보고는 의아해하듯이, 쟤네도 우리가 십 몇도에 쌀쌀하다고 긴팔 입고 이불 덮고 하는 걸 보면서 의아해하겠지. 어쨌든 오랜만에 길에서 좋은 여행자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즐거웠다.

 

어쩌면 이 여행자와 함께 여행하며 이런저런 에피소드 겪고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할 지도 몰라서 미리 말하는데, 다음날 내가 짐 다 챙기고 난 후에도 자고 있길래 그냥 혼자 떠났다. 어차피 함께 여행하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인생도 그렇듯이, 여행은 원래 혼자 하는 거다.

 

Posted by 빈꿈

댓글을 달아 주세요